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세 얼간이 (3)
이의민 덕분에 결국 세 얼간이들은 무사히 황군과 합류할 수 있었다. 황군에서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이의민을 남겨뒀던 곽봉은 너무 걱정된 나머지 다시 돌아왔다. 이의민이 이미 세 얼간이들을 구출한 후지만 말이다.
“아우! 아우! 대체 어찌 된 일이야? 왜 이리 늦었어?”
“곽봉 형. 걱정도 참. 내 무사할 거라고 했잖소.”
“다행이다. 그런데 이 세 놈.... 아니. 세 분들은 참 잘도 살아남으셨네. 바퀴벌레 마냥... 차암 다행입니다.”
대놓고 곽봉이 비아냥거리는데도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하는 포신과 왕광, 교모. 이들이 원소와 같은 거물은 아니라지만 곽봉에게는 어려운 상대였다.
이의민과 마찬가지로 곽봉 역시 그 위치에 걸맞지 않게 아무런 세력이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곽봉이 대놓고 혀를 차는 건 하도 기가 차서였다.
세 얼간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의민에게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했다. 물론 그 셋의 수하들 중 우금과 같이 도움이 된 이들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작 제후인 셋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런 세 얼간이들의 행태에 곽봉은 참지 못하고 빈정거릴 수밖에 없었다. 막상 비아냥댄 후 살짝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젠장! 하도 열 받아서 한 마디 하기는 했는데... 아직 꿍꿍이가 있을 지도 모르는 놈들인데, 괜히 자극했나?’
하지만 이후 곽봉은 세 얼간이들이 보인 태도에 놀랐다. 분명 곽봉의 말에 화를 낼 법도 한데, 단 한명도 화를 내는 기색조차 없다. 모두 정말 부끄럽다는 듯 이의민과 곽봉 쪽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다. 심지어 포신은 직접 사과까지 해왔다.
“제후로서 이런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소. 미안하오.”
“아.... 예....”
‘뭐야? 이놈들... 아무래도 꿍꿍이가 있는 건가?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아니면 정말 스스로 뉘우치는 거야? 말도 아니 되는.....’
곽봉은 그럴 리 없다며 고개를 세차게 젓고 이의민에게 물었다.
“저놈들 대체 왜 저러는 거지? 저럴 인간들이 아니잖아?”
“저럴 수 왜 없소? 사람이 죽을 고비를 넘기면 성품이 바뀔 수도 있는 것이지. 아무튼 이대로 계속 행군을 할 수는 없으니 일단 진을 치고 군사들을 쉬게 해야겠소.”
“알았어. 내게 맡겨라.”
이의민은 곽봉의 말을 일축하며 군사들의 휴식을 결정했다.
그리하여 자리를 잡고 막사를 세우는 별동대. 역시 막사 세우는 일은 곽봉이 전문이다.
“거기! 임마! 막대를 그리 박으면 막사가 잘도 버티겠다.”
그렇게 막사를 세우고 있는 곽봉의 뒤에서 의외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림중랑장. 우리가 도울 일은 없겠소?”
세 얼간이 들이다. 이번에도 곽봉은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다.
“갑자기 왜.... 아니오. 아니 도와주셔도 됩니다.”
뭔가 찜찜한 곽봉은 그들이 내미는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고 돌아섰다. 그쯤 되면 그들이 호의를 무시당했다며 화를 내던가 아니면 자신들도 무시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도 세 얼간이들은 곽봉의 주변에 머물며 도울만한 것을 스스로 찾고 있었다.
“우림중랑장. 이 천들을 이쪽으로 옮기면 되오?”
“우림중랑장. 땅을 이리 다져 놓았소. 이쪽에다가 세우면 더 좋을 것이오.”
그 모습에 곽봉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것들이 진짜 단체로 개과천선이라도 했다는 거야?’
곽봉의 생각대로 이들은 개과천선을 한 것이 맞았다.
세 얼간이들은 막사 건설을 도운 후 다시 모여 작당을, 아니. 지난날에 대한 반성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마음을 굳힌 포신이 얘기를 꺼냈다.
“그래. 이제 두 분은 어쩌실 거요? 나는 이미 마음을 정했소.”
“마음을 정했다 하심은...?”
“설마 아직도 원소, 그놈을 따를 생각이시오? 그 개자식이 우리에게 한 짓은 그대들도 잘 알 것 아니오? 그에 반해 후장군은 적이라고 할 수 있는 나와 그대들의 목숨을 구해주셨소. 아무런 요구도 없이 말이오. 난 그에게서 대인의 풍모를 느꼈소. 이 사람은 오늘부로 후장군을 따를 것이오.”
포신의 선언에 나머지 두 사람은 놀라는 기색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왕광과 교모 역시 포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했다.
포신에 이어 교모 역시 속마음을 꺼냈다.
“나는 일전에 낙양의 황궁을 보며 남몰래 야망을 품었소. 하지만 오늘 후장군을 보니 그게 얼마나 허황된 꿈인지 깨달았소. 내 분수를 깨달았단 말이오. 나 역시 포신형과 같이 후장군과 함께 할 것이오.”
이어 왕광도 지체하지 않고 이의민을 따르겠다는 선언을 했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원소를 버리고 이의민을 따른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현실적으로 이의민은 아직도 아무 세력이 없는, 직위만 높은 후장군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강대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원가와 척을 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세 사람은 원소를 버리고 이의민을 따를 결심을 내렸다. 그만큼 세 얼간이들은 원소에게서 받은 상처와 이의민에게서 받은 감격이 컸다.
결론을 내린 그들. 세 사람이 모두 한마음 한뜻이라는 것을 확인했으니 더 이상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이의민이 있는 막사로 향했다.
“후장군!”
“후장군!”
“무슨 일이오?”
세 사람은 이의민 앞에서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요?”
“후장군. 부디 저희를 받아 주십시오.”
“받아 달라....? 원소처럼 연합을 만들어달라는 거요?”
이의민의 질문에 세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저희가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이익을 계산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로지 후장군의 성품과 신력에 반했기 때문입니다. 저희 세 사람은 후장군을 섬기기로 이미 마음을 먹었습니다.”
연합 따위가 아니라, 아예 수하로 들어가겠단 말이다.
이의민은 계속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그들을 구해준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바로 수하로 들어오겠다고 할 줄은 몰랐다.
아무튼 이의민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수하가 생겼다. 분명 나쁘지 않은 일이다.
물론 이들이 다른 마음을 품고 연기를 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세 얼간이들이 그 정도로 철두철미한 인간이었다면, 처음 출발할 때부터 이런 태도를 보였을 테니.
“알겠소. 아니. 이제 내 수하라고 생각하고 말을 까겠다.”
“주군!”
“주군!!”
“그래. 너희가 날 배신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 너희들을 나와 한 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의민이 받아들이자 모두 감격하는 세 얼간이들.
이의민은 이들이 모인 김에 곽봉까지 불러 군사회의를 열었다. 매복에 당했지만 언제까지 여기서 죽치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단은 좌장군이 내린 명을 완수해야 한다. 자자! 시간이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가장 먼저 포신이 나서서 의견을 표명했다.
“원소 그놈이 거짓을 말했습니다. 일단 본대로 돌아가서 그놈의 만행을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놈이 순순히 인정을 할 것 같나? 자기도 몰랐다고 발뺌을 해버리면 그만이야.”
“하지만 제가 원소 그놈과 했던 밀담을 공개하면 빠져나가기 힘들 것입니다.”
“그럼 너희들도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나는 어렵게 얻은 내 수하를 이리 허무하게 잃기는 싫다.”
이의민의 말에 다시 한번 감동을 받는 세 얼간이들.
“그리고 기왕 낙석에 걸리고 당할 거 다 당했는데, 이대로 돌아가기는 너무 아깝지 않느냐? 우리가 작전대로 놈들의 뒤를 친다면, 이것은 백파적뿐 아니라 원소 놈의 뒤통수도 제대로 치는 결과로 돌아올 것이다.”
우선적인 목표를 잡은 후 다시 이어지는 군사회의. 처음에는 비협조적인 이들은 이제 그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이번에는 교모가 의견을 냈다.
“적의 매복이 이렇게 협곡 양 옆으로 있었으니 주군과 우림중랑장께서 각각 한쪽을 맡아 공략하는 것이 어떨까요? 저희들도 남은 군사를 가지고 두 분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왕광이 교모의 의견에 고개를 저었다.
“교모형. 그 놈들이 아무리 병법에 어두운 도적들이라고하나, 우리가 매복지로 갈 거라는 생각은 그놈들도 할 거요. 함정을 파놓았으면 어쩝니까?”
“흠. 그렇다고 매복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정면 돌파를 할 수도 없지 않소?”
갑론을박이 이어지자 이의민이 정리를 했다.
“자네들은 곽봉형과 함께 정면을 돌파하게.”
“예? 그럼 혹시 매복이 있다면....?”
“내가 100기 정도를 거느리고 매복지로 가겠다.”
즉, 정면 돌파는 하되, 이의민이 소수 군사로 매복위험을 없애겠다는 말이다. 고작 100기로 적 매복을 친다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아무런 의심 없이 이의민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이제 그들은 이의민이 어떤 인물인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주군만 믿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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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백파적 특공임무를 맡은 10채주와 11채주는 긴장된 표정으로 협곡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분명 토벌군 별동대를 섬멸했다고 생각했다. 그 많은 바윗덩이들을 좁은 협곡에 떨어뜨렸으니 당연히 전멸을 하거나 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막상 그들이 일부 군사들만 피해를 입고 나머지가 고스란히 퇴각하는 것을 보며 충격에 빠졌다.
물론 그들도 매복 낙석 작전이 반드시 통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들이 아예 이곳을 거치지 않는다던지, 미리 매복이 들켜서 작전이 실패할 거라 예상했지, 이런 식으로 낙석이 실패로 돌아갈 줄은 몰랐다.
11채주 예통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10채주 남두에게 말했다.
“이제 어쩐단 말인가? 적들은 아직 많은 병력을 가지고 있는데?”
살짝 두려워하는 예통과는 달리 남두는 애써 큰소리를 쳤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물러설 필요는 없잖아? 우리 식구들이 조금이라도 피해를 본 것도 아니고.... 게다가 적들은 우리 매복을 벌써 파훼했다고 생각해서 아무 대비를 하지 않고 그냥 정면 돌파를 시도할 수도 있네. 일단 우리 10채가 협곡 중앙에 자리를 잡겠네. 그럼 적들은 매복이 파훼됐으니 그냥 협곡을 막고 있을 거라고 착각할 수도 있어. 그럼 너희 11채가 매복하고 있다가 적들을 치는 거야.”
“하지만 적들이 바로 매복지로 올 수도 있잖은가?”
“적들이 협곡 쪽으로 대충 진격하는 걸 보고 판단하면 되잖아. 적들은 대충 7천정도 살았으니 그 수가 전부 협곡으로 진입하면 계획대로 매복 공격을 하고 아니라면 튀는 거지. 크흐흐! 이거 내가 말한 거지만 정말 좋은 계책인 걸?”
남두는 예통과 말을 나누고 보니 제법 좋은 전략이라고 느껴졌다. 이제 5채주 정팔도 죽었으니 자신이 백파적 최고 두뇌라고 자화자찬하는 남두다.
백파적들은 다시 협곡에 숨어서 토벌대 별동대가 오기를 기다렸다. 역시 남두의 예상대로 살아남은 거의 대부분의 군사인 7천기가 협곡에 들어가고 있었다.
“크하하! 멍청한 놈들. 내 심리전에 당했구나. 뭣들 하는가! 모두 공격하라! 매복지에서 우리 형제들이 도울 것이다.”
남두의 10채 5천 백파적들과 7천 토벌군의 전투가 시작됐다. 당연히 초반은 병력이 더 적고 정규군에 비해 무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10채 백파적의 열세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남두는 곧 이 전투 양상이 완전히 뒤바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협곡 위에 숨어있는 11채 예통이 도울 테니 말이다.
곧 11채 백파적들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던 남두의 표정이 점점 굳었다.
“이 멍청한 새끼들! 뭐하는 거야?”
남두가 믿었던 11채 백파적의 매복 공격이 시간이 지나도 시작되지 않았다. 매복지에서 돌덩이는커녕 화살 하나 날아오고 있지 않다.
“채주! 밀립니다! 어찌 해야 합니까?”
“이, 이런 씨발!”
당황한 남두. 총채주가 있는 본진으로 퇴각하는 것도 무리였다. 그럴 여유가 없다.
마침내 화살 하나가 남두의 가슴에 박힌다. 불행하게도 즉사는 아니었다. 곧이어 창 하나가 남두의 목을 꿰뚫는다.
남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매복지에 있는 예통과 11채를 욕을 하면서 죽었다. 곽봉은 남두의 목에 있는 창을 빼며 거들먹거렸다.
“봤소? 포신형, 교모형, 왕광형?”
“아... 예.”
“이제 의민이, 아니. 후장군 밑에서 같이 일을 하려면 날 많이 보고 배워야 할 거요. 잘 보시오. 딱 500명, 아니. 산채가 2개지? 딱 천명만 살려준다! 참고로 도망은 못가. 딱 천명만 살고 나머지는 다 뒤진단 말이지.”
곽봉의 말에 눈치를 보던 백파적들이 어떻게든 천명 안에 들기 위해 무기를 버리고 투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