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무신이 삼국지를 다 때려부숨-27화 (27/175)

27. 흑산적 (1)

순간 우금을 알아보지 못한 이의민.

“너는 누구냐?”

“예?! 아.... 속하 우금입니다.”

“아! 그래. 우금! 알지. 알아. 그래. 내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게냐?”

“속하에게 여포보다 더 빨리 흑산적들에게 도달할 방법이 있습니다.”

우금의 말에 모두 눈을 크게 떴다. 산 위로는 온통 불바다라서 갈 수 있을 만한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반대편 길로 가자니, 거기까지 돌아가려면 너무 멀었다. 아무리 봐도 흑산적 산채에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았는데, 우금은 방법이 있다니 놀랄 수밖에 없다.

“뭣이? 그런 방법이 있단 말이냐? 그럼 어찌 해야 저 불을 빨리 끌 수 있겠느냐?”

이의민의 질문에 우금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산 위의 불길을 진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에도 모두 크게 놀랐다. 불을 끄지 않고 대체 어떻게 가겠다는 말인가?

“불을 진화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불길을 더 크게 키워야 합니다. 이쪽 길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번지게끔 말입니다.”

우금의 대답에 모두 말도 안 된다는 듯 소리쳤다.

“우금 장군! 그게 대체 무슨 소리요?”

“불을 최대한 빨리 꺼도 모자랄 판에 더 키우겠다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인가?”

포신은 자신의 수하인 우금이 이의민에게 괜한 소리를 했다는 생각에 민망한 표정으로 그를 말렸다.

“우금. 대체 주군께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겐가? 그만하게.”

하지만 우금은 아랑곳 않고 설명을 이었다.

“저들은 우리의 발을 묶기 위해 불을 질렀습니다. 그럼 우리도 똑같이 해주면 됩니다.”

“허나 우리들이 뒤늦게 불을 질러봤자 어차피 저들은 올라간 후일 텐데....?”

“그러니 저들이 했던 것처럼 그저 길목만 태워서는 아니 됩니다. 아주 산 전체를 다 태울 만큼 크게 불을 질러야 하지요. 아예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게끔 말입니다.”

“그렇군! 우리가 빨리 흑산적에게 도달하지 못하니, 여포 쪽도 똑같이 만들어주겠다는 것이로군.”

우금의 말에 포신은 무릎을 탁 쳤다. 처음에는 우금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나 했는데, 들어보니 그럴싸했다.

하지만 이의민은 살짝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금의 말대로라면 여포가 흑산적과 조우하는 시간을 늦출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이 흑산적과 먼저 만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게다가 만에 하나 혹시라도 여포가 미친 척하고 그냥 올라가버리면 허사였다. 다른 이라면 몰라도 여포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인간이다.

“허나 그 방법은 우리가 반드시 더 빨리 흑산적들과 마주칠 수 있는 방법이 아닐 터인데....?”

날카로운 이의민의 질문에도 우금은 당황하지 않았다. 우금의 설명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자! 우리가 불을 더 크게 키워 산 전체로 번졌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럼 저 꼭대기 쪽에 있는 장연은 어찌 하겠습니까?”

모두 눈을 크게 떴다. 우금이 불을 더 크게 지른다고 했을 때, 경쟁 상대인 여포만 생각했지, 거대한 불길 속에 갇힐 장연과 흑산적은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인 이상 본능적으로 물을 찾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산속에서 물이 어디 있는지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 흑산을 안방처럼 여기며 살아왔던 장연과 흑산적은 아주 잘 알 것입니다.”

우금은 설명을 하면서 자연스레 지도의 한 장소를 가리켰다. 거대한 폭포수가 흐르는 물길이 있었다.

이의민은 우금의 말을 알아듣고 설명을 덧붙였다.

“이 물길을 따라서 올라간다면 장연과 먼저 마주칠 수 있다는 것이로군.”

“그렇습니다. 후장군.”

“하지만 이 길은 물이 흐르는 길이지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니지 않나? 우리 군사들이 이 길을 따라 올라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거 같은데?”

지금까지 거침없이 대답을 했던 우금이 여기서는 잠깐 망설였다.

“저.... 그래서 말인데....”

답답한 건 질색인 이의민이 잠자코 기다릴 리 없다.

“뭐냐?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말 그냥 해 봐.”

“알겠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대군이 저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기는 힘듭니다. 허나 후장군을 포함하여 산길에 능숙한 이들을 소수로 뽑아서 올라간다면 능히 장연을 먼저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우금의 최종적인 설명에 이의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방법이라면 여포보다 먼저 장연을 만날 수 있으리라.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의민은 즉시 대부를 챙겼다.

“자! 그럼 군사들 중 산을 잘 타는 놈들을 뽑겠다.”

곽봉이 살짝 걱정스러운 듯 말렸다. 후장군과 우림중랑장에 올랐는데도 이상하게 계속 소수로서 다수를 상대해야 했다.

“의민이. 또 소수의 별동대로 가겠다는 건가? 흑산적의 숫자는 무려 6만이라고 하던데, 고작 삼천 명으로 가서 상대해야 하다니... 너무 위험하지 않겠나?”

“흐흐! 우리가 언제 그런 걸 따졌소? 서두릅시다. 여포 그놈보다는 무조건 더 빨라야 하오.”

“나, 나도 같이....?”

“바늘 가는 데 실 가는 법 아니겠소?”

곽봉은 갑자기 주저앉아 다리를 부여잡았다.

“아악! 사실 아까부터 다리가 자꾸 아파서....”

“얘들아! 여기 우림중랑장께서 발이 아프시댄다! 누가 좀 낫게 해드려라!”

하지만 그런 뻔히 보이는 꾀병에 넘어갈 이의민이 아니다.

“이런 썅! 간다! 가!”

결국 우금의 의견대로 이의민은 백여 명의 별동대를 꾸려서 물길을 따라 출발했다. 별동대에는 이의민과 곽봉, 서황, 우금이 포함되어 있다. 가히 토벌군 최고의 장수진이라 평가해도 될 정도다. 삼천여 명의 군사들 역시 그간 산을 가장 잘 탔던 군사들을 추리고 추린 정예들이다.

나머지 군사들과 포신, 왕광, 교모는 밑에서 불을 더 크게 지폈다. 몰이사냥의 시작이다.

**

흑산 전체를 주름잡고 있는 흑산적. 혹자는 흑산적의 숫자가 무려 100만에 달했다고 보는 이도 있었다. 물론 그건 너무 과장된 얘기다.

하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무려 6만이라는 숫자를 자랑하는 거대한 집단이 흑산적이었다. 그동안 병주에서도 황실에서도 흑산적을 토벌하기 위해 몇 번 토벌군을 보내봤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실패했다.

단순히 토벌에 실패한 게 아니라 흑산적에게 위협이 될 정도의 토벌조차 한번도 없을 정도다. 그랬던 흑산적을 가장 당황시킬 만한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었다.

흑산 전체로 거대한 불길이 번졌다. 이런 산불은 끄기가 힘들지 지르거나 더 크게 키우는 건 의외로 수월했다. 처음에는 산길 주변으로만 타들어가던 불길이 어느새 산 전체를 뒤덮었다.

당연히 흑산적 산채에서도 곧 화마에 대한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큰일입니다. 두목! 아니. 장군! 산 전체가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굳이 수하들이 보고하지 않아도 장연은 불길이 다가오는 걸 알 수 있었다. 매캐한 연기와 타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콜록! 콜록! 이런 미친놈들! 나 하나 잡겠다고 산 전체를 태워?!”

장연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멀리서부터 서서히 올라오는 불길을 쳐다봤다. 아직까지는 불길이 산채까지 닿지 않았지만, 이곳까지 번지는 건 금방이었다. 산불이란 놈은 원래 작은 불씨에서부터 시작해서 눈 깜빡 할 사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니까.

“젠장! 모두 산채를 버리고 떠날 준비를 하라!”

오랫동안 흑산적의 보금자리가 되었던 산채. 장연은 눈물을 머금고 산채를 버리기로 했다.

장연의 가슴이 아픈 건 단순히 이 산채에 많은 추억이 쌓여서만은 아니었다. 사실 흑산적들은 토벌군이 오는 것을 대비해서 산채에 갖가지 함정을 준비해뒀었다. 그런데 이대로 산채를 버린다면 애써 준비한 것들이 다 무용지물이 돼버린다는 뜻이다.

그래도 장연은 과감히 산채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것들이 아깝다고 이 자리에 계속 있다가 불에 타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빌어먹을 토벌군 놈들! 이 빚은 반드시 갚아줄 것이다.”

그래도 아쉽기는 하지만 당장 큰일이 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 장연이다. 산 전체가 불에 뒤덮인다고 해도 나머지 흑산적들과 함께 무사히 살아나갈 자신이 있었다. 평생 이 흑산에서 살아온 만큼 이 불길 속에서도 피해를 입지 않고 내려갈 수 있는 길을 다 알고 있다.

“멍청한 놈들! 이런다고 우리 흑산적이 곱게 타 죽어줄 줄 알았더냐?”

장연은 이 불을 일으킨 토벌군에 대해 비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불은 결코 사람이 쉽게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적들이 있는 곳에 불을 그냥 지르기만 한다고 적들이 알아서 다 죽어주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그렇다고 의도대로 적들이 불 속에서 죽어나가는지 확인하려야 확인을 해볼 수도 없다. 이런 화마 속에서 어떻게 산에 오를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이 불이 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흑산적을 태우려는 것이 아니었지만, 장연이 그런 자세한 내용까지 알 리가 없으니 이리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다.

“모두 당황할 거 없다. 우리는 폭포가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폭포에서 흘러내리는 물길을 따라 이동하면 우리는 불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무사히 내려갈 수 있을 거다. 그럼 저놈들은 이 불이 다 꺼질 때까지 밑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불을 서서히 진화하면서 올라오려고 하겠지. 우리는 그때 저놈들의 뒤를 치면 되는 거다.”

장연의 말에 그의 옆에 있던 흑산적들이 감탄 했다.

“역시 우리 두목...! 아니. 장 장군은 대단하십니다. 어찌 그런 계책을 생각해 내실 수 있습니까?”

“크흐흐! 하여간 멍청한 새끼들. 이 정도도 생각 못해서 그리 감탄을 하느냐? 하긴 나정도 되니까 이런 생각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겠지. 흐흐. 내가 산적만 아니었으면 한나라 최고 참모가 되었을 터인데... 에헴! 그러니 앞으로도 나를 잘 따르거라.”

장연은 자화자찬을 하며 흑산적들을 물길로 인도했다. 주변은 온통 불에 휩싸였지만 물길을 중심으로는 그 불길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물길을 그대로 따라간다면 적어도 타 죽을 위험은 없어보였다.

그래도 원래 사람이 다니지 않는 물길로 그 많은 흑산적들을 인도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확실히 그의 자화자찬대로 한나라 최고 참모급은 아닐지라도 이 많은 흑산적들을 통솔하는 능력 하나는 충분히 인정해줘야 할 만큼 대단했다.

그렇게 순조롭게 물길을 따라 내려가던 장연과 흑산적. 하지만 그들은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특히 선두로 가던 장연은 기겁을 하며 몸을 틀었다.

“자자! 모두들 천천히 나를 따라와.... 히이익!!”

갑자기 작은 손도끼 하나가 자신에게 날아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상방감 거목이나 정팔과는 다르게 그래도 장연은 도끼를 가까스로 피했다. 물론 뒤편의 흑산적 하나는 그 도끼를 그대로 맞고 끔살 당했지만 말이다.

장연은 놀라서 앞으로 쳐다봤다.

“대체 누가....?!”

“호오! 제법이구나.”

장연의 눈앞에 이의민이 여유롭게 웃으며 연어처럼 물길을 거슬러 올라오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