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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무신이 삼국지를 다 때려부숨-26화 (26/175)

26. 호적수 (3)

이의민과 여포는 주변 사람들의 황당한 반응은 전혀 아랑곳 않은 채 서로 만족한 웃음을 짓고 최종적인 합의를 봤다.

흑산적 토벌 내기의 주 내용은 따로 있었지만, 어째 분위기가 패배한 쪽이 승리한 쪽의 발을 핥고, 세 번 개짓는 소리를 내는 것이 주가 되는 것 같았다.

“자! 그럼 얘기는 끝난 거지? 쉬엄쉬엄 오라고. 어차피 승자는 나일 테니까! 크하하하!”

“크큭. 후장군. 혹시 그때 가서 말을 바꾸시면 아니 됩니다.”

둘 다 이 어처구니없는 내기에 진심인 듯 끝까지 입을 털고 있다. 그때 포신이 중요한 게 생각났다는 듯 소리쳤다.

“잠깐! 이 내기는 불공평하오! 주군! 내기를 얼른 물리셔야 합니다. 명백히 불공평한 내기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생각해보십시오. 저들은 이곳 태원군이 고향인 이들입니다. 그런 만큼 흑산의 지리도 훤히 알겠지요. 당연히 저들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것 아니겠습니까?”

“흐음! 그렇군.”

포신의 지적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의민은 잠시 고민하다가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먼저 장연의 목을 치면 이기는 것 아닌가?”

“그, 그렇습니다만 주군.... 우리 모두 흑산의 지리를 잘 모르는데 어찌 저들보다 먼저 칠 수 있겠습니까?”

“뭐 잘 하다보면 수가 생기겠지.”

이의민의 대책 없는 얘기에 모두가 벙 찐 표정이 됐다. 어떻게 잘 하면 되겠지 라니? 우주의 기운이 나서서 도와주기라도 한다는 것인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이의민을 바라보고 있던 여포가 갑자기 객잔을 나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옆에서 고순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여포를 말리고 있었다.

“여 장군. 대체 어쩌시려고 이러십니까?”

“에헴! 저 자의 말마따나 내기가 불공정해선 아니 되는 법이지. 저들이 지리를 잘 모르니 지도를 줘야 할 것 아니오.”

“아니?! 굳이 그럴 필요가....”

고순은 여포를 말리다가 결국 포기했는지 한숨을 쉬었다.

여포는 이의민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후장군. 받으십시오.”

“이게 뭔가?”

“흑산의 지도입니다.”

얼떨결에 여포가 내민 지도를 받은 이의민.

“자! 이제 불공정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하하!”

그렇게 굳이 지도를 건네주고 떠나는 여포였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의민에게 날을 세웠던 여포답지 않은 모습에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여포가 떠난 후 다시 객잔에 남아 술을 마시는 이의민 일행.

곽봉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이의민에게 물었다.

“아! 왜 손해 보는 내기를 하는 거냐? 만약 저놈이 이기면 장군직을 줘야하는데 우리가 이기면 고작 말 스무 마리라니.... 게다가 저 여포란 놈이 개짓는 소리를 들어서 뭐하게? 병주 자사의 아들이니, 병주를 달라거나 하는 좀 더 큰 걸 요구 했어야지.”

곽봉의 책망에 이의민이 별 생각 없이 대답을 하려 했다.

“흐음... 병주를 달라.... 좋은 생각이....”

그때 왕광이 먼저 끼어들었다.

“아닙니다. 곽 중랑장. 우리는 이번에 얻을 건 다 얻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얻을 걸 다 얻었다니? 저 놈은 병주 자사의 아들이니, 진짜 병주까지는 아니더라도 훨씬 더 갚진 것을 얻어낼 수 있었을 텐데....”

“후훗. 제가 저 여포란 자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습니다. 여포는 병주에선 나름 유명한 자입니다. 가진 무예가 워낙 뛰어나 정원이 양자로 삼았으나, 생각이 얕고 오만한 자이지요. 그래서 양부인 정원도 그에게 실권은 거의 주지 않았습니다. 여포보다 차라리 그 옆에 있던 자가 실권은 더 있을 겁니다.”

“흠흠. 왕 태수는 병주랑 가까운 하내에 있었으니 그를 잘 알 수도 있겠구려.”

“예. 맞습니다. 그자는 사실상 병주의 일개 촌부일 뿐이지요. 그러니 그에게 얻어낼 거라고 해봤자 별 거 없습니다. 그런데 그 자로부터 말 스무 마리를 얻어낸다고 하면 거의 최대로 얻는 것일 겁니다. 무엇보다 흑산의 지도를 얻어 낸 것은 차후 공과를 논하는 부분에서 큰 이득이 될 테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겁니다.”

왕광의 설명에 포신과 교모가 감탄했다.

“역시 주군께선 다 계획이 있으셨구나!”

이에 이의민은 평소답지 않게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애매하게 끄덕였다.

“크흐흠! 그, 그렇지. 아무렴 그렇고말고....”

“대단하십니다. 주군.”

“아닐세... 그냥 작은 재주일 뿐이지.”

이에 곽봉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의민을 쳐다봤다.

“아까 분명 내 생각이 좋은 생각이라고.... 읍읍!”

이의민은 급히 곽봉의 입을 틀어막고 화제를 돌렸다.

“커험! 이제 술도 많이 마셨겠다! 이제 슬슬 자러가야겠군. 형님! 왜 이리 취하셨소?! 그러게 적당히 좀 마시라니까!!”

“으으읍!!”

그렇게 곽봉의 입을 막고 진실을 감추는 이의민이다.

한편 여포는 객잔 문을 나서자마자 표정이 변했다. 아까부터 능글맞게 웃던 그의 얼굴에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진지함이 깃들어 있었다.

“장군. 왜 그러십니까? 어디 불편한 데라도....?”

여포는 자신을 살피던 고순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고 장군. 우리에게 시간이 없소. 바로 가서 흑산으로 출정준비를 하시오.”

“예? 갑자기 왜 그리 서두르십니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여유가 넘치셨지 않습니까?”

“지금 보니 후장군이 보통이 아니오. 세간에 떠돌던 소문이 헛소문이 아니었단 말이오. 크윽!”

여포는 말을 하다말고 자신의 팔뚝을 살짝 어루만졌다. 자세히 보니 인상도 살짝 찌푸리고 있는 것이 통증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고순은 놀라며 여포를 자세히 살펴봤다.

“장군. 설마 그 팔은....?!”

“맞소. 아까 그 놈이 던진 돌 때문에 이리된 것이오.”

고순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포의 대책 없는 무식함과는 별개로 그의 어마어마한 신력은 고순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 여포를 이리 만든 건 이의민이 처음이었다.

“확실히 후장군은 보통 인물이 아니군요. 헌데 그들에게 왜 지도까지 주셨습니까? 무시하고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지 않습니까?”

“훗! 놈은 내가 인정할 정도로 강자요. 그런 놈과의 진검승부인데 공정해야 하지 않겠소. 그런 강자가 내 신발을 핥는 다니.... 생각만 해도 흥분되지 않소?”

고순은 변태처럼 입맛을 다시는 여포를 보며 다시 한숨이 나왔다. 어떨 때는 굉장히 진중하고 사내다운 모습을 보여주지만, 지금처럼 너무 대책이 없어 보일 때가 많았다.

‘어쨌든 이번 흑산적 토벌은 반드시 여 장군이 먼저 성공시켜야 한다. 얼른 출병을 준비하자.’

고순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그 역시 여포가 장군직을 받는 걸 원하는 걸까? 아니면 이의민이 여포의 발을 핥고, 개 짖는 소리를 내는 걸 듣고 싶어서일까? 둘 다 아니다. 그는 자신의 주군인 정원이 지금보다 높은 자리에 가는 것을 보고 싶었다.

**

흑산에 엄청난 숫자의 군사들이 운집하고 있었다. 무려 3만이 넘는 병력이었다.

이의민이 이끌고 간 토벌군 선봉대 병력은 17,000 정도다. 그렇다면 지금 흑산에 모인 이 군사들은 이의민의 선봉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 군사들은 바로 병주 자사 정원의 군사들이었다. 정원은 영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봉선이는 대체 뭐하고 있느냐? 아직도 태원에서 술이나 퍼 마시고 있다더냐?”

사실 정원은 이의민의 선봉대가 오기 전에 진작 흑산적을 토벌하기 위해 군사들을 출병시켰다. 백파적과 흑산적을 토벌하겠다는 황명이 선포된 후, 토벌군이 백파적을 먼저 토벌할 때 정원도 움직였던 것이었다.

아무래도 정원 입장에서는 정치적인 입지 때문에 먼저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토벌군이 오기 전에 먼저 흑산적을 토벌하려던 정원의 계획은 차질이 생겼다.

3만의 병력만으로는 흑산적을 치는 것이 힘들었다. 흑산적은 그 두 배에 달하는 숫자기 때문이다. 아무리 흑산적이 산적에 불과하다고는 하지만 산 위에서 두 배나 달하는 그들과 싸우는 건 무리다.

하지만 여포가 있다면 가능했다. 정원의 양아들은 두 배에 달하는 병력 차이를 메우기에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그 여포가 정원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정원은 흑산적 토벌을 위해 여포를 불렀지만, 그때마다 여포는 술만 처먹으며 세월을 보냈다. 정원은 갖은 방법으로 설득을 해보려 했다. 아끼는 장수인 고순을 그 옆에 붙인 것도 어떻게든 설득시켜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여포는 요지부동으로 태원에서 매일 술만 마셨다. 싸우는 걸 좋아하는 여포였지만, 흑산적은 너무 시시해서 관심이 없단다. 그래서 정원은 흑산 초입에서 군사들만 대기시켜 놓은 채 발만 동동 굴렀다. 토벌의 핵심인 여포가 없으니 출병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정원이다.

“자사 어른! 드디어 여 장군에게 연통이 왔습니다. 즉시 합류한다고 합니다.”

“허어! 그리 찾을 때는 없더니 왜 이제야.... 그래. 마음을 바꾼 이유가 무어라고 하더냐?”

“예.... 그것이....”

정원은 자초지종을 듣고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후장군과의 내기 때문이라니. 거기다가 내기의 세부내용을 들으니 기절초풍할 지경이다.

“뭐?! 이런 미친! 후장군하고는 또 왜 시비가 붙은.... 아니지. 어쨌든 그렇게라도 합류를 해서 다행인가....”

정원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선봉대만이라지만 어쨌든 토벌군이 여기까지 왔다는 얘기니까. 정원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토벌군보다 먼저 흑산적을 토벌해야 했다.

“젠장! 그럼 후장군 쪽은 어찌하고 있느냐?”

“후장군은 반대쪽 길에서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설마 우리보다 먼저 흑산적 산채에 도착을 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 되겠다. 별동대를 꾸려라. 그리고 그 별동대로 하여금 토벌군 군사들이 올라가는 경로에 불을 지르라 하라.”

다급해진 정원이 내린 결정은 결국 토벌군을 방해하는 것이다.

**

여포가 준 지도를 길잡이삼아 흑산을 오르는 이의민의 토벌군 선봉대. 그들은 곧 행군을 멈춰야했다.

여포가 준 지도는 정확했다. 지도에 나와 있는 대로 정확히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선봉대가 더 나아가지 못한 이유는 길을 전부 막은 불길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가, 갑자기 이게 웬 불이란 말인가....?”

곽봉은 이 불을 여포가 낸 것인 줄 알고 성질을 냈다.

“하! 그 개놈의 자식. 이럴 줄 알았지. 아무리 내기에 미쳐도 그렇지! 멀쩡한 산을 다 태워먹어?”

“장군! 어찌 하오리까? 가는 길이 전부 불바다입니다.”

물론 진화를 하면서 전진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천천히 진화를 하면서 간다면 그만큼 흑산적 산채에 도달하는 시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여포와의 내기에서 질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기에 이의민은 진화를 명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어쩔 수 없지. 어서 불을 꺼라!”

그 때 누군가 이의민의 앞에 나와 부복했다. 포신의 수하 우금이었다.

“장군! 속하가 올릴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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