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무신이 삼국지를 다 때려부숨-58화 (58/175)

58. 3주의 주인 (2)

낙양의 황궁 안에 있는 화려한 정자에서 두 사내가 마주보고 있었다. 화려한 갑주를 걸친 사내는 이 황궁에서 현재 황제 이상으로 위세를 자랑하고 있는 대장군 하진이었다. 그 맞은편에 앉은 사내는 상대적으로 허름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 아니. 허름한 정도가 아니라 군데군데 찢어진 것이 거지꼴이나 다름없었다.

현 한나라 최고 권력자라고 할 수 있는 하진이 왜 거지를 상대하고 있을까? 그건 상대가 바로 조조였기 때문이다.

하진은 술 한 잔을 들이키면서 혀를 찼다.

“쯧쯧! 내 소문을 들었네. 이의민, 그놈에게 아주 호되게 당했다면서?”

“예. 대장군. 소장은 참으로 억울하고 원통할 따름입니다. 도겸과 소장이 시비를 가리는 데 비겁하게 그가 뒤를 치고 들어와서 이리 고향을 잃고 떠나왔습니다.”

하진의 표정은 심히 못마땅했다. 하진으로서는 내심 조조가 이의민을 잡아주기를 바랐다. 최근 조조가 매우 빠른 속도로 세력을 키우고 있으니 충분히 기대를 할만 했다. 하지만 결과는 조조의 비참한 패배였다.

“거 참, 자네답지 않게 순진한 생각을 하는군. 전쟁에 낭만이 있다고 생각하나? 언제나 변수를 염두에 둬야 할 것이 아닌가.”

하진의 비아냥거림에 조조는 속으로 울화통 치밀었다. 그러는 하진이야 말로 조조의 상황이었으면 이리 살아서 낙양에 오지도 못할 인물이었다. 그런 자가 한심하다는 듯 책망을 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하지만 조조가 그런 속마음을 드러낼 인간이 아니다. 조조는 하진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한수 가르쳐 달라는 자세를 취했다.

“소장의 경험이 너무 일천하여 이런 결과를 맞이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대장군께서 계셨다면 오히려 이의민을 격파했을지도 몰랐겠지요.”

“흠흠. 뭐 그렇긴 하지.... 그런데 이의민 그놈이 그리 잘 싸우던가?”

하진의 질문에 조조는 솔직한 심정을 말하려다가 말을 바꿨다.

‘하진, 저놈 성격상 쓸모 있다고 판단이 서야 날 중용하겠지.’

“신력 하나는 대단한 놈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놈은 그게 다입니다. 군사들을 다루는 솜씨는 명백히 소장이 이의민보다 더 높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이의민이 먼저 기습을 가해 우리 군이 불리한 상황에서 시작한 전쟁이었음에도 소장의 기지로 비등비등한 전투를 이어나갔습니다. 끝내 패하긴 했지만 비슷한 전력으로 다시 싸우게 된다면 절대로 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호오! 비슷한 전력의 군사를 갖게 되면 이길 수 있다라....”

조조의 대답에 하진의 눈이 커졌다.

원래 하진 역시 조조와 힘을 합쳐 이의민을 무너뜨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조조가 서주에서 패배하며 세력이 거의 다 무너져서 낙양에 온 이후에는 별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사실 이 술자리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조조를 볼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조조의 호언장담대로라면 아직 그를 써먹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하진이다.

조조는 하진의 표정을 보고는 속으로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생각하는 것이 얼굴이 다 보이는 구나. 이제 거의 넘어왔다. 마지막으로 이 얘기만 하면 하진은 내 손을 반드시 잡을 수밖에 없다. 물론 네놈은 날 휘하로 삼았다고 여기겠지만....’

“그리고 대장군.... 이의민은 나와 싸우다가 이런 얘기까지 했습니다. 이제 천하가 모두 내 것이라고 말입니다.”

“뭐라?!”

하진이 분노하며 술잔을 던졌다. 하진은 천하가 당연히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의민이 그런 발언을 했다니 참을 수가 없다.

“천한 보사 놈이 미쳤구나! 이건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다. 그래! 역모다! 이건 반역이야! 이 천인공노할 반역자 놈을 그냥 둘 수가 없다. 당장 황군을 일으켜 역적을 소탕해야겠다. 맹덕. 그대가 자신감을 보였으니 기회를 주겠다.”

하진의 반응을 보며 조조는 모든 일이 자신의 뜻대로 되어간다고 여겼다.

‘비록 고향인 연주는 잃었지만, 어찌 보면 더 잘 된 일일수도 있다. 이곳 낙양에서 하진을 등에 업고 세력을 키운다면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예전의 힘을.... 아니. 천하를 호령할 힘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하진, 아니. 황군이 이의민을 이길 수 있을 지는 미지수였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 낙양까지 이의민의 손아귀 아래 들어갈 수도 있다. 조조는 그 변수를 제거하기 위해 조언을 하나 더 올렸다.

“대장군. 참으로 외람된 말씀이오나 소장은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어찌 됐든 이의민은 운 좋게 큰 세력을 차지했습니다. 게다가 본신의 신력 또한 대단하니 그가 가진 힘은 당장 황군이 나선다고 할지라도 쉽게 어찌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역심을 대놓고 드러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제야 흥분했던 하진도 제 정신을 차렸다. 그도 이의민의 끝 모를 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가.

“그럼 대체 어찌해야 그 역적 놈을 쓰러뜨릴 수 있겠는가?”

“간단합니다. 놈이 역심을 드러냈으니 명분은 확실합니다. 지금 즉시 반 이의민 연합을 선포하시지요.”

“반 이의민 연합?”

“그렇습니다. 대장군께서 이끄시는 황군과 소장의 군사들, 그리고 하북의 원소와 여포, 공손찬, 유우, 한복, 서량의 동탁과 마등, 유표, 원술, 손견, 유언 등 모든 제후들을 결집시키고 이의민을 토벌하는 겁니다. 역적을 토벌한다는데 그 어느 누가 거부를 하겠습니까?”

조조의 입에서 온갖 제후들의 이름이 나왔다. 하진은 스스로 가슴이 웅장해짐을 느꼈다. 그간 유표, 손견 등과는 손을 잡았지만, 나머지는 아직 묵묵부답이었다. 원래 한배를 탔었던 원소도 은근히 하진을 무시했다. 그런데 지금 조조의 말대로라면 명망 높은 모든 제후들을 자신의 지휘 하에 둘 수 있었다.

“좋은 생각이군. 하하! 맹덕. 역시 자네만한 인물이 없군. 그래. 자네 말대로 당장 반 이의민 연합을 결성하도록 하지. 자네는 내 오른팔로서 이의민에게 복수를 할 수 있을 것이야.”

“소장에게 그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진과 조조는 서로 건배를 했다.

“그럼 소장이 격문을 써서 전국의 모든 제후들에게 돌리겠습니다.”

“그럼 맹덕, 자네만 믿고 있겠네.”

조조가 물러가고 하진은 그 자리에서 술을 몇 잔 더 마시더니 갑자기 뒤를 향해 조용히 물었다.

“자네는 어찌 생각하는가...?”

이에 하진의 옆에서 마치 시종처럼 허리를 깊숙이 구부리고 있던 인물이 허리를 펴며 입을 열었다.

“후후후. 조조가 재밌는 얘기를 하는 군요.”

그는 놀랍게도 일전에 종요를 찾아갔던 정욱이었다.

분명 종요 앞에서는 이의민의 사람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던 이가 아닌가. 그가 왜 하진의 옆에서 심복처럼 있을까? 종요에게 이의민을 따르겠다고 한 건 거짓이었을까?

어찌 됐든 지금 하진과 정욱의 모습은 서로 신뢰하는 주종 관계였다.

“조조의 얘기가 꽤나 그럴 듯합니다. 일단 그의 말대로 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흐흐! 역시 그런가? 아무튼 중덕, 자네까지 좋다고 얘기해주니 한결 안심이 되는군. 그럼 이대로 맹덕의 말대로 밀고 나가면 이의민, 그놈을 확실히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게지?”

“그렇습니다. 주군. 몇몇 변수들이 눈에 보이기는 하나 그 정도는 제가 충분히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절 믿고 진정한 천하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실히 보여주시지요.”

“그래. 흐흐흐. 중덕만 믿겠네.”

**

연주에서는 계속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실 전쟁이랄 것도 없었다. 서주에 있던 이의민군도 합류한 이후부터는 그냥 가서 땅을 차지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아직까지 연주에 남아있던 조조군 잔존 병력들은 대부분 이의민군을 보자마자 항복했고, 백성들 역시 몸집을 급히 불리느라 수탈을 일삼던 조조군보다는 이의민군을 더 환영했다.

“주군. 합비성까지 점령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합비성에 있던 조조군 칠백 기는 싸울 엄두도 내지 못하고 항복했습니다.”

“고생했다. 조표.”

합비를 마지막으로 남은 서주 땅을 완전히 복속시킨 이의민. 이제 진정으로 청주와 서주, 연주를 아우른 3주의 지배자가 됐다.

하지만 곽가의 표정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죄송합니다. 주군. 결국 조조는 찾지 못했습니다. 지금쯤 이미 낙양에 도착했을 듯합니다.”

조조를 놓쳤기 때문이었다. 곽가와 순유는 조조가 낙양으로 향한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연주를 이 잡듯 뒤졌다. 덕분에 나눠진 10부대 중에 6부대나 찾아내어 섬멸하는 쾌거를 이뤘다. 하지만 결국 그 6부대 중에 조조는 없었고, 나머지 4부대는 놓친 셈이었다.

사실 곽가나 순유가 못한 게 아니었다. 대놓고 숨어서 이동하는 적 부대를 이 넓은 연주 땅 내에서 찾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6부대 밖에 못 찾은 게 아니고, 6부대나 찾은 게 대단한 거였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천재라 불리던 곽가 입장에서는 스스로의 성과가 못내 아쉽다.

그렇게 자책하는 곽가와는 달리 이의민은 별로 아쉽지 않는 듯하다.

“곽또라.... 아니. 곽 부군사. 그리 생각할 필요 없어. 어차피 조조는 내 손에 죽게 되어있다. 그 시간이 조금 늦춰진 것일 뿐이지.”

“아니? 주군. 누가 제게 곽또라이... 흠흠! 아무튼 곽 장군. 한번 걸리기만 해봐. 어쨌거나 아쉽게 됐습니다. 조조만 잡는다면 주군의 세력 확장을 방해할 이가 당분간을 없을 터인데.... 낙양에 갔다면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저와 공달 형이 대비를 하겠습니다만....”

“됐다. 봉효와 공달이 대비를 한다면 조조, 그놈이 뭔 짓을 하더라도 별 수가 있겠나.”

이의민과 곽가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또 하나의 희소식이 들어왔다.

“대사농. 낙양에 있던 대사농 속관이 물자를 대량으로 보내왔습니다.”

종요가 예전에 얘기했던 두 번째와 세 번째를 합친 물자 지원이었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분량의 물자들이 들어왔다.

순식간에 불어난 이의민의 군사들을 먹이고 입히고, 무장시키는데 부족함이 없는 물자들이었다.

“좋군. 공달의 보고에 따르면 청주병들의 숫자가 8만이나 되고, 이번에 조조와의 전쟁에서 획득한 포로들 중 전향한 이들까지 합하면 무려 3만이나 된다는데.... 그들까지 전부 무장시킬 수 있겠나?”

“정말 어마어마한 물량입니다.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의민은 이로서 16만이나 되는 병력을 손에 넣었다. 청주에 도착한 직후만 해도 고작 2만 군사가 다였다. 그랬는데 지금은 그 8배에 가까운 병력이다.

그리고 부족한 물자도 다 해결이 됐다. 종요가 보낸 물자들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미축의 자금력 덕분에 당분간 돈 걱정은 전혀 없었다.

이의민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보고를 받고 있는데, 전령이 조심스럽게 서신 하나를 내밀었다.

“그리고 속관이 대사농께 이것까지 전달하라고 하셨습니다.”

거침없이 서신을 펼쳐보는 이의민. 그의 표정이 변했다.

“뭐야? 반 이의민 연합....? 내가 반 동탁 연합은 어디서 들어봤는데....”

“예? 주군? 반 동탁 연....?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서량의 동탁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의민은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어리둥절 하는 곽가에게 서신을 보여주었다.

“흠흠! 그게 아니고.... 아무튼 이것 좀 봐.”

곽가 역시 서신을 보자마자 표정이 심각해졌다.

“아무래도 조조가 하진에게 뭔가 수작을 부린 게 확실한 것 같습니다. 반드시 잡았어야 하는 건데....”

곽가도 부담을 느끼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종요의 서신대로라면 이의민은 지금껏 싸워왔던 그 어떤 적들보다 더 강하고 거대한 적과 싸워야 한다. 바로 반 이의민 연합이라는 적 말이다. 단순히 하나의 세력이었던 조조와 싸웠던 것도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다.

“크흐흐! 그래. 하나둘씩 감질나게 오지 말고 한꺼번에 상대해주지.”

“주군. 그리 쉽게 생각하실 게 아닙니다.”

“나도 쉽게 생각하지 않아. 제후들 전체를 적으로 싸워야 한다는 건데 그게 어찌 쉽겠나?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으니 즐겨야겠지. 일단 공달과 같이 얘기를 해봐야겠군.”

이의민 역시 지금 상황을 쉽게 생각한다거나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의민은 그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을 뿐이다.

이의민은 순유와 함께 이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그가 있다는 복양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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