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2
& 전쟁의 시작 (1)
세인의 서신을 받아본 드레퓨스는 잠시 침묵했다.
서신은 처참한 시체들과 함께 중앙에 전달되었다.
사신의 시체는 얼굴만 빼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져 있었다.
그 상태로 조각까지 냈다.
수행원들도 상태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세인이 보낸 글은 분노 섞인 조롱과 폄하 일색이었다.
이 정도 도발이면 반응을 유도하기 충분했다.
그러나 드레퓨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세인의 속셈을 간파한 듯싶었다.
답답한 침묵이 흘러간 후에 또 얼마나 지났을까?
예고 없는 전투가 일어났다.
북 연합의 국경지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끔찍한 전투였다.
여기에서 끔찍하다고 말한 이유는 포로 없이 선혈만 존재하는 전투였기 때문이다.
갑자기 해일처럼 일어난 군대가 비스듬히 걸쳐지며, 국경을 공략해 들어가는 모양새는 충분히 개전 선포라고 받아들여도 좋았다.
그 전투는 단발성이 그치지 않고 사흘 밤낮 동안 계속되었다.
그에 따라 북 연합이 응집하는 게 가시화되었다.
북부가 드레퓨스에 심어놓은 세작들도 활발히 움직이며 정보를 퍼 담아 위로 올렸다.
그 두레질은 북부에서도 똑같이 일어났다.
드레퓨스의 세작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정보를 수집했다.
그 정보를 아래로 전달하기 전에 잡혀서 고문실로 끌려가는 일도 다반사였다.
꼭 대놓고 전투를 하는 지역이 아니더라도 비등하는 물처럼 부글거리는 지역이 속출했다.
의심할 것도 없이 대전쟁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피의 수레바퀴가 글리터를 향해 구르기 시작했군요.”
“일단 한번 움직였으니 승산이 확실하다 판단한 거겠죠. 노린 곳을 완전히 정복하기 전엔 결코 멈추지 않을 겁니다.”
대륙의 남쪽에서는 각 나라의 지도자들이 한곳에 모여 머리를 맞댔다.
보기 흔한 광경은 아니었지만, 중부와 북부의 전쟁에 남부도 자극을 받은 것이었다.
왕들은 없는 시간이라도 쪼개 회의에 참여해야만 했다.
그들이 모인 홀리 레이크의 하얀 신전에서는 거의 날마다 전황 보고를 받았다.
전투가 일어나는 곳은 처절한 격전지였지만, 이렇게 지도로 보면 찔러보기가 될 뿐이다.
다만 처음에 어디를 타격하느냐 따라 군사 이동 루트가 드러나고, 그에 따른 대응책이 나올 것이다.
그러면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능동적 타격과 보복이 일어나고, 그 반복이 계속 누적되면 눈에 보이는 큰 변화가 생긴다.
그 변화로 인해 길고 질긴 전선이 형성되어 밀고 당기기를 거듭하겠지.
북쪽 전선이 내려와 드레퓨스의 수도까지 닿으면 글리터의 승리였다.
반대라면 당연히 드레퓨스의 승리다.
글리터의 승리를 점치는 남부의 왕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바이테스 정도가 되어야 세인의 존재를 알고 조심스레 글리터의 승리를 염두에 둘 뿐이다.
그런 정보는 소중히 다뤄지고 있기 때문에 남이 알기 어려웠다.
오늘날 왕들은 피부로 와닿는 문제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것은 바로 ‘이 전쟁에 남부가 참전을 할 것이냐.’였다.
“드레퓨스는 미친 나라입니다. 글리터를 점령할 수 있다 해도 거기에서 멈추지 않을 거고, 반대로 글리터에 패한다 해도 발악을 할 겁니다. 그 광기가 우리 쪽을 향할 수도 있음입니다. 그런 미친 집단이 중앙을 완전히 점령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소매에 손을 넣고 방관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전쟁이 일어난 이상, 더는 관망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왜냐하면.”
한 명의 대변인이 자신의 말을 힘주어 마무리했다.
유려한 연설가는 왕의 허락을 받아 종이에 쓰인 말 외에도 자신의 사견을 덧붙일 수도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 경우인 듯싶었다.
“우린 같은 대륙 안에 살고 있으니까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힘을 합칩시다.”
하지만 반대하는 쪽이 대부분이었다.
남부는 쇄국적이고 안전 중시인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래서 여태껏 바깥에 신경을 끄고 풍요로운 남부에 만족하고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참전 의사를 의논하자니.
두 손을 들고 반대를 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참전 반대를 주도하는 것은 바이테스의 황제였다.
황제답게 그의 발언권은 매우 강력했는데, 지금 일어난 대리자의 음성에서 그런 점이 두드러졌다.
“바이테스도 정의를 생각하면 드레퓨스를 벌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건 이룰 수 없는 꿈에 불과합니다. 얼마나 많은 장정이 돌아올 수 없는 여정에 오를까요? 그 원정 끝을 채울 과부들의 울음소리를 마음에 그려 보십시오. 드레퓨스가 글리터에 승리한다고 가정해도 그들의 창끝이 여기를 향하려면 족히 수백 년이 걸릴 것입니다. 결국 이 문제는 우리 후대의 몫입니다. 우리의 몫은….”
그리고 발언자는 좌중들을 둘러보았고, 앞선 발언자처럼 마지막 말에 힘을 주며 맺음 했다.
“후대가 드레퓨스에 승리할 터전을 일궈 내는 것입니다. 혈기로 머리를 채우고 당장 나가서 싸우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정의감은 품속에 감추고, 좀 더 교활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글리터와의 합류를 주장했던 쪽은 침음성을 터트렸다.
너무나도 멀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였다.
원정길에 여럿 죽어 나갈 것이다
군비가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이상은 멀었고 무거운 현실이 발목을 잡았다.
그때 다시 누군가가 용기 있게 일어나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위에서 글리터가 찍어 누르고, 우리가 밑에서 올라간다면 제아무리 드레퓨스라도 궁지에 몰리게 됩니다. 정 그게 힘들다면 아래쪽에서 단단히 받쳐주는 모루만 되어도 괜찮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들고 일어서면 드레퓨스 쪽에서 경계는 할 것 아닙니까? 물론 오늘날 생각해보면 우매한 결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결국 현명한 결단입니다. 크게 보면 많은 피를 줄일 수 있으니까요.”
“대신 후세의 피까지 지금의 우리가 다 감당해야겠죠. 후세도 우리가 성해야 태어날 수 있는 겁니다.”
“바로 그 후세에게 난제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 지금 일어나자는 것입니다. 저 광기를 보십시오. 지금이 기회입니다. 우린 현명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서로의 주장이 꼬리를 물고 뜯으며 회의장 내에 난립했다.
각 나라의 내로라하는 토론가 들이, 이때다 싶어 위층에서 지켜보는 주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언성을 높였다.
설검이 치열하게 오가는 회의장은 이미 작은 전쟁터였다.
이렇게 된다면 하나 마나 한 회의였다.
이상과 도덕은 드레퓨스를 쳐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게 절대 쉽지 않았다.
이상을 품은 사람도 결국 현실이라는 땅 위에 발을 딛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부가 참전한다면 전쟁의 양상이 돌변할 수도 있음이다.
하지만 치러야 할 대가도 엄청날 것이다.
성국의 교황이나 몇몇 소국의 왕만이 참전을 주장했다.
그리고 대부분 왕은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결국 뜻이 하나로 통일되지 않은 이상 남부의 참전은 요원해 보였다.
“북부에서 비밀리에 온 사신은 없었소? 접촉이 있었다면 여기에서 솔직하게 말해 주시오. 사신의 존재가 있다면 이번 사안에 큰 도움이 될 것이오.”
교황의 말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러자 결국 교황도 눈을 감아 버린다.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판국에 북쪽에서 도움을 청하러 왔다는 소식이라도 있다면 어떻게 더 의제를 끌어 보련만, 그것도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수비를 굳히고 경계를 연대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말고 회의를 끝내자는 이야기다.
그게 바로 남부의 최종 결정이었다.
* * *
글리터에 꾸며놓은 전황실 바닥에는 커다란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물론 지도는 그것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각종 표시가 된 지도들이 벽에도 한가득이다.
지도가 그려진 넓은 바닥위로 각종 나무 조각상이 돌아다녔다.
여러 색을 칠한 그 구조물은 적 부대의 특징과 숫자를 표시했다.
보고는 북쪽 연합이 풀어놓은 세작들과 정찰병들에게서 흘러나온다.
그리고 전서구나 전령을 통해 전장의 변화를 전황실의 지도 위에서 갱신하고 있었다.
가능한 한 빨리 말이다.
글리터의 전황실에서 받는 보고는 북 연합의 왕들과 참모진들도 같이 받아보고 있었다.
물론 거리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각지에 전달되는 보고 시간의 차이라고 해봐야 하루 정도였다.
거기에서 늦어져도 사흘을 넘기는 일이 드물었다.
그렇지 않으면 필요할 때 합을 맞추기 어려워진다.
세인은 의자에 앉아 몸을 앞쪽으로 숙였다.
그 상태에서 늘어진 전선들을 유심히 보았다.
붉고 작은 깃발을 꽂고 있는 조각상 몇 개는 전부터 그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지금 보이는 드레퓨스의 부대는 처음부터 상당히 저돌적으로 공세를 펼쳤다.
그러면서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밀고 올라왔다.
보급선을 고려하지 않을 정도로 빠른 진격이었다.
세인은 그 모습을 넓은 전황실에서 계속 지켜보았다.
그때 갑자기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발소리가 세인의 뒤로 이어졌다.
세인은 돌아보지 않고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달콤한 향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바로 세리스였다.
“식사도 안 하고 계속 여기에만 있는 거예요?”
하지만 세인은 그녀의 말에도 대답이 없었다.
세리스는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그런 세인을 바라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녀는 글리터에 귀환한 세인이 권력을 휘어잡고 모든 것을 재정리할 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은 다시 그의 기사로 물러나고 말이다.
그래서 의외였다.
세인은 세리스가 지켜왔던 자리를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그녀로 하여금 연합의 일에도 계속 참여하게 했다.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왜 직접 나서지 않냐고 물어보는 세리스 앞에서 세인은 갑작스러운 변화는 지금 필요 없다고 못 박았다.
생각해보면 북부 연합에서 글리터의 주인으로서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 왔던 게 세리스였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래서 주변국들은 물론이고, 지금 글리터 내부에 깔린 신하 중에서도 세인에 대해 잘 모르는 자들이 부지기수였다.
이제 와서 세인이 다시 권력의 정점에 오른 것을 알리고, 체제를 개편하는 것은 누가 봐도 비효율적이었고 그걸 밀어붙일 시간도 촉박했다.
전쟁이 끝난 시점이라면 모를까, 당장 전쟁이 터졌는데 사령부를 바꿔 버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가이더의 빈센트는 잘 보호하고 있겠지?”
“예. 가이더의 물밑 협조도 얻었어요. 우리 쪽 사람이 가서 진을 치는 건 아무래도 이상해 보이니까요.”
최고의 비수는 아무도 모를수록 좋다.
때가 오면 빈센트에게 협조를 구할 것이고, 그는 기꺼이 루시드를 추락시키는 존재가 되어 줄 것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세인은 눈앞에 보이는 드레퓨스의 부대로 화제를 돌렸다.
“당신이 보기에 저놈들이 왜 저러는 거 같아?”
“드레퓨스에 얼마나 많은 군인이 있겠어요? 이들은 땔감일 거예요. 찔러보기 식의 부대에요. 우리의 대응을 조사하는 거죠. 그런 것 치곤 정예병들이긴 하지만, 드레퓨스니까 잘 훈련된 사람들이라도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는 거죠.”
세인은 의자에서 일어나 세리스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같이 나무로 된 조각상을 내려다보았다.
뭔가 석연치 않았다.
그는 부대의 뒤쪽을 보았다.
지원대가 위로 돌출되며 뒤늦게 선두부대를 뒤따르고 있었다.
용기는 가상하지만, 이놈들은 결국 다 죽을 것이다.
튀어나온 못처럼 보이니까 가장 먼저 망치질을 당할 거고, 그러면 몰살이다.
그런데 정말 이걸로 끝일까?
세인은 지원 세력 뒤로 비어 있는 공간을 보았다.
높은 산이 세 개 모여있는 지형이었는데,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주변 깃발들의 움직임으로 보아 많은 인원이 모여 있는 것인데 중앙이 텅 비어 있다.
정보의 공백.
그건 곧 정찰병들이 다가가지 못하는 지역이라는 셈이 된다.
세인의 시선을 따라간 세리스가 설명을 덧붙였다.
여기로 오기 전에 자신의 집무실에서 관련된 정보를 뒤적여 보았기 때문이다.
“거긴 경계 초소가 너무 많고 분지 형태에요. 저곳은 나무나 돌이 많은데, 막상 그 주변은 엄폐물이 되어줄 나무도 없는 민둥산들이고요. 그러니 접근이 여의치 못한 모양이에요. 분지 내에 많은 군대가 있겠지만, 정확한 수는….”
“왜 저기에 군대가 있다고 생각해?”
“예? 그거야 뒤를 받쳐줘야 하니까요. 받쳐주지 않으면 버린다는 의미조차 없어요. 최소한 흉내라도 내지 않는다면 그들이 얻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처음에는 그런 의미고, 선두 부대가 궤멸되면 다음 파도가 돼서 진짜 강력한 공격을 해오겠죠.”
세인은 비어있는 공간을 계속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물었다.
“새도 보낼 수 없을까?”
“주변에 배치한 궁수도 많아서 열 마리를 날려 보낸다 치면 결국 한두 마리밖에 살아 돌아오지 못할 거예요. 비싸고 길들이기도 힘든 새를 굳이 보내야 할까요? 저기에 많은 병사가 몰려 있는 건 뻔히 아는데.”
세인은 자신의 턱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다시 한번 지도를 전체적으로 훑어보았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게 전형적인 찔러보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형관찰과 매복확인 그리고 글리터의 주된 대응을 알아보기 위한 공격이라고 판단했다.
희생이 전제된 공격인 것이다.
첫 번째 파도는 그렇게 부서지고 곧이어 두 번째 세 번째 파도가 밀려올 것이다. 지금 공백으로 보이는 곳은 그 근원이다.
‘정말 그럴까?’
세리스의 회의적인 말에도 불구하고 세인은 자신의 호기심을 고집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비어 있는 공간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새들을 날려봐. 안에 뭐가 있는지 꼭 알고 싶어.”
세리스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일주일 후.
정작 그곳에는 군대가 주둔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소식을 들은 세인은 다시 전황실에 가서 드레퓨스의 부대들을 관찰했다.
일주일 전 선두에 있던 드레퓨스의 부대는 지금 한창 교전 중이었다.
그들이 몰살된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다른 지원부대들도 그 뒤를 따라간다는 시늉을 하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아군을 구원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저래서야 각개격파 당한다.
오늘 세인의 곁에는 세리스 대신 맥이 서 있었다.
지금 전황은 맥이 봐도 이상했다.
몇 개 부대들은 자살을 전제하고 시간을 오래 끌었다.
그리고 그들의 자살은 실질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글리터가 어떤 대응을 하든지 그걸 관찰하고 보고할 세력이 주변에 없다.
뒤를 받쳐줄 후발대도 없었다.
이 기만책이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또 얻는 게 있다 한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지만 아무리 드레퓨스가 사람이 남아돌아도 의미 없는 짓을 할 리가 없었다.
미친놈들이지만 그게 바보란 소리는 아니니까 말이다.
대체 그들은 처음부터 뭘 노리고 있던 것일까?
속으로 품은 의문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왜 이러는 걸까요? 드레퓨스가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데요.”
세인은 드레퓨스의 국경 쪽을 보았다.
나무 조각상들이 불어나 있었다.
지금 연합의 영토에 와 있는 것들을 무시하고 저걸 보면 답은 나온다.
“얻을 수 있는 게 없는 건 아냐.”
“예?”
“여기에서는 안 보이니까 없어 보이는 거지. 우리 입장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봐.”
세인의 말을 들은 맥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어려울 건 없었다.
그냥 쉽게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안 보이는 것까지 생각의 범주에 넣으면 된다.
전황실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여기 너머에 있을까?
그건 아주 간단한 답이었다.
바로 남부였다.
이득이 없으니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다른 쪽으로 얻을 게 있다면 이목을 흐리고 정작 국경의 경계를 강화한 이유가 성립될 수 있었다.
“시간을 끌고 이목을 흐리는 사이 오히려 국경 경계를 굳혔군. 그러기 위해 많은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었어. 생각해 보면 꼭 인간들을 내세워 먼저 진흙탕을 만들고, 정말 필요할 때, 결정적일 때 정체를 드러내야 한다는 시나리오는 없지. 이놈들은 나의 존재를 알고 있거나 최소한 글리터가 가장 경계해야 할 곳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 그러니 결전을 치르기 전에 배후를 단단히 하고 싶은 모양이야.”
세인은 드레퓨스가 있는 쪽을 보며 이야기했다.
글리터에 들어와 있는 부대는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
부대가 녹아 없어진다고 해도 드레퓨스는 국경의 수비를 강화할 시간을 벌었다.
정작 드레퓨스가 의도했던 것은 공격이 아니라 수비였다.
이제 그들은 버티기만 하면 된다.
아래쪽의 용무가 끝날 때까지 말이다.
전황실의 지도는 대륙의 중앙인 드레퓨스에서 끝난다.
그건 당연했다.
거기까지가 이쪽이 인식하는 전쟁터니까.
그런데 저쪽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이쪽 세작들은 이쪽이 인식하는 전쟁터까지만 뿌려 놨다.
그 간첩들이 모은 정보에 의하면 드레퓨스의 군대는 여전히 내부지역과 국경에 머물러 있었다.
또 그러니까 이 기만책이 유효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의문이 하나 남는다.
누굴 동원해 남부를 칠 것인가?
이것 또한 풀기 쉬운 문제였다.
그 시각, 남부의 하늘이 천천히 초록색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