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무신이 삼국지를 다 때려부숨-69화 (69/175)

69. 연합의 향방 (2)

병주 태원군 자사치소. 평범해 보이는 한 사내가 이곳 주변을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있었다. 분명 수상쩍은 행동이었지만, 주변의 사람들은 그 사내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 사내는 이곳을 지나다니는 모든 이들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다 아는 듯 절묘하게 모든 이들의 시야에서 빠져나갔다.

수상쩍은 사내는 이내 자사치소의 가장 중심부, 자사 집무실에 도착했다. 원래 이곳의 주인은 정원이었지만, 여포로 바뀐 지 오래다.

사내는 자사 집무실 앞에서 귀를 기울였다. 아무래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엿들으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내가 굳이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었다. 집무실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원 태수! 어찌하여 약조를 아니 지키는 게요?!”

온 자사치소를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당연 여포다. 그리고 여포가 원 태수라 부른 자는 원소였다.

힘을 합쳐 정원을 처리할 때만 해도 의형제라도 맺은 듯 가까웠던 여포와 원소. 그랬던 둘은 지금은 사이가 제법 나빠 보였다.

“내가 몇 번을 말하지 않았는가. 상황이 달라졌네. 자네는 듣는 귀가 없는가? 기주와 병주 사이에 도는 그 소문을 듣지 못했느냐는 말일세.”

원소의 대답에 여포는 콧방귀를 꼈다.

“하! 고작 그런 뜬소문을 믿고 이리 겁을 먹었단 말이오? 원 태수? 한복이 과연 원 태수의 뒤를 칠 배짱이 있는 놈이라 생각하시오?”

원소와 여포가 다투는 이유는 최근 기주와 병주에서 도는 소문 때문이었다.

정원을 친 원소와 여포는 바로 기주를 완전히 점령하기 위해 병주를 넘어 한복까지 공격했다.

한복도 당연히 가만히 있지 않았다. 원소와 여포의 연합군에 맞서 결사항전을 했다. 처음에는 원소와 여포의 진격에 크게 밀렸지만, 한복은 기주 지역에서 나름 세력을 구축한 인물이다.

본거지인 업을 중심으로 탄탄하게 방어를 하니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전쟁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갑자기 하진이 반 이의민 연합에 합류하라며 원소와 한복에게 동시에 격문을 보낸 상황이었다.

원소는 한복을 끝장내지 못하고 이대로 함께 연합에 합류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원소 역시 이의민을 당장 죽이고 싶은 심정이지만, 일단 하북에서 먼저 세력을 키우는 게 우선순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같이 동맹을 맺고 있는 여포가 놓칠 수 없는 기회라며 어서 연합에 합류하자고 재촉했다. 이의민에 대한 여포의 원한이 그만큼 컸고, 특히 원소와 달리 커다란 포부 같은 것도 없었다. 그저 당장 이의민만 죽일 수 있다면 만사가 다 좋다는 여포다.

결국 여포의 힘이 아직까지 필요했던 원소는 한복과의 전쟁을 멈추고 연합에 합류하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는가 했지만, 낙양으로 떠나기 직전 갑자기 마음을 바꿨다.

원소가 연합에 합류하려고 본대를 이끌고 낙양에 갈 때, 한복은 같이 가는 척 하다가 빈 원소의 땅을 공격할 거라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원소는 한복을 두고 이대로 갈 수 없다는 입장이고, 여포는 처음 얘기했던 것처럼 빨리 가자는 입장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피터지게 싸우던 적을 뒤에 두고 간다는 게 말이 되는가? 차라리 우리가 한복을 먼저 쳐서 끝내놓고 마음 편하게 낙양으로 가세.”

“아니 되오! 그전에 다른 놈이 이의민을 죽이면 어쩌라고! 난 그 꼴 절대 못 보오. 명심하시오. 내가 원 태수를 돕는 목적은 단 하나요. 이의민 그놈을 내손으로 직접 죽이는 것 말이오. 나는 우선순위니 지랄이니 그딴 거 모르겠고, 원 태수가 싫으면 병주 병력만이라도 먼저 끌고 갈 것이니 그리 아시오.”

‘하! 이 무식한 새끼! 도통 말이 통하지 아니 하는군.’

“알겠네. 자네의 생각이 그리 완강하니 어쩔 수가 없군. 정 그리 연합에 합류해야겠다면, 자네 혼자라도 가든지 말든지 하게나.”

“좋소!”

그렇게 대화가 마무리됐다. 둘은 아직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자신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귀가 있다는 것을.

수상한 사내는 침착한 표정으로 집무실 근처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원래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 할 때 누군가와 딱 마주쳤다.

이곳 자사치소를 관리하는 하급 관리로 보이는 자는 의심스런 눈빛으로 수상한 사내를 노려보았다. 수상한 사내는 침을 꿀꺽 삼켰다. 혹시라도 들킨 것일까?

“어이! 백씨! 딱 보니까 어디서 농땡이 피우다 온 것이로군. 내가 잘 알지. 백씨 같이 농땡이 피우려고 꾀를 피우는 자를 한두 번 본 게 아니거든.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 요령피울 생각 말고 열심히 해!”

“죄송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행이도 하급 관리는 백씨가 단지 농땡이를 피운 거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백씨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얼른 자리를 떴다.

백씨는 그길로 자사치소를 완전히 빠져 나왔다. 더 이상 그곳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어느 정도 사람이 없는 곳에 간 그는 얼굴 가죽을 쥐어뜯듯이 잡아당겼다. 그러자 인피면구로 만든 가짜 얼굴이 사라지고 백씨의 진짜 얼굴이 드러났다. 그 얼굴은 놀랍게도 만총이었다.

그는 순유의 명을 받고 하북의 공작을 담당했다. 바로 하북의 네 제후들이 연합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한 공작이었다.

그런데 첫 시작부터 순조롭지 못했다. 공작 상대는 다름 아닌 기주의 원소와 한복이었는데, 한복 쪽은 손쉽게 진행이 됐지만 원소 쪽이 문제였다.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거야 백성들 사이에서 조금만 선동을 해주면 된다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게 적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정보를 모으는 것이었다.

한복 쪽은 어렵지 않게 첩보원들을 침투시킬 수 있었지만 원소는 쉽지 않았다. 휘하 첩보원들만으로는 원소의 근처도 가보지 못하고 번번이 실패를 했다. 그만큼 원소는 주변을 철두철미하게 관리를 했다. 그래서 만총이 직접 나선 것이었다.

‘일단 원소와 한복은 연합에 합류할 생각이 전혀 없다. 문제는 여포로군....’

만총은 여포를 생각하면 할수록 골이 아팠다. 이 무식한 인간은 한번 고집을 부리면 생각을 바꾸는 게 불가능했다. 만총도 머리를 굴려 갖가지 방법으로 여포가 연합에 합류하지 않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여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아마 황제 자리를 준다고 해도 마다하고 이의민을 잡으러 갈 듯하다.

‘결국 여포와 병주군은 연합에 합류한다고 생각해야겠군. 막을 도리가 없어.’

여포를 생각하니 여러 가지가 꼬였다. 이제 기주의 공작을 끝내고 슬슬 유주로 갈 생각이었는데, 여포가 낙양으로 간다고 하니 당장 유주로 갈 수가 없었다. 여포가 낙양으로 가는 중간에 왕광이 있는 하내가 걸렸기 때문이다.

‘음.... 그래도 유주로 먼저 보낸 수하들이 있으니, 그들을 믿는 수밖에....’

결국 유주 대신 하내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만총이다.

**

유주 북평군 계현.

먼 훗날 중국의 수도가 되는 이곳에서 유우와 유비가 나란히 말을 타고 있었다. 이곳은 분명 공손찬의 땅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의 적인 유우가 이곳에서 이리 한가롭게 거닐고 있을까?

그보다 더 이상한 점이 있다. 현재 유우와 같이 가고 있는 유비. 일전에 그는 분명 공손찬에게 갈 것이라고 했다. 그런 그가 왜 공손찬의 적인 유우와 같이 있는 것일까?

“허허! 자네는 어째, 볼 때마다 얼굴빛이 좋아지는 거 같으이.”

“당치도 않으십니다. 그러시는 자사어르신이야말로 가면 갈수록 젊어지시는 거 같습니다.

“허허! 말이라도 고맙네. 하여간 아깝기 그지없군. 자네가 내 사람이 되었으면 했는데, 백규의 사람이 되었으니.... 자네만 아니었다면 백규는 이미 내 손에 의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네.”

“송구합니다. 집안의 먼 어르신인데....”

“아닐세. 사제 간의 정도 중요하지. 어쨌든 일시적이나마 자네와 같은 목적을 품고, 함께 할 기회가 생긴 것만으로도 내 기분이 좋군.”

유우와 유비가 같이 있는 이유는 역시 반 이의민 연합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유주 각지에서 도는 소문 때문에 유우나 공손찬이나 전쟁을 멈출 생각도 없고 연합에 참여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공손찬 편에 서서 맹활약을 펼치던 유비가 나서면서 둘 사이를 중재했다.

참으로 신비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공손찬의 사자로 온 유비를 만나지도 않으려 했던 유우가 어느 순간 그를 가까이 두었다. 몇 번 만나지도 않았고, 심지어 얼마 전까지 죽자 사자 싸웠던 공손찬의 사람이었는데도 말이다.

이후부터 유우는 유비의 말이라면 귀담아 듣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 유비와 유우가 나란히 같이 가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성공적으로 중재가 됐다. 공손찬이나 유우나 전쟁을 멈추고 연합에 참여하기로 합의를 한 상황이다.

“허허! 그런데 연합에 대한 제안을 백규가 받아들일 줄은 몰랐네. 그 고집불통인 백규를 어찌 설득한 것인지 모르겠군.”

“이 비 역시 황실의 후손입니다. 비록 남루하게 살고 있다고는 하나 그 사실을 잊은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역적이 황실을 노린다는데 유씨인 제가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하니, 백규도 결국 제 제안을 받아들이더군요.”

“맞아. 내 사실 연합에 대한 제의를 거절하려 했네. 백규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지. 내가 이 제안을 받은 건 오로지 자네 때문이야. 자네의 황실에 대한 충심이 날 움직인 것일세.”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사어른. 비는 전심을 다해 역적을 처단할 것입니다.”

유비의 대답에 유우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유우는 유비의 말이라면 똥이 팥 앙금이라 해도 믿을 기세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유우는 공손찬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이곳 북평에서도 아무런 경계 없이 가고 있었다. 물론 유우를 호위하기 위한 군사들이 따라오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적의 땅 한가운데서 너무 한가로운 모습이다.

그런 유우의 안일한 태도는 결국 화를 불렀다. 유주에서 기주로 넘어갈 즈음 갑자기 매복해있던 군사들이 유우의 군사들을 공격했다.

“와아아아!!”

“으악! 기습이다!”

난데없는 공격을 받은 유우군은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유우가 눈을 부릅뜨고 보니 매복한 적군은 공손찬군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분명 함께 연합에 참여하기 위해 휴전을 했던 공손찬군이었다.

“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현덕!”

다급한 마음에 유비를 부르는 유우. 그런 유우를 향해 유비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부르셨습니까? 자사어른?”

그런데 이전과 같이 인자하면서 편안한 미소가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비웃는 것 같은 미소였다. 유우는 그제야 자신이 유비와 공손찬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덕...! 내게 했던 말들이 전부 거짓이었나?”

유비는 어깨를 으쓱하며 모른 체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이 비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 어찌 백규의 군사들이 나를 공격하는가?!”

“저는 황실의 후손으로서 역적에 대한 울분을 토했고, 그를 처단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외에 제가 다른 약조를 한 것이 있습니까? 이 비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여느 때처럼 차분하고 부드러운 어투로 대답하는 유비였지만, 유우에게는 그 누구보다 사악하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이...! 이...! 간악한....!”

높아지는 혈압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쓰러지는 유우. 그의 눈에 하늘이 노랗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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