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3
& 돌아왔습니다. (7)
웨폰 마스터가 흥미로운 듯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자 위압감을 느낀 백마가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다가 주변의 기사와 몸이 부딪혔는데, 그게 백마를 발작하게 만들었다.
결국 백마는 상체를 높이 들어 올리더니, 제자리에서 몇 바퀴 돌다가 도망쳐 버렸다.
말에서 굴러떨어진 윌은 계속 웨폰 마스터에게 시선을 유지하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저거 참 괘씸한 동물이군.”
그렇게 말한 웨폰 마스터는 달아난 백마에게 해골 병사들이 달려드는 것을 보았다.
말의 머리가 하늘로 높게 솟구칠 때, 흥미를 잃은 웨폰 마스터는 말에 주었던 시선을 윌에게로 돌렸다.
바로 그때 세 명의 기사가 윌과 웨폰 마스터의 사이를 가로막고 공격을 가했다.
웨폰 마스터는 머리를 뒤로 젖히며 검을 피해냈다.
기사의 휘둘러진 검이 제자리로 돌아갈 때 반동을 이용한 박치기를 먹였다.
아무리 전쟁터라고 해도 사람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지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다음으로 웨폰 마스터의 날개가 움직였다.
그 공격은 꼭 윌을 노렸다기 보다는 주변을 둘러싼 기사들을 향한 것이었다.
길게 펼쳐진 날개가 거의 한 바퀴를 돌았을 때.
목 없는 시체들이 우수수 생겨났다.
피분수를 내뿜는 시체들이 하나 둘씩 무릎을 꿇었다.
큰 몸집에도 불구하고 눈으로 쫓기 힘든 속도로 기사들을 처리해버리는 웨폰 마스터였다.
그동안 사람을 얼마나 잡아먹고 덩치를 불렸는지, 전보다 훨씬 거대해진 웨폰 마스터는 견디기 힘들 정도의 위압감을 선사해 주었다.
피바다 위에 고고하게 서 있는 그는 윌을 향한 집요한 추궁을 계속했다.
이번에 확실하게 파악해야 앞으로 주변을 헤매고 다니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쭉정이들이 내 앞을 가로막아보았자 소용이 없어. 넌 어차피 죽을 거야. 그전에 한 번 더 묻고 싶다. 네가 총대장이냐? 확실히 해두자고.”
“그렇다.”
그러자 웨폰 마스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그렇군.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겁도 없이 전쟁터 한복판에 나오다니. 물론 나로서야 고마운 일이지만 말이야. 그런데 너 강하냐? 야. 이것 좀 벗어봐. 벗어보라고.”
웨폰 마스터가 긴 손톱으로 자신의 투구를 두드리자, 윌은 천천히 투구를 벗어 바닥에 내던졌다.
그러자 윌의 얼굴을 본 웨폰 마스터가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런 웨폰 마스터는 마치 소풍을 나온 아이처럼 보였다.
절대 강자라서 그런 걸까?
긴장감 따위는 눈을 씻고 봐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전황이 점점 인간들에게 유리하게 되어도 일절 신경을 안 쓰는 모습이었다.
어차피 자신이 인간 군대의 머리를 제거한 후 사방을 들쑤시고 다니면 전세가 뒤집어지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분명 마족이니 손맛은 있겠군. 나를 즐겁게 해봐라.”
말을 마친 웨폰 마스터의 팔이 움직이며, 옆에서 기습적으로 달려들던 기사의 몸이 터져나갔다.
정면에 있던 윌은 피바람을 맞고 있는 이 짧은 시간에 머리를 굴렸다.
‘빠르다.’
윌은 테러 나이트를 직접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말 그대로 무지막지하게 강한 녀석이라고 알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강함의 정도라는 게 구체적으로 딱 감을 잡기 모호했다.
설마 지금처럼 주위를 둘러싼 기사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도륙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도망가야 한다.’
이런 압도적인 강함 앞에서는 계획했던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게 쉽지 않았다.
정공법은 힘들고, 도망치면서 빈틈을 만들어 내 기회를 노려야만 한다.
그래서 윌은 주저 없이 등을 보이려고 했다.
코다로가 초만 치지 않았어도 그대로 실행했을 것이었다.
“어라?”
어차피 피바다라서 적당히 쓰러지는 척을 해도 되건만, 꿋꿋이 허리를 세우고 있는 기사 한 명이 웨폰 마스터의 시각에 걸렸다.
기사는 조금 전에 경쾌한 스텝으로 날개의 반경을 피해냈다.
그 민첩한 반응은 강자를 찾아 헤매는 웨폰 마스터의 신경을 건드리기 충분했다.
“이것 봐라?”
웨폰 마스터의 발이 지면에서 떨어졌을 때 호위 기사인 척을 하고 있던 코다로가 동시에 땅을 박찼다.
코다로의 눈에 새대가리가 확대되어 오고, 상대의 둥근 눈이 맞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그때 코다로의 허리춤에서 두 개의 불길이 일어났다.
순간 짜릿함을 느낀 웨폰 마스터는 양팔을 모았다.
그러자 그의 팔에서 불꽃이 요란하게 일어났다.
팔 표면을 코다로의 쌍검이 숨 가쁘게 훑고 지나간 것이다.
코다로에게 공격을 가하려던 웨폰 마스터는 옆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그의 머리 옆으로 윌의 검이 스치고 지나갔다.
다음은 코다로와 윌이 피할 차례였다.
웨폰 마스터의 몸이 빙글빙글 회전하며 옆으로 이동하자 날개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원을 그렸다.
코다로는 허리를 숙이며 연달아 그려지는 원을 회피하고, 다시 앞으로 돌진하려 했다.
그러나 그 행동을 실현에 옮기진 못했다.
윌이 걸리적거렸기 때문이다.
“치잇.”
결국 윌을 피해간 코다로는 한 박자 늦게 웨폰 마스터에게 달라붙었다.
그의 쌍검이 다시 춤을 추며 요란하게 웨폰 마스터의 몸을 두드렸다.
그러나 그의 검은 웨폰 마스터의 한쪽 팔에 가로막혀 치명타를 입히지 못했다.
웨폰 마스터는 팔을 방패처럼 썼고 리치가 긴 날개를 무기처럼 썼다.
“오! 좋아! 제법이야!”
신이 난다는 듯 지껄이던 웨폰 마스터의 눈이 안광을 이으며 앞으로 이동했다.
동시에 터져 나오는 그의 발차기가 코다로의 복부를 노렸다.
퍼엉!
그 발차기가 코다로의 복부에 명중하자 주변이 흔들리며 기파가 터져나갔다.
코다로의 몸은 새우처럼 굽어진 상태로 뒤쪽을 향해 날아갔다.
땅 위에 데굴데굴 구르는 코다로를 바라보던 윌은 웨폰 마스터에게 단검을 던졌다.
쨍그랑!
손가락으로 단검을 튕겨냈을 때 윌은 웨폰 마스터의 지척에 있었다.
아래에서부터 그어 올리는 검을 웨폰 마스터의 팔이 가로막았다.
그런 웨폰 마스터의 등 뒤에서 쉬익 하고 찬바람이 불었다.
그러자 윌은 고민 없이 뒤로 물러났다.
간발의 차이로 윌이 있던 자리에 날개가 내리꽂혔다.
내리찍은 날개는 지면에 거미줄 같은 균열을 일으켰다.
제대로 맞았다면 뼈도 못 추렸을 것이다.
윌은 상대를 노려보며 거리를 벌렸지만, 웨폰 마스터는 그에게 따라붙지 않았다.
그저 재미있다는 얼굴로 윌을 바라보았다.
오로지 그만이 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 홀로 장난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부터 그랬지만 계속 여유만만이다.
“빌어먹을 끝장나게 강하잖아.”
그때 멀리에서 코다로가 투덜거리며 일어났다.
그가 잔뜩 구겨진 갑옷을 벗어 던지자, 너덜거리는 갑옷이 날아가 달려오는 해골의 머리를 맞췄다.
해골이 나자빠질 때 코다로가 소리를 질렀다.
“윌! 어때? 견제할 수 있겠냐?”
윌은 대답 대신 검을 들어 올렸다.
어느새 그의 호흡은 침착해진 상태였다.
그가 맡은 포지션은 간단했다.
군의 중요인물인 척 하면서 웨폰 마스터를 끌어들인다.
그리고 시간을 끌며 어떻게든 빈틈을 만들어 내야만 한다.
그사이 변장을 하고 있던 코다로가 뒤에서 한 방을 먹인다.
그게 바로 아까의 작전이었다.
지금도 유효한 작전이고 말이다.
윌과 코다로를 번갈아 바라보던 웨폰 마스터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야? 설마 지금 겨우 두 명으로 나를 상대하겠다는 거야?”
웨폰 마스터는 콧방귀를 뀌었다.
물론 코다로는 엄청난 강자였다.
평가를 해보자면 남부를 주름잡는 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준이었다.
그런데 결국 그런 강자들도 웨폰 마스터가 쳐 죽였다.
코다로가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그가 웨폰 마스터를 죽일 수는 없었다.
그게 가능했다면 웨폰 마스터는 벌써 남부에서 살해당했을 것이다.
웨폰 마스터는 코다로를 가리켰다.
“야. 넌 심심풀이 땅콩일 뿐이야. 나는 너를 즐겁게 가지고 놀다가 최대한 잔인하게 죽일 거다. 너는 그걸 막을 수가 없어.”
그때 코다로가 대답 대신 땅에다가 침을 뱉었다.
피가 섞인 침이었다.
그걸 보는 웨폰 마스터가 소리 내어 웃었다.
웨폰 마스터의 둥근 눈이 윌과 코다로를 동시에 담았다.
윌과 코다로는 검이 부러질 것을 대비했는지, 등이나 허리에 검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알까?
‘내가 무기들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것을.’
즉 저 무기들은 전부 다 웨폰 마스터의 무기나 다름없었다.
그런 생각을 마친 웨폰 마스터는 잽싸게 팔을 움직였다.
방금 윌이 던진 단검을 튕겨내기 위해서였다.
그게 바로 재공격의 신호였다.
다시 흙먼지가 자욱이 일어나며 가망 없는 싸움.
상대도 되지 않는 싸움이 재개되었다.
앞으로 달려가던 윌은 웨폰 마스터가 휘두르는 날개를 간신히 피해냈다.
하지만 뒤따라온 웨폰 마스터의 손까지는 피하지 못했다.
그의 두 손이 윌의 팔을 잡아챘고, 뒤따라 온 두 장의 날개가 윌의 몸을 잡아 고정했다.
“으윽!”
웨폰 마스터는 그대로 힘을 주어 윌을 박살 내려고 했다.
도금한 갑옷이 비명을 지르며 구겨질 때, 뒤늦게 도착한 코다로의 공격이 날아왔다.
그의 민활한 검 끝은 웨폰 마스터의 두 눈을 노렸다.
어느 생물에게나 눈은 약하고 민감한 부위였다.
결국 웨폰 마스터는 윌을 놓아주고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코다로는 쉴 새 없이 연환공격을 하며 웨폰 마스터를 몰아붙였다.
그의 쌍검은 독사의 어금니처럼 웨폰 마스터의 눈이나 관절 안쪽을 노렸다.
그때 웨폰 마스터가 짜증이 난 듯 크게 날개를 휘두르자, 코다로는 뒤로 훌쩍 물러났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땅을 박차고 앞으로 나갔을 때였다.
웨폰 마스터가 날갯짓을 하자 흙먼지가 뿌옇게 일어났다.
‘공중에서 공격하려는 건가?’
아닌 게 아니라 웨폰 마스터의 몸이 점점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때 윌이 코다로의 앞으로 나가며 등을 굽혔고, 코다로는 주저하지 않고 그의 등을 밟고 위로 떠 올랐다.
간신히 손을 뻗어 웨폰 마스터의 한쪽 발목을 붙잡았을 때였다.
“걸렸네.”
웃음소리와 함께 웨폰 마스터의 몸이 회전하며 땅에 틀어박혔다.
발에 매달린 코다로를 비스듬한 각도로 땅에 메다꽂은 것이다.
“으윽!”
웨폰 마스터는 자신의 무릎 아래에서 목이 짓눌린 채 쿨럭거리는 코다로를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때 코다로가 검을 휘둘렀지만, 웨폰 마스터의 손에 잡히고야 말았다.
“세상에는 약자뿐이라서 너무 심심해.”
웨폰 마스터의 다른 손이 검신을 때리자, 허무하게도 코다로의 검은 반 토막이 나버렸다.
웨폰 마스터는 아이의 손을 비틀어 사탕을 빼앗듯, 그의 검을 수거해 멀리 던졌다.
“너는 분명 지금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피땀을 흘렸겠지? 어쩌면 거기에는 눈물도 섞여 있었을지도 모르겠어.”
느릿느릿하게 말하는 웨폰 마스터가 날개를 휘둘러 파리를 쫓듯 윌을 튕겨냈다.
“하지만 봐라. 지금의 널 보라고. 보아하니 한 성질 하게 생겼구나. 그 성질을 뒷받침하기 위해 얼마나 고단한 노력을 했을까? 가엾은 것.”
웨폰 마스터의 뾰족한 부리가 코다로의 얼굴을 향해 천천히 접근했다.
하지만 코다로는 얼굴을 옆으로 돌리지 않았다.
자신을 깔아뭉개고 있는 괴물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코다로에게 웨폰 마스터가 조롱을 보냈다.
“그래도 넌 내게 안 되는 거야. 왜냐고? 내가 너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 너 같은 놈들은 각고의 노력 끝에 힘을 넣었다고 으스대지만, 그 위에는 나 같은 하늘이 있기 마련이지. 열등한 놈. 그게 바로 너다. 너 같은 놈은 나 같은 절대 강자를 위해 태어난 거야. 내 강함을 돋보이게 하는 장식으로 말이지. 그리고 그게 정녕.”
웨폰 마스터는 자신의 말에 자기가 도취하였는지 떨리는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네 인생의 의미였다.”
“….”
“가치 없는 삶. 찌꺼기. 열등한 종자. 그게 바로 너란 인간이다. 인간은 다 그래. 나 같은 존재를 돋보이게 하는 하찮은 물건일 따름이지.”
그때 코다로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이 괴물놈아. 내 대답을 들려줄까?”
그러자 웨폰 마스터가 웃었다.
“아니.”
그리고 웨폰 마스터가 코다로의 뺨을 올려붙였다.
물론 죽지 않을 정도로만 힘을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다로의 입에서는 피가 튀어 나왔다.
“필요 없어. 이 장식품 새끼야. 냄새나는 인간 찌꺼기 자식아.”
그리고 웨폰 마스터가 마구 코다로를 비웃었다.
최선을 다해 수련한 강자에게 조롱을 보내는 것이 즐거운 웨폰 마스터였다.
그리고 그때 반전이 일어났다.
윌이 고함을 지르자 주변에 쓰러져 있던 시체들이 벌떡 일어난 것이다.
그 시체들은 코다로와 윌, 웨폰 마스터가 도착하기 이전에 쓰러져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웨폰 마스터에게 달려들었다.
뭘 하려나 싶어 그대로 놔둬 봤더니 자신을 붙잡는다.
팔과 날개를 붙잡고 고정한 것이다.
기사들의 행태에 웨폰 마스터가 한숨을 내쉬었다.
“고작 이거냐.”
반전치고는 꽤 재미없었다.
노력은 가상했다.
처음부터 엎어져서 시체로 위장하고 있던 자들은 언제라도 개죽음당할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칼과 비명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시체처럼 엎어져 있는 판국에, 웨폰 마스터가 펼치는 공격에 휩쓸렸다간 그냥 골로 가는 거다.
목숨을 걸고 들인 공에 비해 엄청 허무하게도 말이다.
그러니까 정말 의지는 가상한데, 대체 이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래 봐야 잠깐.
아주 잠깐 웨폰 마스터를 거추장스럽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고작해야 일초?
그때 웨폰 마스터는 자신의 무릎 아래 깔린 코다로에게서 검 한 자루가 빠져나오는 것을 보았다.
‘설마 이게 다야? 잠시 내 움직임을 멈칫하게 만들고 검으로 찌른다?’
그의 몸에는 검이 통하지 않았다.
아까 팔로 막은 것은 흥을 위해서였다.
게다가 그는 명색이 웨폰 마스터였다.
상대의 무기야 멈추게 하면 그만이다.
자신의 몸과 땅 사이에서 검을 천천히 빼낸 코다로는 씨익 하고 웃었다.
그게 코다로를 깔고 앉아 있는 승리자에게는 벌레의 비틀림으로 느껴졌다.
가소롭기 짝이 없다는 소리다.
진짜 같잖은 마음에 웨폰 마스터가 이렇게 투덜거렸다.
“야. 설마 니들 희극 배우냐? 아무리 그래도 이따위 연출을 위해 이렇게까지 할 건 아니잖아?”
그리고 코다로의 손에 들린 검이 빠르게 움직였다.
비스듬히 세운 검 끝이 향하는 지점은 웨폰 마스터의 갈비뼈 부근이었다.
득의한 코다로의 얼굴을 보며 웨폰 마스터가 명령을 내렸다.
코다로의 무기에 말이다.
‘멈춰라.’
물론 그 명령에 따라 코다로의 손에 들린 무기는 이제 움직임을 멈출 것이다.
그런데….
“으윽!?”
코다로는 입을 크게 벌린 웨폰 마스터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상대의 경악성이 지금 땅바닥에 나자빠져 있는 그를 무척이나 기쁘게 만들었다.
“성공했다.”
웨폰 마스터는 약간 휘청거리면서 주먹으로 코다로의 얼굴을 때리려 했다.
하지만 코다로는 그때 검을 더욱 깊숙이 밀어 넣었다.
웨폰 마스터의 몸속으로 말이다.
검은 웨폰 마스터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명령을 거부한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 일이지만, 보통 검으로는 웨폰 마스터의 피부를 통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코다로의 검은 이제 손잡이만 남기고 검날 전체가 웨폰 마스터의 몸에 들어가 버렸다.
“크흑!”
검 끝이 웨폰 마스터의 등을 뚫고 나오자 그의 동공에 힘이 풀렸다.
코다로는 검을 반쯤 뽑으며 상대를 밀쳤다.
그러자 검날이 완전히 공기 중으로 빠져나왔고, 콰당하는 소리와 함께 웨폰 마스터가 옆으로 넘어갔다.
몸을 일으킨 코다로는 장검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웨폰 마스터의 몸을 향해 휘둘렀다.
그것을 막으려던 웨폰 마스터의 팔이 잘려나갔다.
아까의 막강한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너무 연약해서 두부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다음은 두꺼운 상체였다.
“어째서? 어째서 이런 일이? 이건 말도 안 돼!”
불가능하다고 외치는 웨폰 마스터의 몸을 난도질하는 코다로가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아까의 대답을 들려줄까? 이제 들을 용의가 생겼냐?”
이어지는 칼부림은 웨폰 마스터의 날개를 몸에서 해체했고, 거슬리는 것들을 남김없이 잘라냈다.
웨폰 마스터의 비명 속에서 코다로는 웃음을 터트리며 그의 몸을 찢어냈다.
지금의 그는 이 순간을 완전히 즐기는 듯 보였다.
수난은 당했지만 이런 결과라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던 위기였던 탓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힘찬 칼질에 의해 웨폰 마스터의 목이 잘려나갔다.
커다란 새의 대가리가 피를 뿌리며 날아갔고, 그것을 건너편에서 다가오던 윌이 양손으로 잡았다.
엉겁결에 웨폰 마스터의 머리를 받아든 그는, 더러운 물건이라도 되는 듯이 그것을 땅에 패대기쳤다.
이로써 북부군의 승리가 결정되었다.
테러 나이트가 제거된 이상 앞으로의 승부는 보나마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웨폰 마스터의 몸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윌의 부축을 받는 코다로의 검에 해답이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바로 마검 데스였다.
마검 데스라면 웨폰 마스터의 명령을 받을 리가 만무했다.
게다가 강철 같은 웨폰 마스터의 육체도 무시하며 데미지를 입힐 수 있었던 이유도 설명이 된다.
엄청난 힘이 서린 검이니까 말이다.
세인이 아닌 소유자에게 엄청난 힘을 주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검이 남의 손안에서 의미 없는 막대기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서신과 함께 가이더를 통해 회의장에 도착한 것은 바로 세인의 마검이었던 것이다.
세인은 가미긴을 만나러 가기 전에 마검을 책상 위에 남겨두고 갔다.
그리고 정작 그는 평범한 장검을 들고 가미긴을 찾아간 것이다.
힐다가 세인이 남겨놓은 물건을 보고 심각해진 것도 이 때문이었다.
세인의 편지도 편지지만 장검이 든 가죽 주머니를 못 알아볼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녀는 극도로 안전하게 마검을 글리터로 보내야만 했다.
그게 바로 세인의 명령이자 당부였다.
힐다는 월터에게 세인의 물건을 맡겼다.
월터라면 은연중에 가이더의 보호를 받으므로, 거기에서 글리터에 이르기까지 최고로 안전한 전달 방법이 될 수 있었다.
일단 가이더까지만 가면 월터가 기사들을 동원해 북의 허리띠 지역을 쉽게 가로지를 테니까 말이다.
그만큼 안전한 운송 수단이 어디 있겠는가?
남은 문제는 과연 월터를 믿을 수 있느냐다.
결과적으로 힐다는 월터를 믿었고, 그에게 물건을 들려 보냈다.
그리고 월터는 과연 그녀의 바람대로 물건을 글리터로 안전하게 보내버렸다.
덩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조세핀은 과거 세인에게 은혜를 받은 입장에서 반대하기는커녕, 당연히 그것을 거들어 주었다.
그리하여 마검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결국 북부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세인의 서신까지 함께 받은 그들은 세인의 계획을 공유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비밀병기까지 손에 넣었다.
덩컨이 말한 대로 마법의 황금 열쇠나 다름없었다.
웨폰 마스터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엘릭서 앞에서 몸이 남아날 리가 없었다.
문제는 마검이 몸에 닿을 때까지 웨폰 마스터가 수수방관하고 있을 것이냐였다.
처음부터 마검을 불쑥 들이밀면 바보라도 경계할 것이다.
그가 현명하게 거리를 벌리고 멀리에서 공격을 가해오면, 상대가 마검을 들었다 해도 생명이 남아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번우드와 글리터의 사람들은 계획을 짰다.
결국 그를 방심하게 만들어 경계심을 누그러뜨려야 했고, 다들 목숨을 걸고 이번 일에 달라붙었다.
다행히 웨폰 마스터의 수다스럽고 장난스러운 성격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그렇다 해도 힘의 격차가 워낙 큰지라 공격 간격을 만들어 내는 것조차 운에 맡겨야만 했다.
만약 웨폰 마스터가 코다로를 잡자마자 바로 죽음의 일격을 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꼼짝없이 마검은 놈의 손에 넘어갔을 것이었다.
비록 그 그림이 착착 맞아떨어지진 않았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테러 나이트를 제거한 셈이 되었다.
멍청하게도 웨폰 마스터는 한껏 자만하다가 스스로 거리를 좁혔고, 그 자만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내가 너보다 훨씬 우월하다. 바로 이게 내 대답이야. 이 열등한 새대가리 자식아.”
코다로는 눈에서 초점을 잃은 새의 머리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 광소를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