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무신이 삼국지를 다 때려부숨-85화 (85/175)

85.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3)

왕광의 군사들이 한창 함정을 새로 파는 작업을 하고 있을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무더기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들은 무기도 없었고 군사들의 복장도 아니었다.

그들은 사마방이 데려온 사마가의 하인들이었다. 그 수가 대략 천여 명은 훌쩍 넘는 것이 사마가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 수 있었다.

하인들을 데려온 사마방 옆에는 사마의도 있다.

왕광은 놀랍다는 표정으로 사마방을 맞이했다.

“가주님. 이들은 무엇입니까?”

“함정을 다시 만든다고 하시니 인력이 더 필요하실 것 같아서 말입니다. 우리 집안의 식솔들을 이용하시지요.”

“허어! 가주께서 이러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아니오. 사실 함정을 다시 만드시는 이유가 바로 우리 둘째 때문이 아니오. 그러니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습니다.”

왕광도 더 마다하지는 않았다. 사실 안 그래도 함정을 다시 만드는데 인력이 조금 부족한 상황이었다. 무려 천여 명이 넘는 사마가의 식솔들이 도와준다면 큰 도움이 될 터였다.

“감사합니다. 가주님. 이 은혜를 주군께도 꼭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주군께서도 크게 기뻐하실 겁니다.”

“허허. 꼭 그래주시오. 사실 왕 태수를 돕는 이유는 다른 것도 있소. 연합에 참여한 동탁 그놈에게 원한이 있어 대사농을 돕고 싶었소. 동탁 때문에 내가 장안을 쫓겨나듯 떠났으니 말이오. 뭐 그게 아니라도 대사농은 꼭 좀 만나 뵙고 싶은 분이긴 하오. 겸사겸사 폐하의 용안도 뵙고 말이오.”

원가와 함께 천하 이대세가라 불리는 사마가의 가주 사마방도 이의민을 돕는 셈이다. 물론 그가 왕광처럼 아예 이의민의 수하가 되려는 건 아닌 듯하지만, 어쨌든 공동의 적을 상대로 뜻을 함께 했으니 큰 힘이 될 터였다.

어쨌든 사마가의 식솔들은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원래 왕광의 군사들이 2만인데 일천 명 정도의 인력이 더 는 셈이다. 고작 일천 명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인력이 5푼 더 늘었다는 건 작업량으로 따지면 엄청난 차이였다.

특히 하루가 급한 왕광으로서는 가뭄에 단비를 만난 기분이었다. 당장 내일 여포가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할 손이 단 한 명이라도 더 늘었으면 하는데 무려 천여 명이 추가된 것이니 다행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사마가의 식솔들은 왠지 다른 인력들에 비해 작업의 능률이나 효율이 보통 이상이었다. 삽질을 전문(?)으로 하는 군사들보다 훨씬 더 삽질을 잘한다는 뜻이다.

물론 왕광의 군사들은 곽봉에게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니 그렇기도 하지만 그래도 단순히 세가에서 잡일을 하는 게 전부인 식솔들보다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됐다.

그런데도 사마가의 식솔들은 웬만한 군사들 이상으로 작업들을 척척 해내고 있었으니 신기하기도 하면서 기쁘기도 한 왕광이었다.

“그나저나 가주님의 식솔들은 원래 이런 작업을 자주 합니까? 어찌 저리 다들 일을 잘 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 군사들보다 더 나은 것 같습니다?”

“하하! 저희 식솔들이 저런 구덩이를 팔 일이 딱히 있겠습니까? 아마 다들 처음해보는 걸 겁니다. 다만 우리 둘째가 좀 영특한 면이 있습니다.”

사마방의 얘기에 왕광은 어리둥절했다. 식솔들이 일을 잘하는 것과 둘째인 사마의가 영특한 게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걸까?

자세히 보니 사마가의 식솔들이 삽질을 특별히 잘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사마가의 식솔들이 높은 효율을 보이는 건 그들의 인력 배분이 기가 막힌 것 같았다.

그들이 작업을 하는 동선이나 인력 배치가 왕광의 군사들과 조금 달랐는데, 그 효과가 매우 큰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동선과 인력 배치를 정하는 이가 바로 사마의였다.

“너희 5조는 지금부터 8조를 도와. 2조는 이제부터 휴식. 11조는 이제 휴식을 끝내고 7조 옆에서부터 구덩이를 파.”

사마의는 마치 하늘에서 훤히 내려다보듯 전체적인 작업을 한눈에 파악하여 적절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단순히 지시만 내리는 거라지만 현장과 작업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런 어린아이가 언제 이런 걸 해봤다고 이렇게 지시를 내리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덕분에 사마가의 식솔들은 군사들에 비해 모자란 삽질 실력으로도 훨씬 더 높은 효율을 내고 있었다.

왕광과 그 수하들은 그제야 사마의의 비범함에 대해 감탄을 했지만, 만총은 훨씬 전부터 사마의를 주목하고 있었다.

“의야. 그래. 아저씨.... 아니. 삼촌이 궁금한 게 있구나. 이런 건 다 어디서 배웠느냐?”

만총의 질문에 사마의는 영악하게도 답했다.

“그걸 맨입으로 알려달라고요?”

기가 막힌 만총.

‘이제 겨우 열 살을 갓 넘긴 아이가 이런 흥정이라니....’

“그래. 그럼 네가 답을 해준다면 이 당과를 주마.”

만총이 내민 당과에 사마의의 눈이 뒤집어졌다. 사마의도 사마가 아래에서 부족함 없이 커왔지만 당과는 매일 먹기 힘든 귀한 것이었다.

사마의는 곧 만총이 준 당과를 열심히 핥으며 대답했다.

“알았어요. 사실 그냥 제 눈에는 다 보여요. 식솔들이 무슨 바보짓을 하고 있는 건지. 그걸 어떻게 하면 최고로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요. 전 보이는 대로 식솔들을 움직인 것뿐이에요.”

만총은 사마의의 대답에 다소 김이 새는 걸 느꼈다. 하지만 반대로 전율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만큼 이 아이가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건가....?’

“그럼 처음 우리가 만드는 함정에 문제점이 있는지는 어떻게 알았느냐?”

“에이. 그건 대답 못하죠.”

“뭐? 당과도 받아 놓고 그러면....”

“그건 앞선 질문에 대한 대가고요. 이번 질문에는 다른 대가가 있어야 저도 대답을 해드리죠.”

사마의의 기가 막힌 흥정에 만총은 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보면 볼수록 영악한 것이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크흠! 알겠다. 하나 더 주마.”

만총은 어린아이와 흥정이나 하는 자신이 약간 웃겼지만, 왠지 이 시간이 충분히 가치 있을 것 같다.

결국 사마의는 첫 번째 당과를 다 먹어치우고 두 번째 당과를 핥으면서 또 대답했다.

“아저씨. 여포 한번도 못 봤죠? 전 봤어요. 아마 아저씨가 생각하는 거보다 훨씬 강할 걸요.”

사마의의 얘기를 듣고 보니 이해가 되는 만총이었다.

‘역시 그런가....?’

사실 만총은 여포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얘기로는 여포가 얼마나 강한 것인지 들었지만 그가 실전에서 싸우는 걸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물론 이의민과 호각으로 싸웠다고는 들었지만 결국 패배했지 않은가. 그래서 만총은 여포가 서황보다 조금 더 강한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만총 입장에서는 그게 과소평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서황만 해도 삼국지에서 손꼽히는 장수인데 그보다 좀 더 강하다고 해도 정말 어마어마한 무력이었다.

하지만 이의민과 비슷하다는 건 전혀 다른 얘기였다. 인간을 아득히 벗어난 무력이 바로 이의민의 무력이었다. 어쨌든 여포도 그와 비슷하다면 사마의의 말대로 될 가능성이 높았다.

만총은 사마의의 통찰력을 확인하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만약 사마가와 계속 협력을 한다면, 그리하여 사마의까지 한편이 된다면 아주 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하! 그래. 욘석. 넌 꼭 우리 주군을 한번 만나야 할 것 같구나.”

“할짝할짝. 요고 하나 더 사주면요.”

**

대략 3만의 군사들이 이동하고 있다. 그 선두에는 장수로 보이는 두 사내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크흐흐! 장양. 이 날을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는가?”

“하하! 소인이 어찌 장군의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저 역시도 몹시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바로 여포와 그를 따르는 장양이었다.

여포는 바로 낙양으로 향하려 했으나 장양이 말렸다.

“굳이 하내를 들려야겠느냐? 난 이의민을 빨리 만나고 싶다.”

“주군의 마음은 알겠으나, 너무 급하면 큰 곤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황하를 건너는데 왕광이 뒤를 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때 다 쓸어버리면 될 거 아니냐?”

‘쯧쯧. 하여간 무식한 새끼....’

장양은 너무도 대책 없이 막나가는 여포의 발언에 속으로 혀를 찼지만 겉으로 전혀 티를 내지 않고 공손하게 답했다.

“최고의 상태로 이의민을 상대하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굳이 일부러 어려운 길을 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제야 장양의 말을 받아들이는 여포다.

“흠. 하긴 왕광 그 놈도 그 때 빚이 있으니 살려둘 수 없지.”

드디어 여포와 3만 군사들은 하내 근교에 도착했다.

왕광의 2만 군사가 이미 그들을 맞이하러 나와 있었다. 여포는 그런 왕광을 비웃었다.

“크하하! 왕광! 네 이놈! 용케도 도망을 가지 아니 했구나. 용기가 가상한 것이냐? 아니면 일부러 죽으려고 용을 쓰는 것이냐?”

“흥! 거 참 신기한 일이구나. 짐승이 사람말도 할 줄 알고.”

“뭣이라?!”

“양부를 그리 무참히 살해한 것도 모자라 네놈의 재주를 기특히 여겨 목숨을 살려준 주군께 칼을 들이대? 금수도 그런 짓은 하지 아니 할 것이다. 이 쌍놈의 새끼야!”

“뭐?! 쌍놈의 새끼?! 오냐! 너 이 새끼! 내가 반드시 죽인다!”

“지랄마라! 내가 할 말이다! 이 패륜아 호로 새끼야!”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이의민과 곽봉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도발이 는 왕광이다.

장양이 불안한 듯 여포를 불렀다.

“주, 주군? 다 아시죠? 저거 다 주군을 유인하기 위한.... 어?! 주, 주군!”

하지만 이미 여포를 말리기에는 늦었다. 여포는 참지 못하고 방천화극을 들고 적진을 향해 돌격하고 있었다.

그에 왕광도 본격적으로 여포를 상대할 준비를 했다.

“방열! 한호! 적당히 상대하라. 명심해라! 지금 싸움은 목숨을 걸고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예. 주군.”

방열과 한호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방열은 속으로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다.

방열은 공에 대한 집착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어느 정도 있었다. 여포를 상대로도 그리 허무하게 달아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전광석화처럼 달려오는 여포를 보며 방열은 떨리는 팔을 진정시키며 세뇌하듯 되뇌었다.

“씨팔... 까짓 거 할 수 있다. 나 방열 역시 어디 가서 절대 꿇리지 않는 장수란 말이다.”

여포와 정면으로 맞서는 방열.

쾅!!

하지만 방열은 일합 만에 목이 나가떨어질 뻔했다.

전력을 다해 막았는데도 들고 있던 창을 그대로 놓쳐버렸다. 순간 방열이 얼떨결에 몸을 숙이지 않았다면 그대로 방천화극에 몸이 두 동강 났을 터였다.

‘어, 어찌 이런 힘이....?!’

이제 창도 없었다. 방열은 원래 계획대로 도망을 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여포는 집요하게 방열의 뒤를 노렸다.

“으아아!!”

줄행랑을 쳐봤지만 어느새 방열의 뒤를 바짝 쫓아왔다. 다시 방열을 노리고 휘둘러지는 방천화극. 방열은 꼴사나워지는 것도 잊은 채 그대로 말에서 뛰어내렸다.

방열의 말은 방천화극에 그대로 두 동강이 났다. 말에서 뛰어내린 덕분에 방열은 살았지만 안타깝게도 거기까지 인 것 같았다. 말도 없으니 이제 도망칠 수도 없었다.

“흐흐! 이 쥐새끼 같은 놈. 잘도 피하는 구나. 허나 이제 말도 없이 어찌 도망칠 테냐?”

그때 한호가 바람처럼 나타나 방열을 낚아채고 자신의 말에 태웠다. 그리고 지체하지 않고 도망쳤다. 느긋하게 방열에게 다가서던 여포는 이를 갈았다.

“이 쥐새끼 같은 놈들! 게 섰거라!”

한호는 있는 힘껏 도망을 쳤지만 아무래도 한 마리의 말에 두 사람이 탔으니 느릴 수밖에 없었다.

무섭게 쫓아오는 여포. 그 뒤를 따라 3만의 여포군 역시 일제히 돌격했다. 장양은 아무리 봐도 적의 유인책 같아서 불안했지만, 이미 여포가 저리 앞으로 나갔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왕광은 함정이 파진 곳 뒤에서 조마조마하게 방열과 한호, 그리고 그 뒤를 쫓는 여포를 보고 있었다. 방열과 한호가 저기서 잡힌다면 첫 번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호가 최선을 다해 도망친 끝에 아슬아슬하게 포신이 형성한 방진으로 여포를 유인할 수 있었다.

포신과 만총이 기다렸다는 듯 방진을 펼쳤다.

여기저기서 말을 잡기 위해 그물과 작살을 던지고 기세등등하던 여포와 여포군 선봉 기병대의 발을 묶었다.

포신은 주먹을 꽉 쥐었다.

‘됐다! 이제 저들을 함정으로 유인하기만 하면 이번 계획은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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