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왕 마검의 주인-303화 (303/307)

# 303

& 후일담 (3)

팔이 없는 맥그리거의 가게는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언제나 초심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맥그리거의 자세 때문이었다.

항상 청결에 힘쓰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맛을 찾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는 맥그리거는 요리인들의 모범이 되었다.

오늘도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빵을 굽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갓 구워진 빵은 고아들에게 갈 것이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의 등 뒤로, 아들과 손님이 나누는 말이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저희도 바빠서요.”

“그런가? 난 일찍 찾아오면 음식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닌가 보군.”

“죄송해요.”

“할 수 없지.”

맥그리거는 허리에 두르고 있는 앞치마에 손을 닦고 주방 밖으로 나왔다.

“무엇을 원하시죠?”

“여기 것이라면 다 좋아. 먼 길을 떠나는데, 도중에 여기 음식을 음미하고 싶어서.”

검은 망토를 두르고 있는 세인의 말에 맥그리거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 도중에 먹는 음식은 아주 각별하죠. 잠깐만 기다리세요. 보관이 용이한 걸로 만들어 드리죠.”

맥그리거가 주방 안으로 다시 들어가자, 그의 뒤를 따라온 아들이 따져 물었다.

“아버지. 빵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이제 네가 혼자 해도 되잖아. 그동안 가게를 물려받는다고 일을 배웠는데, 지금 이런 때 그런 실력을 쓰지 않으면 언제 쓰냐?”

“….”

맥그리거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아들을 뒤로하고 열심히 음식을 만들었다.

요리가 끝난 후에는 직접 하나하나 꼼꼼히 포장지에 쌌다.

포장된 음식과 함께 주방 밖으로 나오자.

등을 돌린 세인이 보였다.

세인은 뒷짐을 지고 벽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런 세인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세인이 입을 열었다.

“이 그림은 언제 봐도 좋군.”

“….”

“이 근처에 아스칼리온의 동상을 세울 거야. 아스칼리온은 이 근방에서 유명하지? 그렇게 좋은 사람은 많은 사람이 기리는 게 맞겠지. 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세우는 게 좋겠어.”

‘아.’

맥그리거는 그제야 의문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세인을 보자마자 가슴 언저리가 욱신거렸었는데, 아스칼리온과 아는 사람이었던가 보다.

아스칼리온이라면 맥그리거도 은혜를 입은 바가 있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을 언젠가 먼 발치에서 스치듯이 본 적이 있었을까?

“이 정도까지 열심히 만들어줄지는 몰랐어. 잘 먹도록 할게.”

맥그리거는 세인이 던져준 금화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세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이른 아침에 불쑥 찾아와서 실례했어. 맥그리거. 앞으로도 행복하게 잘 살아.”

그리고 세인이 떠나갔다.

맥그리거는 문 앞까지 나와 점점 작아지는 세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세인의 뒷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그것을 털어내듯 고개를 흔든 맥그리거는 주방으로 되돌아갔다.

그런 그의 얼굴 옆으로 바다가 그려진 그림이 스쳐 지나갔다.

*  *  *

하얀 설원을 품고 있는 하늘에서 진눈깨비가 내렸다.

한 마리 말에 짐을 잔뜩 실은 세인은 눈밭 위를 천천히 걸어갔다.

새하얀 눈 바탕 위에 그의 발자국이 점점 깊게 찍혔다.

시간이 흐를수록 눈발이 거세지고 있었지만, 세인의 표정은 담담했다.

한참을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찍힌 발자국이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다.

족적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까지 구경할 만큼 그는 여유가 있었다.

세리스가 선물해준 머플러로 코 밑을 가리고 있는 세인은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았다.

눈이 쏟아지든, 태양 빛이 쨍쨍 내리쬐든 일정한 보폭을 유지하며 말과 함께 걸었다.

그러다가 경치 좋은 곳이 나타나면 바닥에 모포를 깔고 쉬었다.

“네가 고생이 많구나.”

말의 갈기를 쓸어 눈을 털어준 세인은 가방에서 술병을 꺼냈다.

이로 코르크 마개를 딴 그가 술을 입에 가져갔다.

그러자 곧 입안이 알코올 특유의 맛과 포도 향으로 가득 찼다.

몇 모금 목구멍으로 넘기자 속이 뜨거워지며 눈가가 훈훈해졌다.

입가를 소매로 쓱 하고 닦은 그는 술병을 든 채로 계속 걸었다.

시간이 지나 빈 병이 땅바닥 위를 뒹굴었고, 대신 다른 술병이 세인의 손을 차지했다.

“마음껏 술 마시니까 참 좋다. 너도 그렇지?”

말은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싱싱한 채소를 씹고 있었지만, 어쨌든 동의한다는 듯이 두 눈을 깜박여 보였다.

그런 말의 눈망울을 보면서 세인은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이 녀석은 내가 말을 거는 것을 귀찮아할까? 아니면 반가워할까?’

시간이 지나 둘은 얼어붙은 호수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그들의 머리 위로 부는 바람이 작게 노래를 부르는 듯했다.

비록 추위에 귀가 얼어붙은 동물과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그 노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왕을 찬양하는 정령들의 노래를 뒤로하고, 호수를 가로지르던 세인은 갑자기 멈춰 섰다.

그 후에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얼음을 깼다.

그다음에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는데, 그건 아주 긴 낚싯대였다.

세인은 거기에서 물고기 대신 가재를 낚아 올렸다.

호수를 떠난 그는 자정에 불을 피웠다.

불길 위에서 가재는 빨갛게 변하다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졌다.

파삭.

가재의 다리를 떼어내고 반으로 나누자, 껍질이 깨지며 익은 속살이 드러났다.

세인은 거기에다가 매콤한 소스를 뿌려 먹었다.

한밤중의 공기 속에서 한 움큼 가재 살을 베어 문 입 밖으로, 뜨거운 김이 홍수처럼 새어 나왔다.

말에게도 가재를 권해 봤는데 녀석은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세인의 발치에 쌓이는 가재 껍질이 점점 늘어났다.

손가락까지 쪽쪽 빨은 다음에 하늘을 보니, 별의 바다였다.

오늘 밤 그는 그것을 감상하여 눈을 붙일 것이다.

별들을 바라보는 세인이 혼잣말했다.

“저 별 어딘가에 보라색 바다도 있겠지.”

*  *  *

다음 날.

세인은 하얀 나무들이 서 있는 지역에 도착했다.

전과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추억의 장소였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침엽수 특유의 날카로운 잎을 가진 나무들이 그를 둘러쌌다.

그리고 세인을 지켜보았다.

깊숙이 들어간 세인은 가방에서 바이올린을 꺼냈다.

선을 조율해보던 그는 턱에 바이올린을 받치고 활을 들었다.

세인이 눈을 감고 연주하는 곡은 아주 오래전에 누군가와 교감을 나누었던 곡이었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선율 속에서 부질없는 희망을 품어 보기도 했다.

그리고 있을 리 없는 화답을 기대해본 것이다.

그가 그렇게 연주를 끝마치고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에는 유미리 대신 바이올린의 끝에 앉아 있는 파란 나비가 보였다.

“안녕. 파웰.”

세인의 인사에 나비는 수줍은 듯 날개를 팔랑거리며 날아가 버렸다.

바이올린을 내리는 세인은 하늘 속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나비를 구경했다.

그때 그의 등 뒤에서 눈이 밟히는 소리가 났다.

세인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 맥이 서 있었다.

“저는 글리터의 기사인 맥이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연주였습니다.”

맥이 손을 내밀었지만, 세인은 맥의 얼굴만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자 맥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갑자기 찾아와서 놀랐겠지만, 너무 경계하실 것 없습니다. 제가 이러는 이유는 결국 왕비님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성내에 묘한 소문이 떠돌고 있는데 그건….”

그러니까, 맥의 요지는… 세인이 굳이 내성 뒤쪽에 자리를 잡아야만 하겠냐는 것이었다.

왕실에서 입방아를 찧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세인이 아예 성 밖에서 지내는 게 더 좋지 않겠냐는 의견이다.

맥의 입장에서는 세인이 혹시라도 헛된 권력을 꿈꾸는 일이 없도록 못 박아두고 싶었다.

귀를 기울이고 있던 세인은 갑자기 맥의 이름을 불렀다.

“이봐, 맥.”

세인의 음성을 들은 맥의 몸이 움찔거렸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본능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그리고 세인이 뜬금없는 질문을 던져 왔을 때에도, 그의 어투나 내용에 대해 분노하는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맥에게는 그게 참 신기한 일이었다.

“이제 은퇴해야 하지 않겠어?”

“….”

“그동안 글리터를 위해 충분히 노력해왔잖아. 행크도 그렇고 더이스도 그래. 이제 다들 뒤로 물러나 쉬어야지. 언제까지 봉사할 생각인가?”

그런 말을 던진 세인은 차분한 눈빛으로 맥의 안색을 살폈다.

맥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진다기 보다는 하얗게 탈색되었다.

맥은 지금 세인의 말과 얼굴 앞에서 갑자기 무릎을 꿇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 자체로도 당황스럽지만, 더욱 황당한 것은 그런 자신이 낯설지 않다는 것이었다.

입을 열었다가 닫기를 반복하는 맥을 유심히 살펴본 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은 아닌가 보군. 그래도 쉬는 게 좋을 텐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인은 바이올린을 집어 던졌다.

맥은 엉겁결에 그걸 받아 들었고, 말이다.

“선물이야. 이제 내겐 필요 없는 물건이거든.”

그리고 세인은 석고상처럼 굳어 있는 맥을 지나쳤다.

그 뒤를 따라가는 말의 꼬리가 옆구리를 스쳤을 때에도, 맥은 꼼짝할 수가 없었다.

가슴이 울렁거려서 주체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맥을 지나쳐간 세인은 그렇지 않아도 어제 낚시를 하면서 맥을 떠올렸었다.

과거 맥은, 노후에 낚시하면서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물론 같이 낚시를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것도 나쁜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모두가 살아남았으니.

각자의 길 위에서 행복을 누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맥이나 행크, 그리고 더이스는 아직 쉬고 싶은 마음이 없나 보다.

*  *  *

세계수는 사라졌지만 번우드의 녹음은 여전했다.

여러 종족의 사랑을 받는 그곳은 이제 지상의 낙원과 마찬가지였다.

문명의 수준도 상당히 높았다.

여러 그루의 거인목 밑에 세워진 도시, 호수 위에 그림처럼 서 있는 도시.

매일 상인 수만 명이 모이는 시장.

열두 개의 웅장한 폭포로 이루어진 지역 등등.

손꼽히는 번화가도 즐비했다.

그런데 번우드의 여왕인 비비안은 의외로 작은 호수 위에 서 있는 백색 성을 가장 아꼈다.

성의 하얀 유리에 붙어 있는 새는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었다.

새의 그 모습은 과거, 디펜더스에서 출병식을 할 때 쓰는 문장이었다.

디펜더스에 대한 추억 때문일까?

비비안은 이곳에서 결혼식 하는 것을 원했다.

물론 코다로는 결사반대였다.

“제정신입니까? 하객들이 엄청나게 몰려들 텐데 그 좁은 곳에서 전시회를 하자고요?”

코다로의 말을 들은 비비안이 조용히 팔짱을 꼈다.

그리고 인상을 쓰며 말했다.

“전시회라고요?”

“아?”

코다로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을 때 비비안의 추궁이 이어졌다.

“방금 전시회라고 하셨나요?”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결혼식이라고요. 전시회는 그냥 겸사겸사하는 건데, 내가 왜 전시회라고 말했겠어요. 내 말은! 그러니까, 그렇게 좁은 곳에서 결혼식을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객들 입장도 생각해야죠!”

“분명 전시회라고 말하는 것을 똑똑히 들었어요.”

“결혼식이라고 말했다니까요!”

코다로가 이기적인 여자라고 욕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둘의 결혼식은 백색 성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결혼식 한 달 전부터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번우드에 몰렸다.

그들을 맞이하는 번우드는 계속 축제를 열었다.

결혼식 일주일 전부터는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백색 성 근처가 몸살을 앓았다.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서 발 디딜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 봐 내가 뭐라고 했어. 전시 물품을 세워둘 곳도 모자라잖아.”

코다로는 자주 혼자서 그렇게 투덜거렸다.

그러면 어디에선가 비비안이 나타나 따져 물었다.

“지금 전시 물품이라고 했어요? 우리 결혼식보다 그따위 거지같은 전시 물품이 중요해요?”

코다로는 시뻘게진 얼굴로 항의를 했다.

“결혼식용 조각상을 말한 겁니다. 그리고 남의 작품에게 그따위라뇨?”

“제가 분명 지금 들었어요. 전시용 물품이라고.”

“….”

번우드에 도착한 세인은 옷가게에 들러 옷부터 사 입었다.

비비안과 코다로의 결혼식에 참가하는데 검은 옷을 입은 상태로 참석하긴 싫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는 검은색만 고집하지 말아야겠어.”

그렇게 중얼거린 그는 파란색 바탕에 하얀 깃이 있는 옷을 입었다.

그 상태로 전신 거울 앞에서 한 바퀴 돌아보았다.

옆에 있는 점원은 잘 어울린다며 손뼉을 쳐댔다.

그 개호들갑에 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옷으로 하지.”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중립과 심판을 뜻하는 검은색 옷은 쓰레기통에 버려지게 되었다.

전보다 한결 산뜻해진 세인은 고급스러운 장신구도 사서 옷에 매달았다.

그러니 잘생기고 말쑥한 신사처럼 보였다.

그 후에 대로를 걷는데 사방에 구경할 게 너무 많았다.

이색적으로 생긴 코끼리와 12층짜리 새장.

분수대에 똬리를 틀고 있는 뱀 등등 눈길을 끄는 것들이 속속들이 등장했다.

사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사람 구경이었다.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물건을 사고팔며 시끄럽게 흥정하는 통에, 주변에 활기가 넘쳐흘렀다.

물론 엘프들도 빼놓으면 곤란했다.

다크 엘프들은 발에 챌 정도로 많았고, 꼬마 엘프들은 바다처럼 많았다.

노래를 부르며 장난을 치는 꼬마 엘프들은 번우드의 무법자들이었다.

하긴 이 녀석들은 글리터에서도 악명이 자자한 놈들이다.

까르르 웃으며 돌아다니는 녀석들이 사방에서 날뛰니 심란한 분위기가 극에 다다랐다.

혹시 여기에 소매치기가 존재한다면 번우드를 쉽게 떠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한참을 걷고 나서야 세인은 마차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혼식이 치러지는 작은 성까지는 꽤 멀었으니 말이다.

“일찍 가봐야 좋을 것도 없겠지. 일단 목이나 축이자. 너도 좋지?”

말에게 물어보니 말이 귀찮다는 듯이 푸르릉거렸다.

말도 이제 한계인 듯싶다.

옆에서 하도 말을 걸어대니 짜증이 나는 것이다.

세인은 야외 노점에 가서 테이블을 하나 골라 앉았다.

노점에서는 음식이나 따뜻한 차 외에 차가운 술도 팔고 있었다.

“노천 벌꿀 주를 드셔 보세요. 끝내줍니다.”

“지금은 대낮인데?”

“도수가 그리 높지 않아서 문제가 되지 않아요. 미주가들도 없어서 못 마시는 술입니다. 원래는 파는 개수에도 제한이 있는 건데, 경사스러운 날이라 제한이 풀렸거든요. 오늘을 놓치면 단언하건대! 평생! 후회하시게 될 겁니다!”

호언장담하는 점원 앞에서 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그렇지만, 그는 점원들 앞에서 약하디약한 존재일 뿐이었다.

“한 병 주문하지.”

“아주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노점은 주변에 늘어선 나무 그늘에 뒤덮여 있었다.

작은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촉촉하게 귀를 적셔왔다.

손님들은 행인들을 감상하며 수다를 떨었다.

‘이것도 꽤 운치가 있네.’

세인이 그렇게 생각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자리가 없어서 그런데 합석해도 되겠습니까?”

여행자 차림인 남자가 다가와 세인의 의중을 물어보았다.

그 남자의 얼굴을 본 세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세인의 맞은편에 앉은 남자는 세인과 같은 것을 주문했다.

보아하니 술맛을 아는 남자인 것 같았다.

수중에 돈도 많고 말이다.

노천 벌꿀주는 꽤 비싼 가격이라서 아무나 시켜놓고 마실 수 있는 술이 아니었다.

남자가 주문한 술이 나오자 세인이 잔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피식 웃은 남자도 자신의 술잔에 술을 채운 후 잔을 들어 올렸다.

그렇게 서로에게 건배한 둘은 술을 목으로 넘겼다.

술을 음미하는 시간이 지나자 남자가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마주치는 여행자들끼리 흔히 오갈 수 있는 질문이었다.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세인은 솔직하게 답해 주었다.

“글리터에서 왔습니다.”

“그렇군요.”

세인은 술병을 하나 더 주문했다.

그리고 그것의 마개를 따며 이렇게 말했다.

“같이 마시죠.”

“그래도 되겠습니까?”

“옷차림을 보아하니 돈이 모자랄 분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만. 이건 그냥 제 선물입니다. 여기서 이렇게 마주친 것도 인연이니까요. 부담가지지 마십시오.”

“그렇군요.”

세인은 레드의 술잔에 벌꿀주를 따라 주었다.

야만인들의 왕이라는 신분을 위장하고 있는 레드는 두 손으로 잔을 잡고 있었다.

“그런데 글리터에서 여기까진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레드의 물음에 세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결혼식도 구경할 겸, 형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형을요?”

“예. 형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리고 둘은 침묵을 공유했다.

술이 가져다주는 나른한 분위기 속에서, 레드는 술잔을 빙글빙글 돌렸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 있는 술잔이 정지했을 때, 그때가 바로 그가 떠나갈 시간이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레드는 세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형님과 꼭 만나 회포를 풀기 바라겠습니다. 짧지만 좋은 인연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손을 마주 잡은 세인도 응답했다.

“좋은 여행 되십시오. 저 역시 좋은 인연이었습니다.”

세인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고, 레드는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

레드의 등이 점점 멀어져 사라지기 직전에, 세인의 입술이 열렸다.

“형.”

그때 레드가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이쪽을 바라보았다.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인도 마지막이 될 그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

그리고 다시 등을 돌린 레드는 인파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배웅을 마친 세인은 말없이 마지막 한 잔을 들이켰다.

「 어느 날 술잔 앞에서 그를 상실하게 된다 해도. 영원히 그를 잃게 된다 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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