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왕 마검의 주인-290화 (290/307)

# 290

& 돌아왔습니다. (4)

땅속 아주 깊은 곳에, 세인이 앉아 있었다.

그가 있는 공간은 비좁지도 않았지만 넓지도 않았다.

그래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자들은 서로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첫째로, 여긴 아주 깊은 곳이다. 지금껏 몇 번이고 바닥이 무너져 내렸거든. 너도 그걸 느꼈겠지?”

말을 하는 가미긴은 자신의 맞은편에 세인이 앉아 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간간이 보라색의 안광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세인이 눈을 감았다가 뜰 때, 드러나는 그 빛은 세인이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아주 까마득한 높이를 흙이 채우고 있어. 그리고 이 흙은 평범한 게 아냐.”

가미긴은 데드 페이스를 이용해 사방을 터트렸고 가라앉게 했다.

그것도 모자라 데드 페이스의 잔재들은 연약해진 땅과 뒤섞여 주변을 다시 한번 약화 시킨 상태였다.

단단한 흙이라면 파고들 여지라도 있다.

그러나 모래더미나 늪처럼 약한 점성의 지반이 사방에 펼쳐져 있는 만큼, 세인이 힘을 써도 여기를 탈출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방을 파괴할수록 약해진 땅이 부서지며 아래로 내려앉을 것이기 때문이다.

힘을 쓰면 쓸수록 2차, 3차 붕괴.

어쩌면 그 이상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위치상 점점 아래로 내려가게 된다.

가미긴은 이것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어때? 마음에 들지 않아? 함정에 빠져 죽은 부하들을 보러 왔지? 그게 네 책임이니까 말이야. 그런데 내가 함정은 한 번뿐이라고 말해준 적이 있었나? 정말 어떻게든 해서 네가 여기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치자. 그래도 한참 시간이 흐른 뒤일걸?”

그리고 가미긴은 두 번째 정보를 알려줄까 말까 약간 고민했다.

하지만 그가 고민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는 어둠 속에서 함께 있는 세인에게 절망감을 선사하고 싶었다.

빛 한 점 없는 이곳에서 상대가 아무것도 모르고 죽는다면 그건 너무 평화로운 죽음이다.

그러니 카드 패를 뒤집어 노출하면서까지 상대에게 고통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네가 알아야 할 것은….”

그때였다.

가미긴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세인의 입이 열렸다.

지반이 무너지고, 아래로 추락한 후에 여기 갇히기까지 말 한번 없던 세인이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너, 지금 숨 쉬고 있냐?”

“뭐?”

예고 없이 세인의 신형이 바람처럼 움직였다.

어둠 속에서 발에 걷어차인 가미긴이 뒤로 나뒹굴자, 세인이 그 위에서 중얼거렸다.

“둘이 쭉 같이 있기엔 여기 공기가 모자란 것 같아서.”

뭔가 대답하려던 가미긴의 허리가 굽혀졌다.

세인이 다시 걷어찼기 때문이다.

가미긴이 웨폰 마스터보다 약했지만 이렇게 무력하게 당할 정도로 힘이 없는 존재는 아니었다.

문제는 지금 그의 얼굴에 발길질을 하는 세인이 테러 나이트조차 쉽게 죽여 버릴 정도로 강자라는 것이었다.

“넌 이노센트들을 위해 큰 공을 세웠다. 사람들을 몰살시켰고 나를 여기에 가두었지. 그건 대단하다. 그래서 뭐 어쩔 건데? 그런 공을 세운 넌 지금 여기서 박살 나고 있잖아.”

그때 가미긴의 얼굴에서 뭔가가 튀어나와 세인에게 달려들었다.

세인은 그것을 쉽게 낚아채 손안에서 깨트려 버렸다.

그러자 아스라한 비명이 그의 움켜쥔 손안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끝이었다.

가미긴의 손이 세인의 몸을 두들겼지만, 세인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가 가미긴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그러자 가미긴의 몸이 바닥에 처박혔다.

“대단한 일을 해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냐? 너는 여기서 맞아 죽는데?”

세인의 주먹이 가미긴의 얼굴을 연속으로 갈겼다.

그리고 가미긴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우더니 다시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그의 발길질이 가미긴의 얼굴과 가슴 위로 쏟아진다.

“크헉! 그만! 제발 그만!”

갈비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고 세인의 손이 가미긴의 얼굴을 잡았을 때 뭔가가 뜯겨 나갔다.

생으로 뜯긴 그 물체는 옆으로 날아가다 벽에 맞고 바닥을 굴러다녔다.

세인은 두 손으로 가미긴의 얼굴을 고정했다.

“네가 이런 고통을 당한다고 누가 알아주냐?”

“넌 패자다! 넌 이미 나에게 졌어! 네 부하는 다 죽어버렸고 그나마 남은 찌꺼기들도 다 죽는다!”

가미긴의 외침에 세인이 피식 웃었다.

“나는 네가 끝까지 살아남아 결말을 지켜보았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어 유감이다.”

그때 가미긴의 팔이 세인이 얼굴을 후려갈겼다.

하지만 충격은 주지 못했다.

세인은 자신의 손아귀에 잡힌 가미긴의 손목을 으스러뜨렸다.

그 과정에서 가미긴이 데드 페이스로 세인의 몸을 공격했지만, 전혀 먹히지 않았다.

가미긴의 팔을 뜯어낸 세인은 그것도 옆으로 던져 버렸다.

그 후에 세인은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오래전이었다면 나는 너희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거다. 하지만 이제는 많은 게 바뀌었다. 이 멍청한 놈아. 네가 발버둥 쳐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때 가미긴은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보라색의 눈동자를 올려다보았다.

고통은 둘째 치고 그 눈동자가 너무나도 소름 끼쳤다.

지금 세인이 말하는 내용과 눈동자는 한 점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예언자가 미래를 알고 담담하게 그 미래를 읊어주는 것만 같았다.

“너희들은 벌레처럼 내게 짓밟힐 뿐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너희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무력한 게 너희들의 운명이다. 네가 했던 행동. 그리고 말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 지금 이노센트인 너희들의 머릿속을 꽉 채운 게 강자의 논리라면, 그 논리의 꼭대기에 있는 게 누구지?”

그렇게 묻는 세인은 정작 상대의 대답을 갈구하지 않았다.

그의 무릎은 가미긴의 부서진 가슴을 내리눌렀다.

그리고 두 손은 가미긴의 목을 졸랐다.

괴로움에 헐떡이는 가미긴은 죽기 일보 직전에 눈앞이 트이는 것을 느꼈다.

세인에 갑자기 두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났기 때문이다.

“허억! 허억!”

“지금 너를 박살 내는 게 누구냐? 자. 이제 죽기 직전의 네 표정을 나에게 보여 봐라.”

그리고 세인의 검이 빠르게 움직였다.

가미긴은 죽다 살아났다 싶은 순간 목이 잘렸다.

세인은 가미긴에게 죽기 직전의 표정을 보여 달라고 말했지만, 여긴 어둠 속이었다.

그리고 가미긴의 표정을 볼 사이도 없이 목을 잘라버렸다.

이럴 거면 왜 그는 표정을 보여 달라고 한 걸까?

공처럼 데굴데굴 굴러온 가미긴의 머리가 세인의 발끝에 닿았다.

그는 그것을 신경질적으로 차버렸다.

그리고 다시 어두운 공간 안에서는 침묵이 감돌았다.

이제야 주위가 조용해졌다 싶자 세인은 팔짱을 끼고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고른 호흡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가 찾은 평화는 오래 가지 못했다.

잘려진 가미긴의 머리가 숨소리를 낸 것이다.

긴 호흡과 함께 ‘푸하!’하고 입을 여는 소리가 세인으로 하여금 혀를 차게 만들었다.

눈을 반쯤 뜬 세인이 다시 검을 잡아가려 할 때였다.

아까와는 다른 가미긴의 목소리가 그런 세인의 행동을 저지했다.

“세인님.”

“….”

“세인님.”

자꾸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머리를 보고, 세인은 가미긴이 연극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경계심보다 혀가 앞섰다.

“질리언?”

“거기 계시는군요.”

세인의 침음성을 들으며 질리언은 말을 계속했다.

“혀가 굳어지는 게 느껴집니다. 그전에 할 말을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

진의를 알 수 없는 말에 세인이 입을 다물었지만, 마음이 급해진 질리언이 빠른 말을 쏟아냈다.

“저를 여기에 가둔 자와 연결이 되었을 때, 저는 그에게 끔찍한 폭행을 당하면서도 그의 생각을 엿봤습니다. 그럴 수 있던 까닭은 그가 저를 열고 샅샅이 탐색하는 동안, 저도 그를 유심히 들여다보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없으신 걸 보니 아직 이승에 남아계신 거겠죠? 그렇다면 꼭 알아야 할 정보가 있습니다.”

“네가 질리언이 맞다면 계속 말해 봐라.”

“저를 가둔 자는 웨폰 마스터라는 자에게 군대를 주었습니다. 그 군대는 드레퓨스의 각지에 흩어져 있던 세력입니다. 그들은 지금 글리터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웨폰 마스터는 암살 임무를 맡았습니다. 대상은 바로 빈센트.”

남부를 휘젓던 테러 나이트가 글리터로 향하고 있다면, 그 앞을 가로막는 것들은 다 바람 앞의 등불 신세나 마찬가지였다.

지방에 흩어져 있던 군대가 오히려 북쪽을 친다?

물론 그건 이치에 맞지 않은 운용이다.

남는 병력이 있다면 수도를 탈환하도록 명령을 내리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가미긴은 자신의 목숨을 도외시하고 이런 함정을 판 놈이다.

가미긴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지금처럼 여기에 세인을 잡아두고 일을 끝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말이 남아 있습니다.”

가미긴의 얼굴에 드러난 질리언의 데드 페이스가 충격적인 말을 뱉어냈다.

“테러 로드인 마라의 비밀을 알았습니다. 정체와 가진 권능을요.”

세인은 잠자코 질리언의 이어지는 설명을 들었다.

이로써 질리언은 뒤늦게나마 임무를 완수한 셈이 되었다.

이런 모습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마라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질리언의 입에서 술술 나오고 있었다.

그 내용은 세인의 머리에 뚜렷이 새겨졌다.

“마라는 빛과 어둠의 잔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가 아니라 둘이죠. 마라의 이름을 공유하는 그 둘은 루시드가 봉인하고 있습니다. 그 봉인이 풀리면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타나는데, 어둠이 죽으면 빛은 어둠을 되살립니다. 되살리는데 필요한 시간은 불과 이틀 정도입니다.”

아주 멀리에 있는 빛의 그림자는 어둠의 그림자를 계속 되살린다.

둘 사이의 거리는 이틀로는 도저히 주파할 수 없는 거리였다.

“두 존재는 각기 다른 권능을 가지고 있는데, 어두운 존재는.”

“그녀는 데스 크라운이야. 정확히 말해 데스 크라운의 그림자지.”

“예?”

“아니야. 계속해.”

“어둠의 존재는 죽으면서 무조건 자신을 죽인 자를 죽입니다. 상대의 능력에 관계없이요. 그게 바로 그의 권능입니다.”

마라는 루시드의 집착이 끌어안고 있는 데스 크라운과 홀리 크라운의 그림자였다.

그 붙박인 과거들이 풀려나면 세상의 양극에서 현신한다.

데스 크라운의 그림자인 마라는 그 자체로도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을 살해한 자를 무조건 죽이는 권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데스 크라운의 그림자를 죽이려면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소리다.

이것만 해도 정말 어려운 일인데 가관인 존재는 따로 있었다.

“빛의 그림자는 어둠의 그림자가 죽으면 이틀 후에 되살리며, 그리고 무엇보다…. 죽지를 않습니다. 그는 불멸입니다. 어떤 법칙에도 제재받지 않습니다. 권능. 상대의 힘 등등을 다 무시합니다. 그게 바로 그의 본질입니다.”

설명을 들어보니 홀리 크라운의 그림자는 반신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떤 힘에도 위해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힘을 행사하면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권능이고 뭐고 다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어떤 힘도 그녀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일까?

홀리 크라운의 실체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

그녀가 모습을 안보인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루시드도 붙잡지 못한 존재를 어떻게 현세에 구현할 수 있을까?

결국, 빛의 그림자인 마라를 막는 다는 것은 가망 없는 일이었다.

이 말도 안 되는 힘을 가진 존재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루시드만 해도 만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루시드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빈센트의 협조가 필요한데, 가미긴은 빈센트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테러 나이트를 가이더로 보내버렸다.

그것도 대군을 이끌게 해서 말이다.

이 모든 것을 아는 세인은 함정에 갇혀 있었다.

설상가상에 첩첩산중인 상황.

이런 현실 속에서도 질리언의 말은 계속되고 있었다.

“마라를 이길 가능성은 전무 합니다.”

“….”

“마라의 권능은 그야말로 무적이니까요.”

질리언은 그렇게 확신했다.

그는 세인이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건 루시드부터가 그렇다.

일대일의 상황에서 적보다 무조건 한 배 반이 강해지는 루시드를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그런데 루시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해도 그다음이 문제였다.

마라인 두 그림자의 권능은 그 자체로 사기적이었다.

강함이 문제가 아니다.

마라를 넘어서는 힘은 이 세상에 없었다.

권능의 규칙을 무시하는 것은 오로지 신만이 가능한 일이다.

질리언이 생각하기에, 세인은 절대 마라를 해결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런 질리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압도적으로 불리한 현실 속에서 세인은 엉뚱한 말을 꺼내놓았다.

“질리언.”

“예. 말씀하십시오.”

“거긴 어떠냐? 지낼만한가?”

의외의 물음에 질리언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난처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애써 대답을 하는데, 대답이 참 어설펐다.

“여긴 그럭저럭 지낼만합니다. 즐겁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견디기 힘들 정도는 아닙니다.”

가미긴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데드 페이스들은 마경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건 곧 앞으로도 쭉 고통받으며 마경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영원히 지옥의 형벌을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세인을 따르던 사람들은 이노센트의 악의 속에서 인간 이하의 모습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그게 언제까지 계속될까?

어쩌면 영원히?

혹은 이노센트가 세상을 파멸시키는 그날까지?

“거기는 어떠십니까? 시력을 잃어서 어디에 계신지 알 수가 없군요.”

더 곤란한 질문이 나올까 봐 말을 돌리는 질리언 앞에서, 세인은 새삼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상과 아득히 떨어진 땅속은 또 다른 지옥과도 같았다.

지열 때문에 온도는 아주 높았으며, 공기는 탁했다.

빛도 없는 마당이다.

하지만 세인은 평온한 어조로 대꾸했다.

“여기야말로 아주 좋아. 아늑하고 적당히 어두워서 마음에 들어.”

“….”

“마치 사방이 별 없는 밤과 같다.”

어둠 속에서 세인이 미소를 지었다.

*  *  *

은은한 천둥소리에 빈센트는 눈을 떴다.

그의 침실은 건물의 가장 안쪽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의 소음에서 자유로웠고 빛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영주로서 언제나 격무에 시달리는 빈센트는 수면을 가장 중시했다.

밤에 푹 쉬어야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새로운 업무에 충실할 수 있다는 지론 때문이다.

그 때문에 종종 아내와 방도 따로 썼다.

가신들은 그런 영주님에 대해 약간의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후계자 문제 때문이다.

임을 봐야 별을 딸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빈센트는 가신들의 불만을 정공법으로 통과해 버렸다.

최근에 득남한 빈센트는 아기가 있는 방에서 같이 자고 싶었지만, 곧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모의 걱정을 무시하고 며칠 같은 방에서 자봤는데, 아기는 시도 때도 없이 깨어나 보채고 울어댔다.

자기 자식이라도 수용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 것이다.

‘내 자식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그야말로 악마처럼 울어댔어. 그 작은 목에서 어떻게 그렇게 우렁찬 소리가 계속 나오지? 마법의 소리통 같아.’

그렇게 생각한 빈센트는 어둠 속에서 두 눈을 깜박였다.

그는 잠을 청하려 했지만,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지고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결국 빈센트는 계속 자는 것을 포기하고야 말았다.

그가 손을 뻗어 램프를 켜기 직전까지, 그의 방은 마치 별 하나 없는 밤과 같았다.

램프를 켠 빈센트는 약간 멍한 기분 속에서, 자신이 ‘왜 잠에서 깨어났을까?’하고 생각해 보았다.

“천둥소리 때문인가?”

그는 말을 하는 자신의 갈라진 입술을 손가락으로 더듬거렸다.

그러고 보니 목이 말랐다.

그런데 물병은 바닥까지 비어 있었다.

결국 빈센트는 ‘끙.’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종을 흔들어 천에 연결된 하인을 부르기엔 늦은 감이 있었다.

성에 거주하는 하인의 숫자를 줄인 게 일주일 전이었기 때문이다.

“인력 낭비를 줄이기 위한 계획은 실수였다. 너무 불편해.”

빈센트는 혼잣말을 남발하면서 방문을 열었다.

밤에 시중들 하인은 한 명 정도 두는 게 좋겠다고, 그런 생각을 끝마쳤을 때였다.

두껍고 단단한 방문이 열림과 동시에 시원한 공기가 그를 반겨주었다.

그 공기 속에는 짙은 혈향이 섞여 있었다.

“음?”

그리고 빈센트는 멀리서 은은히 들려왔던 천둥소리가, 실은 영주관이 부서지는 소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을 열고 나가니 주위가 난장판이었다.

깨진 조각상 덩어리와 시체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지?

잠들어 있는 내내 그는 이런 소란이 벌어지는 줄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탓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빈센트는 자신의 앞에 있는 커다란 조각상이 낯설다는 느낌을 받았다.

‘집에 이런 조각상을 놔뒀던가?’

그가 등을 돌리고 있는 그 조각상에서 괴리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건 조각상이 아니었으니까.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빈센트의 앞에서 웨폰 마스터가 몸을 돌렸다.

웨폰 마스터는 마치 오랜 친구라도 발견한 듯이 친근한 어조로 말을 걸어왔다.

“어이. 거기에 있었군? 난 또, 진작에 도망간 줄 알았지. 방을 잘못 찾아서 한참을 헤맸다.”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려던 빈센트는 방을 잘못 찾았다는 말에 몸을 움찔거렸다.

그런 빈센트를 두 눈에 담은 웨폰 마스터는 자신의 혀로 긴 손톱을 핥았다.

“방을 잘못 찾았다면…?”

“작은 게 살도 야들야들하고 꽤 맛있더라. 덕분에 허기를 채웠다.”

평소 빈센트는 비밀 기사들에게 보호받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방 안에는 탈출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과도할 정도로 신경 쓴 탈출구는 순식간에 지하 깊은 곳으로 그를 인도해줄 것이었다.

그 후에는 땅굴을 따라 도망가기만 하면 된다.

물론 웨폰 마스터가 끝까지 쫓아오겠지만 말이다.

빈센트 입장에서는 적어도 탈출 시도라도 해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런 말을 듣고도 등을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가 남자이고 아버지라면 이 상황에서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떤 결과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마찬가지였다.

웨폰 마스터는 천천히 방문을 닫는 빈센트를 지켜보았다.

한숨을 내쉰 빈센트는 작금의 현실에 절망하고 절규를 내지르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하인들을 일찍 귀가시켜서 다행이군.”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실이었다.

웨폰 마스터는 이 영지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 생각이다.

생존자는 한 명도 남겨두지 않을 심산이었다.

그렇게 되면 가미긴의 지시를 완벽히 수행하게 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웨폰 마스터의 거대한 그림자가 빈센트를 뒤덮었을 때.

빈센트는 소리를 지르며 웨폰 마스터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

빈센트는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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