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무신이 삼국지를 다 때려부숨-22화 (22/175)

22. 서황의 선택 (1)

환하게 비치는 달빛에 서황도 사내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대는... 조조라는 사람이 맞소이까?”

서황을 찾아온 사내는 조조였다. 서황은 조조의 얼굴을 보자마자 단번에 정체를 알아봤다.

원래 조조라는 인물 자체가 유명하긴 유명했다. 오죽하면 조조가 이의민에게 처음 자신의 정체를 밝혔을 때 본인 스스로를 유명하다고 생각을 했을까.

그러니 백파적인 서황도 조조라는 이름 두 글자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조의 얼굴을 보는 건 이번 토벌이 처음이다.

“하하! 알아봐주니 고맙소. 공명.”

“허어! 내 자는 대체 어찌....? 하긴 동지 몇 명만 심문 해봐도 금방 알 수 있겠구려.”

조조는 마치 친우라도 되는 것처럼 서황이라는 이름 대신 자인 공명(公明)으로 그를 불렀다. 그 천연덕스러운 모습에 서황은 절로 경계심을 풀었다. 그와 동시에 스스로에게 소스라치게 놀라는 서황.

‘허! 무서운 자다. 사람을 이리 순식간에 방심하게 만드는군.’

사실 서황은 전투에서 처음 조조와 맞닥뜨렸을 때 그를 굉장히 경계했었다. 조조가 거짓퇴각을 알아차리고 매복을 조심하라고 할 때부터 서황은 그를 위험한 적이라고 인식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비록 적이었지만 내심 감탄했던 조인이라는 장수를 수하처럼 부리고 있었다. 물론 그건 조인이 조조의 종제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혈연이라도 원소와 원술 같은 관계가 더 많았다. 그만큼 조인 같은 자를 수하로 두는 건 혈연에 기댄다고 해도 아무나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어쨌든 서황이 봤을 때 적어도 이의민이 나타나기 전까지 토벌군 내에서 가장 위협적인 인물이 바로 조조였다. 그랬던 적인데 지금은 경계심이 풀어지는 걸 넘어서 순간적으로 친근감까지 드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잠시 마음을 다잡은 서황은 목소리를 날카롭게 가다듬고 조조에게 물었다.

“직접 목을 베려고 오셨소이까? 그럼 어서 베시오.”

서황의 날카로운 말에 조조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헛! 공명은 어찌 그런 무서운 말을 하는 것이오? 본인은 지금 그럴 권한도 없을뿐더러 그러고 싶지도 않소.”

“그럼 대체 이 도적에게는 무슨 볼일이 있다는 말이오?”

조조가 서황에게 생긴 볼일은 당연하게도 그를 자기사람으로 만들고 싶어서였다. 인재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한 조조가 서황 같은 인물을 그냥 넘길 리 없었다.

서황은 처음 등장하자마자 엄청난 무위를 선보이며 토벌군을 밀어냈다. 특히 조조가 자랑스러워하고 아끼는 종제 조인과의 맞대결에서도 단 한치의 밀림도 없는 대등한 싸움을 보여줬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탐이 났다. 하지만 토벌이 끝나고 백파적 포로 몇몇을 심문해본 이후에는 그 욕심이 더 커졌다.

조조는 포로 심문을 통해 두 번째 전투에 있었던 백파적 매복 전략이 누구의 머리에서 나왔는지 알게 됐다. 서황이 밀리는 척하면서 토벌군 본대를 유인한다는 이 전략은 다름 아닌 서황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걸 알게 된 순간부터 조조는 몸이 달아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조조가 원하던 인물이었다. 황군을 압도하던 무력에 어느 정도 계책도 생각해 낼 줄 아는 두뇌가 있다. 거기다 자신의 계책을 위해서는 거짓으로 지는 척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필요에 따라서 적절히 자존심을 감출 줄도 아는 자라는 뜻이다. 군을 이끄는 장수로서 부족한 점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반드시 이 자를 내 사람으로 만들고 말겠다! 물론 이의민이라면 더 바랄 것도 없지만...’

물론 현재 조조가 가장 얻고 싶어 하는 인물은 서황보다는 이의민이다. 이의민은 서황처럼 육각형으로 보이지는 않아도 한 가지 부분에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니까.

하지만 이의민을 알게 된 이후부터 쭉 그를 지켜본 조조는 그가 어떤 인물인지도 어느 정도 파악했다.

‘그는 절대로 남 밑에 있을 사람이 아니다.’

조조보다 훨씬 높은 후장군의 직위는 오히려 문제는 아니었다. 이의민이라는 사람 성향 자체가 그렇다는 것을 진작 파악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쉬운 서황에게 먼저 작업을 걸고 있는 조조였다.

“그대도 알겠지만 그대가 이대로 황궁으로 압송되어 간다면 아마 죽은 목숨일 것이오.”

“그건 당연한 거 아니오? 그걸 알려주려고 굳이 이리 보자고 한 것이오?”

“당연히 아니지. 허나 좌장군이 폐하께 적당히 얘기만 잘 해준다면 그대는 살 수도 있소. 아니. 단순히 살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관군에서 한 자리를 꿰찰 수도 있겠지. 그리 어렵지도 않소. 그대는 채주도 아니었으니... 그리고 난 그 좌장군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오.”

서황은 바로 조조의 말을 이해했다.

“그대가 날 살려주겠다는 말이오? 십상시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대가 굳이 왜 나 같은 도적을 살리기 위해 이런 수고를 하는 것이오?”

“공명은 스스로를 도적이라고 하지만 결코 도적으로 죽을 팔자가 아니오.”

“허! 이 사람을 그렇게 높게 평가해주다니... 고맙긴 한데....”

“어떻소? 같이 한번 일을 해보지 않겠소? 난 당신 같은 인재가 필요하오.”

이제 서황도 조조의 뜻을 분명히 알았다. 자신의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것이었다.

서황은 그런 조조에게 감격했다. 명성이 자자한 조조가 일개 도적이었던 자신을 이리 대우해주니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평소라면 감격해서 그에게 바로 무릎을 꿇었을 서황이었다. 하지만 말끝을 흐리는 것처럼 석연찮은 무언가가 있었다.

‘내가 왜 주저하고 있는 건가? 조조가 내민 손을 잡기만 하면 난 이제 더 이상 일개 도적이 아니라 떳떳한 관직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 터인데.... 대체 무엇이 걸려서...?’

서황도 스스로의 마음을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조조에게 답변을 하지 못했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셨소?”

“이런 제안을 해주신 것은 너무 고맙소. 사실 지금 당장이라도 그대의 손을 덥석 잡고 싶은 심정이오. 허나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그런지 아직 혼란스럽소.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시오.”

“알겠소. 내 진심을 전한 것 같소. 하루 정도 생각해보시오. 내일 적당한 시간에 다시 찾아오겠소.”

조조는 안심하고 서황에게서 물러섰다. 당장 답변을 줄 수 없다고는 했지만, 서황이 감격하던 표정을 똑똑히 확인했다.

‘이미 거의 다 넘어 왔다. 여기서 조바심에 서두르면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법이지. 적당히 하루 정도 생각할 시간을 주고 내일 말을 걸면 무조건 넘어올 것이다.’

조조가 떠나는 것을 본 서황은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조조라는 사람의 손을 과연 잡아야 할지, 대체 무엇이 자꾸 걸리는지.

원래 삼국지에서는 조조 밑에서 오자양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서황의 고민이 밤새도록 계속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막 동이 트는 새벽시간. 또 서황이 있는 감옥수레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군사들은 조조가 다녀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일제히 자리를 비켰다. 아니. 그때보다 조금 더 시끄러웠다. 조조 때보다 경비 군사들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군기가 바짝 든 것 같았다.

잠도 자지 않고 조조에 대한 생각에 빠진 서황. 다시 자신을 찾은 이가 조조인 줄 알고 쳐다봤다.

‘뭐야? 벌써 확인하러 온 것인가? 하루의 시간을 준다는 게 이거였나?’

그런데 조조가 아니었다.

“쯧쯧! 맞은 데는 좀 괜찮나?”

아직 동이 완전히 트지 않아 서황은 상대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목소리를 듣자마자 상대의 정체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비록 한 번뿐이었지만 어찌 그 목소리를 잊겠는가.

서황은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온 몸이 주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렸다.

“후, 후장군께서 소인에게 무슨 일로....?”

한번 제대로 처 맞아서 그런 걸까? 서황은 조조를 대할 때 보다 훨씬 더 공손한 태도로 이의민을 맞이했다.

“난 말을 질질 끄는 건 별로 안 좋아해서 말이야. 본론만 간단히 얘기하지. 너 내 밑으로 들어올 생각 없느냐?”

조조와 같은 뜻의 제안을 하는 이의민. 하지만 그 태도나 문장, 단어 선택은 천양지차였다. 조조는 말을 빙빙 돌리는 건 둘째 치고 각종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며 서황의 마음을 훔치려 했다. 반면 이의민은 노골적으로 자신이 할 말을 내뱉었다.

서황 입장에서는 당연히 조조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차이였다. 조조는 서황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거듭 얘기를 해주면서 영입하려 했으니 차후 그 대우를 예상할 수 있다.

반면 이의민은 그냥 자기 밑에 들어오라고 말한 것뿐이다. 그 밑에서 어떤 일을 맡게 되고 얼마의 대우를 받게 될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

서황은 이의민의 요청을 거절하려 했지만 순간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대신 이글거리는 이의민의 눈빛과 마주했다.

서황은 이의민의 눈빛을 보면서 그 진심을 엿볼 수 있었다. 이의민이 얼마나 자신을 원하는 것인지 말이다.

그리고 서황의 마음도 서서히 변했다. 조조의 백 마디 말보다 이의민의 눈빛 하나에 더 마음이 동했다. 스스로도 왜 이런 마음이 드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생각을 하다 보니 왜 아까 조조 제안이 걸렸는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이 남자 때문이었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왜 미천한 저에게 이렇게까지 하시는 것입니까?”

“도끼를 쓰는 사람들 중에 나쁜 놈은 없다. 그리고 앞으로 자신을 미천하다 낮추지 말라. 내 사람 중에 미천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헛!”

이의민의 대답을 듣자마자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도끼를 쓰는 자들 중 나쁜 놈은 없다니. 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답변인가. 그리고 답변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자신의 사람으로 단정하는 저 자신감은 뭐란 말인가. 하지만 서황은 그 답변이 지금까지 들은 어떤 말보다 기분이 좋았다.

이제 더 이상 답변을 들을 필요도,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서황은 온몸이 묶여서 움직이기 힘든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몸을 숙였다.

“장군을 따르겠습니다.”

**

어느덧 해가 완전히 뜬 아침이 왔다. 조조는 상쾌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절로 콧노래까지 나왔다. 서황이라는 보물이 자기 손에 들어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후훗! 비록 최고 공신자리는 후장군에게 내줘야하겠지만, 눈앞의 이득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결국 남는 것은 사람일 테니....’

게다가 아직 흑산적이 남아있었다. 비록 최고공신은 이미 이의민으로 기정사실화 되었지만 한치 앞도 모르는 것이 사람일이다.

조조는 당장 서황이 있는 곳으로 갔다. 어제 했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지금 바로 들으려는 건 아니다. 어쨌건 하루의 시간을 줬으니까. 그냥 서황의 얼굴이나 한번 더 보고 싶었다.

그렇게 서황이 갇혀 있던 감옥수레로 가는 조조. 날아갈 것 같던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얼마 전까지 자네랑 같이 있던 놈들이니, 쟤네들의 관리는 자네가 맡게.”

“알겠습니다. 곽 중랑장님. 더 지시할 일은 없습니까?”

“크하하! 곽 중랑장은 무슨... 그냥 형님이라 부르게. 이런 아우가 또 하나 생긴다니 내가 기분이 좋구먼. 곤란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이 형님한테 이야기하라고! 우림중랑장인 내가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을 테니 말일세. 크하하핫!”

서황은 구속이 풀린 상태로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리고 이의민의 심복인 곽봉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