소설리스트

고려 무신이 삼국지를 다 때려부숨-104화 (104/175)

104. 이유의 계략 (3)

홍농성에 6만의 대군이 진입하고 있다. 바로 이의민의 본대다.

본대를 이끌고 있는 순유는 이의민과 홍농성이 무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군! 무사하셨습니까?”

“보면 모르겠나?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왔군.”

이의민의 별동대보다는 한참 늦었지만 그래도 본대는 자신들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홍농에 왔다. 별동대는 전부 기병이라 빨리 올 수 있었지만, 본대는 보병 위주에 가지고 온 물자들도 산더미다. 그런 대군의 행렬이 이 정도 속도를 낸다는 것만 해도 기적에 가깝다.

순유가 최대한 빨리 가자고 재촉을 한 덕분이긴 했지만, 군사들의 마음도 다 같았기 때문에 이리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말을 타지 않은 보병들 대부분 아직도 숨을 헐떡거리는 것을 보면, 모든 군사들이 한마음이 되어 얼마나 죽을힘을 다해 뛰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심지어는 말을 타고 온 순유조차 매우 지쳐 보인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왔나 보군. 적당히 좀 쉬지 그랬나?”

“그러시는 주군이야 말로 어째 저보다 상태가 더 심하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아! 별 거 아니야. 간만에 길바닥에서 좀 잤더니....”

“예? 주군께서 길바닥에서 주무시다니....?”

대충 얼버무린 이의민은 전날 병사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느꼈던 의문점에 대해 순유에게 물었다.

“그런데 홍농에 이상한 점이 있어서 말이야... 최근 홍농에 이주한 백성들이 부쩍 늘었다고 하더군. 성 안에 집이 부족할 정도야. 보통 성에 군사들을 주둔시킬 때 민가를 빌리잖아? 그런데 빌릴 민가가 하나도 없을 정도였어. 이런 적은 없었는데 말이야.”

이의민에게 얘기를 듣자마자 답을 내놓는 순유.

“음. 중덕 선생에게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그 부분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마 그들은 동탁의 첩자일 듯합니다.”

순유의 말에 곽봉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반박했다.

“응? 순 군사. 그 많은 이들이 다 첩자란 말입니까? 내가 알기로는 홍농성에 들어오는 이들에 대해 철저히 검문을 한 것으로 아는데.... 무기도 없을 그들이 안에서 무얼 할 수 있겠습니까?”

“무기가 없어도 할 수 있는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바로 화계지요.”

순유는 정확하게 동탁과 이유의 계략을 간파했다. 순유의 말에 이의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화계라면 무기가 없어도 가능하지.... 그리고 특히 동탁이라면 더더욱 그럴 만해.”

이의민도 동탁이 원 삼국지에서 낙양을 전부 불태운 것에 대해 알고 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순유의 예측이 그럴듯했다.

“흠! 그럼 이제 해결이 된 거로군. 최근 이주해온 이들만 솎아 내면 화계 같은 것에 당할 일은 없겠지.”

이에 순유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 될 말씀이십니다. 이주해온 자들 중 첩자가 아닌 진짜 백성들도 상당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들을 추방하거나 핍박할 경우 지금껏 백성들을 대상으로 쌓아왔던 주군의 신뢰가 깨어질 것이고, 동탁은 바로 그때를 노리고 있을 겁니다.”

“흠! 동탁은 바로 그걸 노리고 첩자를 이리 투입시킨 것이로군. 만약 내가 이주 백성들을 처단하거나 추방하면 그걸로 선동을 할 것이고, 그리하지 않으면 화계를 쓰겠다는 거로군.”

이의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자신이 백성들에게 얼마나 큰 신뢰를 받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 백성들을 함부로 대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황제나 고위 관리들에게는 막 나갈 수 있는 이의민도 백성들에게는 그러기가 힘들어졌다.

“그럼 이주해온 이들 중 첩자와 일반 백성들을 구분할 수는 없겠나?”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모를까, 지금은 한창 동탁군과 대치 중인 상황이 아닙니까? 일단 최근 이주 백성들을 대상으로 정확히 언제부터 넘어 온 건지 알아내야 할 텐데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합니다.”

이에 곽봉이 다시 순진한 표정으로 순유에게 물었다.

“군사. 그래도 무기창고와 군량창고의 경계를 강화하여 화계를 사전 차단하면 되지 않겠소?”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저도 군의 보급물자가 있는 곳을 막을 자신은 있습니다. 허나 홍농성의 모든 곳을 다 지킬 수는 없습니다.”

“홍농성의 모든 곳을 지킬 필요는.... 설마....?!”

곽봉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금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제발 아니길 빌었다. 하지만 순유는 그 생각대로 라고 알려주었다.

“맞습니다. 바로 민가를 노릴 겁니다.”

“그럼 정녕 방법이 없습니까?”

잠시 고민을 하던 순유. 역시 순유는 보통이 아니다.

“한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찾기가 어렵다면, 그들이 스스로 나오게 하면 됩니다. 곽 장군. 장군이 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

최근 홍농성으로 들어온 보따리상인 명재는 갑작스레 들이닥친 군사들을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며칠 전에도 군사들이 명재의 집에 와서 잠을 청할 곳이 없냐고 물었었다. 보통 다른 군대였다면 명재의 의견과 상관없이 그냥 집을 강제로 빼앗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의민군은 그러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집주인인 백성들의 의견이 우선시됐다.

대부분의 백성들은 흔쾌히 집을 내주었다. 다른 군대였다면 그냥 뺏길 것을 물어봐주는 것도 감지덕지다. 무엇보다 백성들은 이의민의 승리를 바랐다. 그들이 승리해야 자신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으니 너도나도 협조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명재는 이상하게도 다른 백성들과는 달리 이의민군에 협조적이지 않았다. 다른 집처럼 빌려줄 방이 없는 것도 아닌데 군사들의 요청을 거절했다.

이의민군 군사들은 명재의 말만 듣고 순순히 물러갔다. 그런데 또 다시 와서 방을 빌려달라고 하니 명재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저... 나으리들. 송구하지만 일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지금 빈 방이 없습니다.”

“아! 그렇소? 방이 없어도 괜찮소. 그럼 창고라도 빌려주시오.”

“차, 창고도 이미 꽉 찼습니다. 정말 빈 방은커녕 비어있는 곳이 단 한군데도 없습니다.”

“흐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하루 이틀만 여기 마당이라도 좀 빌려주시오.”

“예?! 마, 마당에서 어찌 주무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명재는 마치 어떻게든 군사들을 자신의 집에서 재우지 않으려는 듯 군사들이 나가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명재의 말을 듣고 순순히 물러났던 며칠 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군사들이 그냥 물러가지 않았다.

“이번에 워낙에 대군이 들어오다 보니 누울 자리조차 없어서 말이오. 설마 마당도 다 찼다고 하시지는 않겠지요? 딱 봐도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데....”

명재는 대꾸하지 못하고 결국 마당을 빌려주기로 했다. 방이야 이미 찼다고 속였지만, 마당은 뻔히 눈에 보이는데 거짓을 말할 수도 없었다.

그런 명재를 보며 이의민군 지휘관으로 보이는 장수가 눈을 빛냈다. 그리고는 명재에게 다가가 육포를 건네면서 은근슬쩍 말을 거는 그다.

“이거 참 미안하오. 여러모로 민폐요. 허나 이거 좀 받으시고 우리들의 사정도 좀 이해해주시오.”

그 이의민군 지휘관은 바로 곽봉이었다. 이제는 후장군이 된 곽봉이지만 지금은 말단 장수와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명재는 그가 후장군 곽봉이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명재는 곽봉이 말을 거니 어쩔 수 없이 받았다.

“그, 그렇습니까? 어쩔 수 없죠....”

“무려 10만에 가까운 대군이 홍농성에 들어와서 사람 누울 자리도 없게 만들었으니 우리가 이럴 수밖에 없지요. 대신 우리가 숙박한 대가는 나라에서 전부 금전적으로 보상을 해줄 겁니다. 혹시 지금이라도 방을 내주시면 우리가 위에 얘기해서 보상을 더 많이 받으실 수 있도록....”

“아, 아닙니다! 그냥 마당만 써주십시오.”

보상을 해준다는데도 명재의 표정은 영 불편해보였다. 다른 백성들은 보상 약속에 자신의 안방까지 내주는 경우가 대부분인데도 말이다.

“응?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러슈? 집에 아픈 사람이라도 있는 거요?”

“그, 그런 건 아니고.... 소인은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뭔가 크게 찔리는 것이 있는지 명재는 얼른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군사들은 저마다 마당에 짐을 풀었다. 곽봉도 마당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명재는 한번 씩 방 밖으로 나와 그런 군사들을 보면서 계속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곽봉을 따라온 청오는 일부러 명재에게 살짝 들리게끔 입을 열었다.

“아! 형님. 그런데 위에서는 대체 무슨 생각이랍니까?”

“또 뭐가 궁금해서 그러는 거냐? 우리는 그냥 까라면 까면 되는 것이지.”

“아무리 그래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서요. 민가에 동탁의 첩자들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그 놈들을 족치지 않는 겁니까?”

명재가 들어간 방 쪽에서 헙 하는 소리와 급히 입을 막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곽봉과 청오는 짐짓 못들은 척 계속 얘기를 이어갔다. 방 안에 있는 명재가 충분히 들을 수 있게끔 말이다.

“쯧쯧! 그래서 네 놈이 돌대가리 소리를 듣는 것이다. 군사께서 설마하니 아무 대책도 없으시겠나? 그들이 화계를 쓰기 전에 전부 제압할 거라고 하셨다.”

“오! 그렇습니까? 그럼 걱정할 건 없겠군요. 그런데 첩자들의 정체는 대체 어찌 알았답니까? 쉽지 않았을 텐데....”

“동탁이 첩자를 쓰듯 우리라고 첩자가 없겠느냐? 어찌됐든 첩자라고 여기 온 놈들도 불쌍한 놈들이야. 결국 자기들이 버림받았다는 걸 알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놈들이 버림을 받았다는 건 무슨 소립니까?”

“뻔한 것 아니냐? 여기 놈들이 불을 질렀다고 치면, 그 놈들은 어떻게 살아가겠느냐? 우리가 첩자의 존재를 몰랐다면 모를까, 뻔히 아는데도 동탁 쪽은 신경도 쓰지 아니 한다고 하더라.”

“아니?! 그게 정말 입니까? 승상이었다면 절대 첩자들 하나도 그냥 버리지 아니 하실 텐데.... 동탁 밑에 있어서 무슨 꼴이랍니까? 어찌 보면 참 불쌍한 놈들이네요.”

“그러게 줄을 잘 서는 것도 중요하지. 내가 동탁의 첩자였다면 승상에게 가서 스스로 첩자임을 밝히고 승상의 편이 됐을 거다. 물론 그간 동탁 밑에서 첩자 노릇을 했으니 처벌받을 게 두렵기도 하겠지만, 그간 승상께서 항병들을 어찌 대했는지 소문이 파다하잖아?”

“그렇죠. 저라도 그리 했을 겁니다. 저 역시도 항병출신 아닙니까. 문제는 그 첩자 놈들이 그걸 알까요?”

“몰라. 잠이나 자자.”

그렇게 대화를 마친 곽봉과 청오는 곧 코를 골며 잠에 빠졌다. 그때 명재의 집 방안에서 4명의 인영이 몰래 나왔다.

그 중 한명은 명재였는데, 나머지 세 명은 군사들이 그토록 이 집에 드나들었는데도 방안에서 코빼기도 안 내비쳤었다. 그들이 여인이라면 이해가 가는 일이지만 그것도 아니다. 전부 사내들인 것 같았다.

4명은 나름 발걸음 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집밖으로 나가려는데 갑자기 곽봉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이 오밤중에 어딜 가시오?”

“허어억!! 크읍! 그, 그게.... 자, 잠이 아니 와서 산책이나....”

“식구들이 단체로 말이오? 참으로 돈독한 식구구려. 아무튼 여기가 아무리 성 안이라도 지금은 전시 상황이니 늦은 밤길을 조심하시오. 이리 함부로 돌아다니면 위험하다는 얘기요.”

“아... 하하. 충고 감사히 듣겠습니다.”

명재와 3인은 그렇게 산책을 간다면 집 밖을 나갔다. 그리고 곽봉과 그를 따라온 나머지 군사들이 모두 몸을 일으켰다.

“이 집이 확실하다.”

곽봉의 말에 청오가 물었다.

“어찌 확신하십니까? 장군?”

“보통 민초들은 마당 잠시 빌리고 보상까지 해주니 웬만하면 서로 해준다고 안달이다. 그런데 그놈의 표정이 어땠느냐? 집에 무슨 보물이나 과년한 여식이라도 숨긴 사람처럼 우리를 안으로 들이기를 꺼려했다. 지금 보니 가족 중에 여인도 없다. 그럼 뭐겠느냐?”

“흐흐. 역시 장군님의 촉은 천하제일입니다. 이제 뭐합니까? 우리.”

곽봉은 청오의 뒤통수를 한 대 갈기며 말했다.

“뭐하긴 임마. 잠이나 자라. 아까 나간 그 놈이 지금쯤 꽁지 빠지게 뛰어다니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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