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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무신이 삼국지를 다 때려부숨-48화 (48/175)

48. 새로운 전쟁의 시작 (1)

서주 땅으로 4만여 군사들이 이동하고 있었다. 최근 도겸과 전쟁을 벌인 조조의 군사들일까? 아니다. 그들은 바로 이의민의 청주군이었다.

곽가는 주변과 지도를 번갈아 살피며 이곳이 어딘지 파악했다.

“주군. 여기가 서주 낭야국 개양현입니다. 지금까지 들어온 보고에 따르면 바로 이곳이 조조와 도겸이 전면전을 벌이는 격전지입니다. 여기서부터는 군사들의 경계태세를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굳이 곽가의 조언이 아니더라도 이의민은 이미 이 근처에서 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짙은 혈향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이의민의 후각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개양성에 다가갈수록 군사들의 함성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그리고 개양성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즈음에는 조조군과 도겸군 양쪽을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긴 분명 도겸의 땅이라 들었는데, 저리 수성만 하고 있을 정도로 도겸이 몰렸다는 말인가? 우리가 조금만 더 늦었다면 전쟁은 조조의 승리로 끝났겠군.”

이의민의 감상대로다. 현재 조조군은 개양성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다. 쥐새끼 한 마리 탈출할 수 있을 만한 틈도 없어보였다. 그만큼 조조군이 압도하고 있고, 도겸군은 풍전등화인 상태였다.

승리를 목전에 두었던 조조군은 갑작스레 나타난 청주군을 보며 혼란에 빠졌다. 그들은 여태껏 청주군을 본 적이 없었다. 대륙은 동쪽 끝에 붙어 있기에 그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황건적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으니 청주군이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러니 갑자기 나타난 4만의 군사들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 당연했다.

선두에서 군사들을 지휘하며 공성전을 이끌던 조홍은 당황하며 부관에게 물었다.

“저것들은 뭐냐? 저 많은 대군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것이냐는 말이다.”

“서주의 다른 곳에서 온 도겸의 군사들이 아니겠습니까?”

“그게 무슨 헛소리냐? 도겸은 우리 군과의 전쟁에 모든 전력을 투입했다. 숨겨둔 군사들이 있었다면 이제야 투입할 리가 없잖느냐.”

“그렇다면 예주에서 온 원군.... 아니면 원술이 도겸을 도우러 보낸 원군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멍청한! 네놈도 일전에 예주군과 원술의 군사들을 본 적이 있지 않느냐? 그들이 저런 복장과 깃발을 들고 있었더냐?”

“그럼... 소인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후방에서 적들의 원군으로 보이는 대군이 등장했습니다. 공성을 지속하다가 저들의 공격을 받는다면, 무방비로 적들의 공격에 노출이 되는 셈입니다. 공성을 중단하시고 군사를 물리셔야 합니다.”

부관의 말대로 위험부담이 매우 큰 상황이었다. 적 원군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부관의 조언이 아니더라도 다른 쪽 조조군을 보니 이미 퇴각을 하고 있었다. 아마 총대장인 하후돈이 상황을 재빠르게 파악하고 조치를 내린 것 같았다.

결국 조홍도 공성을 포기하고 퇴각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전군! 공격 중지! 일단 진지 쪽으로 퇴각한다!”

이의민은 바로 그들을 공격하려고 자세를 잡았다. 그런데 곽가가 말렸다.

“주군. 일단 개양성으로 들어가서 서주군과 합류하시지요.”

“저들을 쫓으면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비록 원군의 존재를 예상치 못해 급히 퇴각하는 모양새지만, 정신없이 혼란스레 퇴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질서를 갖춰 퇴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저들을 친다고 해도 그다지 큰 소득이 없을 겁니다.”

이의민은 곽가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생각을 고쳤다. 곽가의 조언을 잘 들어야 한다는 순유의 조언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의민 본인이 곽가의 능력을 신뢰하고 있었다.

“알겠다. 적들을 쫓지 마라! 먼저 개양성으로 입성한다!”

이의민의 청주군은 그렇게 전투 한번 없이 개양성 성문 앞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개양성을 사수하고 있던 서주군은 경계를 풀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조조군의 무지막지한 공성 공격을 힘겹게 막고 있었다. 게다가 서주군 역시 청주군을 처음 봤다. 그러니 경계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누, 누구십니까?”

“성문을 열어라! 여기 이분은 대사농이시자 청주 자사이신 이의민님이시다! 도 자사와 서주가 위험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고 구원하러 오셨다.”

곽가의 외침에 개양성 성벽에 몰려있던 서주군이 수군댔다. 하지만 모두가 주저하며 섣불리 성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곽가의 말이 진실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멍청한 놈들이?! 죽을 위기에 처한 너희들을 구원하려고 먼 길을 달려온 사람들을 이리 세워둘 참인가? 우리가 조조 대신 이 성을 공격해주랴?”

곽가는 홧김에 협박을 해봤지만 오히려 더 역효과였다. 조조 대신 공격을 한다니 서주군은 더 두려워졌다.

그때 개양성 성벽 한쪽에서 누군가가 나직한 목소리로 군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성문을 열어드려라.”

“하, 하지만 별가종사....”

“모든 건 내가 책임질 것이다. 열어라.”

책임을 진다는 상관의 말에 군사들은 쩔쩔 매다가 어쩔 수 없이 성문을 열었다. 이의민과 청주군은 일제히 개양성 안으로 입성한다.

이의민이 들어가자 문을 열라고 명을 내렸었던 별가종사라는 자가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해왔다.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소인은 서주의 별가종사 미축이라 합니다.”

서주의 별가종사라는 자는 미축이었다. 삼국지에서 촉한의 개국공신으로 활약한 인물로서 현재는 도겸 밑에 있었다.

곽가는 이의민 앞에서 공손히 허리를 숙이는 미축을 호의적으로 바라봤다. 애초에 가장 먼저 성문을 열어준 자인만큼 첫인상이 나쁘지 않다.

“안녕하시오. 난 청주의 별가종사 곽가라고 하오. 아까 얘기했다시피 이분은 대사농이자 청주자사이신 이의민님이시오.”

“정말 우리를 구원하러 올 제후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미축이 처음부터 끝까지 깍듯한 자세로 자신을 대했지만, 이의민은 기분이 썩 좋지 못했다. 군사들이나 미축과 같은 수하들은 전부 성벽에서 죽을힘을 다해 최후의 항전을 펼치고 있는데, 정작 이들을 이끌어야 할 서주자사 도겸은 대체 어디 처박혀 숨어있다는 말인가.

미축은 그런 이의민의 불만을 읽은 듯 재빨리 그를 도겸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주군께서는 안에 계십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도겸은 개양성 안에서도 아주 깊숙한 곳에 있었다. 이의민은 도겸을 만나러 가면 갈수록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그를 만나보니 불쾌한 감정은 싹 사라졌다. 그리고 여태껏 왜 군사들이 성문을 여는 데 주저했던 것인지 알게 됐다.

“으으으... 누가... 왔는가.....?”

전장의 용맹한 노장은 오간데 없고 볼품없는 늙은이가 침상에 누워있었다. 이미 그의 오른쪽 팔은 사라져 있었고, 온 몸은 상처가 가득했다.

애초에 그는 처음부터 이곳에 숨어있지 않았다. 수적인 불리함을 어떻게든 뒤집기 위해 성벽 위에서 직접 앞장서서 싸웠다. 그 모습은 과거 전성기 때보다 못하다고 하더라도 그 기개만큼은 전성기 때보다 뒤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리 앞장 선 대가는 컸다. 지금 이 꼴로 침상에 누워있는 것이 그 대가였다.

“주군. 대사농께서 서주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미축의 말에 도겸은 잘 일어나지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오! 대사농! 서주를 구하러 오신 게요?”

“그렇소. 그런데 몸은 괜찮으신 거요?”

전장에서 다치거나 죽어가는 자들을 수없이 봐왔던 이의민이다. 지금 도겸의 상태를 본다고 연민 같은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도겸에 대해 했던 오해는 없어졌다. 그래서 이의민은 도겸 앞에서 격식을 갖춰 얘기하고 있다.

“쿨럭! 쿨럭! 보다시피 멀쩡하진 않소. 아마 난 오늘을 넘기기가 힘들 것이오.”

도겸의 말에 주변의 수하들이 울부짖었다.

“주군! 그리 약한 말씀을 하시면 아니 되십니다!”

“제발 그런 말씀은 거두십시오!”

하지만 도겸의 말대로 현재 그는 가망이 없는 상태다.

“그만... 쿨럭! 내, 내 몸은 내가 가장 잘 안다. 대사농. 시간이 없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소. 그대는 조조를 상대로 서주를 구원해줄 수 있겠소?”

“그럼 그런 자신도 없이 죽으려 왔겠소? 걱정은 놓으시오.”

자신감 넘치는 이의민의 얘기에 도겸은 아픈 와중에도 슬쩍 미소를 지었다.

“쿨럭! 그럼 하나만 약조해주시오.”

“말해보시오.”

“훗날 나에 대한 이야기도 역사서에 쓰이게 될 것이오. 서주자사 도겸이 조조와의 전쟁 중 사망하였다... 이런 기록만 쓰이지 않게 해주시오. 그것만 약조해준다면 대사농은 서주를 얻을 수 있을 것이오.”

한 마디로 조조를 상대로 승리한다면 그대로 이의민에게 서주를 넘겨주겠다는 얘기였다. 충격적인 얘기에 다른 수하들이 도겸을 말렸지만,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도겸 다음으로 발언권이 큰 미축도 침묵으로서 도겸의 의지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의민은 잠시 침묵하며 도겸의 제안에 대한 답을 하지 않았다.

순유의 말대로 서주라는 땅을 그대로 차지할 수 있는 큰 기회다. 하지만 이의민은 기뻐하지 않았다. 겉으로도 그렇고 속으로도 그렇다. 애초에 이의민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아니다.

삼국지를 잘 모르는 이의민은 도겸이라는 자를 몰랐지만, 죽음을 목전에 둔 도겸이 보여주는 기개는 군인으로서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알겠소. 그럼 차후 역사서에 이리 기록되는 것이 어떻소? 병든 도 자사는 평화롭게 서주를 내게 양보하고 병사했다.”

“후후. 고맙소. 대사농. 미축! 모두 불러 들여라.”

도겸이 마지막 기력을 짜내 명을 내렸다. 미축은 울면서 사람들을 데려 왔다. 거기엔 옥에 갇혔다가 사람들의 간곡한 만류에 풀려난 진규도 있었다.

“내 마지막 명이다. 그동안 부족한 날 따르느라 다들 고생 많았다. 오늘 부턴 대사농이 이곳의 주인이다. 그러니 모두들 날 대하듯 그를 따르라.”

“크흐흑! 주군!”

“주군!!”

모두가 울며 통곡하고 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제는 정말로 도겸이 갈 때가 됐다. 도겸은 다 꺼져가는 목소리로 이의민에게 마지막 당부를 했다.

“대사농.... 절대... 조조를 얕보지 마시오.... 나는 그 대가를 이리 치렀으니.... 부디 그대는 나를 타산지석 삼기를....”

“절대 그런 일은 없으니 안심하고 눈을 감으시오.”

“고맙소....”

끝내 도겸의 눈이 감겼다. 이제는 두 번 다시 눈을 뜰 수 없으리라. 그렇게 서주의 지배자였던 도겸은 이의민에게 모든 것을 내주고 세상을 떠났다.

‘역시 조조는 대단한 인물이다. 역사에 승자로서 기록된 이유가 있다. 도겸도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닌데, 이리도 쉽게 무너뜨리다니....’

이의민은 도겸을 겪고 나니 새삼 조조라는 인물이 더 위험하고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도겸의 충고대로 절대로 방심할 생각이 없다.

이의민은 조용히 도겸의 방을 빠져 나왔다. 원래 도겸의 수하였던 자들은 여전히 그의 시신을 붙잡고 울부짖고 있다. 이제는 이의민의 수하가 되었다지만, 슬퍼할 시간은 충분히 줄 생각이다.

성벽 쪽으로 다시 가려는데 곽가와 만총이 동시에 이의민을 불렀다.

“주군. 드릴 말씀이....”

“주군. 드릴 말씀이....”

곽가와 만총은 서로를 뻘쭘한 듯 쳐다보며 이의민에게 먼저 얘기하는 것을 서로 권했다.

“부군사께서 먼저 말씀하시지요.”

“아니오. 백녕이 먼저 하시오.”

“험! 험! 그럼 염치불구하고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주군. 아무래도 도겸의 곁에 배신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이의민이 의아해할 때, 곽가가 놀란 듯 외쳤다.

“백녕도 그걸 봤구려.”

“아! 부군사께서 얘기하시려는 게 이것이었습니까?”

둘은 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

곽가가 말을 이었다.

“방금 도 자사가 마지막 유언을 할 때, 그의 수하들 대부분이 진심으로 애통해하더군요. 하지만 유독 두 사람만은 애통한 척을 하고 있었습니다.”

“음? 그런 놈들이 있었나?”

이의민은 도겸을 마주하고 있었으니, 그 수하들의 표정을 살필 수 없었다. 반면 뒤에서 곽가, 만총과 함께 수하들을 볼 수 있었던 서황은 어리둥절했다.

“응? 그런 자가 있었나? 모두 애통해 하던 것 같던데....”

“아닐세. 자네는 놓쳤겠지만, 난 분명히 보았네. 그 두 사람의 표정은 슬퍼하는 표정이 아니었네. 굉장히 당혹스러운 표정이었지.”

만총의 말에 이의민은 바로 대부를 꺼냈다.

“그런 놈이 있다면 당장 처단해야지. 주인이 바뀌었다고 배신자의 성정이 바뀔 리 없으니....”

그때 곽가가 이의민을 말렸다.

“주군. 어쩌면 그 둘이 주군에게 좋은 패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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