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낙양의 숨은 실세 (1)
낙양에 있는 수많은 객잔들 중 하나인 낙수객잔. 객잔의 이름을 듣는다면 물이 떨어진다는 뭔가 심오한 뜻이 있을 거 같다. 하지만 사실은 그냥 객잔 주인인 낙수의 이름에서 따온 객잔에 불과했다.
낙수객잔은 낙양의 다른 객잔들과 마찬가지로 최근 엄청난 손해를 입고 파산직전까지 몰렸다. 낙양의 객잔들이 왜 장사가 안 됐냐고? 최근 낙양 내부에서 엄청난 규모의 전쟁이 발생했으니 장사가 어찌 잘 되었겠는가.
그래도 낙수는 희망을 잃지 않고 객잔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결국 낙양에서의 전쟁은 끝났으니 낙수로서는 희망이 생긴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객잔의 재건이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전쟁 통에 낙수객잔이 제법 파손됐다. 황실에서 대대적으로 피해 백성들에 대한 보상을 해주겠다고 공표했지만, 낙수는 그걸 믿지 않았다.
여태껏 황실에서 뭔가 해준다고 해놓고는 뒤통수를 치고 오히려 백성들을 곤란하게 만든 적이 한두 번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큰 문제는 전쟁은 끝났다지만 원래 낙수객잔의 단골이었던 이들 중 상당수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낙수객잔의 기존 단골들이 바로 낙양의 황군들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낙수는 다른 객잔들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손님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래도 이름이 특이한 덕분에 신규 손님 유치가 생각보다 잘 되고 있었는데, 오늘 큰 문제가 터졌다.
쾅!!
겨우 수리를 마친 낙수객잔의 정문을 힘껏 발로 차고 들어온 사내들이 있었다. 그들은 딱 봐도 나 건달이오 하는 차림을 하고 있는 대여섯 명의 무리들이었다. 무리의 선두에 있는 자는 얼굴에 검상이 나 있는 험상궂은 외모의 사내였는데, 딱 봐도 한 가닥 하게 생겼다.
“어이! 낙수! 나를 잊지 아니 했겠지?”
선두의 사내가 낙수를 보며 히죽거렸다. 반면 낙수는 그를 보며 잠깐 울상을 지었지만, 곧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를 띠며 무리를 맞이했다.
“아이고! 낙양의 영웅호걸이신 장삼님이 아니십니까? 언제 오시나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흐흐흐! 그래. 나 장삼이야. 장삼. 오랜만이야. 그런데 돈은 당연히 준비가 되었겠지?”
“그것이.... 장삼님. 좀 봐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지금 돈이 없어도 너무 없습니다.”
무리의 우두머리인 사내는 장삼이다. 그는 낙양 저잣거리 바닥에서 꽤나 힘 좀 쓴다하는 건달패 장씨파 소속이었는데, 그의 친형이 바로 장씨파의 우두머리였다.
평소에도 낙양 저잣거리에 있는 가게를 돌며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뜯어냈었다. 그런데 전쟁이 시작되고 더 이상 보이지 않아서 전쟁 통에 뒤졌나 싶었는데, 전쟁이 끝나자마자 귀신같이 나타나서 다시 낙수의 돈을 뜯어가려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낙수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적당히 얻은 수입을 보호비로 주고 웃으면서 그들을 돌려보냈을 터였다. 그런데 지금은 도저히 그리 할 수가 없었다.
“뭐? 돈이 없다고? 그게 무슨 개소리냐? 헛소리하지 말고 좋은 말로 할 때 빨리 내라.”
“장삼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전쟁 때문에 그간 장사를 못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게다가 여기저기 파손된 곳이 많아 수리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이거 메우려면 한동안은 남는 게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사정 좀 봐주십쇼. 한 한달 후.... 아니. 두 달 후부터는 예전처럼 꼬박꼬박 보호비를 납부하겠습니다.”
“두 달 후라.... 그러니까 지금은 돈이 없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떤가? 우리가 돈을 빌려줄게. 그럼 넌 그 돈으로 지금 보호비를 납부해. 그리고 두 달 후에는 보호비와 함께 우리가 빌려준 돈의 이자를 함께 갚는 거야. 아니면 원금까지 같이 갚거나. 아! 그리고 우리가 돈 빌려줄 때 이자가 얼마인지 알지? 한달에 8할이야. 물론 복리로. 그리고 혹시 돈을 갚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서 이 객잔을 담보로 걸면 되고. 흐흐.”
“예? 그, 그게 무슨....?”
장삼은 악랄했다. 다른 객잔에 비해 이름 덕분에 장사가 좀 더 잘 되는 낙수객잔을 눈여겨봤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낙수객잔을 통째로 먹으려는 속셈의 장삼이다.
당연히 낙수는 장삼의 의도를 눈치 챘다. 그리고 낙수객잔을 먹으려는 속셈을 알든 모르든 당장 두 달 후부터는 보호비와 함께 이자까지 내란다. 납부해야 될 돈이 곱절로 늘어나는 셈이니 환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이 날강도 같은 놈들! 너희들이 사람이냐?! 아니 그래도 어려운데 어찌 벼룩의 간을 빼먹으려 하냐?!”
결국 낙수는 장삼에 대한 두려움도 잊고 분노를 폭발했다.
“돈이 없는데 낙양 한복판에서 장사를 왜 하고 있어? 돈 없으면 죽어야지! 얘들아. 이분이 아직 인생의 쓴맛을 덜 보셨나보다. 인생은 고통이라는 걸 깨우쳐드려라.”
하지만 돌아오는 건 결국 무자비한 폭력이었다. 낙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장삼의 수하 건달들에게 멱살이 잡힌 채 눈물을 쏟아냈다. 그때 낙수의 눈에 날아오는 닭다리가 보였다.
힘 있게 날아오는 건 아니었지만 닭다리는 정확히 건달의 어깨에 맞았다.
“어떤 새끼야?!”
장삼은 닭다리가 날아온 방향을 보며 호기롭게 외쳤다.
전쟁 통에는 어린아이마냥 숨어있기만 했지만, 끝난 이후에는 이전처럼 허세와 거드름을 피우면서 저잣거리에서 다시 왕 노릇을 할 수 있게 된 장삼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애초에 상대가 누군지 확인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닭다리가 날아온 방향을 보니 장삼의 생각대로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딱 봐도 샌님처럼 보이는 사내 두 명만 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닭다리를 힘없이 던진 것도 그렇고, 아무리 봐도 힘을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네놈들은 뭐냐? 설마 무슨 정의감으로 이런 것이냐? 흐흐! 죽고 싶어서 환장을 한 놈이구나.”
장삼은 아무 거리낌 없이 두 사내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어디 거지같은 새끼들이 어르신들 식사하는데 밥맛 떨어지게...”
장삼은 자신의 두 귀를 의심했다. 두 사내 중 젊어 보이는 자의 입에서 험한 욕지거리가 나왔다. 낙양의 저잣거리에서 그런 식으로 자신에게 욕을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는 장삼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뭐? 방금 뭐라고 했느냐? 나보고 거지라고 했느냐?”
“사지 멀쩡한 놈이 남 등쳐먹기나 하고.... 너 같은 새끼를 거지라고 부른단다.”
“이, 이 샌님 같은 놈이....!”
장삼은 분노하여 그 자리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아무리 장삼이라도 상대가 이 정도로 나오면 한번쯤 의심을 해봐야했다. 이렇게 당당하게 나갈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말이다.
하지만 장삼은 애초에 그런 건 생각지도 않았고, 그럴 만한 이유가 이었다. 사실 웬만한 건달들은 부자들을 적당히 두려워했다. 그들 자체가 겁나는 건 아니고, 그들과 연결된 권력이 두렵다.
하지만 장삼은 그런 두려움도 거의 없었다. 장삼은 낙양을 주름잡는 장씨파의 셋째였다. 그들이 다른 곳도 아닌 제도인 낙양 저잣거리를 제 마음대로 활보할 수 있는 배경이 무엇이겠는가. 장씨파 역시 관부와 줄이 닿아 있었고, 그 줄의 힘도 장난이 아니었다.
실제로 낙양의 알량한 연줄을 믿고 장삼에게 까불던 졸부들을 두들겨 팬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장삼은 이번에도 같은 상황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못 보던 얼굴인 걸 보니 어디 촌구석에서 올라온 지 얼마 아니 되었나보군. 낙양의 법도를 제대로 깨우쳐줘야 되겠어. 죽이는 건 그래도 좀 그렇고, 일단 피 좀 흘리게 해서 겁 좀 줄까?’
장삼은 기세 좋게 칼을 휘두르려다가 혼비백산했다.
“허어억!!”
그가 칼을 올리자마자, 아니. 칼에 손을 갖다 대자마자 갑자기 옆 탁자의 남자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장삼에게 칼을 겨눴기 때문이다.
“너, 너희들은 뭐냐?!”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 감히 어느 분께 칼을 들이미느냐?!”
그제야 낙수객잔 안에 있던 손님들 대부분이 눈앞의 이 건방진 도련님의 호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못해도 열 명은 넘어보였다. 쪽수에서 밀린다는 걸 깨닫고 장삼은 칼을 집어넣었다.
든든한 뒷배가 있으니 두려울 것이 없는 장삼이지만, 당장 이 객잔 안에서 쪽수로 밀리니 금세 기세가 줄었다.
장삼은 아직도 자신의 앞에서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여유롭게 밥을 먹고 있는 두 사내를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와는 뭔가 달랐다.
여태껏 부자들이라고 해도 기껏해야 시종이나 달고 다니지 이렇게 호위를 달고 다는 경우는 거의 본적이 없다. 있다고 해도 한두 명의 칼잡이가 고작이다. 그런데 지금 두 사내는 무려 열 명이 넘는 호위를 달고 있잖은가.
‘아니? 무슨 호위가 이 정도나.... 여태껏 본 졸부 놈들과는 다른 놈인가....?’
앞뒤 가리지 않던 장삼은 생각을 바꿨다. 일단 상대의 정체를 먼저 파악해야 될 것 같다.
“어, 어디서 오신 분들이오?”
“미친 놈. 그건 알아서 뭐하게?”
여전히 젊은 사내의 입은 거칠었다. 장삼은 그런 상대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까처럼 자신의 기분대로 막나갈 수가 없다.
그때 젊은 사내와 같이 있던 30대 중반 정도 보이는 사내가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장삼에게 물었다.
“하하. 뭐가 그리 궁금하신가?”
“혹시 낙양에 계신 분들입니까?”
“아니. 우린 영천에서 왔다네.”
잔뜩 긴장한 장삼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역시 낙양의 고관은 아니었군... 그러면 그렇지. 낙양의 부자들 치고 나 장삼을 모르는 사람 없잖아. 아무튼 낙양 놈들은 아니란 말이지. 일단 물러나서 형님을 데려와야겠어.’
영천에서 왔다는 말에 다시 상대를 깔보는 장삼. 단지 지금은 쪽수에서 부족하니 일단 한발 물러서고 곧 다른 식구들을 데려와서 복수를 하겠다는 야심찬 꿈을 꾸는 중이다.
“실례 많았습니다. 그럼 편안한 식사시간 되십쇼....”
장삼은 처음 태도와는 완전히 반대로 공손하게 두 사내에게 인사를 하고는 수하 건달들을 데리고 객잔을 나갔다. 물론 가는 길에 낙수를 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두 사내는 그런 장삼 패거리를 보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두 사내 중 나이가 많은 쪽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거 아무래도 그냥 나가는 것 같지는 않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일 하나가 해결될 수도 있을 것 같네. 그렇지 않나? 봉효.”
“뭐 그냥 적당히 욕만 하고 돌려보낼 생각이었는데, 일이 이리 풀리는 군요. 원상 형. 떡 본 김에 제사나 지내죠.”
장삼이 촌구석 부잣집 도련님이라고만 생각했던 두 사내의 정체는 놀랍게도 바로 곽가와 종요였다. 종요가 고기가 먹고 싶다며 투덜대던 곽가를 데리고 온 객잔이 바로 이 낙수객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