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7
& 리턴 라메아 (9)
“나와 슈나이더는 너를 연구해왔다. 길고 지루한 시간이었어. 전국에서 수집한 정보를 짜 맞추는 작업이었지. 그리고 나는 믿기 싫은 결론에 도달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받아들이기 싫었지만 감내했어. 그 결론은 너에게 인질극이 통한다는 사실이야.”
그리고서 반이 동의를 구하듯 세인을 바라보았지만, 세인은 대답이 없었다.
그저 반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과거 대머리 괴물이 세인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세인은 사악한 놈이라 인질극이 통하지 않을 거란 이야기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세인의 뒷조사를 한 반은 믿기 어려운 현실에 직면해야만 했다.
그에게는 인질극이 통한다.
그것도 아주 효과적일 것이다.
보고서를 통합해본 반은 그 결론에 어이가 없었다.
학살에 가까운 짓을 벌인 놈에게 정작 인질극이 통한다니 말이다.
정말 더럽고 재수 없는 놈이 아니냔 말이다.
남들을 마구 죽일 때는 언제고 자기와 관련된 사람이 죽을까봐 안절부절못한다고?
아버지인 바이칼보다 재수 없는 놈이 세인이었다.
그런데 그 세인이 무지막지하게 강하니 문제다.
무시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상황.
결국 반은 계획을 짰다.
세인에 대해서 충분히 연구했으니 덫을 놓을 차례였다.
아주 치명적인 덫을 만들기 위해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초조해진 건 세인이 사라지고 났을 때부터다.
일각에서는 세인이 죽은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돌았다.
세리스가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낼 때조차 세인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멜라니는 쑥쑥 자라나는데, 그는 아버지로서 당연히 참여해야 할 장소와 상황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가 적당히 강했다면 나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가 죽었다고 믿고 싶어. 당장 오늘 밤에 푹 잘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은폐한 중앙의 장소를 봐라. 그건 인간의 힘이 아니야. 어쩌면 수련을 위해 모습을 감췄을지도 모르지. 그 더러운 자식이 죽었다면 가장 기쁜 건 나 자신이야. 하지만 놈은 죽지 않았어. 죽을 놈이 아냐.”
반은 그렇게 주위를 일축해버리고는 계속 일을 추진했다.
지금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세인에 대해 잘 아는 자가 있다면 바로 반일지도 몰랐다.
“나는 너를 죽이려고 계획을 짰어. 사실 계획은 별것 아니야. 암살 계획이 복잡해서 뭐하겠나? 다만 들어가는 돈이 천문학적이었어. 엘프들이 정말 성가시더군. 그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물품을 만드는데, 나라 하나를 정복할 돈이 들어갔어. 글리터의 경비를 뚫느라 성을 몇 개나 만들 돈이 증발했는지 넌 모를 거야. 네 행적을 조사할수록 대비는 많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지. 병적이라고 말해도 좋아. 하지만 그래서 이 유물을 가져온 거야. 내가 왜 이 말을 하는지 알아?”
“….”
“여기는 그 정도로 아주 심각한 자리라는 것이야. 나는 이 자리를 만들기 위해 직접 몸까지 던졌어. 뭐든 그래. 제대로 하려면 직접 해야 하거든. 내 눈으로 올라오는 보고서를 직접 봤어. 또 네 주위의 사람들을 보고 판단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야. 슈나이더.”
반이 슈나이더의 이름을 부르자, 멜라니의 곁에서 단검을 들고 있던 슈나이더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는 멜라니가 증발할까 봐 겁이라도 나는지, 멜라니에게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상태였다.
“글리터의 기사들에게 블랙 라이어드의 암살자들을 붙여 놓았다. 오늘 내로 우리가 신호를 주지 않으면 그들은 암살을 계획할 거야.”
그러자 처음으로 세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들은 그렇게 쉽게 당하지 않아.”
세인의 부정에 반이 어깨를 으쓱거렸고, 슈나이더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물론 그렇겠지. 그런데 이쪽에서도 준비한 게 수년이야. 이번 습격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도 했지. 지금 경비가 삼엄한데도 그들이 발각되지 않은 걸 보면 모르겠어? 적어도 몇 명은 성공할 거야. 네가 아는 얼굴이 사라질 수 있다. 이미 증명도 한 바가 있어. 그게 너에게 있어 어떤 의미지? 그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알아. 그러니 그걸 너도 알아야 해. 내가 안다는 것을.”
세인을 한번 바라본 슈나이더는 다시 멜라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계속 멜라니에게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말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 외에도 곳곳에서 방화를 저지르고 습격을 할 준비를 해놓았다. 물론 글리터는 다 막아낼 거야. 어떻게든 막아내겠지. 그런 저력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쪽도 필사적으로 칠 거다. 동시다발적으로 소란을 일으키면 결국 사람이 죽는다. 약속한다. 글리터 놈들을 최대한 죽이겠어. 그리고 그중에 가장 먼저 죽는 사람은 내 앞에 있다.”
그 말을 반이 받았다.
그녀는 두 손을 유리에 짚었다.
그리고 얼굴을 유리에 대며 눈을 깜박였다.
“세인. 너도 이제 충분히 납득했겠지? 너는 다 죽일 수 있어. 엄청나게 강하니까. 나도 그걸 알고, 너도 알아. 좋아. 거기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어. 그런데 나를 봐.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내가 여기에 와 있어. 내 얼굴을 봐. 직접 보라고. 내 얼굴과 눈을 보고 내 진심을 판단해. 이제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너도 알지? 네게 큰 유감은 없어. 세상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니까. 그러니 죽어줘.”
마지막 말이 끝났을 때 반은 눈을 깜박이지 않았다.
세인을 응시하며 간절하게 말했다.
“나를 위해 죽어줘.”
초면에 할 말은 아니었지만, 진실성은 담겼다.
반은 정말 멜라니를 죽일 것이다.
그녀는 그 정도로 미쳐 있었다.
세인은 그 앞에서 잠시 망설이는 말이 있었다.
입 밖으로 내놓아봤자 의미가 없어 보이는 말이지만 결국 해버렸다.
“내가 죽은 후에 네가 멜라니를 놓아줄 것이란 걸 어떻게 알지?”
그러자 반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마치 세인이 안쓰러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다.
이때의 그녀는 유리 밀실 안에 갇힌 여배우 같았다.
반은 진심을 담아, 호소하듯이 부드럽게 말했다.
“이 멍청한 새끼야. 너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
“….”
반은 이제 자신의 두 손을 꼭 모아 쥐고 말했다.
미간을 좁히며 금방이라도 울듯이 간절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이 병신 같은 새끼야. 지금까지 한 말을 대체 뭐로 들었어? 세상의 왕. 진정한 왕이 지금 네 앞에 와있다고. 내가 직접 뛰어들었고 여기까지 왔단 말이야. 그런데 지금 그 진실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거야? 그토록 이나 너를 조사해 보았지만, 네가 저능아라는 증거는 없었어. 이 등신 같은 새끼야. 그러니 말귀를 알아먹어야지.”
멜라니를 감시하던 슈나이더가 일어섰다.
계속 지켜보니 멜라니가 깨어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가 일어났을 때도 반의 말은 계속되고 있었다.
아주 부드러운 어조로 말이다.
“내가 지금 얼마나 설명했어? 두 번이나 이야기 해줘야 해? 내가 뭘 말하는지 모르겠어? 너. 미스틸 테인이라는 기사 알아?”
반은 갑자기 미스틸 테인의 이야기를 꺼냈다.
미스틸 테인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어조는 아주 평온했다.
그녀는 동공도 떨리지 않았다.
마치 잔잔한 바다 위로 돛단배가 지나가듯이 사근사근하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네 딸과 함께하려고 나는 걔랑 뒹굴었어. 내 재미도 있었지만, 결국 너 때문에 그런 거야. 그리고 그 미스틸 테인은 지금 목 없는 시체가 돼서 누워있어. 팔도 다리도 없는 시체가 되어 있지. 그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아? 그것도 너 때문인 거야. 세인. 오 나의 세인. 제발 정신 차려. 대체 어딜 갔다 온 거야? 너 때문에 미스틸 테인이 죽었어.”
반은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고 갑자기 슬픈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 때문이야 이 악마 같은 새끼야. 남들은 잘도 죽이면서 같은 편이 죽으면 조바심내는 이중인격자 놈아. 구역질 나는 네가 그를 죽인 거라고. 미스틸 테인처럼 네 딸을 죽이고 싶지 않으면, 어서 여기에서 목숨을 끊어. 그렇지 않는다면 글리터에 피해가 가고, 멜라니는 죽게 될 거야. 내 이름을 걸고 그런 미래를 약속한다.”
어차피 세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세계의 완전한 통일은 어렵다.
반은 그렇게 생각했다.
남부의 경우 북부를 정복한 후 야금야금 먹어치울 수도 있었다.
남부 세력의 본질이 큰 연합이라면 그 세력을 잘게 쪼개어 공격하면 된다.
그러나 세인의 경우에는 단일적이었고 너무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세인만 해도 심각한 문제지만, 그가 거느린 세력까지 있는 마당이다.
‘최선을 다해 이놈을 죽여야 한다. 열과 성의를 다해 노력해야 해.’
반은 닉스와 비슷한 면이 있었다.
닉스는 유미리를 괴롭히기 위해 유고의 몸을 고집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상대를 괴롭히기 위해 자신마저 대수롭지 않게 취급했다.
그 악의는 그들의 정신세계에서 놀랄 정도로 헌신적이다.
반은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직접 미스틸 테인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그를 가지고 놀았다.
그의 진심을 보면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의 반에겐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녀는 오로지 세인의 파멸만을 원했다.
그리고 세인은 구석에 몰린 상태였다.
그가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자살밖에 없었다.
“내 눈을 봐. 세인.”
세인이 자신의 눈을 보자 반이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난 미스틸 테인에게 접근했어. 그 정도까지 하는 사람이야. 내 진실을 알아주겠지? 네 딸을 죽일 거야. 10까지 세고 나면. 네 딸은 죽는다. 설령 네게 이 인질극이 통하지 않더라도 평생 죄책감에 싸여 살아라. 네 딸을 죽인 건 너니까.”
그리고 반은 진심을 담아 숫자를 세었다.
그녀는 정말로 세인이 자결하지 않는다면 멜라니를 죽일 생각이었다.
뒤야 어떻게 되든 말든 말이다.
그리고 그녀가 이 정도로 앞뒤 안 가리고 미쳐 있었기 때문에 이 협박은 효과적이다.
“하나.”
반이 숫자를 세기 시작하자, 세인은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보란 듯이 팔짱을 끼었다.
그걸 본 반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린다.
“둘.”
세인은 고개를 끄덕인 후 입을 열었다.
뭔가 이야기를 하려나 보다.
하지만 반은 그런 세인을 무시했다.
‘잠깐만.’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
그러나 정말 열까지 세고 난 다음에 멜라니를 죽일 것이다.
반에게 있어서는 그건 이제 결정된 사항이었다.
“셋”
“최근에 여행을 한 적이 있어.”
반은 세인이 뭐라고 지껄이든 상관하지 않았다.
그녀는 세인과 눈싸움을 하며 웃었다.
아주 기세등등한 웃음이다.
웃음이 끝난 후에는 다음 숫자를 뱉어냈다.
“넷.”
“그 여행에서 멜라니가 시를 읊더군.”
세인은 이 중요한 순간에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섯.”
“여자의 마음에는 뱀이 도사리고 있어, 그 뱀이 숨을 죽이고 노리는 것은 소녀. 표독스런 마음의 표적이지.”
“여섯.”
“그 순수를 사냥하기 위해, 기척을 죽이고 땅 위를 기어가는 뱀이 있어.”
“일곱.”
반이 보기에 세인은 지금 무모한 배짱을 부리고 있었다.
어쩌면 어떻게든 멜라니를 구출하고 몸을 빼낼 생각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유물은 매우 견고했고, 마을 밖에는 블랙 라이어드와 반이 데리고 온 병사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글리터에서 습격이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드디어 나비를 잡고, 목적을 이룬 득의 한 순간에 뱀은 뒤를 돌아보게 되지.”
“세인. 계속 그따위로 나왔다간 결국 후회하게 될 거야. 여덟.”
“그리고 거기엔. 그 뱀을 노리는.”
“아홉.”
반이 마지막 숫자를 이야기하기 전에, 세인이 좀 더 빨리 마지막 단어를 내뱉었다.
“남자.”
그 남자라는 단어가 신호였다.
자신만만한 얼굴을 한 반은 열을 세지 못했다.
그녀는 열을 말하는 대신 눈을 잘게 떨었다.
그리고 천천히 얼굴을 내려 자신의 옆구리를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반은 자신의 옆구리를 찌른 단검을 보며,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단검은 슈나이더의 것이었다.
쨍그랑.
단검이 바닥에 떨어지고, 슈나이더가 뒤로 물러섰다.
그가 피했기 때문에 반의 공격은 헛되이 허공만 가르고 말았다.
“뭐야? 네놈이 대체 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비틀거리는 반이었다.
그런 반의 앞에서 슈나이더는 담담히 대꾸했다.
“깊게 찌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단검에는 말극독풀이 묻어 있으니 주무셔야 할 겁니다.”
말극독풀은 멜라니를 두 번이나 기절시키는데 썼던 물건이었다.
독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는 반이었지만, 이것마저 막을 수는 없었다.
멜라니라고 대비가 없었을까?
그런 방어를 뚫고 들어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말극독풀이었다.
풀의 본질은 독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심신을 이롭게 만들어 주는 약이다.
슈나이더는 크게 비틀거리는 반을 보았지만, 섣불리 그녀를 부축하려 들지 않았다.
반의 성격대로라면 저러다가 다시 공격을 할 수도 있었다.
쿵.
결국 반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마비가 되는지 입을 뻐금거렸다.
기절하기 직전까지도 반의 눈에는 의아한 빛이 가득 차 있었다.
‘왜? 도대체 왜?’
그런 반의 의문은 절대 타당한 것이다.
짧게나마 생각해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슈나이더가 이제 와서 반을 공격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세인에게 복수를 해야만 했다.
설마 직접 복수를 하고 싶어서 이러는 것일까?
그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상황인가?
유물 밖으로 나가면 슈나이더는 절대 상대가 되지 못한다.
게다가 밖에는 반의 부하들도 많았다.
그렇다면 이제 와서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결국 답을 찾지 못한 반의 눈꺼풀이 감겼다.
의식을 잃은 것이다.
“….”
이제 슈나이더와 세인은 유리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묘한 대치 상태에서 슈나이더가 말을 꺼냈다.
“만약 내가 끝까지 믿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려고 했지? 까마귀의 말은 누가 들어도 황당무계했어.”
세인은 바닥에 누워있는 반과 멜라니를 번갈아 보았다.
멜라니의 얼굴에 가서 시선이 멎은 세인은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버지는 있을 수 없어.”
슈나이더의 주먹 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복수에 눈이 멀었다.
그래서 전력 질주한 외길이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복수가 꼬여버리고 말았다.
일이 아주 복잡해졌다.
멜라니는 그의 딸이었던 것이다.
슈나이더의 딸은 다시 환생했고, 날아온 까마귀가 그 사실을 알려준 것이었다.
오래전 아레이즈에서 세인에 의해 목숨을 잃은, 슈나이더의 딸이 바로 멜라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