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7
& 전쟁 속에서 (4)
글리터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는 것은 외부뿐만이 아니었다.
대군이 움직이자 많은 사람이 감탄했고 흔들리기도 했다.
용병들은 그중 후자에 속하는 경우였다.
넓고 호화로운 방.
나이든 용병이 한 명 앉아 있었다.
얼굴을 가로지르는 검상을 가지고 있는 그는 한눈에 보기에도 백전노장처럼 보였다.
나이에 비해 아직 현역인 듯 팔의 근육은 울퉁불퉁했고 분위기도 잘 정제되어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그는 작은 금고를 여는 중이었다.
삐걱 소리를 내며 열린 금고 안에서는 종이 뭉치가 나왔는데 쇠줄로 둘려있었다.
남자는 그 쇠줄을 걷어내지 않고 그대로 불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뭉치가 타면서 검은 연기를 뿜었다.
남자는 가라앉은 눈빛으로 종이 뭉치를 바라보았다.
뭉치가 다 타기도 전에 쾅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마티! 뭘 하는 거예요? 지금 밖은 난리란 말입니다!”
문을 거칠게 밀어젖히며 나타난 것은 까무잡잡한 단신의 청년이었다.
용병단에서 단검을 잘 쓰기로 유명한 청년은 용병 단장인 마티의 오른팔이나 다름없었다.
“왜 이리 호들갑이냐?”
“지금 불장난이나 하고 있을 때에요? 그리고 애들은 왜 무장시킨 겁니까? 아무리 우리가 막가는 놈들이라지만 군대가 쫙 깔렸는데….”
말을 쏟아내던 청년은 마티의 눈빛을 받고 몸을 움찔거렸다.
착 가라앉은 마티의 눈빛을 보니 흥분이 절로 진정되었다.
“내가 지금 태우고 있는 게 뭐 같으냐?”
“도박 차용증이라도 되는 거예요?”
청년의 말에 피식 웃어 보인 마티는 눈짓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그러자 청년은 이제 흥분을 완전히 갈무리하고 의자에 앉았다.
그 앞에서 마티는 다시 입을 열었다.
“국경 수비대와 약속을 주고받았던 문서들이다. 나는 때가 오면 드레퓨스로 이동하려고 했다. 너희들과 함께 말이다. 객관적으로 봐도 드레퓨스가 승산이 높으니까. 이왕 고용되는 것이라면 승자의 편에 서야지. 그게 용병의 정론이잖아.”
청년은 마티의 말에 놀라지 않았다.
그들은 기사같이 의무에 얽매인 몸이 아니었고, 병사들처럼 땅에 묶인 자들도 아니었다.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게 욕을 얻어먹을지언정 엄청난 치부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드레퓨스가 몬스터와 관계있는 나라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결정이 달랐겠지만, 용병들이 그걸 알 리가 만무했다.
“그런데 그 아까운 걸 지금 왜 태우는 겁니까?”
청년의 말에 마티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이 계획을 세운 건 글리터의 여왕 치세 아래였어.”
“지금도 여왕은 자리에 앉아 있잖아요.”
“대신 이상한 마족 놈이 나타났지. 보니까 선봉장 정도가 아닌 것 같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그놈이 다 망쳐 버렸어.”
청년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방문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문을 다급하게 닫았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 그는 마티에게 짜증 냈다.
“미쳤어요? 당신은 몰라도 나는 살아갈 앞날이 창창하단 말입니다. 물론 헛소문이겠지만 그가 여왕의 남편이라는 소문도 있어요. 여기에서 놈놈 거리면 어떻게 합니까?”
“젊은 놈이 담도 작기는.”
“밤말은 새가 듣고 낮말은 쥐가 듣는다잖아요.”
마티는 청년보고 말이 틀렸다고 말하는 대신 이제 재만 남은 책상을 내려다보았다.
“저놈은 미친놈이야. 그것도 한발 빠른 미친놈이지. 용병 단장들에게 공문 형식으로 의뢰를 해왔다. 공손한 글이지만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내용이었어. 우리에게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의뢰를 던진 거야.”
“드레퓨스를 치러 가는데 함께 하라는 겁니까?”
이어지는 마티의 말은 의외였다.
“아니. 우리는 북부 연방 중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나라로 간다.”
청년은 잠시 갸웃거리다가 질문을 던졌다.
“대체 왜요?”
“잘 포장된 문구를 빼고 핵심만 말하자면, 우린 그곳 영주들을 공격하는 거야. 재물과 식량을 뜯어내서 전쟁터로 보내는 일을 하게 된 거지. 중간에 달아날 구멍도 없어. 헌터들도 함께 하기로 했거든. 말이 함께 하는 거지 그들은 우리의 감시인들이다. 우리는 글리터의 우방국에 침입해서 종이를 들이밀고, 그것에 응하지 않으면 칼을 뽑아 들어야 해.”
청년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순간 너무나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왜 용병들이 그런 짓을 해야 하며 무슨 권리로 그럴 수 있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진짜 급박한 문제는 따로 있다.
“거기 군대는 우리가 가면 팔짱 끼고 논답니까?”
“거기 군대는 원래대로라면 원정에 참여해야 하지. 그러니 거기에 없어야 해. 따지자면 그렇게 되는 거지.”
정신이 나간 듯 실실 웃는 마티 앞에서 청년은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화가 난듯한 어투로 말을 쏟아냈다.
“미쳤어요? 가면 다 죽을 수도 있어요. 물론 우리들은 전쟁에 특화되어 있죠. 동료들도 많고요. 하지만 영지의 정규군과 맞붙는다면? 그들이 바보도 아니고 미쳤다고 순순히 재물을 내주겠어요? 정말 이대로 죽으러 갈 거예요?”
그러다가 밖의 동료들을 무장시켰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 청년이 입맛을 다셨다.
그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방에 글리터의 군대가 쫙 깔린 마당이다.
무서운 것은 이게 글리터의 모든 전력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세계수 지역이 글리터 친화적이라는 것은 세상에 비밀도 아니었다.
드워프들도 마찬가지인데 여기에서 그들을 보지도 못했다.
게다가 야만인들조차 글리터와 교류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트리엔의 왕이나 에릭센 왕 같은 경우, 아예 친 글리터파나 다름없었다.
생각해 보니까 북부는 사방이 다 글리터의 편이다.
애매한 나라들은 역시나 애매한 포지션인 용병들과 얼굴을 붉힐 작정이고 말이다.
용병들도 물론 잘 나간다.
무장 세력이니까 보통 때는 어깨에 힘도 주고 으스대며 다닌다.
그런데 그것도 상대적인 것이었다.
일반인들 수준에서나 깡패지.
미치지 않고서야 저런 군대를 가진 나라에 뭘 어쩐단 말인가?
미쳤다 치고 글리터에 대들어서 전투를 벌인다고 해도 그것은 싸움이 아니었다.
용병들이 일방적으로 사냥당할 것이다.
“모르겠어? 우린 선택의 여지가 없어. 앞으로 가게 되는 곳이 사지가 될지 아닐지는 아무도 몰라. 그건 우리를 맞이할 사람들의 태도에 달려있으니까 말이야. 그게 불확실한 점이라면 이제 확실한 걸 생각해봐. 이런 엽기적인 짓도 시키는 마족이야. 그런 일을 시킬 수 있는 이유는 엄청난 힘을 가졌기 때문이고 말이야. 그 확실성이 우리 뒤에서 칼을 겨누고 있다.”
가끔 역사에서 욕을 먹는 폭군이 군비를 충당하느라, 무리하게 세금을 거두고 영주들을 쥐어짤 때도 있다.
그런데 그건 당연히 자국 내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외국에 간섭하는 것은 그게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처음부터 그럴 권리나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대체 무슨 권리로 다른 나라에 쳐들어가 재물을 요구한단 말인가?
그건 내정 간섭 따위가 아니었다.
어떻게 간신히 포장한다 해도 본질은 강도질이다.
거의 시비를 걸며 싸우자는 이야기였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물으면 보통 귀족들은 기가 차서 헛웃음을 흘릴 것이다.
물론 세인은 공동으로 적을 맞서기 위해 만든 조약 같은 것을 근거로 내세우겠지만, 무장병력이 남의 영토에 침입해 난리를 피우는 것은 드레퓨스나 할 짓이었다.
마티는 검지로 천장을 가리켰다.
“우리 위에 앉아 있는 저 마족은 후안무치한 괴물이야. 그는 굉장히 폭력적이고 염치를 몰라. 법도를 가리지 않는다. 아마 글리터의 여왕이 그를 선택한 이유는 귀족적 이여서가 아니라 이런 면을 보았기 때문일 거야. 저런 자는 자존심도 긍지도 없다. 우리와 같은 족속이란 소리지. 그리고 그래서 무서운 거야.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테니까.”
“….”
“더더욱 웃긴 사실은 헌터 타워의 주인조차 저놈의 편이라는 것이다. 저 미친놈의 편이 분명하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안채로 초대했겠나? 글리터 여왕에 대한 대우라기에는 너무 지나쳐. 머독은 아무나 내부로 초대하지 않는다고. 그는 의심이 많은 독사 같은 인물이거든.”
“헌터들이 다 그렇죠. 게다가 끼리끼리 논다고, 같은 마족이니까요. 그런데 진짜 응할 거예요?”
“지금까지 뭘 들었나?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수락과 거절을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명령이라니까? 우리가 도주하거나 반발했다가 본보기로 잡아서 처형하면? 몬먼드의 용병들 꼴이 나는 거야.”
마티는 어쩌면 글리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연방국을 쳐내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대군을 일으킨 김에 눈에 거슬리는 것은 다 쓸어버리려는 것일지도 몰랐다.
물론 글리터의 군대를 보지 못했다면 코웃음을 칠 내용이겠지만, 이렇게 직접 군대를 보게 되니 그게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다.
누가 봐도 정예병으로 가득 찬 군대였다.
훈련 상태도 좋아 보였다.
그건 눈빛과 제식 상태만 봐도 느낌이 온다.
장비도 놀라울 정도로 좋았다.
그리고 기사들은 멀리에서 봐도 여간내기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제대로 검술과 전술을 훈련받은 기사들은 몸짓과 흘러나오는 여유에서 남다르기 마련이다.
저런 군대를 가진 나라라면 무엇이든 꿈꿀 수 있었다.
드레퓨스라는 강적이 있다 해도 승리를 노려볼 수 있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글리터는 생각보다 무서운 저력을 숨긴 괴물이었다.
왜 타국이 글리터에게 평소 설설 기는지 알 수가 있었다.
이건 그런 차원이었다.
일개 용병 나부랭이들이 반발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헌터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길 오히려 바라야겠군요. 우리도 모으면 숫자가 꽤 되지만 여러 나라의 영지에 침입할 정도는 아니에요. 그건 미친 짓이라고요. 차라리 저 헌터 놈들이 같이 일을 도모한다면 모를까.”
“어쨌든 피는 흐른다고 본다. 공적 취급을 당할 수도 있어. 광기의 폭풍 후에 어느 쪽이 더 많이 살아서 일어나 있느냐가 문제지. 설마 저렇게 미친놈이 군대를 통솔하게 될 줄 몰랐어. 누구라도 여왕이 저런 놈에게 군대를 맡긴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거야. 이렇게 엽기적인 일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벌일 수 있을 줄이야…. 우리를 이용하는 이런 방식은 글리터의 여왕답지 않아. 분명 저놈 짓이야. 우릴 미친 상황으로 밀어 넣은 것은 저 미친놈 때문이라고.”
“갑자기 술이 간절하네요. 제기랄.”
* * *
글리터의 군대가 헌터타워에서 보낸 시간은 채 사흘도 되지 않았다.
땅에 발만 대었다가 바로 떠난 형국이다.
그대로 멈추는 일 없이 남쪽으로 직진한 군대는 국경 지역에 들어서게 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는 전쟁 지역으로 말이다.
북부 국경수비대의 책임자가 세인을 보러 달려 나왔지만, 글리터의 군대는 거기에서 머무르지 않았다.
휴식 없이 다짜고짜 건너편으로 밀고 들어간 것이다.
안 그래도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글리터의 군대를 보며 손톱을 물어뜯고 있던 드레퓨스 수비대였다.
마주치자마자 그대로 밀고 들어오는 글리터의 대군 때문에, 드레퓨스의 국경 수비대는 큰 낭패를 봐야만 했다.
화살을 날리고 방패를 들어봐야, 코끼리 앞의 개미 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윽고 글리터의 압도적인 힘이, 드레퓨스 수비대라는 미약한 저항을 짓밟으며 몰살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멀리에서 모든 걸 지켜보는 북부 국경 수비대와 몇 개 지원 부대는 이걸 전투라고 봐야 하는지조차 의문이었다.
“파도처럼 몰려와 남김없이 쓸어버리는군.”
한 사람의 목격담이었다.
게다가 이건 식후 운동 거리도 안 된다는 듯, 글리터의 군대는 승리 후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이동을 고집했다.
몸집을 떠나 전투가 끝나면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지나쳤다는 뜻은 그럴 필요도 없었다는 뜻이다.
전혀 부담이 안 되니까 말이다.
“이런 대군이면 균형 따위는 신경 쓸 이유가 없겠군요.”
부관의 말에 멀어지는 글리터의 군대를 바라보고 있던 총 책임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북부와 드레퓨스는 물과 기름막처럼 서로를 밀어내며 아슬아슬한 경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드레퓨스가 수비를 굳히기로 한 것에 대한 결과지만, 어느 한쪽이 침투하기에 부담스러운 이유가 있었다.
먼저 찔러 나가 크게 균형을 깨트리는 쪽으로 전력이 집중된다 치면, 거기에 주둔중인 병력은 강한 반발을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글리터가 그 균형을 깨고 전진해 버렸다.
멀어지는 군대를 바라보던 사람들은 군대가 이동한 쪽에서 검은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 먹구름은 모두에게, 아슬아슬한 균형이 붕괴되고 본격적으로 피가 흐르는 순간이 성큼 다가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흘렀던 피가 호수를 채울 정도가 안되었다면, 이제부터 흐를 피는 강을 넘어 바다를 연상케 할 것이다.
한편 호화로운 마차에 타고 있는 세인은 방금 거둔 승리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승리라고 해봐야 작은 승리일 뿐이다.
그 후에 이어지는 자잘한 전투에서도 글리터는 막강한 화력으로 드레퓨스의 병력을 깔아뭉갰다.
높은 초소가 보이면 발견 즉시 무너뜨렸고, 도망가는 부대가 보이면 몇 개의 부대를 보내 죽음을 선물해 주었다.
형세가 불리한 걸 알고 항복하는 자가 있어도, 글리터의 기사들은 그들을 포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드레퓨스의 군인들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죽음뿐이었다.
그렇게 몇 개의 주둔지가 박살이 났다.
글리터라는 수레바퀴에 형체도 남기지 않고 뭉개진 것이다.
그리고 세인이 생각하기에, 조금이라도 전투다운 전투라 평할 수 있는 곳에 도착한 건 그 후로 일주일 후였다.
붉은 땅이 넓게 펼쳐진 지역의 이름은 미소스였다.
글리터의 군대는 저녁 즈음에 그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늦은 시각을 의식했는지 부랴부랴 주둔지를 형성하고 밥을 지었다.
그런 그들의 전방에 있는 드레퓨스의 수비대 쪽에서는 드디어 자신들의 차례가 왔다고 생각하니, 글리터에서 밥 짓는 연기만 보고도 간담이 서늘했을 것이다.
글리터의 대군과 수비대의 규모를 보자면 비교 자체가 불가했다.
물론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방어가 시작되는 곳이라 수비대의 크기가 작은 것은 아니었다.
높은 언덕에 자리를 잡은 세인은, 커다란 돌 위로 올라가 드레퓨스의 수비대 쪽을 바라보았다.
붉은 땅 위로 크고 노란 담이 옆으로 줄을 이루고 있었다.
세인의 위치에서는 보이는 담 너머의 내부도 관찰할 수 있었다.
담은 한 겹이 아니라 여러 층이었고,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담들의 두께는 제각각이었다.
어둠이 내려앉는 담벼락을 따라 분주히 움직이는 횃불들이, 서로를 재촉하듯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궁수들을 배치하고 기름물 같은 것을 준비하고 있겠지.’
이제 세인은 담 너머 높게 솟아오른 뾰족한 건물을 바라보았다.
유독 높은 건물의 끝을 완전히 보기 위해서는 이쪽에서도 턱을 약간 치켜 올려야 할 정도였다.
“저건 뭐지? 수비대의 책임자가 있는 곳인가?”
세인이 바위 밑에 서 있는 맥에게 묻자, 맥이 재빨리 대답했다.
“기도원입니다.”
“기도원?”
의외의 말에 세인이 ‘드레퓨스의 국교가 뭐지?’라는 생각을 했을 때였다.
맥과 나란히 서 있는 행크가 부연설명을 했다.
“떠나셨을 때 드레퓨스에서 왕을 숭배하는 종교가 생겨났습니다. 이미 보고서로 보셨을 테지만, 태양 결사대라는 군대가 저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저건 반을 위해 만들어진 건물인가?”
“예. 처음에는 그랬습니다만 지금은 다른 주인을 위해 기도하겠죠. 저기에서 말하는 태양신이란 결국 드레퓨스의 왕좌니까요.”
그 말을 들은 세인은 뾰족한 건물에서 신경을 껐다.
별 시원찮은 이유로 지어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수비대의 병력이 적지 않아 보였다.
단순히 계산해도 안을 채운 병력이 이천은 넘을 것이다.
게다가 만약 다른 수비대에서 지원군이 몰려오면 배로 늘어날 수도 있었다.
이쪽이 수비대 거점 중 가장 큰 곳이지만 작은 곳에서 도움을 주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그래도 그건 일반적인 기준에서 만만치 않다는 뜻이었고, 이렇게 대군이 몰려온 마당에 수비대가 크게 부담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수비대 밖을 가득 채운 글리터가 긴장해야 할 상황은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 세인이 생각하는 전투다운 전투는, 드레퓨스의 제대로 된 성을 만나야 벌어질 것이었다.
그렇지 않은 이상 저곳은 어렵지 않게 거쳐 가는 곳에 불과하다.
‘관찰하기 좋은 기회겠어.’
돌아서는 세인의 옆에서 맥이 물었다.
“전투는 언제 시작하실 생각입니까?”
“오늘 새벽이다.”
“준비시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