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급변하는 정세 (2)
연주는 서쪽으로 수도 낙양, 동쪽으론 청주, 북쪽은 하북, 그리고 남쪽엔 예주와 서주를 끼고 있는 요충지 중의 요충지다. 그리고 바로 조조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조조는 고향인 연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연주 전체를 복속시키기 시작했다.
조조는 보사였던 이의민과는 태생부터가 다르고, 그의 근거지인 연주 역시 청주와는 다른 곳이다.
조조의 조부 조등은 모든 환관의 아버지라 불릴 만한 인물이다. 그만큼 쌓아둔 재력, 명성이 다른 이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뜻이다. 조조는 그걸 기반으로 군사를 키웠다.
연주 역시 청주와 마찬가지로 황건이 있었지만, 그래도 청주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황건의 세력이 작았으니 훨씬 안정된 지역이다. 거기다 원래 인구 역시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곳이니 순식간에 군사들이 구름처럼 불어났다. 그리고 조조는 조부의 재력을 이용해 그들이 먹을 것, 장비할 것들을 아낌없이 보급해주었다.
조조는 군사들을 단순히 잘 먹이고 잘 입히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을 다루는 솜씨 역시 대단했다. 조조의 말 한마디에 감동을 받으며 군사들이 되겠다는 이들이 넘쳐났다. 군사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 때도 많았지만, 말 몇 마디에 그들의 불만을 쉽게 잠재웠다. 그런 조조의 능력 덕분에 더 쉽게 많은 이들을 이끌고 있다.
조조는 단순히 군사들을 모으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원래 그의 집안은 그 혈통이 혈통인 만큼 혈족 내에서도 수많은 인재들이 있었다. 조인과 조홍, 하후돈과 하후연, 범 같은 장수들이 즐비했고, 그들은 전 중원의 그 누구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만큼 대단한 이들이었다.
그렇지만 조조는 거기에 만족을 하지 않았다. 뛰어난 장수들은 많지만 그들을 이끌고 길을 제시해줄 문사가 부족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조조는 엄청난 세력을 가진 제후임에도 직접 명사들을 찾아가 그들을 설득했다. 그런 조조의 노력 끝에 왕좌지재라는 순욱이 합류했고, 덕분에 조조의 세력은 그 끝을 모르고 성장하고 있다.
어느덧 조조의 세력은 그 규모가 진류태수 장막은 물론 연주자사 유대까지도 압도할 정도까지 성장했다. 명목상으로는 분명 자사인 유대가 연주의 지배자였지만, 실질적인 패자는 조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만큼 조조가 단기간에 얼마나 큰 성장을 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조의 표정은 그리 밝지가 않았다. 이에 진류 태수이자 친구인 장막이 물었다.
“맹덕.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다 잘되어가고 있지 않는가? 어찌 그런 표정을 짓는가?”
장막은 조조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보고 그와 다투기를 애초에 포기하고 친구이자 조력자로서 그의 곁에 있다.
조조는 한숨을 내쉬면서 불편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조조는 웬만하면 속마음을 털어놓는 일이 잘 없는데, 장막에게 이리 털어놓는 걸 보면 어지간히 신뢰하는 것 같다.
“이의민, 그 자 때문에 마음 한 켠이 계속 걸리는군. 얼마 전 내가 그토록 성의를 보였던 봉효가 그자에게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정욱 역시도 아직까지도 답을 주지 않고 있는데, 예감이 좋지 않아. 아무래도 그자에게 간 것이 아닐는지....”
조조가 지금은 안타까움에 탄식을 내뱉고 있지만, 순유나 종요, 곽가, 정욱 등이 원래 삼국지에서 자신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 아마 거품을 물지도 모른다.
장막은 그런 조조의 모습을 보며 의문이 들었다. 장막 역시 이의민을 직접 눈앞에서 본 인물이다. 그리고 그 이후의 행보에 대한 소문도 충분히 들었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 경계해야 할 인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었다. 그로서는 이의민의 신력은 충분히 인정하고 있지만, 조조와 같은 군주의 위치에 있을 만한 자로 보지는 않았다.
“이의민이 대단한 건 나도 알지만. 그래도 고작 보사였던 자가 아닌가. 백성들을 어찌 다스려야 할지, 지역을 어찌 발전시켜야 할지, 그런 것들을 그가 어찌 알겠나? 물론 그의 밑에 자네가 탐냈던 인물들이 넘어갔다고는 하지만, 결국 제일 중요한 건 우두머리일세. 한나라를 보게. 사람이 없는가? 영웅이 없는가? 아무리 많은 인재가 있어도 결국 황실이 저 모양이니 한나라가 이 꼴이 되지 않았는가. 아무리 봐도 이의민은 자네의 상대는 아닐세. 보게. 청주가 황건 때문에 쑥대밭이 되고 있을 때 자네는 이미 연주를 다 평정했지 않은가.”
“전부는 아니지. 제북과 동군은 아직 손에 넣지 못했으니까... 젠장! 그러고 보니 그 두 곳 역시 이의민과 관련되어 있군.”
조조가 장막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누군가 황급히 들어왔다.
“주군. 문약입니다.”
바로 조조의 두뇌가 된 순욱이었다.
“오! 문약. 어서 오게. 무슨 일이 있나보군 자네답지 않게 서두르고 말이야.”
“남쪽의 상황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유표와 원술, 손견의 갈등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침울했던 조조의 눈빛이 야수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우리도 움직여야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가 보군. 그래. 문약. 어찌하면 좋겠나?”
“서주로 가셔야 합니다. 하북은 서로 싸우느라 바쁘고, 형주와 예주 역시 서로를 견제하고 있습니다. 아마 지금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것입니다. 서두르지 아니 하고 때를 놓친다면 더 큰 세력을 구축할 기회를 놓치는 셈입니다.”
“그럼 청주는....? 이의민은 가만히 있겠는가?”
어느 순간부터 조조는 어떤 얘기를 하든 항상 이의민을 염두에 두었다.
“그들은 오히려 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청주는 지금 황건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을 겁니다. 특히 청주 황건은 민중에 그 뿌리가 있습니다. 여태껏 그랬듯 청주 황건은 결코 관군에 쉽게 무릎 꿇을 이들이 아닙니다. 이의민은 끝도 없는 적과 싸우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아무리 대단한 무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황건을 꺾기 힘들 것이고, 설사 꺾었다고 하더라도 아주 먼 훗날의 얘기가 될 것입니다. 그때는 이미 서주는 주군의 땅이 되어 있겠지요.”
순욱의 얘기에 그제야 조금 안심하는 조조다.
“그런가.... 그나마 다행이군. 허나 무작정 도겸을 공격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명분이 없는데....”
연주를 장악하는 건 장막 등의 도움을 통해 가능했다고 하더라도 서주를 치는 건 얘기가 달랐다. 아무리 난세라도 누군가를 치는 것은 명분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 명분이 없이 일을 벌인다면 당장은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나중에는 힘을 잃는 법이다.
“주군. 명분이라는 것은 만들기 나름입니다. 주군께서 서주를 칠 명분은 따로 만들면 되니 그 부분은 심려 마십시오.”
“흠. 알겠네. 계속 문약에게만 일을 맡겨놓고 난 손을 놓은 것 같군. 명분에 대한 부분은 내가 생각해볼 테니, 자네는 그럼 서주 출정 준비만 해주게.”
“알겠습니다. 주군. 아마 열흘 안에 모든 준비가 끝날 것입니다.”
“그보다 더 늦게는 아니 되겠나?”
“그보다 늦어지면 그만큼 주군께서 서주를 차지할 가능성이 떨어지는 겁니다. 오히려 출정 날짜를 그 열흘보다 더 빨리 앞당겨야 좋습니다.”
“그럼 내가 좀 더 빠르게 결론을 내놔야겠군. 서주를 칠 명분이라....”
조조의 고민이 깊어졌다. 하지만 그 고민은 아마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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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민 앞에 한 사내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사내는 매우 비굴한 태도로 이의민에게 쩔쩔 맸다.
“관해라고 했나?”
“예. 헤헤헤... 신선님. 소인 관해이옵니.... 꾸엑!!”
말을 하다말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관해. 이의민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았기 때문이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네놈은 날 신선이라 부르지 마라. 그리고 어디서 실실 웃는 것이냐? 못생긴 놈이 웃는 꼴을 보니 밥맛이 떨어진다.”
“헤.... 죄, 죄송합니다. 맞습니다. 소인은 죽어 마땅합니다. 부디 자비를....”
‘씨팔! 천하의 관해가 이 무슨 꼴이더냐.’
관해는 이의민에게 제대로 얻어맞은 후 그에게 두 번 다시 덤빌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 끔찍한 고통에 완전히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다른 이들처럼 마음에 우러나와서 이의민에게 굴복한 건 결코 아니다. 하지만 황건적치고 목숨에 대한 미련이 큰 그로서는 다른 수하들처럼 완전히 이의민의 수하가 된 셈이다. 그에게 있어 이의민에 대한 두려움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절대적인 것이니까.
어쨌든 관해는 살기 위해서 억지로 웃음 지었다. 그래도 그동안 황건의 단주로서 황건적들을 현혹시키기 위해 오랜 기간 단련해왔던 그 연기력 덕분에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고 목숨을 부지할 수는 있게 됐다.
“네놈이 내 말을 잘 듣는다면 그 알량한 목숨을 이어나갈 수는 있을 게야.”
“예. 분부만 내려주십시오.”
“너 말고 단주는 총 몇 명이지?”
“소인 말고도 총 6명의 단주가 있습니다. 소인을 포함하면 총 7명입지요.”
“그래. 이미 다른 놈들을 심문해서 알고는 있었다. 혹시나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시험을 해봤는데 그건 아니군.”
“예! 예!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소인이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제발 믿어주십시오.”
“좋다. 그럼 네놈이 나머지 놈들을 전부 회유할 수 있겠느냐?”
관해를 두들겨 팬 직전의 전투에서 그를 제외한 6명의 단주들은 도망쳤다. 상당수의 황건적들을 데리고 말이다. 그들은 사실 이의민이 관해를 두들겨 패고, 그 이후 신선이라 추앙받는 모습을 목격하지 못했다. 즉, 남은 황건적들은 아직도 이의민을 상대로 결사항전의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얘기다.
관해는 이의민의 질문에 약간 곤란한 듯 대답했다.
“사실 태평도의 진정한 신자들은 모두 일반 백성들입니다. 부끄럽지만 단주들 중 태평도의 교리를 진정으로 믿는 자가 없습니다. 그들을 회유하려면 적지 않은 재물이 필요할 겁니다.”
“착각하고 있군. 재물로 그들을 회유하라는 것이 아니다. 단주들을 만나서 내 말 그대로 전해. 죽든가 아니면 내 밑으로 들어와서 단주로서 알량한 권력이라도 유지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이야.”
“아! 예! 당연히 그리 해야지요. 그들이 감히 무슨 재물을 받겠습니까? 하하하....”
“내가 웃지 말라고 했지.”
“웁! 예! 옙!”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살랑거리는 관해. 자신이 살기 위해서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의민이 내린 명을 완수해야 된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리고 이의민의 말을 잘 들어보니 그의 밑으로 들어간다는 게 생각보다 처지가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분명 단주로서의 알량한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새로 항복하는 그들에게도 그런 대접을 한다는 건 자신은 최소 그와 동급, 아니면 그 이상의 위치도 바라볼 수 있다는 얘기였다.
역시 목숨의 위협을 느끼면 머리가 잘 돌아가는 관해. 금방 그럴 듯한 계획을 내놓았다.
“대사농. 생각해보니 굳이 나머지 단주 놈들을 회유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이 힘이 있는 건 세뇌된 신자들이 있기 때문이지 그 자체로는 별 볼일 없는 놈들입니다. 그러니 태평도 신자들만 설득하면 됩니다.”
“신자들은 어찌 설득하려고?”
“아까 보셨지 않습니까? 소인과 형제들이 목숨 걸고 대사농을 신선이라 홍보하겠습니다. 그럼 태평도 신자들 모두 단주가 아니라 대사농을 따를 겁니다.”
“뭐 대충 알겠다. 별로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네놈 머릿속에 있는 그 계획들. 다 해봐. 필요하면 내 이름을 팔아도 좋다. 그렇게 해도 여전히 우리에게 저항하는 놈들이 있으면 이름 적어 놨다가 내게 보고하고.”
“충!”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는지 관해는 관군처럼 절도 있는 동작을 하며 물러났다.
관해가 나간 후 이의민은 순유와 얘기를 나누었다. 지금 이의민이 내린 지시들은 거의 대부분 순유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공달. 일단 하라는 대로 했는데 정말 이걸로 되겠는가?”
“충분합니다. 이제 주군은 더 이상 저들과 싸우지 않아도 됩니다. 태평도 신자들은 누구보다 신선을 갈망하고 기다려 왔는데, 주군께서 바로 그 신선이 되신 겁니다.”
“그건 여태껏 충분히 들었으니 알겠는데, 저놈에게 맡겨서 되겠느냐는 말이야.”
“후훗! 저도 처음에는 미심쩍어서 관해를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느 정도 확신이 듭니다. 관해는 주군께 완전히 굴복했습니다. 주군보다 더한 인물을 만나지 않는 이상 절대적으로 충성할 겁니다.”
“훗! 그럼 저놈이 날 배신할 일은 앞으로 영원히 없다는 게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