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무신이 삼국지를 다 때려부숨-87화 (87/175)

87. 상처 입은 맹수 (2)

여포군과 하내군의 기나긴 추격전이 이어졌다. 어떻게든 여포를 잡으려는 하내군과 어떻게든 그를 살리려는 여포군이었다.

그래도 확실히 여포군의 병력이 더 많다는 건 큰 효과를 보고 있었다. 하내군은 자신들의 병력보다 더 많은 군사들을 넘어야 여포에게 도달할 수 있었는데, 이의민이 있지 않는 이상 그건 힘든 일이었다.

아니. 이의민까지는 아니라도 하다못해 서황이나 장료, 태사자라도 있었으면 가능했을지도 몰랐지만, 어쨌든 현재 하내군에는 그 정도의 무장은 없는 상태였다.

결국 하내군은 여포를 놓치고 말았다. 물론 그 덕분에 여포의 군사들은 거의 괴멸시키는 성과를 거뒀으니 얻는 것이 없지는 않았다.

어쨌든 이번 전투의 승리로 여포군의 낙양 합류는 일단 막게 됐다. 솔직히 기대 이상의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여포의 발목만 잡아보자는 심정으로 전투에 임했었다. 분명 그들보다 병력도 적고 여포와 같은 무장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을 거의 괴멸시키는 성과를 거뒀으니 아무리 여포를 잡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기쁠 수밖에 없다.

왕광과 방열, 변희 등은 자신들이 큰 성과를 거뒀다며 자화자찬했다.

“흐하하! 태수님. 우리가 그 여포를 꺾었습니다. 우리가 병력도 더 적었는데도 말이지요.”

“물론 여포를 잡지 못한 건 아쉬운 일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난 공이 아닙니까? 주군께 이 사실을 보고 드리면 틀림없이 크게 치하를 받을 겁니다.”

“하하! 방 장군. 변 장군. 다 자네들이 활약을 해준 덕분일세.”

그들은 낙양에서 이의민과 그 수하들이 큰 활약을 하고 있다는 말에 얼마나 배가 아팠는지 모른다. 이의민으로부터 어떤 치하를 받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그들이었다.

모두가 기뻐하는 와중에도 심각한 표정을 짓는 이가 있었다. 만총이었다.

왕광 등이 세운 공을 시기해서일까? 천만에. 만총 역시 이곳에서 같이 공을 세운 셈인데, 특히 함정 작전을 처음부터 계획했던 그의 공이 가장 크다고도 할 수 있는데, 왕광 등을 시기, 질투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가 심각한 표정을 짓는 것은 여포 때문이었다. 다른 이들은 여포를 잡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긴 했지만 그리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무시무시한 무위를 보았지만 받쳐주는 군사가 없다면 결국 한계가 있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만총은 그리 간단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만총도 그의 지력이 큰 약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결국 여포는 자신의 힘만으로 함정을 탈출하지 않았던가. 만총은 그 순간 여포가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로 보였다.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인 여포에게 절로 온몸에 전율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여포의 무력은 가히 만인지적이라 할만하다. 물론 무력만큼 머리가 따르지 못해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쉽게 꺾을 수는 있었지만, 그를 통제할만한 지략가가 붙는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 마치 주군처럼 말이다.... 음? 주군이라면....’

고민을 하던 만총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졌다. 그동안 이의민을 본지 꽤 오래 되어 잊고 있었다. 자신의 주군인 이의민이 어떤 인물인지. 만약 적이 여포가 아닌 이의민이었다면? 고민할 거리도 안 된다. 여포가 아무리 대단하다한들 이의민에게서 느낀 충격에는 비할 수 없다.

만총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다시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

하동군 외곽에서 있는 한 허름한 민가. 넝마가 된 옷을 걸쳐 입은 한 사내가 주변의 눈치를 살피더니 그곳으로 들어갔다.

민가 안에는 약향이 진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 온몸이 너덜너덜한 사내 한명이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누워 있는 그 사내는 다름 아닌 여포였다. 그리고 거지꼴로 몰래 들어온 사내는 장양이다.

하내군의 맹추격 속에서 장양은 군사들을 있는 대로 던져가며 간신히 퇴각할 수 있었다. 그 대가로 군사들을 거의 다 잃었지만 결국 여포를 살려서 데려올 수는 있었다.

장양은 복잡한 눈으로 여포를 보고 있다.

여포는 퇴각하던 날 기절한 이후로 며칠이나 지났는데 아직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장양은 불안한 예감이 계속 들었다.

‘여기서 여포가 죽기라도 하면 이제 나는 어떡해야 하나....’

장양은 여포에게 진심으로 충성하여 그를 따르는 게 아니었다. 단지 여포가 병주에서 절대 권력을 잡았으니 그 옆에서 알량한 권력이라도 누리기 위해 붙어있었던 것뿐이다.

하지만 하내 전투의 대패로 여포의 권력기반은 다 사라져 버렸다. 병주에서 거의 다 끌고 온 군사 3만이 그대로 날아갔으니 말이다.

이제 와서 낙양으로 가서 합류를 한다한들 연합에서 제대로 대우를 해줄 리가 없었다. 그나마 여포가 몸을 회복한다면 그 무력 덕분에 조금이나마 대우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그의 상태라면 회복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며칠 동안이나 움직이지 않고 누워만 있는 여포를 보다보니 원래라면 그에 대한 경외감으로 절대 하지 않았을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냥 죽이고 이의민에게 투항할까....?’

장양은 품속에 단도를 꺼냈다. 원래 가지고 다니던 그의 도는 진작 버린 지 오래고, 어디서 주워온 볼품없는 단도가 유일한 무기였다. 그래도 장양은 여포가 지금 이 상태라면 이 단도만으로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단도로 여포의 목을 겨누었는데, 순간 장양은 숨이 넘어가는 줄 알았다.

“허어억!!”

여포의 손이 꿈틀 거렸기 때문이다. 장양은 재빨리 단도를 숨기고 몸을 가지런히 모았다.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

“주, 주군! 깨어나셨습니까?”

여포의 눈이 서서히 떠졌다.

꼴을 보면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여포가 결국 살아나서 정신까지 차렸다. 참으로 놀라운 생명력이었다.

“으음.... 장양? 여긴 어딘가?”

“주군. 정신 드십니까? 다행입니다.... 여긴 하동군입니다.”

“전투는 어찌 되었나....? 이겼나?”

“호, 혹시 정신을 잃으시기 전의 상황이 기억나지 아니 하십니까?”

그제야 정신을 잃기 직전 마지막 기억을 떠올린 여포.

“으드득! 망할 놈들! 내 군사들은 다 어디 있느냐?”

“살아남은 자가 천이 아니 됩니다.”

“이런 쓸모없는 놈들! 3만이 2만에게 몰살을 당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 참으로 버러지들이 따로 없구나! 내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놈들!”

여포는 아직 몸이 성치 않은 데도 불구하고 불같이 화를 냈다. 장양은 그런 여포가 두렵기도 하지만 기가 차기도 했다.

‘빌어먹을... 그렇게 군사들이 몰살당하게 만든 원흉이 누군데? 네놈이 괜히 쓸데없는 도발에 말려들어가 전투를 망친 거잖아!’

“쿨럭! 쿨럭! 으으으! 쓸모없는 놈들....”

그렇게 성을 내던 여포는 별안간 피를 토했다. 역시 이 정도 상처는 여포에게도 결코 가벼운 상처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니 괜스레 자신감이 샘솟는 장양.

‘지금이라도 확 죽여 버릴까? 아직까지는 제대로 몸도 못 가누는 것 같은데, 이 상태라면 그래도 내가 이길 거 같은데....?’

장양이 그리 고민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여포의 얼마 남지 않은 군사들 중 한명이었다.

“별가! 별가! 아! 주군? 깨어나셨습니까? 주군! 소장이 엄청난 소문을 들었습니다.”

“끙! 뭐냐?”

“역적 이의민이 낙양을 점령하고 대장군 하진을 포함 모두를 결박했다고 합니다. 사실상 연합이 패한 것입니다.”

여포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지금 군사들을 거의 다 잃었다는 마당에 그가 기댈 곳은 연합뿐이었다. 그런데 그 연합 역시 이의민에게 패배했다니, 여포의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뭐라고?! 이런 멍청한 놈들! 대체 뭔 짓을 했길래 그리 쉽게 털린단 말인가?!”

“그럼 다른 연합군은 어찌 됐나?”

“유표는 진작 패배하고 아예 이의민의 밑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손견은 원술에게 막혀 올라오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동탁 장군께서는 장안까지는 왔는데 거기서 대장군의 패배 소식을 듣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염병! 장안까지 왔으니 빨리빨리 낙양으로 가야 될 거 아닌가. 굼벵이도 아니고 거기서 대체 뭘 하려는 거야?!”

자신은 이의민도 아닌 그 하수인한테 허무하게 털렸으면서도 남 탓만 죽어라 하는 여포였다. 장양은 그런 여포를 보며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이런 자를 주군으로 따르는 자신이 한심하기도 했고, 더 이상 여포 밑에서는 희망이 없는 것 같았다.

‘그냥 여포를 죽이고 재물을 들고 은거를 할까...? 아니면 그냥 동탁에게 합류해 연합을 유지해야 할까....?’

그때 여포가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옆에 놓인 약 그릇을 손에 쥐고 으스러뜨렸다.

으드드득!!

몸이 성치 않은 데도 엄청난 힘이었다.

그걸 본 장양은 여포를 죽이겠다는 생각을 싹 지웠다.

‘여, 역시 여포를 죽인다는 건 아닌 것 같군.’

“주군. 바로 배를 타고 장안으로 가시죠.”

“동탁과 합류하자는 얘기냐?”

“지금 남은 병력도 얼마 없는데 그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크윽! 알겠다. 장안으로 가자.”

여포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이 장양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

장안성.

“왜 아무런 말도 없느냐?”

성 안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치 황제처럼 앉아 엎드린 수하들을 보는 비대한 덩치의 남자. 그가 바로 서량의 동탁이다.

동탁은 덩치는 크지만 그렇다고 둔해보이진 않은 몸을 가지고 있었다. 비대한 몸집에도 숨길 수 없는 엄청난 근육들은 절로 상대에게 위압감을 느끼게 했다.

그런 동탁 앞으로 문사로 보이는 사내 몇 명이 줄지어 있었다. 그 문사들은 동탁의 눈치를 보며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동탁은 말없이 창 하나를 들더니 그대로 던졌다.

“크악!”

가장 가까이 있던 문사 하나가 동탁이 던진 창에 관통되어 그대로 죽었다.

“쓸모없는 놈들. 내가 네놈들 공자 왈 맹자 왈 소리 따위나 들으려고 비싼 돈 주면서 데리고 있는 줄 아느냐? 거기 죽은 놈 옆에, 낙양 공략에 관해 말을 해보아라.”

지목당한 문사는 덜덜 떨면서 입을 열었다.

“그, 그래도 안전하게 가려면 하북에서 원군이 내려오면 가는 것이.... 크악!!”

동탁은 문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창을 던졌고, 그 문사는 첫 번째 문사와 마찬가지로 절명했다.

“미친 놈! 지금 그 말을 듣고 내가 홍농조차 점령하지 못하고 장안에서 며칠째 이러고 있지 않은가. 다음!”

“이, 이의민 그놈이 아무리 용맹하다 해봤자 주군에 비하면 하룻강아지가 아니겠습니까? 주군께서 마음만 먹으시면 그깟 홍농이나 낙양쯤 하루도 아니 되어서.... 크악!!”

대답이 마음에 안 드는지 동탁은 자비 없이 창을 던졌다. 창을 맞고 쓰러진 문사의 시체만 벌써 열구가 넘어갔다. 참으로 공포의 군주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모두가 동탁을 두려워하며 벌벌 떠는 마당에 유일하게 태연한 모습으로 그에게 다가가는 한 인물이 있었다.

그는 창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동탁이 전혀 두렵지 않은지 입가에 미소까지 띠면서 입을 열었다.

“주군. 낙양과 장안은 교류가 많은 곳입니다. 그 사이에 위치한 홍농은 말할 것도 없지요. 우리 쪽 병사들을 백성으로 위장시켜 홍농에 잠입을 시키는 것이 어떠하십니까?”

처음으로 추상적인 얘기가 아닌 구체적인 얘기가 나왔다. 동탁의 손이 처음으로 창에서 떨어졌다.

“계속 얘기해보라.”

“그들을 민가에 들여보낸 다음 모조리 불을 질러버리는 것입니다.”

“흠... 하지만 그건 당장 효과를 보기 힘들지 않은가. 민초들 따위 타죽든 굶어죽든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그냥 무시하고 싸우려 들려하지 않겠나?”

처음으로 흥미를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부정적인 태도의 동탁이었다. 이쯤 되면 겁을 먹을 만도 하건만 그는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으로 설명을 이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의민 그 놈은 백성들의 평판에 엄청 신경 쓰는 모양입니다. 쌀을 나눠준다든지, 경작지를 나눠준다든지, 보사로 징용되는 이들에게 지나치게 좋은 대우를 해주는 등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상식이란 게 없는 놈이군.”

“그런 비상식적인 놈의 행동 덕분에 효과가 있다는 얘깁니다.”

“흠. 그러니까 이의민 그놈은 우리랑 상관없이 민가에 난 불을 끄려고 할 것이다?”

“맞습니다. 놈들이 그리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을 때 우리가 뒤를 치는 겁니다.”

동탁의 찌푸려졌던 얼굴이 드디어 펴졌다.

“흐흐흐. 역시 머리 좀 굴린다는 놈들 백 명을 갖다놔도 문우, 자네만한 사람이 없군. 좋아! 진행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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