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무신이 삼국지를 다 때려부숨-63화 (63/175)

63. 반 이의민 연합 (5)

낙양의 황궁. 그곳에서도 가장 화려하면서도 은밀하고 깊숙한 곳은 역시 황제가 있는 어전이었다.

한나라의 황제인 소제와 그의 어미인 하태후, 그리고 외삼촌이자 대장군인 하진이 그곳에 함께 있다. 한나라 권력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이 이리 모였으니 무서울 것이 없으리라. 하지만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는 심히 불안하게 들렸다.

“외숙....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이오? 갑자기 대사농이 왜 저런단 말이오? 외숙께서는 정녕 아는 것이 없소?”

“폐하.... 역적의 의도를 굳이 이해하려 하지 마시옵소서. 저들은 머릿속에 폐하의 자리를 찬탈하겠다는 생각밖에 없사옵니다.”

이의민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낙양성 앞으로 쳐들어왔다는 보고를 들은 황제는 공포에 빠졌다. 이의민이 조조에게 얘기했듯이 황제는 격문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 모두 하진과 조조가 황제에게 보고도 없이 독단으로 이의민을 역적으로 만든 것이었다.

사정을 제대로 알 리가 없는 황제는 하진을 불러 이의민이 이리 낙양성까지 온 이유를 묻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의민의 낙양 침공에도 하진은 전장에 나가지 못했다. 일단 급하게 하묘에게 군을 맡기고 왔지만 그의 마음은 조마조마 했다.

다른 상대도 아니고 이의민이었다. 그것도 10만이라는 대군을 이끌고 온 이의민 말이다. 그를 상대로 전황이 어찌 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고 군을 맡긴 하묘 역시 그다지 미덥지 않은 건 사실이다.

하진은 성 밖의 상황이 불안하기도 하고, 황제에게 보고 없이 독단으로 격문을 돌린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불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황제에게 보고를 하면서도 식은땀을 흘리는 하진이다. 아무리 황제가 조카에다 허수아비라지만 이 일이 다른 모두에게 밝혀진다면 좋을 것이 없다.

다행스럽게도 황제는 그 부분을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태후는 여전히 하진에게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질문을 했다.

“오라버니. 어쨌든 대사농이 역모를 일으켰으니 대장군으로서 수습을 하셔야 할 것이 아닙니까? 3만, 4만도 아니고 자그마치 10만이나 되는 대군이 낙양성 앞에 왔습니다. 이를 막을 수나 있습니까?”

“걱정 마세요. 태후마마. 폐하의 황군들은 정예 중의 정예인데다가 높고 단단한 낙양의 외성 성벽이 있으니 절대 뚫릴 일은 없습니다. 안심을 하시고 좋은 소식만 기다리시지요.”

하진은 속으로 이를 갈면서 대답했다. 하태후가 자신의 이복동생에다가 자신을 대장군으로 만들어준 은인이라고는 하지만 늘 눈엣가시 같았다.

안절부절못하는 황제와 추궁하는 황후를 겨우 달랜 하진은 그렇게 어전을 나올 수 있었다.

바로 심복인 정욱을 찾는 하진.

“중덕! 중덕! 그는 대체 어디 있는가?! 설마 도망을 친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진은 정욱이라면 껌뻑 죽을 만큼 신뢰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를 찾는 하진의 목소리는 의심이 가득했다.

우둔한 하진이 생각하기에도 이의민이 이리 선수를 치는 건 의심스러운 행보였다. 다른 제후들에 의해 이의민이 반 이의민 연합을 알고 있다는 건 짐작했지만, 구체적인 일정까지는 다른 제후들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니 이의민이 알 리가 없었다. 자신들의 주변에 필시 첩자가 있다는 얘기였다.

결국 최근에 자신의 최측근이 된 정욱이 의심스러운 하진이다.

그런데 하진이 정욱을 찾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금세 나타났다. 하진의 생각에 정욱이 정말 첩자라면 지금쯤 도망을 쳤어야 됐다. 그런데도 계속 머물러 있는 걸 보면서 의심이 살짝 가셨다. 그래도 의심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중덕. 어찌 이의민이 미리 선수를 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필시 우리 쪽 첩자가 있어 정보가 샌 것이 틀림없다.”

“소인의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 자를 빨리 찾아야 합니다.”

조급한 하진은 참지 못하고 속마음을 내뱉었다.

“흠.... 설마 그 첩자가 자네는 아니겠지....?”

하진의 말에 대경하는 정욱.

“주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소인, 대장군을 위해 죽기를 각오한 것을 잊으셨습니까? 그런데 소인을 의심하시다니.... 참으로 섭합니다.”

그제야 하진의 목소리가 완전히 누그러졌다. 정욱이 도망을 치지 않은 것도 그렇고 지금 모습을 보니 하진은 아무래도 괜한 의심을 했다고 여겼다.

“음! 역시 그렇지. 미안하네. 그럼 대체 어찌 된 일이겠는가? 며칠 뒤 반 이의민 연합을 본격적으로 소집할 거라는 사실은 나와 내 일족들 몇몇과, 자네, 조조밖에 없잖은가? 딱 이 시기에 이의민이 공교롭게도 쳐들어온 건 우연이란 말인가?”

“지금 하셨던 말씀 중에 답이 나온 것 같습니다만....”

“뭐?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조조입니다. 그 자가 첩자인 것이 확실합니다.”

정욱의 대답에 하진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조조가 첩자라....? 이상하지 아니 한가? 조조는 이의민과 불구대천의 원수가 아닌가? 그런데 어찌 그가 이의민과 한 배를 탄다는 말인가?”

“조조를 얕보지 마십시오. 그는 미래의 이득을 위해 과거의 은원 따윈 잊을 수 있는 인물입니다. 어쩌면 이의민에게 패배해 낙양에 거지꼴로 온 것 자체가 연기일 수도 있습니다.”

“허어! 정녕 그렇다는 말인가?”

안 그래도 그간 정욱이 계속 바람을 넣는 바람에 조조에 대한 불신이 싹을 틔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일까지 겹치니 그 싹은 점점 더 커졌다.

“하긴 그렇지. 맹덕, 그놈이 원래 그런 인물이지....”

그때 성 밖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대장군! 큰일입니다. 하묘 장군이 이끄는 황군이 성 밖 전투에서 역도들에게 대패했습니다.”

“뭐라?!”

황군의 대패 소식에 하진은 그 즉시 성문 쪽으로 갔다. 그곳에는 간신히 퇴각하고 성문 안으로 들어온 하묘와 조조 등이 있었다.

하진은 바로 하묘를 다그치며 전황을 물었다.

“지금 이게 무슨 소리냐? 대패를 했다니?! 그럼 지금 당장 이의민군이 이 성벽을 넘어 온다는 것이냐?”

참으로 대장군답지 않은 아무 대책 없는 질문이다. 그렇지만 패배의 책임을 지고 있는 하묘는 우물쭈물 대답할 수밖에 없다.

“아닙니다. 형님. 순우경 장군이 성문을 걸어 잠그고 성벽 위를 철저히 사수한 덕분에 저들이 외성을 넘지는 못했습니다. 지금 당장은 저 역도들도 이 성문을 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의민이 당장 오지 못한다는 말에 그제야 이성을 되찾은 하진은 본격적으로 하묘에게 책임을 물었다.

“이 망할 자식아! 이의민 정도는 가볍게 작살 낼 자신이 있다며! 그래서 보내줬는데 이게 대체 무슨 꼴이더냐?!”

하묘는 무척 억울하다는 듯 슬쩍 뒤쪽을 가리켰다. 그쪽에는 조조가 있었다.

“억울합니다. 형님. 이 대패는 사실상 조조 저놈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조조 때문이라고? 자세히 말해보라.”

“황군은 용맹하게 싸우는데, 조조 저놈은 자꾸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질 만한 지시를 내렸습니다. 지휘권도 없는 주제에 말입니다. 결정적으로 소제가 이의민을 잡기 일보직전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놈이 퇴각 징을 쳐 울려대는 바람에 실패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완전히 꼬여서 대패를 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진은 하묘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어리석은 하진이 들어도 거짓이 딱 드러나는 얘기였다.

“뭐? 내가 네놈을 잘 아는데 네놈이 무슨 이의민을 잡기 일보직전의 기회를 잡았다고 하느냐? 괜히 대패를 당한 게 부끄러우니 맹덕 핑계를 대는 것 아니더냐?”

“하, 하지만....”

“한심한 놈.... 어쨌든 맹덕 그놈도 지휘권이 없는 데도 멋대로 행동했다는 말이렷다? 맹덕!”

결국 하진은 조조를 부르며 그를 추궁했다.

“맹덕. 하묘에게 듣자하니 네놈이 멋대로 지시를 내리고, 이의민을 잡을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에서 퇴각 징을 울렸다던데 사실이냐?”

당연히 순순히 인정할 리가 없는 조조다. 하지만 하묘와 같이 자신은 책임이 없고 상대에게만 과실이 있다는 듯 막무가내로 말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사실에 기반 하여 자신이 불리한 내용은 최대한 희석시키며 설명했다.

“예. 허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이의민을 잡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하묘 장군이 만든 함정을 이의민이 모두 파훼해서 황군에 큰 피해가 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소장은 오히려 그 피해를 최소화한 것입니다.”

확실히 하묘의 말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충분히 납득이 가는 설명이었다. 문제는 하진의 마음속에 조조에 대한 불신이 이미 싹을 텄다. 그러니 조조가 아무리 잘못이 없어 보여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머리에 쥐가 나도록 고민을 하던 하진을 결국 결론을 내렸다.

“하묘는 근신하고, 조조는 채찍으로 매우 쳐라!”

“장군! 소장은 전부 황군을 위한 마음으로....!”

“닥쳐라! 어쨌든 권한도 없는데 멋대로 징을 친 것은 사실이 아니더냐?!”

조조는 안 그래도 억울해 죽겠는데 매를 치겠다니 미칠 지경이다.

이때 하진 뒤에서 숨어만 있던 한 인물이 나섰다. 정욱이었다.

‘드디어 조조와 하진이 완전히 갈라섰다. 웬만하면 나서지 아니하려고 했는데, 지금이라면 별 상관없겠지. 여기서 내가 조금만 바람을 더 넣어준다면....’

정욱이 구십도 가까이 구부렸던 허리를 펴고 얼굴을 드러내며 하진에게 고했다.

“대장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조조는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습니다. 여기서 매를 몇 대 치는 것만으로 끝낸다면 사람들이 대장군께서 군법을 가볍게 여기신다고 비웃을 겁니다.”

“그, 그런가? 그럼 중덕의 생각은....?”

“마땅히 책임을 물어 죽이셔야 합니다.”

모두가 정욱을 주목했다. 그것으로 하진의 곁에 있던 첩자가 정욱 자신임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물론 멍청한 하진은 아직도 모르겠지만, 조조나 순욱 등은 충분히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정욱은 별 상관없다는 생각이다. 이미 하진과 조조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됐다.

물론 계속해서 정체를 숨기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드러난다고 해도 조조나 순욱이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다.

결국 하진은 이번에도 정욱의 말에 넘어갔다.

“그렇군.... 중덕의 말이 옳다.”

조조는 이를 악물며 외쳤다.

“대장군! 저놈입니다! 저놈이 바로 대장군과 소장의 사이를 이간질하는 이의민이 첩자란 말입니다. 어찌 그놈의 말을 들으십니까?”

하지만 이미 정욱의 의도대로 하진과 조조의 관계는 완전히 깨졌다.

“닥쳐라! 죄인 주제에 누굴 모함한단 말이냐?! 뭣들 하느냐? 당장 저놈의 목을 치지 않고?!”

조조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하진의 마음이 절대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 죽음을 앞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조조는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그는 방금 전까지 얼굴 가득했던 울화통을 금세 지우고는 하진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대장군. 대장군께서 소장을 믿지 못하시는 건 전부 소장이 모자란 탓입니다. 최후까지 대장군께 무언가 도움이 되어 드리려 조언을 하려고 했지만 욕심이 지나쳐서 잘못된 조언을 한 것 같습니다. 이 맹덕이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대장군의 하해와 같은 자비심 덕분입니다. 죽더라도 대장군의 은혜를 절대 잊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럼 마지막 가는 길 절 받으십시오.”

죽을 상황에서도 자신을 죽이라 명을 내렸던 자에게 은혜를 받았다며 절을 하고 있다. 그런 조조의 모습에 하진도 당황했다.

‘정말 내가 맹덕을 괜히 의심한 것인가? 아니야. 그래도....’

그렇다고 의심을 완전히 거둘 수도 없었다. 또 우유부단하게 고민을 하던 하진은 결국 조조에게 약간의 자비심을 베풀었다.

“크흠! 그리 생각해준다니 고맙군. 네 조부 조등의 면을 봐서, 가족들과 인사를 하고 유서를 쓸 기회는 주겠노라.”

“크흑! 감사합니다! 대장군!”

조조는 사형을 받은 결과를 바꿀 수는 없었지만 시간을 벌 수는 있었다.

이에 정욱은 하진에게 바람을 좀 더 넣어보려다가 그만두었다. 하진의 지금 상태라면 그 어떤 조언도 먹히지 않을 터였다. 자칫 무리하게 의견을 냈다가는 하진과의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었다.

하진이 물러간 후 순욱은 이를 갈며 정욱을 불러 세웠다.

“중덕 선생.... 대장군 곁에 숨어 있던 쥐새끼가 바로 선생이었구려.”

순욱도 정욱에 대한 소문은 예전부터 들어보았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자가 내관 행세를 하며 숨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의 일들이 그제야 이해됐다. 평범한 첩자였다면 진즉 꼬리를 잡혔을 텐데, 정욱 정도 되니까 조조와 순욱이 꼬리도 못 잡은 것이었다.

“두고 보십시오. 지금부턴 선생의 생각대로 흘러가진 않을 것입니다.”

이를 갈던 순욱이 떠나자 뒤통수를 보며 정욱도 입을 열었다.

“후훗. 어지간히 열 받았나 보군. 지금 나 하나 때문에 자네의 주군이 이 지경까지 왔다고 생각하나? 자네야 말로 착각하지 말게. 나는 그저 꼬리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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