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무신이 삼국지를 다 때려부숨-29화 (29/175)

29. 여포의 오해 (1)

무식한 놈들끼린 서로 통하는 게 있다. 여포 역시 이의민과 비슷한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바로 본대의 답답한 진군속도를 참지 못하고 선발대를 따로 꾸려서 이동 중이었다. 그래도 이의민처럼 아예 군사들을 놔두고 혼자서 가는 건 아니다.

여포는 상대적으로 빠른 선발대의 진군속도도 참지 못하고 군사들을 재촉했다.

“젠장! 빨리 따라오지 않고 뭣들 하느냐?! 어서 서둘러라!”

따라가는 병주 군사들은 죽을 맛이었다. 여포가 보통 인간을 아득히 벗어나는 속도로 혼자 먼저 가버리고, 왜 이렇게 늦느냐고 닦달을 해대니 군사들 입장에서는 곡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여포에게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잘못 입을 열었다가는 거의 반죽음이 될 때까지 쳐 맞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만만한 선발대 부관 위속만 붙들고 하소연을 하는 병주 군사들이다.

“위속 장군. 헉! 헉! 정말 죽겠습니다. 저 속도를 대체 어찌 따라가라는 겁니까?”

“어허! 어서 따라오게. 나도 힘들어 죽겠는 건 마찬가지지만 이를 악물고 뛰어가고 있지 않은가. 여 장군께서 들으시면 자네들 모두 경을 칠 것이야.”

“그러지 마시고... 위 장군께서 여 장군께 말을 걸어보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뭐? 나보고 맞아 뒤지라는 말이냐?”

“그래도 위 장군은 여 장군의 친척이시지 않습니까. 그럴 듯한 얘기로 여 장군의 관심을 좀 돌려주십시오. 여 장군은 그래도 좀 단순하니까 쉽게 넘어갈 겁니다.”

“지금 상황에서 여 장군이 관심 있어 할 만 한 주제가....”

매몰차게 거절하려 했던 위속은 수하들의 말을 듣고 보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사실 위속도 진군 속도를 늦추고 싶은 건 매한가지였다. 그 역시 여포를 따라가느라 숨넘어가기 직전이었으니까.

위속은 은근한 표정으로 여포에게 다가갔다.

“저... 여 장군.”

“무슨 일이냐? 설마 군사들이 힘들어 한다는 그런 나약해빠진 소리를 하러 온 것은 아니겠지?”

위속은 속으로 뜨끔 했지만 얼른 표정 관리를 하며 입을 열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헥! 헥! 단지 저는 여 장군께서 궁금해 하시는 것 한 가지를 알려드리려고 왔습니다.”

“내가 궁금해 하는 것? 내가 지금 궁금한 것은 이 머저리 같은 놈들을 어찌 하면 더 빨리 진군시킬 수 있을지 밖에 없다.”

“지금 여 장군께서 이 고생을 하시는 원인에 대해 궁금하시지는 않습니까? 바로 이 불이 난 원인 말입니다.”

“뭐? 그걸 알고 있느냐?”

“바로 후장군이 낸 불입니다.”

“뭣이? 이 불을 낸 게 후장군 이의민 그 놈이라고?”

“그렇습니다.”

“어찌 그리 생각하느냐? 네가 봤느냐?”

‘어휴! 이 모지리. 그걸 꼭 봐야 아나?’

위속은 속으로 여포를 멍청이라 욕하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소장이 여러 정황을 종합하여 면밀히 살핀 결과 후장군이 낸 불이 틀림없습니다.”

사실 위속은 정원이 이 불의 시작은 정원이라는 걸 알고 있다. 정원이 별동대에 명을 내릴 때 바로 옆에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위속의 지금 얘기가 꼭 거짓인 건 아니었다. 시작은 정원이었으나 어쨌든 그 불을 키운 것은 이의민이 맞다. 물론 지금 위속은 그걸 확실히 알고 여포에게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추측으로 하는 얘기지만, 머리가 달려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추측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불을 키운 자가 정원일리도 없고 흑산적일리도 없으니까.

“그래. 후장군이 맞다는 거지? 이 썩을 놈.... 대체 왜 그런 거지?”

“장군과의 내기에서 지는 것이 두려워 비겁한 술수를 쓴 게 아니겠습니까?”

“하긴. 후장군이 되어서 남의 발을 핥고 개 짖는 소리를 내는 게 못 할 짓이긴 하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비겁한 술수를 써?! 아니 되겠다! 더 속력을 내라! 반드시 우리가 후장군보다 먼저 도착해야 한다!”

‘뭐? 이런 무식한 새끼!’

여포의 관심을 돌리고 진군 속도를 늦추려고 했던 위속의 시도는 좋았다. 실제로 여포는 위속과 대화할 때만 해도 대화를 하느라 속도가 늦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이후 여포는 더욱 성질을 내며 속도를 높였다.

이렇게 될 줄 몰랐던 위속은 속으로 여포를 욕했지만 어쩔 수 없다. 젖 먹던 힘을 다해 더 빨리 움직이는 수밖에.

여포가 서두른 덕에 병주군 별동대는 상상 이상의 속도로 천수곡에 도착했다. 그리고 천수곡을 따라 일렬로 길게 늘어진 흑산적의 이동을 볼 수 있었다.

“크흐흐! 드디어 찾았구나. 도적놈들. 이 도적놈들 말고 아직 다른 놈들은 없는 것이지?”

여포는 흑산적의 행렬 전체를 쭉 보고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토벌군보다는 먼저 도착한 것 같았다. 눈으로 보이는 곳에는 적어도 흑산적 말고는 다른 군대는 보이지 않았다.

“자! 이제 장연 놈의 목만 따면 그 후장군 놈과의 내기에서 승리하는....”

여유롭게 흑산적들을 바라보던 여포의 표정이 굳었다. 흑산적 행렬 끄트머리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저, 저놈이 왜 저기에....?!”

여포가 발견한 인물은 다름 아닌 이의민이었다.

“위속! 저놈은 후장군 아니냐? 후장군이 왜 여기에 있는 것인가? 문원이 말하기를 후장군은 분명 우리보다 늦을 수밖에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여포는 그나마 머리가 잘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위속을 불러 물었다. 사실 위속은 머리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여포보다는 잘 돌아가는 게 맞긴 하다.

‘이런 썅!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 글쎄요. 저 자가 후장군이 맞습니까? 혹시 잘못 보신 것은....?”

“내 눈을 의심하느냐?! 분명 후장군이 틀림없다. 내 저 얼굴은 절대 잊지 못한단 말이다. 에잉! 네놈이 그나마 총명하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자.... 그래! 후장군이 저기 있는 이유를 알았다.”

여포가 모처럼 생각이란 걸 한 후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온 말은 모두의 입을 벌어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후장군 저놈이 불을 낸 것은 바로 흑산적을 매수했기 때문이렷다! 우리를 이리로 유인한 후 매수한 흑산적과 함께 치겠다는 속셈이었군!”

‘불을 낸 걸 어떻게 흑산적 매수로 연관 지을 수가 있지? 저 대갈통에 대체 뭐가 들어있는 거야?’

위속은 속으로 다시 욕을 한 바가지 퍼부어준 후 여포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하하.... 여 장군. 외람된 말씀이지만 그건 너무 억측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내기가 걸려 있다 해도 후장군이 미쳤다고 병주군까지 죽이려 들겠습니까?”

“이런 멍청한! 내 말이 틀림없다니까! 고기도 많이 먹어 본 놈이 먹는다고, 지금껏 수많은 계책과 속임수에 당해 온 나다. 이 정도 계책은 내가 다 꿰뚫어 볼 수 있단 말이다. 아마도 후장군은 자신이 이 내기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런 더러운 계책까지 세운 것이 틀림없다.”

여포가 성난 기세를 내뿜으며 강력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논쟁에서는 목소리 큰 놈이 장땡이라고 여포의 기세에 위속은 크게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설득 당하는 중이다.

‘젠장! 정말 저 무식한 놈의 말이 맞나? 하긴 저기 저놈이 정말 후장군이라면 다른 토벌군 군사들이 하나도 없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정말 모종의 관계가 아니라면 후장군은 벌써 흑산적에게 죽임을 당했겠지.’

“흠흠! 듣고 보니 여 장군의 말씀이 옳은 것 같기도....”

“뭐?!”

“맞습니다! 정확히 보셨습니다!”

“그래! 이제야 위속 너도 머리가 좀 돌아가는구나. 비겁한 놈! 내 유일한 호적수라 믿었거늘,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다니.... 용서할 수 없다! 흑산적과 함께 다 쓸어버려야겠다! 전군 돌격!”

여포의 명이 떨어지고 병주 군사들은 일제히 천수곡의 흑산적들을 향해 돌진했다.

한편 이의민은 장연을 죽일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회가 코앞에 왔다고 생각했다. 방심한 장연이 제법 앞으로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함성이 들리고, 놀란 장연은 흑산적들 사이로 쏙 들어가 버렸다.

“망할! 대체 무슨....?”

이의민도 곧 흑산적 뒤쪽으로 들어오는 여포와 병주 군사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젠장! 더럽게 빨리 왔군. 장연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장연만 잡고 튀려고 했었던 이의민은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장연을 잡기도 어려워 졌으니 이제 슬슬 몸을 빼야했다. 아무리 이의민이라도 6만의 흑산적과 홀로 싸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몸을 빼는 것도 탐탁찮았다.

여포가 도착했다. 그 말인즉슨 지금 얼른 장연을 먼저 잡지 못하면 내기에서 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장연과 흑산적은 이 상황을 단단히 오해했다.

“이 비겁한 놈! 분명 혼자 왔다고 하지 않았더냐?! 이제 보니 우리를 이리로 몬 다음 뒤에서 덮치려는 수작이었구나! 역시 여기까지 혼자 올 리가 없지. 저놈의 계책에 완전히 당했다!”

“두목! 아니. 장군! 후장군에 대한 소문 중 머리 좋다는 소문은 없었지 않습니까? 생각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적입니다.”

“아니?! 그런 거 아니다! 아니니까 이쪽으로 좀 와보라니까... 젠장!”

하지만 이미 이 모든 것들이 이의민의 함정이라고 단정 지은 장연은 흑산적들 사이로 완전히 몸을 감췄다.

이의민은 지금밖에 장연을 잡을 기회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장연을 잡기 위해 흑산적 속으로 몸을 날렸다.

다시 그의 대부가 춤을 췄다. 하지만 그의 앞을 막는 흑산적은 점점 더 많아졌고, 장연은 이제 보이지도 않았다.

이의민의 입에서 탄식이 터졌다. 아직까지 흑산적들을 상대하는 건 무리가 없었지만 서서히 힘이 떨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난다면 한계가 올 터였다.

“크윽! 이제는 어쩔 수가 없군. 슬슬 몸을 빼야겠어. 그놈의 내기 때문에 정말 뒤질 수는 없으니...”

그때 이의민은 온 산을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소리를 들었다.

“후장군!!”

당연히 장연을 잡으러 갔을 줄 알았던 여포가 이의민에게 똑바로 달려오고 있었다.

“젠장! 날 알아 본 건가? 응? 왜 이쪽으로....?”

그 모습에 흑산적들의 오해는 더 커졌다. 여포가 온 몸에 살기를 두른 채 크게 소리치며 이의민을 부른 것을 일종의 신호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겁먹지 마라! 우리가 저들보다 훨씬 많다! 너희들은 후장군을 후딱 처리하고, 얼른 눈앞의 적을 무찔러라!”

흑산적들 속에서 장연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장연은 현재 여포가 몰고 온 군사들이 1만이 채 안 되는 병력이라는 것을 파악했다.

여포 역시 자신들에게 달려드는 흑산적들을 베며 소리쳤다.

“저 후안무치한 배신자 놈의 목을 내게 가져와라! 아니다! 내가 직접 가겠다. 그 전에 거치적거리는 이 도적놈들부터 다 죽여 버려야겠군.”

여포가 성난 야수처럼 흑산적에게 달려들었다.

이의민을 포위한 흑산적의 수가 확 줄었다. 여포가 무서운 기세로 흑산적들을 뚫고 이의민 쪽으로 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여유가 생긴 이의민은 흑산적의 포위망에서 몸을 뺄 기회를 잡았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여포 쪽을 쳐다보며 한 마디를 내뱉었다.

“저 병신 새끼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만, 참으로 고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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