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움직이는 공포의 군주 (3)
서영은 상대가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자 오히려 본인이 열 받았다.
“이런 망할 놈들! 어찌 이런 도발을 듣고서도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단 말인가? 듣던 얘기와는 달리 저놈들은 전부 겁쟁이들인가?”
서영은 어떻게든 홍농의 수비군을 성 밖으로 나오게 만들고 싶었다. 서영은 3만의 군사를 끌고 왔다. 하지만 첩보에 의하면 홍농의 수비군도 3만이라고 한다.
병력이 더 적더라도 차이가 그렇게까지 크지 않다면 수성을 하는 쪽이 유리하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런데 병력도 비슷하니 공성을 하기에는 너무 불리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적군을 성 밖으로 끌고 와서 싸우려는 서영이었다.
그렇다면 성 밖에서 싸우는 것은 자신이 있을까? 일반적인 동수 대 동수의 전투라면 승패를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서영이 자신이 있어 하는 이유는 병종의 비율 때문이었다.
현재 서영군은 총 3만의 병력 중 기병의 비율이 거의 절반에 달했다. 즉, 기병만 15,000이란 뜻이다.
반면 현재 홍농군의 병력은 보병이 대다수다. 기병도 없지는 않지만 비율이 10분지 1도 안 되었다. 기병과 보병의 차이는 동일 병종의 2배 병력 차이보다 더한 차이가 있다고 봐야했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평지 전투에서 누가 승리할 지는 불 보듯 뻔했다.
거기다가 서량 기병이 어떤 기병인가? 일반적인 중원의 기병보다 훨씬 더 악명이 높은 만큼 그 전투력이 남다른 기병이었다.
그래서 서영은 평지에서 맞붙는 전투에서는 반드시 승리할 거라 믿고 있었다. 그렇게 야심차게 평지전을 준비했다.
그런데 문제는 홍농군이 만약 서영의 군사들의 병종 비율을 확인한다면 성 밖으로 나올 리가 없었다. 서황이나 장료, 고순이라고 같은 수의 병력이라도 병종이 다르면 전투력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들이 아니라 웬만큼 상식이 있는 장수라면 모를 수가 없다.
서영도 그걸 알기에 일부러 보병 15,000만 이들에게 보여줬다. 나머지 15,000은 홍농성에서 절묘하게 시야가 가려진 곳에 숨겨놓고 있었다. 그 숨겨둔 15,000의 군사들이 전부 기병들이었다.
서영이 어찌 홍농성에서 시야가 닿지 않는 곳을 알까? 그건 바로 일전에 이유가 홍농성에 침투시켰던 세작들 덕분이다. 그들이 그런 주요정보들을 빠짐없이 동탁에게 보냈고, 서영 역시 그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서영은 세작들의 정보를 이용해서 적들을 꾀어낼 절묘한 계략을 세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홍농군은 성에 틀어박혀 도통 나올 생각이 없었다. 그러면 애써 세운 서영의 계략은 무용지물이었다.
물론 서영으로서는 상대가 굳이 나오지 않는다면 어렵게 공성전을 할 필요 없이 동탁의 본대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서영으로서는 그러기도 껄끄럽다. 동탁이 괜히 서영에게 정예 서량기병을 준 것이 아닐 터였다. 그런데 아무런 성과도 없이 그저 홍농 앞에 먼저 도착하기만 하자니 차후에 그 성질 더러운 동탁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랐다.
‘젠장! 이대로 시간이 끌리다가 아무 성과도 없는 상태에서 주군의 본대가 도착한다면... 재수 없으면 그 문사 놈들처럼 꼬치 신세가 될 터인데....’
공격을 받고 있는 서황, 고순, 장료보다 공격을 하는 서영이 더 당황하고 있다. 하지만 서영도 나름 산전수전을 겪은 노련한 장수였다. 그는 머리를 굴려서 도발보다 더 좋아 보이는 계략 하나를 떠올렸다.
‘적들에게 아직 들키지 아니했겠지? 옳거니!’
“지금부터 홍농성 앞에 진채를 세워라! 딱 화살이 닿지 않을 거리에 진채를 세운다.”
적군이 있는 성 코앞에서 진채를 세우라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화살 사정거리 밖에 세운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만 단위가 넘어가는 대규모의 인원이 지낼 공간에 울타리를 치고 막사를 세우는 데 아무리 적게 잡아도 서너 시진은 소요된다. 그리고 그 서너 시진 동안은 군사들이 굉장히 취약해지는 시간이었다. 당장 전투를 하는데 심력을 쏟아도 모자랄 판에 울타리를 세우고 막사를 세우는데 힘을 쏟으니까 말이다. 그 시간에 홍농성 군사들이 성문을 열고 공격을 해온다면 큰 낭패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바로 서영이 노리는 바였다.
‘저 혈기 넘치는 젊은 놈들이 이것까지 무시할 수는 없겠지. 제발 나와라.’
서영은 초조하게 홍농성 성루를 바라봤다. 그리고 서영의 생각대로 홍농성의 세 장수는 제법 동요하고 있었다. 서영에게 자신들이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았지만.
서황이 눈앞에서 만들어지는 적 진채를 보고 장료와 고순에게 말했다.
“이건 큰 기회요. 당장 성문을 열고 나가서 적들을 공격해야 하오.”
이번에는 오히려 장료가 서황을 말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좀처럼 평정심을 찾지 못했던 장료는 이제 완전히 되돌아온 모습이다.
“아니 되오. 저건 아마 함정일 가능성이 크오. 적 지휘관이 아무리 바보라도 저기서 저러는 것이 위험한 짓이라는 걸 모르지는 않을 거요. 그런데 대놓고 저리 진을 치는 것을 보면 분명 무슨 함정이 있을 것이오.”
“우리가 그리 생각하고 움직이지 않을 걸 염두에 두고 있는 걸 수도 있소. 이전에 도발을 그렇게 했는데 우리가 말려들지 아니 하는 것을 보고 그리 생각할 수도 있잖소.”
그렇게 서황과 장료의 의견이 갈라졌다. 한참 서로 갑론을박으로 토론을 하고 있는데 보다 못한 고순이 나섰다.
“그만! 둘 모두의 의견이 일리가 있다. 허나 잘 생각해보게. 공명. 자네의 의견대로 적들은 우리가 겁쟁이라고 생각해서 저리 만용을 부리는 것일 수도 있지. 만약 공명의 말이 맞고 우리가 군사를 끌고 나가지 않는다면 지금 눈앞의 적군 15,000을 섬멸할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반대로 군사를 끌고 나간다면 적군 15,000을 섬멸할 수 있게 되겠지. 그럼 문원의 말이 맞는다면 어찌 되겠나? 군사를 끌고 나간다면 적의 계략에 휘말려 홍농성을 빼앗길 테지. 나가지 않으면 성문을 걸어 잠근 채 이대로 버티면 되는 것이고. 이제 차이를 알겠나?”
고순이 여기까지 얘기하자 서황도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고 인정했다.
“과연 그렇소. 소장의 생각이 맞는다고 해도 얻는 것은 고작 적군 선봉대 15,000의 섬멸일 뿐이고, 그에 반해 틀리면 홍농성을 잃는 것이군요.”
“그렇지. 문원은 반대로 맞았을 때 얻는 것은 더 없는 셈이지만, 대신 잃는 것이 적으니 훨씬 안전한 선택이지. 우리의 목적을 생각해 보게. 거듭 말하지만 우리가 명받은 것은 적들의 섬멸이 아니라 홍농의 방어일세.”
같은 사정장군으로 묶인 서열이지만 아무래도 경험으로 보나 연배로 보나 장료와 서황보다 고순의 끗발이 더 위였다. 그걸 떠나서라도 고순의 얘기는 구구절절 설득력이 있었다. 서황은 고순의 노련함과 판단력에 탄복했다. 심지어 고순과 같은 뜻이었던 장료도 감탄했다. 뜻은 같았지만 고순과 같이 깊게 생각해서 나온 결론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서영의 두 번째 계책에도 홍농성의 성문은 전혀 열리지 않았다.
“빌어먹을! 이래도 문을 열지 아니 하는가? 정말 이의민 밑에는 겁쟁이들밖에 없느냐?!”
서영은 도발을 한다고 외치고 있지만, 오히려 화는 그가 내고 있었다. 결국 공성전을 준비하는 서영.
아무런 성과가 없으니 점점 초조해졌다. 공포의 군주, 동탁이 아무 것도 못한 자신에게 무슨 벌을 내릴지 몰라서였다.
결국 서영이 택한 것은 밤에 몰래 야습을 하는 것이었다. 후방에 숨겨뒀던 병력까지 모두 데려왔다. 물론 그들은 기병이지만 공성전에서 기병은 큰 의미가 없으므로 모두 말에서 내려 보병처럼 쓸 생각이다.
당연히 기병으로서의 전투력은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평소에 보병의 역할을 해본 적이 없던 그들에게 갑자기 보병 역할을 하라고 하니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래도 서영은 이 어두운 밤에 기습을 하는 것으로 변수를 창출하려 했다. 하지만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와아아아아!!”
“적군이 공성을 시도한다! 막아라!”
홍농군은 이미 야습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했다. 어차피 서영군이 선택할 수 있는 공격 방법이 그 정도 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영군이 몰래 성벽과 성문으로 다가가려 했지만, 이미 그 모습을 포착한 홍농 수비군의 화살세례가 펼쳐졌다.
“끄아악!”
선두에 있던 서영군 군사들은 순식간에 고슴도치가 됐다. 평지전이었다면 혼자서 보병 대여섯 명은 가볍게 박살낼 수 있었던 기병이었던 군사였다. 서영은 그런 군사들이 어울리지도 않는 공성전을 치르며 쓰러지는 것을 보고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제길! 어떻게든 성벽에 올라라!”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서영은 군사들을 독려하여 공성을 계속했다.
계속 되는 공성전에서도 서영군은 홍농군의 성벽에 오르기는커녕 병력 피해만 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병력이 비슷한데다가 절반은 이런 공성전이 생소한 기병이 원래 보직인 군사들이다. 거기다가 적군인 홍농군은 서황, 장료, 고순의 지휘아래 일사분란 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은 장수이면서도 다른 군사들보다 앞장서서 성벽 위에서 직접 화살을 쏘고 돌덩이를 던지는 등 솔선수범을 보이고 있다. 그 모습에 말단 병사들 역시 사기가 크게 진작되어 결사항전의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대략 반 시진 가까운 전투가 벌어졌는데도 서영군은 단 한 명도 성벽 위에 오르지 못했다. 소수의 군사들이 성벽 위에 오르는데 성공한다고 해도 홍농성을 차지할 수 있을지 모르는데,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가망이 없었다.
홍농군은 오히려 여유가 생겼는지, 서영을 조롱했다.
“네 이놈! 서영! 애꿎은 군사들만 희생시키지 말고 네놈이 직접 올라 오거라!”
‘제길! 그들을 움직일 수 있다면 변수가 생길 텐데....’
서영은 홍농성 안에 숨어든 첩자들을 이용하고 싶었지만, 동탁이 그들을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는 명을 내렸다. 그걸 어겼다가는 설사 홍농성을 차지한다고 해도 목이 달아날 수가 있었다.
‘어찌 한다... 이대로 공성을 진행하자니 섶을 지고 불에 들어가는 꼴이고...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서면 주군이 날 가만두지 않을 텐데....’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서영 역시 동탁이 아끼는 맹장이었다. 자신의 안위보다는 무엇이 주군에게 이로운가를 생각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모두 물러나라!”
결국 서영은 군을 물렸다. 그럼에도 성문은 열리지 않았다. 보통은 추격대를 보내거나 할 텐데 끝까지 안전한 쪽을 택하는 서황, 장료, 고순이다.
“지독한 놈들! 이래도 성문을 열지 아니 한다니....”
서영이 진채로 돌아와서 군사를 정비하고 있는데,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우르르르!
서쪽에서부터 시작된 잔잔한 진동이 곧 어마어마한 진동으로 바뀌었다.
“오셨구나...”
동탁의 본대가 접근하는 소리였다. 그것을 홍농성의 서황, 장료, 고순도 듣고 표정을 굳혔다.
어느덧 군사들이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까지 가까이 다가왔다. 선두에는 비대한 몸집의 동탁이 있었다.
그를 본 장료와 고순의 눈매가 사나워지고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정확히는 동탁이 아니라 그 옆에 적토마를 타고 있는 여포를 보고 이를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