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왕 마검의 주인-255화 (255/307)

# 255

& 전쟁 속에서 (2)

세인은 울프크릭을 다시 불렀다.

그러자 울프크릭은 투덜대면서도 요청에 응했다.

그리고 세인의 이야기를 듣더니 얼굴을 찡그렸다.

“뭐야? 이젠 창문까지 만들라고?”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만들라는 게 아냐. 창문 만드는 법을 알려달라는 거지.”

울프크릭은 오랜 시간 동안 글리터의 동반자로서, 글리터의 곁을 지켜 왔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드워프들이 다 그랬다.

엘프들도 그렇지만 드워프들도 글리터와 융화된 지 오래였다.

그래서 세인은 편하게 말했고 울프크릭도 상대가 상대인지라 편하게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너무 편해서 짜증 내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걸 왜 나에게 묻냐고, 드워프가 여기에서 나 혼자야?”

“내가 창문을 만든다는 걸 보통 목수에게 알릴 수 없잖아. 그러면 그 계통에서 잘 아는 드워프에게 부탁한다는 것으로 생각이 미치는데, 상대 드워프도 보통 드워프여서는 안되지.”

울프크릭은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재수 없지만 의외로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하긴 전쟁 중이었다.

창문을 만드는 군주의 이미지 따위는 이런 시기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뭐 입만 놀리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지. 그런데 난 우리가 전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줄 알았는데. 그럴 줄 알고 부리나케 달려온 거라고. 엄청 긴장해서 말이야.”

세인은 울프크릭의 위아래를 바라보았다.

후줄근한 셔츠에 지저분한 멜빵바지와 발가락이 드러나는 슬리퍼를 신고 있는 그가 긴장감 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어쨌든 고개를 끄덕였다.

세리스의 집무실로 가서 창문을 뜯어낼 때까지도, 세인은 울프크릭에게 참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러니 세리스의 책상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있는 울프크릭 쪽이 먼저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드워프들의 힘이 필요하지 않나?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난 그게 용건일 줄 알았는데.”

단도직입적인 말 앞에서도 세인은 무표정을 유지했다.

그는 맨손으로 벽에 붙은 창틀을 떼어 내는 중이었다.

이 소란을 지금 세리스가 알 수는 없었다.

그녀의 집무실은 한두 개가 아니었고 하인들의 입단속도 미리 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힘이 문제라면, 그건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해.”

울프크릭은 세인의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재수 없다는 표정을 마음껏 지을 수 있었다.

“그거 좋은 소식이군. 전보다 더 강해졌나 봐? 전에도 끔찍할 정도였는데 말이야. 하지만 전쟁은 힘만으로 하는 게 아니지. 글리터를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나? 꽤 오랫동안 이곳과 단절되어 있었잖아? 그동안 어딜 갔다 온 거지? 난 내내 그게 궁금했어. 그리고 더 끔찍했던 건 자네 주위의 사람 중 아무도 자네의 목적지를 모르더군. 더더욱 끔찍했던 건 다들 그걸 알아보려 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야.”

“질문이 한두 개가 아니잖아.”

그러면서 세인은 어디를 갔었는지에 대해 함구했다.

그 후로는 울프크릭의 조언에 따라 창문을 만들 뿐이었다.

그의 입이 다시 열린 건 창문이 어느 정도 틀을 갖췄을 때였다.

벽을 부수고 다시 만든 창문은 더욱 커다랗게 자리 잡았다.

“난 드워프들이 이곳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죽이는 것이라면 자신 있어. 하지만 이 전쟁은 누굴 더 많이 죽이느냐가 승리를 판가름하는 전쟁이 아니야. 적들을 다 죽이고 우리 쪽은 가능한 한 많이 살아남아야 하지. 드워프들이 살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건 결국 같이 있는 글리터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내 말이 틀렸나?”

망치질 소리가 잠시 세인의 말을 끊었다.

그 사이에 울프크릭의 부정은 없었다.

“싸움을 하려면 배후가 든든해야 해. 번우드와 드워프들의 존재는 그걸 약속하지.”

글리터 쪽에서는 연이은 회의를 할 때 드워프들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래서 드워프들도 자유롭게 회의장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울프크릭은 그래서 세인이 직접 전투에 참여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세인이 날뛰는 모습을 상상하니 소름이 돋았다.

‘드레퓨스는 자신들의 운명을 알까? 이제 곧 막을 수 없는 게 찾아갈 텐데 말이야. 어차피 마주쳐야 하는 게 피할 수 없는 재앙이라면 차라리 태풍이 낫겠다.’

“그런데 너무 뒤늦게 물어보는 감이 없잖아 있는데, 지금 대체 뭘 하는 거야?”

“창문을 만들고 있잖아. 당신은 거기에서 날 도와주고 있고.”

“창문을 만드는 건 알지. 지금 보고 있으니까. 그런데 멀쩡한 창문을 부수고 왜 또 만드냐는 말이야.”

울프 크릭의 질문에 세인은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기는 세리스의 집무실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곳이었다.

내려다보이는 전경이 꽤 괜찮았다.

무엇보다 창밖의 경치는 시원한 하늘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는 망치를 들고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야심한 시각 예고도 없이 그녀의 집무실을 찾았을 때를 말이다.

램프의 불빛에 상기된 그녀의 얼굴을 새삼 떠올렸다.

그녀는 열심히 책상 위에 있는 종이를 들추고 있었다.

펜을 들고 뭔가 집중한 그녀의 얼굴은 세인에게 있어 아름답기보다는 지쳐 보였다.

그리고 세리스는 세인을 발견하고 고개를 들었다.

다음은 램프의 불빛 속에서 더욱 환히 나타나는 그녀의 웃음이다.

그때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녀의 곁에 있는 창문이 충분히 넓어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을 가졌다.

그녀는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집무실을 옮겨 다니며 업무를 보았을까?

일이 즐거워서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주어진 책임이니까 열심히 할 뿐이다.

혼자서 자료나 들춰보고, 승인을 기다리는 문서를 보는 게 달가운 사람은 없을 거다.

긴 시간을 견디며 홀로 그런 일을 계속하는 사람은 적어도 한 번쯤은 왜 그래야 하는지 자문해 보지 않았을까?

그걸 상상하니 가슴이 너무나 답답해졌다.

“어느 날 그녀의 좁은 어깨를 보면서 그 뒤의 창문도 너무 좁다고 느꼈었어. 그날 밤 그런 생각이 들더군. 난 너무나 멀리 있었어. 그리고 나만 생각했어. 내가 원하는 것만 생각하기 바빴어. 어쩌면 내가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자만에 빠져 있었는지도 몰라.”

울프크릭은 망치를 들고 있는 세인을 잠시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세인은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가 지닌 힘을 보면 울프크릭은 그를 두려워하거나 악마라고 여겨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지금은 그의 친구가 되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나도 그렇고 그는 친구를 가질 수 없는 위치지. 단 한 명도 가지지 못하는 운명.’

그런 생각을 한 울프 크릭은 위로랍시고 말을 던졌다.

“뭐. 남자라면 한 번쯤 그럴 때가 있는 법이지. 누구나 실수는 해. 단지 떠나 있는 시간이 너무 길었을 뿐이야. 남겨진 사람들에게 가혹할 만큼 말이야. 그건 사과하면 돼. 사실 사과 말고는 방법도 없잖아.”

그러자 세인이 피식하고 웃었다.

그리고 다시 망치를 들어 올렸다.

못을 박기 전의 중얼거림도 잊지 않았다.

“글쎄. 남자라는 사실을 떠나 나 자신이라는 인간의 문제 같은데.”

그리고 울프크릭은 세리스의 책상 위에서, 세인이 세리스를 위한 창문을 만드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창문이 완성되었을 때는 창밖으로 불타는 노을이 얼굴을 내민 상태였다.

피와 같이 유독 붉은 노을을 바라보고 있는 세인의 모습이 불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적어도 울프 크릭이 바라보는 위치에서는 그랬다.

섬뜩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아름답다고 해야 할까?

노을의 불길이 세인을 삼키고 그림자를 뒤로 길게 뱉었을 때 울프 크릭은 책상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쾌활한 어조로 말을 걸었다.

“창문을 만드는 건 내가 아니라 선물을 받는 쪽이 지켜봐야 했어. 아무래도 우리가 실수한 것 같군. 그녀가 창문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봤다면 흡족해했을 거야.”

“그래? 창문의 상태는 어때?”

노을에 시선을 고정한 세인의 물음에 울프 크릭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름답진 않지만 실용적이군. 여름에 창문을 열어 놓으면 아주 시원하겠어.”

그 후 여름이 없는 글리터에서 중요한 회의가 열렸다.

세인이 직접 참여하고 주도하는 회의라서 이례적이었다.

그동안 군사 회의는 수없이 진행되었지만, 세인이 이렇게 직접 참여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와 동시에 매우 중요한 회의란 소리다.

보안 상태야 말할 것도 없었고 세인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글리터 내에서 핵심인물이라면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중 유독 많아 보이는 것은 기사들이었다.

행크나 맥 그리고 더이스는, 기사 중 세인을 몰라보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걸 티 내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

그 정도는 눈치가 아니라 상식이었다.

시간이 되자 검을 망토를 걸친 세인이 모습을 나타내었고, 일어서려는 사람들에게 손을 들어 보여 제지했다.

그 후에 천천히 걸어 연단 쪽으로 걸어 나왔다.

동그랗게 만들어진 공간의 중심에는 높은 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가파른 계단을 밟아 오른 세인은 쓸데없는 인사치레는 집어치우고 본론부터 꺼냈다.

그는 앞으로 목숨을 걸고 싸울 사람들에게 공개할 수 있는 중요 정보를 최대한 많이 공개해야만 했다.

그래야 저들도 머리를 굴리며 움직일 수 있다.

다만 빈센트에 대한 이야기는 철저히 함구할 생각이었다.

그건 이쪽에서 가진 최후의 비수니까 말이다.

“드레퓨스에 침입했던 잭이라는 기사가 살해당했다. 그는 살해당하기 전에 우리 쪽에 유용한 정보를 넘기고 죽었다. 임무를 완수한 것이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드레퓨스의 사절이 잭의 머리를 가지고 왔다. 선물이라고 하더군.”

내용이 내용인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공간은 곧 바위처럼 무거운 적막감으로 휩싸였다.

그 안에서 세인은 담담한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여기에서 굳이 증거 같은 것을 들이밀 필요가 없는 것은 그의 위치 때문이었다.

“잭의 머리에는 작은 문구가 숨겨져 있었다. 그건 드레퓨스의 왕인 바이칼이 직접 적은 것이다. 그가 아니라면 잭의 머리에 손댈 수 있는 자가 있을 리 없다. 왕의 선물이니까.”

더이스와 행크는 질문 하고픈 욕구를 간신히 참아냈다.

앞쪽에 앉은 질리언의 경우에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서 바위를 연상케 했고 말이다.

모두가 귀를 기울이는 가운데 세인은 뜸을 들이지 않고 바로 문구를 말했다.

“피부에 새겨진 글은 나는 헤카테 왕처럼 되기 싫다. 라는 내용이었다.”

‘무슨 뜻이지?’

모두가 어리둥절해 하는 가운데 세인의 설명이 빠르게 이어졌다.

“헤카테 왕에 대한 기록은 일반인들이 찾아보기 힘들다. 아주 오래전에 존재했던 왕이고, 그의 죽음은 너무나도 치욕적이라 인간의 치부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왕족이 미쳐서 나라를 절단내고, 그것도 모자라 악과 손을 잡고 괴물로 일어났다는 사실을 누가 공개하고 싶겠는가?

그런 이야기가 세간에 나돈다면 그건 지배층의 대망신이다.

귀족들이라면 역사학자의 뺨을 때려서라도 말릴 것이다.

그게 바로 그에 대한 기록이 없다시피 한 이유였다.

“하지만 높은 위치에 있는 자라면 그런 정보는 충분히 얻을 수 있다. 자료가 많지는 않지만, 지배층이 볼 수 있도록 선대가 남겨놓은 것이다. 반면교사로서 교훈을 삼으라는 뜻이지. 그렇기 때문에 바이칼도 헤카테 왕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가 굳이 잭의 머리를 이용해 메시지를 보내온 이유가 뭘까? 그리고 일부러 사신까지 보내 용서받지 못할 친서를 보낸 이유는? 그는 왜 자신과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끼리 알아볼 만한 글을 남겼을까?”

맥은 너무나 엄청난 이야기를 담담히 말하는 세인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핵심 인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지만 선뜻 공개하기 힘든 정보인데 말이다.

물론 공개하고 말고는 세인의 자유겠지만 지금의 그는 엄청난 일을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워 버리고 있었다.

‘역시나 변한 게 하나도 없으시군.’

맥은 쓴 미소가 새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세인의 말을 계속 들었다.

“그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번거로운 수단을 쓸 리도 없고, 내용이 그걸 뒷받침해 준다.”

바이칼이 세인에게 보낸 메시지의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 살려줘!

라는 뜻이었다.

누구나 죽음이 고통스럽고 두려웠다.

그러므로 가미긴이 바이칼에게 마수를 뻗쳤을 때 사실 바이칼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기꺼이 괴물이 되었다.

그럼으로써 비참한 처지에서 탈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야말로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감수할 수 있을 것만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바이칼이 자신을 보니, 그는 피를 마시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몸 안에서 비인간적인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었고 말이다.

피를 마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괴물.

타락한 존재.

가미긴의 꼭두각시이자 괴물들의 허수아비가 바로 그였다.

반의 자료를 뒤적여본 바이칼은 세인에 대해 더욱 잘 파악하게 되었다.

그래서 잭의 머리에 그런 글을 적어 보낸 것이었다.

그 과정이 가미긴의 눈에 포착 돼도 문제는 없었다.

누가 봐도 그때 바이칼의 행동은 글리터를 격동시키기 위한 노림수로 보였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보낸 사신은 감히 잭의 머리를 조사하지 못할 것이고, 그런 선물을 받아본 세인이 사신까지 죽여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다.

여기에서 바이칼이 과거 헤카테의 왕처럼 미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이런 바이칼의 구조 요청을 받은 세인은 그에 대해 확고한 결론을 내린 지 오래였다.

“바이칼은 몬스터다.”

잭의 첩보 활동을 여기에서 처음 들은 사람들은 왜 그를 몬스터라고 보는지에 묻고 싶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한마디 말도 못 하고 눈알만 굴렸다.

“향후 내 계획은 간단하다. 몬스터인 바이칼을 죽이고, 드레퓨스를 부순 다음 그 뒤에 있는 몬스터들도 다 죽인다. 그렇게 해서 세상을 깨끗이 하겠다.”

침묵하는 사람들을 한차례 둘러본 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회의의 시작을 명령했다.

그 후로 많은 사람이 나와 보고를 이어갔고 계획들을 펼쳐놓았다.

그 계획은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정밀하게 짜여졌다.

돌발 상황이 나오면 발휘해야 할 임기응변도 그 자리에서 비로소 완성되었다.

연락망에 대한 이야기나 최고 기밀들이 낱낱이 까발려져 의논되었다.

그중 몇몇 사람들은 바이칼에 관해서 이야기하고픈 눈치였다.

‘바이칼 왕이 이쪽에 협력을 요청해 왔다면 이용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전쟁통이니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다 이용해야 한다.

그중에는 바이칼과 손을 잡는 것도 충분히 고려해볼 수 있었다.

굳이 번거로운 방법까지 써서 기만책을 펼칠 이유가 바이칼에게 없으니, 분명 바이칼은 진심을 담은 의사를 전달한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거기에 응하는 태도는 보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일부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하지만 그들은 세인의 눈치를 보며 말을 삭혀야만 했다.

누가 봐도 세인은 바이칼에 대해서 확고한 생각을 가진 듯 보였다.

그리고 세인을 잘 아는 측근들은, 세인이 몬스터를 얼마나 증오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바이칼을 몬스터라고 말한 이후부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물론 강을 건넌 것은 바이칼이었다.

세인은 어차피 그에게 한 번의 기회도 줬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바이칼은 글리터의 적이다.

게다가 이미 잭도 죽인 마당이다.

그 잭은 바이칼을 괴물과 같다고 묘사했다.

급박한 순간에 괴물 같다는 말을, 잭이 아무 생각 없이 수식어로 썼을 리가 만무하다.

바이칼이 어떤 사정이 있든지 간에, 그는 잭의 머리를 메시지의 수단으로 삼았다.

반이 남긴 조사 문서를 보고 세인에 대해 바이칼이 어떤 판단을 했을지 모르나.

세인은 대의라는 말 아래 괴물인 바이칼을 용납할 사람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저쪽이 구조 요청을 한다고 해서 이쪽이 꼭 응하리란 법도 없었다.

그렇다 해도 감정은 접어두고, 이 상황을 어떻게든 이용하고 싶은 게 기사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세인은 단호한 결론을 내렸고, 그걸 거역하기란 힘들었다.

회의가 끝난 후 세인은 다시 연단에 나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그가 생각하는 계획을 말하고 유사시에 능동적으로 움직이기를 주문했다.

무조건 명령하는 대로만 하는 것은 말단 병사로 충분하다.

기사들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도 명령을 내려야 하는 지휘관이기도 했다.

굴러가는 큰 틀이나 계획을 몰라서는 효과적인 움직임을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세인은 최대한 자기 생각을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다.

지금 그가 하는 말은, 평소 기사들이 기본으로 품을 행동 원리가 될 것이었다.

“수비를 굳히고 싶다는 건 어디까지나 저쪽 사정이고, 저들이 그렇게 하고 싶다면 우리는 반대로 해주면 된다.”

사람들이 큰 지도를 가져와 바닥에 깔자, 세인은 그 위를 돌아다니며 설명을 계속했다.

보안상 필기도구는 허락되지 않았으므로 설명을 듣는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내용을 암기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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