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무신이 삼국지를 다 때려부숨-40화 (40/175)

40. 미친놈들은 매가 약이다 (1)

한혈마를 탄 이의민의 질주가 시작됐다. 엄청난 속도로 청주 황건적들 사이로 들어갔다. 정신없이 북해성만 노리던 그들도 그제야 이의민의 존재를 알게 됐다.

“적들의 원군이다!”

청주 황건적들은 머리를 돌려서 이의민을 상대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이의민의 대부 앞에서는 그 누구도 서 있을 수가 없었다.

한번의 휘두름에 몇 명의 황건적들이 비산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 날아갔다는 뜻이다. 원래 이의민의 신력이야 두 말 할 것도 없지만, 한혈마를 탄 덕분에 그 위력이 배가 된 것 같았다. 아무래도 최종적으로 발휘하는 힘은 속도에 영향을 받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백여 명의 청주 황건적들을 쓰러뜨린 이의민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한혈마를 쓰다듬었다. 다른 평범한 말이었다면 기본적인 속도도 더 느렸겠지만, 아무래도 인간과 같은 동물인 만큼 두려움이란 게 존재했다. 그래서 수많은 군사들 속으로 들어갈 때 약간 주저하는 감이 분명 있었지만, 이 한혈마는 그런 것도 없다.

“크흐흐! 역시 사내는 더 좋은 마차를 타야 하는 법!”

역시 전쟁이라면 언제든 즐거운 이의민이었다.

이의민은 신나게 청주 황건적들을 돌파하면서 한가지 의문이 생겼다. 순유가 그리 걱정했던 것에 비해 그다지 강한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한혈마 덕분에 더 수월해진 것도 있겠지만, 이놈들도 정말 별 거 없는데? 공달이 지나치게 과한 걱정을 한 것인가?”

이의민이 느끼는 것처럼 청주 황건적들도 그저 도적들일 뿐이었다. 흑산적이나 백파적에 비해 더 강하다거나 특별한 구석은 아직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의민이 그렇게 선두에서 황건적들의 진영을 휩쓰는 중 본대의 군사들도 본격적인 전투를 시작했다.

장료와 우금이 군사들을 통솔하여 황건적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둘 다 군사들의 진영을 유지시키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특히 장료는 흑산적들과의 전투에서 보여주었던 활약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진영이 흐트러져서는 아니 된다! 기병, 창병들은 철저하게 동료와의 간격, 위치를 확인하고 들어가라! 방패병들은 방패 간격을 유지해라!”

초반 기세가 좋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병력 자체는 압도적인 열세였다. 현재 이곳에 있는 청주 황건적들의 수는 무려 6만에 가까운 반면 원군은 2만이니 말이다. 거기다가 이곳은 산이나 계곡과 같은 지형이 아니었다. 북해성 주변으로 아무것도 없는 평지다. 그 말인즉슨 병력 차이가 크면 큰 만큼 유리해진다는 뜻이었다. 지형 상 넓게 포위하는 것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역시 순유라는 존재 덕분에 어느 정도 상쇄가 되고 있었다.

순유는 아무래도 장수가 아닌 만큼 선두에서 군사들을 이끌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나가는 부대는 그대로 장료 장군을 따른다. 다음 부대는 우금 장군을 지원하라!”

순유는 전장을 매의 눈으로 살피며 순간순간 적절한 판단으로 병력 차이에 대한 약점을 극복시키고 있다. 분명 원군이 일방적으로 열세의 병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군사들이 맞붙는 순간만큼은 병력 차이가 거의 없게 만드는 요술을 부리고 있었다.

물론 황건적들이 제대로 훈련을 받은 정규 관군이 아닌 만큼 진영이고 대열이고 뭐고 없이 마구잡이로 들어오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3배나 되는 병력 차이를 극복하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여태껏 확인하지 못한 순유의 군략이 얼마나 대단한 수준인지 알 수 있었다.

이들의 활약 덕분에 시작부터 전투는 일방적인 흐름이었다. 이곳에서 피를 뿌리고 쓰러지는 이들은 거의 황건적들밖에 없다. 그렇게 손쉽게 승리를 따내는 듯했다.

하지만 아무리 청주 원군이 초반 흐름을 잘 탔다고 하더라도 6만이나 되는 황건적들을 다 쓰러뜨리기에는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법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의민과 순유의 표정에 난감함이 엿보였다. 특히 이의민은 전투 초반 너무 쉽다고 여겼던 생각과 영 동 떨어진 표정이었다.

‘이 새끼들 뭐야? 뭔가 이상한데?’

수없이 전투를 치러왔던 그다. 그런데 이런 적은 없었다.

보통 상대가 아무리 많아도 앞에 몇 놈을 시범으로 조져 놓으면, 상대는 주춤거리며 쉽게 덤벼들 생각을 하지 못한다.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그럴 수밖에 없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목숨이었다. 아무리 우리 편이 승리한다고 해도 자기가 죽으면 뭣하겠는가?

이의민이 아무 걱정 없이 단기로 다수의 적들 사이에 뛰어드는 데는, 자신의 무력을 믿는 것도 있지만 이런 사람의 심리를 정확이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랬었는데 지금은 뭔가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의민이 대부로 황건적 한명을 박살냈다. 말 그대로 박살냈다. 그런데도 다음 황건적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의민에게 달려들었다. 분명 본보기로 끔찍한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주었는데도 눈이 없는지 전혀 겁을 먹지 않고 이의민에게 달려들 뿐이었다.

“창천이사 황천당립!”

“씨발!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달려드는 놈들을 또 쓰러뜨렸다. 그럼 다음 놈들이 달려들었다. 그놈을 또 쓰러뜨리면 그 다음 놈이 달려들었다. 끝이 없었다.

달려드는 황건적들의 눈에 전혀 두려움이 보이지 않았다. 애써 두려움을 숨기고 억지로 용기를 쥐어짜낸 자의 눈빛이 아니다. 수없이 많은 전장에서 수많은 이들의 눈빛을 본 이의민이 모를 리 없었다. 진짜로 두려움이 전혀 없는 눈빛이었다.

“공달이 쉽지 않다고 했던 게 이걸 두고 하는 얘기였나?”

일단 아직까지는 적들을 쓰러뜨리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이의민도 사람인만큼 지칠 수밖에 없었다. 이전과는 달리 원군과 함께 싸우고는 있지만, 병력 차이가 너무 났다. 게다가 이 청주 황건적들이라면 병력 차이 이상으로 힘겨운 싸움이 될 게 뻔했다.

“후욱! 후욱! 뭐 이딴 놈들이 다 있어?!”

이의민의 옆에 찰떡 같이 붙어있던 곽봉 역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불평을 내뱉었다.

“의민! 이거 이대로 가도 되겠나? 답이 없어 보이는데....”

“낸들 알겠소?! 일단 앞에 오는 놈부터 모조리 죽이는 수밖에.... 그런데 정말 알 수가 없군. 죽여도 죽여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니....”

“이놈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따윈 없어. 내가 잘 알지.”

“이놈들에 대해 좀 아시오?”

이의민의 질문에 곽봉은 헐떡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예전에 청주 황건적과 만났었던 적이 있거든. 그때도 느꼈지만 이놈들은 완전히 미친놈들이야. 정신이 아예 나간 놈들이라고.”

“미친놈들인 건 지금도 알겠소. 그런데 어찌 이들이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인지 아시오?”

“지금이야 우리랑 적으로 마주하고 있지만 이놈들은 그 누구보다 지랄 맞은 현세에서 살고 있던 놈들이야. 현실에서 아등바등 살 바에 순교를 하여 선계에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놈들이지.”

“선계? 그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그 선계 말이오?”

“그래. 적어도 순교를 하면 신선들이 자기를 잘 돌봐준다는 믿음이 있으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는 거지.”

이의민은 싸우다말고 곽봉의 설명을 곱씹었다.

‘선계에 대한 희망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

그렇게 고민을 하던 이의민은 갑자기 대부를 허리춤에 꽂았다. 아직도 수많은 황건적들이 달려들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곽봉이 놀라 헛바람을 들이켰다.

“의민! 지금 뭐하는 짓인가?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놈들은 미친 게 틀림없소. 형님. 잘 봐두시오. 미친놈들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내가 알려주겠소.”

이의민은 대부가 없는 채로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퍼퍽! 콰쾅!

주먹으로 때리는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어쨌든 주먹이었기에 황건적들은 죽지는 않았다. 단지 심각한 충격을 받았을 뿐이다. 물론 이의민은 주먹만으로도 웬만한 이들을 단번에 죽일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일부러 급소를 피해서 주먹질을 했다.

“크아악!!”

“으어어억!!”

비명소리가 더 커졌다. 이전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는 황건적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의민을 거쳐 간 황건적들 모두 땅바닥에 쓰러져 배나 얼굴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운 비명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역시 이놈들도 고통은 느끼는군.”

이의민은 황건적들의 반응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앴는지 모르겠지만, 고통에 대한 내성은 보통의 인간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걸 확인했다.

이의민은 더 난폭한 기세로 주먹과 발을 휘둘렀다. 이의민이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황건적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개중에는 고통을 이기지 못해 기절하는 이들도 있다.

“의, 의민! 이리 싸워서 되겠는가?”

곽봉은 당황하며 이의민을 말렸다. 대부를 거둔 이후 죽는 황건적들은 거의 없었다. 물론 한 대 맞고 전투불능이 되는 이들이 제법 있다지만 그래도 대부를 쓸 때보다 황건적들을 처리하는 속도는 현저히 느려졌다. 게다가 이의민은 곽봉에게 기이한 명을 내렸다.

“형님. 혹시 기절하는 놈이 있다면 몇 놈만 포박하고 나머지는 뺨을 때리든 뭘 하든 다 깨우시오.”

“뭐? 기껏 기절해서 싸우지 못하는 놈들을 왜 다시 깨우라는 말이야?”

“일단 해주시오!”

“알겠네!”

곽봉은 이의민의 뜻을 헤아리지 못했지만, 누구의 명이라고 거부하겠는가. 곽봉은 이의민에게 맞아서 기절하는 황건적 몇 명만 포박한 이후 나머지는 전부 뺨을 때려서 깨웠다.

다행스럽게도 곽봉이 걱정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기절했던 황건적들은 깨어나자마자 다시 달려들지 않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이 미친놈들이 왜 이리 얌전하지?’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그들의 눈에 처음으로 광기가 사라져 있었다. 두려움이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보통의 인간으로 돌아와 있었다는 뜻이다.

곽봉은 그제야 이의민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더 빠른 속도로 기절한 황건적들을 깨웠다.

그런 와중에 이의민의 전투, 아니. 구타는 계속됐다.

황건적들 중에서 평범하지 않은 제법 기골이 장대한 이들이 있었다. 특히 이런 이들이 이의민의 좋은 목표였다.

퍽! 퍽! 퍽! 퍽!

“크아악! 차라리 죽여라! 이게 무슨 짓이냐?”

“흐흐! 고놈 그래도 생긴 거대로 제법 맷집이 있는 놈이구나. 좋구나! 때릴 맛이 나겠어.”

“히이익!!”

복날 개 쳐 맞듯 구타를 당하는 동료를 보는 황건적들. 고통스러운 신음과 비명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지면서 그들도 점차 변했다. 처음으로 이의민 앞에서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흐흐! 미친놈들에겐 매가 약이라는 말이구나? 그거라면 이 곽봉님이 전문이지.”

이제 깨울만한 놈들은 다 깨운 곽봉 역시 무기 대신 몽둥이를 들었다. 그리고는 한방에 죽지 않을 급소만을 노리고 무자비하게 휘둘렀다.

“크어억! 제, 제발 죽여줘!”

“내가 왜 네놈들 원하는 대로 해주겠느냐? 캬악! 퉤! 보자. 팔이랑 다리 중 어느 부분부터 주물러 줄까?”

이제 황건적들의 눈에 광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어떤 적들을 만나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전진만 했던 그들이 서서히 후퇴하고 있었다.

이의민은 이제 여유를 찾고 군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되도록이면 죽이지 말고 두들겨 패서 잡아와라! 날붙이 없이 잡는 게 힘들다면 무리하게 쫓을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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