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무신이 삼국지를 다 때려부숨-50화 (50/175)

50. 새로운 전쟁의 시작 (3)

미축의 동생, 미방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전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이의민이 성문을 열고 나가려는 것에 대해 미축 이상으로 불안한 마음이었다.

그로서는 이의민에 대한 소문만 들었다. 소문만 듣는다면 그 어떤 사람도 천하제일의 장사가 되고 중원 최고의 두뇌였다. 그래서 소문이란 걸 잘 믿지 않았다.

이의민 역시 크게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듣기만 했던 이의민보다는 당연히 눈앞에서 본 하후돈이 훨씬 무섭게 느껴졌다.

그런 하후돈 앞으로 아무런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이의민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의민이 무모한 자신감에 나섰다가 여태까지 하후돈을 상대했던 서주의 여러 장수들처럼 속절없이 쓰러질 것이라 여겼다.

그랬던 미방도 지금은 형 미축의 옆에서 그와 같이 입을 쩍 벌리며 이의민을 바라봤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후돈이 여태껏 어떤 무위를 보여줬었는데, 서주군에게 있어서 얼마나 저승사자와 같은 모습을 보였는데 단 일합에 두 동강이 난단 말인가.

“형님. 저기 저 쓰러진 자가 정말 하후돈이 맞습니까?”

“너도 지금 보고 있지 않느냐. 저 머리와 몸이 분리된 장수가 하후돈이 아니라면 대체 누구란 말이냐.”

그제야 미축과 미방도 인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간 들었던 이의민에 대한 소문은 진짜다. 오히려 축소가 됐으면 됐지, 절대 과장된 게 아니다.

그렇게 형제가 쌍으로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이의민을 바라보고 있다.

이의민은 미축을 지나치면서 하후돈에 대한 감상을 짧게 내뱉은 후, 서주군을 향해 외쳤다.

“서주의 군사들이여! 보았느냐? 상대가 얼마나 강하든 얼마나 무섭든, 나 이의민의 상대가 될 수 없다. 그러니 너희들이 날 따른다면 그 어떤 적도 너희들을 이길 수가 없단 말이다. 내가 너희들에게 그 사실을 증명했으니, 이제는 너희들의 차례다. 나는 겁쟁이들을 이끌 생각은 없다. 그러니 너희들도 눈앞에 보이는 적을 섬멸해라. 그리고 나 이의민의 군사들이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라! 그럼 너희들에게 승리만 있을 것이다!”

이의민의 한마디, 한마디에 불안한 눈빛과 죽어가던 표정을 짓던 서주군 군사들의 기세가 변했다.

“우와아아아아아!! 대사농!!”

“우리에겐 이의민 장군이 있다! 그 누가 적이라도 두려우랴!”

“개새끼들아! 그동안 우릴 물로 봤지? 이제는 다를 거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창을 들고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는 조조군을 향해 먼저 돌진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여태껏 조조군을 상대로 패배만 했고, 결국 이 개양성에 포위된 후에는 그들을 보고는 벌벌 떨면서 병장기를 제대로 들고 있기도 힘든 서주군이었다. 그랬던 그들이 조조군을 보며 욕설을 내뱉으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이 비현실적인 광경에 미방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렸다.

‘이들이 진정 우리 서주군이 맞는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미방을 향해 이의민이 나지막하게 한마디를 하며 그가 정신을 차리게 해주었다.

“어이! 거기! 지금 뭐하는가? 갓 들어온 신병인가?”

“예... 예?! 아, 아닙니다!”

“군사들은 지금 전의를 불태우며 적진으로 뛰어들고 있다. 그런데 지휘관이 멍청하게 쳐다만 보고 있으면 어쩌자는 말이냐? 도움이 되지 아니할 거면 차라리 성 안으로 들어가 있어라.”

미방은 얼굴을 붉혔다. 군을 지휘해야 할 자신이 이의민의 말대로 갓 들어온 신병처럼 어리바리하게 행동하고 있다.

미방은 마음을 다잡고 굳은 의지가 엿보이는 음성으로 이의민에게 대답했다.

“부족한 모습을 보여 죄송합니다. 이제부터는 지휘관으로서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군사들을 통솔하겠습니다.”

“정신을 차렸다면 다행이군. 그럼 어서 네 역할을 하도록.”

“옛! 주군!!”

대답을 한 미방은 어느새 군사들 틈에 섞여서 같이 조조군을 향해 내달렸다. 다른 군사들처럼 끓어오르는 마음으로 무작정 돌격하는 게 아니었다. 혹시라도 군사들이 흥분하여 대열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를 칼같이 잡아내며 군사들을 효과적으로 이끌고 있었다. 이의민에게 했던 대답대로 지휘관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 미방이다.

조조군은 갑작스런 하후돈의 죽음으로 혼란에 빠졌다. 그들로서도 서주군 못지않은 충격이었다. 하후돈이 어떤 인물인가. 조조군 내에서는 조인, 하후연 등과 함께 둘째가라면 서러울 맹장이 아니던가. 더군다나 그들은 하후돈을 죽인 이의민의 정체도 아직 모르고 있으니 그 충격이 더 컸다.

“허억! 하, 하후돈 장군께서 어찌....?!”

“마, 말도 안 돼!”

그들은 곧 더 큰 혼란과 맞닥뜨려야 했다. 그동안 자신들만 보면 숨고 도망 다니기 일쑤였던 서주군이 엄청난 기세로 쳐들어오고 있었다.

그에 조조군은 서주군과는 다른 의미로 여태껏 자신들이 했던 행동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했다. 하후돈이라는 정신적 지주가 단번에 무너진 것, 그리고 여태껏 자신들을 두려워하기만 했던 적들의 돌변, 이 두 가지 변화는 여태껏 승리만을 떠올렸던 조조군에 공포심을 불러왔다. 그리고 그 공포심은 순식간에 전염됐다.

“으아아! 도망쳐!”

조홍은 그런 군사들을 통제하려 애를 썼다.

“당황하지 마라! 침착하라! 무기를 들고 적들과 맞서라!”

하지만 이의민이 준 충격과 공포는 조홍의 통제력을 훨씬 뛰어넘었다. 조홍의 외침은 그대로 공포에 질린 조조군 군사들의 비명소리에 묻혔다. 병장기조차 버리고 도망치는 군사들이 부지기수였다.

더군다나 곽가는 이미 이 사태를 예상했다는 듯 개양성 안의 청주군을 지휘하여 조조군을 같이 공격했다.

“서황 장군! 만총 장군! 두 분은 각각 날개를 형성해 주군을 보좌해주십시오. 장료 장군과 우금 장군께서는 성을 둘러싸느라 아직 합류하지 못한 조조군을 섬멸해주십시오. 태사자 장군은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적의 장수와 지휘관을 노리십시오.”

한눈에 적진을 파악하며 적재적소에 최선의 지시를 내렸다. 몇몇 장수들은 나이도 한참 어린 곽가가 지시를 내리는 것에 언짢아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 지시 하나하나가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지시라서 반박도 못하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조조군은 제대로 도망을 치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서주군과 청주군의 합공에 휩쓸려 나갔다.

그래도 조조군에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

아직 어린 소년 장수인 이전이 고군분투하며 어떻게든 군사들을 통솔하고 있다. 놀랍게도 조홍이 혼자 소리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가 좋았다.

“무작정 도망치지 마라! 적이 어디에 있고, 어떤 진형으로 오는 지 확인을 제대로 하란 말이다! 이제부터 적들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고 무작정 도망치는 놈들은 내가 목을 벨 것이다!”

이전의 활약 덕분에 일부 조조군이 혼란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혼란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승패는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후퇴라도 잘 해야 한다.

하지만 그걸 눈 뜨고 보고만 있을 이의민이나 곽가가 아니었다. 이의민의 한혈마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을 하기 시작한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각하는 조조군이었지만 어째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게다가 곽가의 지시를 받은 서황과 만총 역시 날개를 형성하며 조조군에게 압박을 들어오고 있었다.

“조홍 장군. 거리가 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큰 피해를 감내해야 합니다.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조홍은 암담한 표정으로 전장을 살펴봤다. 그에게도 뾰족한 수는 없었다. 그나마 한 가지를 꼽자면 미끼 하나를 크게 던져주고 남은 이들이 겨우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조홍은 이전을 가만히 보다가 결심을 내렸다.

조홍은 이전과 일부 군사들을 미끼로 삼아 자신이 탈출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지금 군사들을 훨씬 잘 통솔하는 이도 자신이 아닌 훨씬 어린 이전이었다.

‘나는 형님의 군사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저 어린 이전보다 지휘관으로서의 역할을 못한 것이다. 형님의 미래를 위해서는 나보다 이전이 있는 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결단을 내린 조홍은 이전에게 명을 내렸다.

“이전 장군. 군사들을 이끌고 먼저 가게.”

“예? 장군은 어찌하고 소장만 가라고 하십니까?”

“난 여기서 시간을 끌겠네. 내 실책으로 형님의 군사들이 저리 많이 쓰러졌는데, 내 무슨 낯으로 형님을 뵙겠나. 그러니 자네는 날 두고 어서 가게. 조금만 시간이 지체되면 둘 다 의미 없이 죽게 될 것이네.”

조홍의 명에 이전은 눈물을 흘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될 말씀이십니다! 어떻게든 힘을 합치면 같이 살 수 있는 방도가 있을 겁니다.”

이전이 고집을 부리자 조홍은 전장의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호통을 쳤다.

“저런 적을 상대로 어찌 둘 다 도망칠 수 있다는 허황된 생각을 하는가! 둘 중 하나는 여기서 살아갈 수 없네!”

조홍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이의민이 있었다. 대부를 한번 휘두를 때마다 열 명이 넘는 조조군이 비산하고 있다. 말단 병졸이든 장수든 상관이 없었다. 모두 공평하게 이의민의 대부 앞에 작살이 나고 있다.

이전도 그걸 보고 현실을 깨달았다. 둘 다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 말이다.

“그럼 차라리 소장이....”

“군사들이 나보다 더 자네를 잘 따른다는 사실도 모르는가! 시간이 없네! 어서 가게!”

“크흑! 장군!”

결국 이전은 눈물을 머금고는 조홍을 놔두고 떠났다.

조홍은 이전을 보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전장을 휩쓰는 이의민을 쳐다봤다. 지금까지 그 어떤 적을 상대해도 밀릴 수는 있을지언정 단번에 쓰러지지는 않는다고 자신했던 조홍. 하지만 이의민 앞에서는 그 어떤 장담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의민도 조홍을 보고 다가왔다. 이의민도 하후돈 다음의 지휘관이 조홍이란 걸 알아본 것이었다.

처음에는 홀가분했던 마음이 점점 두려워지고 있었다. 창을 잡은 손이 절로 벌벌 떨렸다. 그만큼 이의민은 보면 볼수록 두려운 존재였다.

“그대는... 누구시오?”

“통성명을 하려면 자신의 정체부터 밝히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나, 난 조홍이라고 하오.”

“조홍이라... 조씨인 걸 보니 조조의 친족이겠군. 난 이의민이라고 한다.”

조홍은 그제야 이의민의 정체를 알았다. 그리고 전황이 갑자기 이렇게 된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조인 형님께서 괜히 웬만하면 적으로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신 게 아니로구나... 이 자는 정말 괴물이다.’

조홍은 창을 꽉 쥐었다. 만에 하나라도 자신이 이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이미 접었다. 조조나 조인에게 들었던 이의민에 대한 얘기 때문이 아니다. 직접 마주보고 있어보니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각오를 하고 나니 다시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이의민과 같은 괴물을 상대해볼 기회가 생겼음에 오히려 기쁜 마음이다.

이의민 역시 조홍의 그런 기개를 느끼고 살짝 감탄했다.

“호오! 네놈. 실력은 몰라도 기개 하나 만큼은 진국이구나. 역시 조조의 핏줄이란 건가. 그래. 무인으로서 네 놈을 인정한다. 보답으로 고통 없이 보내주지.”

“감사하오. 대사농.”

이윽고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돌진했다.

털썩.

하후돈 때와 마찬가지로 대부에 묻은 피를 한번 털어내고 유유히 한혈마를 모는 이의민. 그 절대적인 모습에 서주군과 청주군, 아니. 이제 이의민군의 함성소리가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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