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5
& 듣는 자 (6)
지휘관이라면 항상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이 무엇인지 직관해야 한다.
보통은 한 나라의 중심지인 수도를 정복해 버리면 모든 게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수도가 점령되었다는 뜻은 군사 요충지를 제어하는 핵심 시설이 적의 손에 넘어가 버렸다는 거다.
왕의 신병이 적의 손에 넘어갔다는 것이고, 그 나라 백성들의 자부심을 점령해 버렸다는 의미가 되었다.
사기가 꺾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보통 전쟁의 흐름도 수도를 중심으로 짜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쪽의 왕과 수도를 지키고, 반대로 적의 왕과 수도를 함락시키는 게 바로 승리다.
그런데 그건 인간의 시각에서 본 인간의 전쟁이었다.
인간이 아닌 자가 생각하는 전쟁의 승리란 개념이 좀 다르다.
가미긴은 중부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전쟁 한복판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생각해 보았다.
냉정히 자신이 얻어야 할 것을 가늠해 보았다.
그렇게 따져보자면 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드레퓨스의 수도나 인간들의 안위가 아니었다.
왕이 중요할 건 더더욱 없었다.
그 왕이란 것도 인간들의 왕이지 가미긴의 왕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루시드에게 이익이 되는 일.
가미긴과 이노센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지금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거야 두말할 것도 없이 세인이었다.
모든 게 이노센트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마당에 변수라고는 오로지 글리터 뿐이었고, 글리터의 핵심이 바로 세인이었다.
드레퓨스의 반이 수집한 자료를 읽어보았던 가미긴은 세인에 대해 확신이 들었다.
‘이 녀석을 죽이면 인간 중에서는 우리에게 대항할 자가 없다.’
세인을 꼭 제거해야 한다고 말이다.
어차피 루시드를 만나면 세인은 기필코 질 것이지만, 당연히 가미긴의 입장에서는 그 전에 처리하고 싶었다.
세인이 루시드에게 접근하려면 그동안 죽어 나갈 이노센트의 숫자가 적지 않을 것이었다.
엄청난 피해를 보고 세인이 죽는다면 가미긴의 존재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이다.
그의 임무는 세인을 처치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가미긴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객관적으로 본 세인은 너무 불가사의할 정도로 강했다.
특히나 저돌적으로 돌파해 오는 것에 대해 가미긴은 의구심을 가졌다.
‘뭔가 믿는 게 있는 걸까?’
저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진해 오는 것은 너무 무모해 보였다.
자만심에 빠진 것일까?
그래서 저렇게 미친 황소처럼 달려오는 건가?
그 시점에서 가미긴은 반이 수집하고 남긴 보고서들을 접었다.
그리고 바이칼이 하는 수작을 지켜보았다.
살려준 은혜도 모르고 세인과 내통하려는 바이칼을 내버려 둔 것은 가미긴도 얻을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가미긴이 눈감아준 바이칼의 수작에 의해 글리터의 기사인 질리언이 수도로 왔다.
가미긴이 생각하기에 이런 중요한 일이 엮인 장소에 단신으로 올 정도라면 분명 세인의 측근이란 소리였다.
게다가 세인은 점점 수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글리터의 기사가 품으로 들어오자, 가미긴은 그를 죽여버렸고 냉큼 마경 안으로 삼켜 버렸다.
왜 세인이 저렇게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건지, 뭔가 믿고 있는 게 존재하는지 가미긴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질리언을 고문하고 다시 고문했다.
그 외에도 세인이 왜 저렇게 강한 것인지, 또는 쓸만한 정보가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야말로 쉴 틈을 주지 않고 질리언의 영혼을 쥐어짠 것이다.
질리언과 연결된 가미긴은 결국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 정보는 다른 궁금증들을 침몰시켜버릴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게다가 가미긴의 입장에서는 너무 뜬금이 없었다.
질리언을 통해 세인의 뒤를 캐다 보니 예상보다 아주 큰 게 걸려버린 것이다.
“루시드님? 뭐야? 루시드님을 알아? 그리고 루시드님을 해치울 자신이 있다? 참말이냐?”
가미긴에게는 일단 글리터쪽에서 루시드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사실보다, 루시드를 해치울 방법이 있다는 게 너무나도 궁금했다.
이미 루시드라는 이름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정보의 신빙성은 문제가 없어 보였다.
당연히 가미긴은 애가 닳았다.
“뭐지? 대체 뭘까? 녀석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 거지? 이쪽의 우두머리를 해치울 수 있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더 자세히 알고 싶지만 질리언이 응하지 않는다.
마경에 가두어 놓고 영혼을 쥐어짠다고 해서 모든 정보를 쉽게 수거할 수 있었다면, 세상은 이미 괴물들의 차지였을 것이다.
가미긴의 기술도 결국 만능은 아니었다.
가미긴은 억지로 질리언의 빗장을 비틀어 벗겨내었다.
그리고 전보다 더 집요하게 괴롭히며 질리언과 깊숙한 연결을 시도했다.
그건 괴물이 인간에게 가하는 일방통행적인 학대였다.
그 과정에서 질리언의 영혼은 수십 번 으스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파고들어 보았지만, 더 이상의 추출은 실패하고야 만다.
마지막 정보만큼은 내줄 수 없다고 마음먹은 질리언이 필사적으로 저항했기 때문일까?
가미긴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질리언이 모른다고 생각하는 게 타당했다.
평소 가미긴은 극도의 고통 앞에서 불굴을 유지하는 인간은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북쪽의 글리터는 루시드에 대해 알고 있다.
그리고 루시드를 처리할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미긴에게는 그 내용을 알아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런데 누구에게서 정보를 추출하지?’
질리언에게 뽑아낼 수 있는 것은 다 뽑아낸 것만 같았다.
그러니 어디선가에서 더 정보를 모아야 하는데, 당장 방법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루시드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 있을까?
세인의 측근들?
기사가 한둘도 아닐 텐데 어떻게 측근을 가려내지?
그리고 이렇게 중요한 정보를 많은 사람과 공유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
글리터에 기사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중에서 어떻게 골라낼 거냔 말이다.
게다가 접근도 문제였다.
자꾸 이쪽에서 접촉한다는 것을 알면 저쪽도 바보가 아닌 이상 대비를 하겠지.
경계가 강화되면 보안은 더욱 굳어질 텐데, 그렇게 생각한 가미긴은 골치가 아파졌다.
그가 고뇌하는 시간에도 글리터는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도 일직선으로 말이다.
지도상에서 적군의 위치를 바라보던 가미긴은 생각을 달리했다.
반대로, 아주 쉽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좀 더 간단하게 일을 진행해 보면 어떨까?
아주 순수하게 말이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그가 꼭 알고 싶은 정보가 있는데.
정작 누가 그걸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가 정확히 누구인지를 모른다면.”
가미긴은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
“전부에게 물어보면 된다.”
왜냐하면, 전부 안에는 분명 중요한 정보를 쥐고 있는 ‘누군가’도 속할 테니까.
그물을 던져 전부 죽여버리면 된다.
그렇게 전부에게 물어보자.
그 과정에서 드레퓨스의 수도가 절단나든, 뭐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가미긴은 전쟁을 좌우하는 중요한 열쇠를 얻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 * *
산이 가라앉은 지역은 보는 사람이 참혹함을 느낄 정도였다.
간신히 영역권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사색이 되어 뒤로 물러나기 바빴다.
모두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 지역은 뜨거운 열기를 뿜으며 쉴 새 없이 아래로 녹아들었다.
그 현상은 주변인의 접근을 쉽게 허용치 않았다.
마치 폭포가 생긴 듯 거대한 구덩이가 파여진 곳에서 물줄기 대신 안개와 붉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수증기가 주변을 자욱하게 뒤덮었을 때 수많은 사람이 외치는 비명이 한순간 일대를 뒤흔들어 놓았다.
주변의 생존자들은 두 손으로 자신의 귀를 막은 채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이 목소리는 대체 뭐야? 생존자가 있는 거야?”
“그럴 리가, 산이 내려앉았어. 그런 판국에 누가 살아날 수 있겠어?”
“지금 이 목소리들이 안 들려?”
수많은 사람을 집어삼킨 저곳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일부 레인저들이 수색을 논의해 보았지만, 아직도 뜨거운 수증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게 눈에 확연히 잡혔다.
가까이 갔다간 순식간에 살이 익어버릴지도 몰랐다.
그때 가장 연장자인 레인저가 손가락으로 내려앉은 지대의 한쪽을 가리켰다.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어 수증기가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살아남은 귀족에게 가서 이야기를 해보게. 밑에서 저런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면 일단 확인은 해야 할 것 아닌가. 수색 임무를 우리가 맡겠다고 전하고, 물론 생환은… 장담할 수 없겠지.”
간신히 목숨을 건진 인간들이 이런 의논을 하는 동안, 가미긴은 자신이 만든 끔찍한 참상 속에 들어섰다.
애초에 그는 바이칼이 몸을 일으킨 왕성 쪽에 있지 않았다.
진작 성에서 벗어나 연합군의 배후에 잠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인이 바이칼을 막지 않으면, 바이칼은 주변을 초토화할 거야. 성벽을 넘은 다음에 닥치는 대로 공격을 퍼부을 테니까. 그러니 놈의 입장에서는 남은 병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바이칼을 상대하는데 전념하겠지. 당장 여기로 오고 싶다고 한들, 주의를 금방 이곳으로 돌릴 수 있을 턱이 없다.”
함정이 보기 좋게 성공한 것을 보았음에도 그의 얼굴에는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
여기에서 원하던 결실을 얻어내야 비로소 그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 수 있을 터였다.
심하게 기울어진 경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는 가미긴의 몸이 뜨거운 수증기에 뒤덮였다.
하지만 가미긴은 아무 이상도 없었다.
곳곳에 고여 있는 붉은 물은 부글부글 소리를 내며 거품을 보이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 조금 전에 죽은 희생자들이 벽면과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괴로운 표정을 만들어 보인다.
데드 페이스.
강제로 땅에 박제된 그들은 얼굴만을 드러내놓고 채찍만을 기다리는 존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끔찍하고 검은 얼굴들이 가미긴의 주위를 가득 채웠다.
면과 맞닿은 면마다 나타나 한껏 입을 벌렸다.
입안에서는 쉴 새 없이 고통의 합창이 흘러나왔고, 그 파동이 주변을 울리는 것도 모자라 가미긴의 몸까지 뒤흔들어 놓았다.
그들의 울음이 절벽에 부딪혀 메아리가 되었다가, 절벽의 틈새로 끓어오르는 수증기와 뒤섞였다.
아래로 내려가는 가미긴은 육신이 불타 없어진 그들의 좌절과 원한을 가슴 깊이 공감하고 이해했다.
그리고 더욱 괴로워하고 좌절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야 고문을 통해 정신을 흔들기도 쉬울 테니 말이다.
바닥에 내려서자 질퍽한 땅이 가미긴의 발을 맞이했다.
땅의 색은 석류의 내부처럼 붉디붉었다.
“너희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피로 산과 땅을 녹였다. 그러니 나의 그런 노력을 봐서라도 너희들은 내게 진실을 이야기해야 한다. 나는 너희들의 비밀을 들을 권리가 있다. 누가 내가 알고 싶은 비밀을 품고 있지? 어서 나에게 고백해라.”
마치 가미긴의 말에 호응하듯이 절벽 전체가 일렁였다.
아니, 그건 호응이 아니라 원한과 분노였다.
지금 가미긴의 힘에 의해 붙잡힌 영혼들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을 공유하고 있었다.
점점 가파르게 치닫는 고통은 그들의 눈과 입을 크게 벌리게끔 했다.
거기에서 흘러나오던 피눈물이 점점 굵어졌고, 굵은 줄기가 되어 아래로 흘렀다.
붉은 액체는 붉은 땅을 만나 그 위로 차올랐다.
삽시간에 가미긴의 무릎까지 올라온 붉은 피는 희생자들의 절망이었다.
하지만 가미긴은 그들의 감정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말해. 어서 말하라고. 루시드. 그분에 대한 정보를 아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굴레에서 풀어 주겠다. 약속한다. 그러니 어서 말해라.”
땅보다 더욱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 가미긴은 사방을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데드 페이스들을 거세게 쥐어짰다.
그의 그런 만행에 비명의 영역이 확장되었다.
이제 계곡은 원한에 사무친 자들이 곡성을 가두는 게 힘겨워, 쉴 새 없이 삐걱거리는 듯싶었다.
“어서 말해! 말하라고! 이 못난이들아!”
가미긴은 괴로워하는 데드 페이스의 신음과 울음을 음미하려는 듯 상의를 벗어 던졌다.
마치 산림욕을 위해 나체로 돌아다니는 사람처럼 말이다.
따가운 비명이 바늘 끝처럼 그의 피부를 찔러댔다.
그는 그 촉각을 즐기듯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고통에 울부짖는 데드 페이스들의 자백을 들으려는 듯, 가미긴은 눈과 입에서 피를 벌컥벌컥 토해내는 검은 얼굴을 가까이에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코를 벌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마지막으로 귀를 가져다 댔다.
죽음이 못 박힌 골짜기는 가미긴의 놀이터였다.
또한 그의 사적인 고문 장소이기도 했다.
고통의 물결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전류처럼 사방을 휩쓸고 다시 휩쓸었다.
뜨거운 열기조차 그 흐름에 몸을 움츠리며 한쪽으로 물러날 정도였다.
수증기가 걷히니 피로 물든 골짜기가 물결치는 게 더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으아악! 아악!”
열기가 진정되자 수색을 하러 절벽에 줄을 드리웠던 레인저들은 큰 낭패를 보고 말았다.
수많은 얼굴에 산채로 뜯어 먹힌 것이다.
장식으로 붙어 있는 얼굴들이 아니었으니 산자의 살 냄새를 맡고 흥분하는 게 당했다.
어떤 데드 페이스는 줄이 자신의 얼굴을 지나가는데도 잠자코 있다가, 레인저의 몸이 얼굴에 닿으면 마구 이를 드러냈다.
그 바람에 레인저의 몸에 상처가 나서 피가 흘러내리면 혀를 내밀고 안간힘을 썼다.
레인저의 피를 마시기 위해서 말이다.
타인의 피로 세수를 한 검은 얼굴들이 기쁨에 울었다.
암야. 혹은 빛 한 점 없는 어두운 바다.
고통의 산사태 속에서 레인저의 피를 통해 조금이나마 쾌락을 맛본 것이다.
대비적인 그 한 조각의 쾌락은 그들에게 있어 너무나도 자극적이었다.
마치 수도사가 탐하지 말아야 할 것을 탐하고 희열에 몸을 떠는 것처럼, 혀를 위쪽으로 올려 인중을 핥는 데드 페이스가 더 많은 피를 갈구했다.
그러다가 가미긴이 주는 가혹한 고통에 눈을 홉뜨고 부들거렸다.
그들의 입에는 게거품과 피가 섞인 배설물이 가득했다.
“어디야? 누가 알고 있지? 네놈이냐? 아니면 네놈이냐? 정보를 대라!”
밑에 있는 가미긴은 레인저들의 죽음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위에서 몇 명이나 죽어 나가든, 그는 고문하느라 아주 바빴다.
가미긴은 두 손으로 검은 얼굴들을 사정없이 할퀴며 으르렁거렸다.
이 순간 가미긴은 검은 얼굴들의 왕이었고 철저히 질이 나쁜 폭력배였다.
그는 검은 얼굴에 침을 뱉고, 쉴 새 없이 욕설을 퍼부었다.
고통을 탐하는 그의 척추가 활처럼 휘어지며 움직였다.
그 역동성 아래에서 인내가 낱낱이 해부된 노예들은 결국,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중요한 사실을 불어버리고야 만다.
다시 호통을 치려던 가미긴이 멈칫한 것도 바로 그때이다.
갑자기 그가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무릎 아래에서 출렁이는 물이 그의 뒤에서 하얀 흐름을 만들어 냈다.
그 흐름은 계곡의 한쪽 벽면으로 이어졌다.
입을 뻐끔거리는 데드 페이스 앞에 도착한 그는, 허겁지겁 자신의 귀를 벽에 붙어 있는 얼굴에 가져다 댔다.
그런데 기밀을 발설하는 검은 얼굴의 목소리가, 주변의 데드 페이스들의 목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가미긴은 신경질적으로 주변의 얼굴들을 움켜쥐고 을러대듯이 흔들어 댔다.
“조용히 해! 다 죽여 버리기 전에!”
그렇게 하고 나서야 주변이 잠잠해졌고, 가미긴의 귀에 비밀을 속삭이는 목소리가 뚜렷해졌다.
“….”
비밀을 듣는 가미긴의 얼굴은 어느새 검게 변해 있었다.
상대와 깊이 연결되기 위해 동기화를 한 까닭이다.
떡을 주무르듯이 근육이 출렁대던 가미긴의 얼굴은 세인이 아는 누군가의 모습이 되었다.
그 얼굴은 계속되는 고통에 피눈물을 흘리며 혀를 내밀었다 집어넣기를 반복했다.
그런 더이스의 얼굴을 재촉한 것은 가미긴의 손가락이었다.
두 개의 검지가 눈 쪽을 파고들자 더이스의 데드 페이스는 새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완전한 항복을 선언했다.
더이스가 피에 젖은 입술을 달싹인다.
글리터가 꼭꼭 숨겨두고 있던 최후의 보루가 폭로되는 순간이었다.
세인의 측근에게 비밀을 전해 들은 가미긴은 잠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검은 짐승들의 고통에 찬 오페라를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가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에 비명은 점점 잦아들었다.
가미긴이 고문을 멈췄기 때문이다.
가미긴은 이제 데드 페이스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는 지금 알아낸 비밀만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했다.
홀로 서 있는 그가 한 사람의 이름을 또박또박 발음했다.
“빈?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