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미친놈들은 매가 약이다 (2)
곽봉은 기절한 채로 묶여 있는 황건적의 뺨을 때려 깨웠다.
“어이! 어이! 여기서 자려고? 돗자리라도 깔아줄까? 엉?!”
비로소 눈을 뜨는 황건적. 그의 눈앞에 이의민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 이의민을 본 황건적의 눈동자에 이전에 없던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의민이 갑자기 대부를 거두고 맨손으로 자신들을 구타하던 것이 기억났다. 그 기억은 정말 죽음보다 끔찍한 기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난생 처음 겪는 고통이었다. 그런 고통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정도다.
그 고통 때문에 황건적에 가담한 이후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다.
“이, 이놈들! 날 어쩔 셈이냐? 어서 죽여라!”
“널 죽이고 살리고는 네가 판단하는 게 아냐. 내 판단이지. 그런데 내가 네놈한테 물어볼 게 좀 있거든. 그걸 네가 잘 대답해주느냐 마느냐에 따라 내 판단도 달라질 거야.”
포로로부터 황건적에 대한 모든 정보를 얻으려는 이의민. 하지만 그 황건적은 마지막 자존심이 아직 남았다는 듯 완강하게 거부했다.
“내게서 무얼 알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지 마라! 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 입을 열지 아니할 것이다!”
황건적을 호기롭게 외치면서도 제발 어서 깔끔하게 목을 쳐달라고 속으로 기도했다. 하지만 이의민이 그의 뜻대로 해줄 리가 없다.
“흐흐흐! 그래. 목이 칼이 들어가는 것으로 안 된다고? 그럼 네놈 면상에 주먹이 들어가는 건 어떨까?”
이후 이의민의 무지막지한 구타가 이어졌다.
퍽! 퍼버벅! 퍼퍽!
“크아아악!!”
그와 동시에 황건적의 곡소리가 이어졌다. 단순 구타였지만 그 고통이 얼마나 대단한지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로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지켜보는 군사들도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포박된 채로 동료가 끔찍하게 구타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다른 황건적 포로들의 입술이 시퍼렇게 변했다. 그들 역시 오래간만에 잊고 있었던 공포심이란 감정을 떠올리고 있다.
모두 침을 꿀꺽 삼켰다. 만약 이 다음 자기 차례가 온다면 어떨지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다.
다음 황건적 차례로 갈 필요도 없었다. 이의민의 첫 번째 심문대상이었던 황건적이 바로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크억! 제, 제발 그만! 그냥 죽여... 컥! 아, 아니. 살려주십시오!”
그 황건적은 처음에는 그냥 죽이라고 악을 썼지만, 이의민에게 구타당한지 얼마 되지 않아 눈물을 뿌리며 애원했다.
한놈을 굴복시킨 이의민은 바로 옆의 황건적에게 다가갔다. 그 황건적은 아직 구타를 당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술술 불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아는 모든 것을 다 말하겠습니다. 저, 저희들의 근거지는....!”
다음 황건적 포로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의민이 다가가기만 해도 오줌을 지리면서 아는 것을 술술 불었다.
간혹 아직도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반항을 하려는 황건적도 없지는 않았지만, 이의민이 몇 번 어루만져 준 이후에는 태도가 똑같아졌다.
“이제 좀 대화를 할 만한 상태가 됐군. 공달. 이놈에게 필요한 정보를 얻게. 혹시라도 또 태도가 건방져진다면 바로 나를 부르고... 아니지. 이런 건 곽봉 형님도 잘 하니. 형님. 해주시오.”
“크크. 이런 건 내게 맡기라고.”
“예. 주군...”
옆에서 지켜보는 순유도 질렸다는 표정이었다. 그도 청주 황건적을 이렇게 굴복시킬 줄은 상상도 못했다.
황건적을 쫓아내고, 포로들로부터 필요한 정보도 충분히 얻어낸 이의민과 청주군은 포로로부터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황건적들의 근거지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가는 길 중간에 한 사내가 이의민을 향해 찾아왔다. 복장을 보니 북해성에 있는 관군 장수 같았다.
“응? 북해성의 관군이냐? 공융이 보냈나? 황건적 놈들을 먼저 정리하고 간다고 전해라.”
이의민의 예상과는 달리 공융이 보낸 장수는 아니었다.
“대사농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소인은 자의라는 자를 쓰는 태사자라고 합니다. 국상께서 보내신 것은 아니고, 단지 소인이 대사농을 직접 뵙고 싶어 이리 찾아왔습니다.”
태사자. 삼국지에서는 동오의 명장으로 이름을 날린 인물이지만, 지금 시기에는 아직 누구의 밑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공융의 수하도 아닌 자가 왜 북해에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노모가 북해에 있기 때문이다. 이의민의 병주 토벌로 인해 위기감을 느낀 청주 황건적들이 예상보다 빨리 북해를 공격했고, 노모에 대한 걱정으로 급히 요동에서 이곳까지 와 공융을 도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공융의 수하에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그저 자신이 보고 싶다는 말에 이의민도 그제야 관심을 가지고 태사자를 쳐다봤다. 흥미로운 표정으로 태사자를 보는 이의민.
태사자는 이의민의 시선을 받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 위엄 앞에 절로 몸이 숙여졌다.
‘소문을 다 믿지 않았거늘... 이 사람을 누가 이길 수 있을까...?’
태사자도 북해성에서 황건적들을 상대하면서 이의민이 싸우는 것을 목격했다. 태사자로서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스스로 무예에 자신이 있었고, 그 누구에게도 쉽게 지지 않을 거라 자신했다. 하지만 이의민의 무위를 눈으로 확인해보니,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자신이 그를 당해 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무기를 쓰지도 않고 주먹으로 전장을 휩쓰는 자라... 만약 무기를 들었다면 난 50합이나 버틸 수 있을까.’
현재 이의민은 적이 아니지만 만약 그를 적으로 만나면 어떨지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두려움과 동시에 존경심마저 들었다. 무인으로서 자신보다 훨씬 더 강한 강자에 대한 자연스러운 감정이었다. 그만큼 큰 충격을 받았기에 태사자는 전투가 끝나자마자 바로 이의민을 찾았다.
“태사자라.... 이름 한번 좋군. 그래. 직접 보니까 어떤가?”
“처음 소문을 들었을 때는 흔한 과장이라고 여겼지만, 직접 뵈니 오히려 소문이 모자랐다고 느꼈습니다.”
태사자의 칭찬에 이의민은 우쭐할 법도 하건만 전혀 그런 기색이 없다. 오히려 다른 흥밋거리를 찾았다는 듯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그런데 자네.... 활쏘기가 특기인 것 같군. 그렇지 아니 한가?”
이의민의 말에 태사자는 다시 한번 놀랐다. 지금 태사자는 활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의민은 그저 눈으로 태사자를 훑어본 것만으로 그의 강점을 파악했다. 태사자는 이의민의 말대로 궁술에 자신이 있었다.
“맞습니다. 소인, 궁술에 제법 자신이 있습니다. 헌데 그걸 어찌?”
“자네의 상체와 팔 길이를 보아하니, 딱 그리 보이더군.”
이의민의 눈썰미에 감탄한 태사자.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의민은 태사자에게 활과 화살 하나를 던졌다.
“자네의 솜씨를 한번 보고 싶군. 이걸로 한번 쏴보게.”
현재 태사자와 이의민의 거리는 바로 코앞이다. 만약 태사자가 딴 마음을 먹고 화살을 이의민에게 쏜다면 바로 죽일 수도 있는 거리였다. 그런데 이의민은 아무런 걱정이나 의심 없이 활과 화살을 건네고 있다.
“장군! 처음 보는 자입니다. 그런 자에게 활을 이리 쉽게 건네시면....”
“아! 괜찮아.”
이의민도 태사자가 적잖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너무 여유롭다. 마치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확신하는 것처럼... 이것이 절대자의 여유인가?’
태사자는 이의민에게 한번 읍을 하고 활을 들었다. 그리고 저 멀리 있는 나무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꽤나 먼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태사자가 쏜 화살은 정확히 나무 중앙에 박혔다. 확실히 놀라운 솜씨였다.
태사자는 자신이 쏜 화살이 정확히 목표물에 꽂히는 것을 보고는 기대하는 눈빛으로 이의민을 쳐다봤다. 마치 칭찬을 바라는 아이와 같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태사자의 기대는 무너졌다. 이의민이 감탄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태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활솜씨가 확실히 나쁘지는 않아. 하지만 부족한 것이 있어. 자네가 화살을 쏘는 걸 보아하니 정자세에서 밖에 쏜 적이 없는 것 같군. 솔직히 말해봐. 실전에서는 화살을 쏜 경험이 별로 없는 거 아닌가?”
태사자는 이제 뭐지 싶다. 이제 첫 만남인데 이의민이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아는 것 같았다. 이의민의 말대로 태사자는 실전에서는 화살을 쏜 적이 거의 없었다. 태사자의 궁술은 거의 연습으로만 다져진 실력이었다.
“그, 그렇습니다. 그것도 어찌....?”
“화살을 쏠 때의 근육이 전부 일정하게 굳어 있어. 정자세에서밖에 쏜 적이 없다는 뜻이지. 이제 정자세 말고 저 나무 위로 올라가서 쏴 보게.”
태사자는 이의민의 요구가 황당했지만, 순순히 시키는 대로 했다. 왠지 지금 이의민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할 것만 같다.
태사자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화살을 쏘았다. 확실히 바로 직전 쏜 것처럼 정확히 날아가지 않았다. 목표로 하는 나무를 맞추긴 했지만, 살짝 측면에 맞았다. 화살의 속도 역시 이전보다 약했다. 나무 위에서 불편한 자세로 쏘는 것인 만큼 당연히 그리 될 수밖에 없었다.
“거 보게. 조금만 불편한 자세로 쏴도 정확도와 위력이 떨어지는구먼.”
이의민의 지적에 태사자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나무 위로 올라가서 쏘는 것도 정확한 위력과 속도를 요구하는 건 너무 지나친 요구 같았다.
이의민은 태사자의 표정을 읽고 피식 웃었다. 그리고 직접 활을 들었다.
그리고 태사자가 있는 나무 위로 같이 올라왔다.
“무, 무슨....?”
태사자가 위치한 곳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 이의민. 당연히 자세는 더 불안정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의민은 그곳에서 활시위를 매겼다. 그 상태로 화살을 쏘려는 것이었다.
‘설마 저기서 화살을....?’
그 설마가 진짜였다. 이의민은 매우 불안정해보이는 자세에도 아랑곳 않고 그대로 화살을 쐈다. 이의민이 쏜 화살은 놀라운 속도로 날아가더니 태사자가 첫 번째로 맞힌 나무의 정중앙에 정확히 박혔다. 원래 꽂혀 있던 태사자의 화살이 이의민의 화살에 의해 둘로 갈라졌다. 그걸 보는 태사자와 군사들의 입도 쩍 갈라졌다.
“허어억!”
“봤나? 정자세에만 익숙해져서 그런 것이다. 예측불허의 전장에서 자네가 원하는 자세 그대로 활을 쏠 시간과 여유가 있을 것 같나? 그렇게 정자세에서만 잘 쏜다면 자네는 연회장에서 묘기를 부리기 위한 궁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어정쩡한 궁사가 될 뿐이지. 실전에서도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여 주려면 불편한 자세에 익숙해 져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연습을 한다면 그래도 나이도 젊고 가능성도 보이니 아직 늦지 않다.”
태사자는 이의민의 조언을 받고 머릿속이 탁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태사자는 바로 나무 밑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이의민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소인. 태사자. 대사농을 따르고 싶습니다!”
원래 삼국지에서는 공융이 그를 영입하기 위해 갖은 공을 들였었다. 그래도 전혀 넘어가지 않았던 태사자가 이의민에게는 먼저 와서 수하가 되길 자청하고 있다.
“자네 같은 인물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지.”
이렇게 또 한 명의 삼국지 영웅이 이의민의 수하가 됐다.
“곽봉형. 이제 자의도 우리 식구가 되었으니 형님이 주의사항이라던가 자질구레한 것들 좀 알려주쇼.”
“흐흐! 그래. 그건 내 전문이지. 환영하네. 자의 동생.”
자신 밑에 또 한 명의 동생이 생겼다며 신나하는 곽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