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무신이 삼국지를 다 때려부숨-57화 (57/175)

57. 3주의 주인 (1)

연주 진류군.

조조의 근거지이기도 한 이곳은 한창 전쟁의 북소리가 울려 퍼지는 서주와는 달리 아주 평화로웠었다. 그랬던 이곳도 조조가 군사들을 이끌고 서주로 간 이후 갑작스레 전쟁의 분위기가 감지됐다.

연주와 청주의 경계에서부터 심상찮은 움직임이 시작되더니, 급기야 동군 태수 교모와 제북 상 포신이 군사를 일으켰다.

연주에 속한 그들은 청주군에 맞서 연주를 지키기 위해 군을 일으킨 게 아니었다. 그들은 서서히 연주의 경계를 넘어오는 청주군과 합류하더니 연주 쪽으로 무기의 날을 세웠다.

당연한 얘기였다. 사실상 이의민의 수하들인 그들은 오래전부터 이럴 생각이었다.

그렇게 연주 접경지부터 시작된 침공은 어느새 조조의 근거지인 진류까지 다다랐다. 조조는 이미 대부분의 병력을 가지고 서주로 간 상황. 청주군과 교모, 포신의 군사들은 연주에 무혈입성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연주에도 군사들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연주자사 유대도 남아있었다. 하지만 청주군과 교모, 포신의 연합군을 상대로 며칠 버티지도 못하고 목이 떨어졌다. 병력도 부족했지만, 무엇보다 순유의 역할이 컸다.

아무리 병력 차이가 난다지만 연주라는 넓은 땅을 점령해나가기에는 청주군과 교모, 포신의 군사들도 그리 많은 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순유는 완벽에 가까운 용병술과 전략으로 연주 땅을 하나하나씩 확실히 복속해나갔다.

특히 복속된 땅의 민심을 완전히 이의민 편으로 끌어들여 후방을 든든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파죽지세로 연주의 땅들을 점령해 나가며 조조의 근거지인 진류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진류에 도착하니 그림이 조금 달라졌다.

좀 더 큰 공을 세워 이의민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동군 태수 교모는 청주군과 합류하지 않고 조금 더 무리하게 진격을 했었다. 그래서 진류군에도 청주군이나 포신보다 먼저 도착했다.

진류는 조조의 혈족들이 몰려 있는 곳이다. 이들만 잡는다면 사실상 연주를 완전히 복속시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채 진류로 들어온 교모.

하지만 교모는 그들을 너무 우습게 봤다.

건물들은 불타고 있고 사방에서 함성 소리가 들렸다. 수많은 군사들이 다른 무리를 쫓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복장을 보니 놀랍게도 쫓는 자는 조조군이었고, 쫓겨 도망치는 자는 교모의 군사들이었다.

“저기 있다! 저 놈 잡아라!”

“저놈이 교모다! 저놈만 잡으면 된다!”

“빌어먹을! 어찌 여기에 저 정도의 군사들이....!”

교모는 낭패한 표정으로 쫓아오는 조조군을 보고 있었다.

당연히 이곳 역시 빈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숨겨진 조조군이 많았다.

조조의 아비인 조숭은 연주자사 유대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가문의 역량을 총 동원해 사람을 불러 모았다. 그리하여 진류에 제법 많은 군사들을 숨겨놓았다. 덕분에 완전히 방심하고 있던 교모를 함정에 빠뜨리는데 성공했다.

간신히 도망치고는 있었지만 서서히 한계가 왔다. 교모의 곁을 지키고 있는 군사들은 점점 더 줄었고, 조조군의 추격은 갈수록 매서웠다. 이제 더 도망칠 곳도 없다.

“헉헉...! 내 그릇은 결국 여기까지인가....?”

한 때는 교모 역시 천하를 품을 생각도 했었다. 물론 이의민을 따르기로 한 지금은 그 야망을 접었지만, 그런 야망까지 품었던 자신의 최후가 너무 허망한 것 같았다.

자신의 최후를 직감한 교모는 죽기 직전까지 도망치기보다는 시원하게 적과 맞서 싸우기로 하고 검을 들었다. 그때 뒤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물러서십시오! 동군 태수!”

익숙한 목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얼굴 역시 낯이 익었다. 얼마 전 흑산적 토벌을 할 때 봤었던 인물이다.

“고, 고순 장군?”

“사정은 나중에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일단 적부터 처리하시지요. 교 태수를 보호하라!”

고순과 함께 온 군사들은 순식간에 교모를 둘러싸고 보호 태세를 갖췄다. 교모는 그들의 복장을 보고 그제야 청주군이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고순 장군은 대체 언제 주군의 사람이 된 것이지....? 주군께서 대단하신 분이라는 건 원래 알고 있었지만.....’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다시 한번 이의민에 대한 감탄이 터져 나오는 교모다.

교모가 그리 감탄을 하고 있을 때, 고순은 말을 몰고 나와 추격해오는 조조군과 맞섰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교모와 그 군사들을 추격하던 조조군도 고순 앞에서는 어린아이나 다름없었다.

고순이 창을 내지르자 선두의 조조군 하나는 그대로 꼬챙이 꿰인 꼬치 신세가 됐다. 하지만 조조군은 수적 우위를 앞세워 고순을 포위하려 했다. 하지만 고순 바로 뒤에 나타난 사내가 포위망을 단번에 박살내버렸다.

“어이쿠! 이런 믿음이 부족한 놈들! 태평도의 신실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한명을 상대로 다구리를 까는 그런 비겁한 짓거리는 하지 않는다!”

그는 관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의 친위대들도 있다.

“형님. 그동안 상대가 너무 쉬워서 재미가 없었는데, 이제 좀 상대할 만한 적이 생긴 것 같소.”

“야! 이놈아! 자꾸 형님이라고 하지 말랬지? 단주라고 몇 번을 얘기해야 되느냐?”

“헹! 이미 황건은 무너진 지가 언젠데 자꾸 단주요?”

“무너진 게 아니라 주군께 복속된 것이라고! 이 믿음이 부족한 놈들아.”

건들건들 거리기만 하고 실없어 보이는 그들이지만 전투력 하나는 확실했다. 이의민을 상대로 아무것도 못하고 무력한 모습을 보였다지만, 어디까지나 상대가 이의민이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명장도 없는 현재 조조군을 상대로는 저승사자와도 같은 관해와 그 친위대다.

결국 조조군 추격자들은 고순과 관해, 청주병에 의해 순식간에 정리됐다.

교모는 십년감수했다는 듯 가슴을 쓸어내리고 고순에게 감사를 표했다.

“정말 고맙네. 고순 장군. 그런데 어찌 이리 일찍 온 것인가? 적어도 며칠은 더 걸릴 줄 알았건만....”

“순 군사께서 아무래도 조숭이 마음에 걸린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소장과 관해를 보낸 것입니다.”

역시 순유가 예상한 것이었다.

“하아! 정말로 그 분은 빈틈이 없으시군. 주군의 총군사다워. 고 장군. 나 아직 싸울 수 있네. 조숭이 있는 곳으로 안내 하겠네.”

교모는 지금까지 당한 것을 갚아주겠다는 듯 전의를 불태웠다.

얼마 후 진류까지 완전히 장악한 교모와 청주군. 어찌 보면 연주의 마지막 희망이라 할 수 있는 조숭도 쓰러져 버렸다. 연주까지 이의민의 손아귀에 떨어진 거나 마찬가지다. 이로서 청주에 이어 서주, 그리고 연주까지 접수하는 이의민이다.

**

숭산. 낙양의 동남쪽에 위치한 산이다. 험하다면 나름 험한 이 산을 내려오는 천여기의 군사들이 있었다. 바로 조조와 그 군사들이었다.

그런데 조조가 서주에서 막 도망을 칠 때는 분명 2만기의 군사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작 천여기 밖에 되지 않았다. 그 군사들을 다 잃고 이것밖에 남지 않은 것인가?

그건 아니다. 조조는 순욱이 추천하지 않음에도 낙양행을 택했다. 아무래도 양주에 숨어서 조용히 힘을 키우기에는 너무 답답했다.

당장이라도 이의민에게 복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과감하게 낙양행을 택한 조조다.

문제는 낙양으로 가기까지 연주를 거쳐야 했는데, 연주는 이미 이의민이 침공을 한 상태였다. 정확하게는 순유가 데려온 청주군과 교모, 포신의 군사들이 연주를 장악하고 있다.

그 상황에서 운이 좋다면 그들과 마주치지 않고 무사히 낙양으로 갈 수도 있지만, 만약 운이 나쁘다면 마주치게 된다. 안 그래도 이의민에게 패퇴한 암울한 상황에서 또 그들과 마주쳐 전투를 벌이게 된다면 전멸까지는 아니라도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게 뻔했다.

결국 순욱은 낙양행에 대한 대비책을 하나 더 냈다.

“이대로 운에 맡길 수만은 없습니다. 최대한 적들에게 들키지 않을 방법으로 가시지요.”

“그런 방법이 있는가?”

“군사들을 10부대로 나누는 겁니다. 그리고 각 부대는 각자 다른 길로 갈 겁니다.”

바로 알아듣는 조조.

“여러 부대로 나누면 그만큼 내가 가는 길은 걸리지 아니할 확률이 높겠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주군께서는 복장을 평복으로 갈아입으시지요. 그리고는 각 부대에 주군과 같은 복장으로 분장 시킨 이들을 앞에 내세울 것입니다. 이리하면 주군께서 계신 부대가 걸릴 가능성은 현저히 낮을 겁니다.”

“문약의 말대로 하겠다.”

결국 조조는 순욱의 조언대로 군사를 10부대로 나눴다. 조조는 그것도 모자라 자신이 이끄는 부대는 가장 험한 길로 향했다. 나머지 9개 부대를 미끼로 쓰는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9개 부대를 전부 버리겠다는 뜻은 아니다. 나머지 9부대 중에서도 생존해서 낙양에 합류할 부대가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하는 조조다. 실제로 나머지 9부대가 모두 이의민군에 걸려서 전멸할 확률은 낮긴 했다.

결국 조조는 무사히 숭산을 넘어서 낙양까지 올 수 있었다.

낙양 앞에서 조조는 회한이 가득한 음성으로 순욱에게 물었다.

“다른 이들도 살아 있겠는가?”

“.....”

순욱은 차마 대답을 하지 못했다. 분명 살아서 합류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들 중 누군가는 반드시 죽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들을 그리 사지로 내몬 사람은 바로 순욱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물론 최종적인 결정은 조조가 한 것이지만.

조조가 낙양성 안으로 들어가니, 아직 그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도착한 이들이 없었다. 다른 부대는 조조가 먼저 낙양으로 갈 때까지 주의를 끌어야 하니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조조의 부대 외에 낙양에 도달한 부대가 없지는 않았다.

“형님! 무사하셨습니까?”

“오! 인아! 왔구나!”

조조는 기뻐하며 조인을 얼싸안았다. 하지만 오는 동안 적지 않은 고생을 한 것으로 보였다. 그의 옷은 넝마가 되어 있었고, 따르는 군사는 200여기밖에 되지 않았다.

곧이어 하후연도 낙양에 도착했다.

“묘재! 무사했구나.”

“형님.... 큭! 죄송합니다.... 덕이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소제를 죽여주십시오.”

“아니다. 너만이라도 살아 돌아온 것이 어디냐?”

조조는 하후연의 생존에 기뻐하면서도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전력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조덕보다는 하후연이 살아있는 것이 맞다. 그래도 어찌 됐건 또 가족을 잃었다.

그런데 하후연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뭐가 또 더 있는 것이냐?”“소제는 진류 근방을 지나 왔습니다. 혹시라도 가문 어르신들과 합류할 수 있을까하는 기대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데 어르신께서....”

“아버지께 무슨 일이 있느냐...?”

조조도 아버지인 조숭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거라고 어느 정도 각오는 했다. 연주가 다 넘어갔는데 어찌 그리 생각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래도 그 소식을 하후연의 입으로 직접 듣는 건 차원이 다르다.

“다행히 돌아가시지는 않으셨지만, 적들의 포로가 되셨다고 합니다. 소제도 혹시 어르신을 구출할 수 있을지 살펴봤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악독한 놈들은 맹덕 형님이 오지 않으면 어르신을 죽일 거라 했습니다.”

“그, 그런 천하에 악독....!”

으드득!!

조인은 욕을 하려다 멈추었다. 조조의 이 악무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형님...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조조는 이를 악물어 입가를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참담한 심정으로 천천히 대답하는 조조.

“나는 가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 역시 나를 이해할 거다. 모두 오늘의 치욕을 잊지 마라.... 나는 하진에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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