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6
& 리턴 라메아 (8)
세인은 슈나이더가 보낸 사람 중 한 명만 남겨놓고 다 죽여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한 명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하지?”
어리둥절해 하는 남자에게 세인은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지 못했나? 언질이 있었을 텐데? 나는 그가 원하는 장소로 가야 해. 그게 바로 슈나이더와 반이 원하는 것이기도 해. 그럴 리는 없지만 내가 다른 곳으로 빠진다면 슈나이더와 반은 오히려 황당해할걸? 그러니 안내해줘. 그게 네 몫이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난 너를 죽이기 위해 온 거라고!”
“그래서 목적지를 모르나?”
“….”
그렇다고 남자가 목적지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슈나이더는 왜 그에게 목적지를 알려주었을까?
입을 일자로 다문 남자 앞에서 세인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중얼거렸다.
“너희들은 나를 못 막아. 그건 슈나이더도 알고 있었을 거야. 이건 제비뽑기였을 뿐이야. 시간이 좀 걸리는 제비뽑기 말이야. 나는 거기에 응해줬어.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하거든. 제비뽑기 중 다행히 네가 뽑힌 거지. 살아남은 걸 축하한다. 그러니 나를 안내해라. 네가 아는 곳으로 말이다.”
남자가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현재 그의 처지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길이 하나뿐이었다.
만약 남자가 저항한다면 세인이 그를 죽일 것이니까 말이다.
도시로 들어가 말을 끌고 나온 세인은 남자와 함께 출발했다.
그는 결판을 내야만 했다.
그동안 몸을 빼자면 얼마든지 기회가 있었다.
멜라니를 보호하고자 한다면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마음을 졸이며 공격을 피하기 급급하다면?
그건 다 미봉책에 불과했다.
지금도 단단히 벼르고 있는 슈나이더와 반이다.
그들이 지금 세인을 놓친다면 나중에 더 심각한 일을 벌일 것이 자명하다.
말을 몰고 가는데 다시 습격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습격은 만만하지 않았다.
매복하기 힘든 지형에서 갑작스럽게 공격이 날아왔다.
뭔가가 바람 가르는 소리를 냈을 때, 세인은 한쪽 발을 올렸다.
그리고 그 반동을 이용해 움직였다.
그의 몸이 말의 위에서 옆으로 돌아갈 때, 화살이 날아와 말의 몸통에 꽂혔다.
그중 몇 개는 돌아가는 세인의 발이 쳐내 버렸다.
세인은 그렇게 공격을 피한 상태에서 땅바닥 위로 몸을 던졌다.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통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아주 위험한 행동이었다.
척추가 부러진다면 반신불수가 될 수도 있는 짓인 거다.
물론 세인은 멀쩡했다.
몇 바퀴를 구른 세인은 결국 먼지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인을 습격한 남자들은 고도로 단련된 자들이었다.
세인을 지나쳐 달려가던 말이 구슬픈 울음과 함께 바닥을 굴렀다.
무릎을 꿇은 말은 다시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대로 죽어 버린 것이다.
뒤에서 말을 바라보는 세인에게 다시 화살들이 날아왔다.
쏘는 쪽에선 강철로 만든 화살을 날리기도 힘들 텐데 빽빽하게 공간을 선점하며 다가온다.
그것을 곁눈질한 세인의 손이 검자루에 가서 닿았다.
햇살에 반짝이는 검날이 모습을 드러낼 때 철시는 세인의 얼굴을 때렸다.
세인의 얼굴이 옆으로 살짝 밀려났지만, 충격을 받은 표정은 아니다.
오히려 충격을 받은 것은 쇠로 된 화살을 날린 쪽이었다.
저게 말이나 되는 광경이냔 말이다.
“이런 미친….”
하지만 계속 입을 벌리며 서 있을 수도 없는 게, 검을 든 세인이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그런 세인을 향해 다시 화살을 몇 번 더 쏘자, 파리를 쫓는 듯 화살을 쳐내는 세인이다.
휘어진 강철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게 습격자들의 눈에도 똑똑히 보였다.
그래도 도망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들은 삼각형의 진형을 이루며 달려들었다.
천천히 검 끝을 들어 올리다가 멈춘 세인은, 검을 내리고 주먹을 가슴 높이로 올렸다.
그리고 말들을 기다린다.
창이 그런 무모함을 비웃듯이 접촉해 왔을 때 세인의 손이 창대를 후려쳤다.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나고 애꿎은 말머리가 박살이나 흩어졌다.
부러진 창은 멀리 날아가 버린 지 오래였다.
날뛰는 말의 동체를 한 팔로 밀고 들어가는 세인의 앞에서, 말의 척추가 접히며 땅 위에 나뒹굴었다.
그런 세인의 팔과 말의 몸체 사이에 낀 인간은 재앙을 맞이한 상태였다.
세인은 섬뜩한 파육음에서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자신의 검을 날아오는 검과 교차시켰다.
세인의 검 위에서 상대의 얽힌 장검이 춤추듯 빙글빙글 돌았다.
그 자리에서 반 바퀴를 돈 세인이 검을 날리자, 멀리 서 있던 한 명의 기사가 목을 움켜쥐고 쓰러졌다.
습격자의 움직임에는 숨길 수 없는 절도가 있었으며, 고급스러운 검술을 사용했다.
처음부터 말을 공격하는 선택도 그렇고, 단체로 공격을 해오는 데 아주 능숙하고 빈틈이 없었다.
합격을 하는데 아주 박자가 착착 맞아떨어진다.
여러 번 해본 솜씨고 매우 숙련되어 있었다.
세인은 그런 그들과 맞서며 그들이 반의 부하들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기사라는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물론 그들은 세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상대가 얼마나 강한 자들이냐를 떠나, 오늘날의 세인은 강함에서는 인간의 범주를 초월한 지 오래였다.
과거로 가기 전에도 강했지만, 완전히 각성한 후에는 범접하기 힘든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 아무리 훈련받은 정예들이 달려들어도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세인이 휘두른 손은 갑옷도 우습다는 듯 뚫어 버렸다.
그가 발차기를 날리면 뒤로 밀려나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방패와 사람이 박살났다.
분분히 흩어지는 나무 조각 사이에서 세인의 안광이 선을 그었다.
그 선의 끝은 검을 내지르는 사람의 옆을 점한다.
우두둑.
그다음은 죽음이었다.
마치 어린애를 가지고 놀듯 팔로 목을 꺾어버리는 세인이다.
그의 품 안에 안겨 있는 기사는 두 손으로 세인의 팔을 떼어내려고 하다가 축 늘어졌다.
세인이 기사를 놓아주자 앞으로 쓰러지는 기사다.
그 시체에서 멀어졌을 때, 병사들과 기사들이 몰려들며 망치와 창을 휘둘렀다.
그걸 피하지도 않은 세인이 세차게 검을 휘두르자 병장기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몸도 두 조각이 나버린다.
이렇듯 세인은 긴장감 없이 모두 물리쳤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안내인이 죽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슈나이더가 뽑은 실력 있는 무사라 해도 기사들이 덤비는데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다.
습격하는 입장에서야 거치적거리고 있으니 화살을 날린 걸 테고, 등에 화살을 여러 대 맞고서 엎어져 있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그의 뽑기 운은 거기까지였던 모양이다.
두 번째 도박에서는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습격을 받으며 알아차린 것은 반과 슈나이더가 아직 준비 중이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부하들을 시간 태우기용 땔감으로 쓸 리가 없으니 말이다.
장검을 역수로 쥔 세인은 주위를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고통스러운 상태로 숨이 붙어 있는 말과 눈빛이 마주쳤다.
칼을 허공에 살짝 띄웠다가 제대로 쥔 세인은 양손으로 검을 잡았다.
한 손으로도 충분히 목을 벨 수 있었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두 손을 쓰는 게 생명에 대한 예의다.
말의 앞에서 검이 단호하게 수직으로 움직였다.
그 아래에서 고통의 신음이 멈춘다.
시체들이 즐비한 곳에서 한 남자가 죽은 척을 하고 있었다.
그는 땅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가 이 정도면 갔겠지, 하고 고개를 슬며시 들었다.
그리고 세인과 눈이 마주쳤다.
“….”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것을 먼저 깬 건은 세인이다.
“창피하지도 않아? 그대는 기사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드레퓨스의 군인 정도는 될 텐데? 민간인도 아니고 여기에서 죽은 척이야? 주인에게 충성심은 있나? 반이 불쌍해지는군.”
얼굴이 붉어진 채로, 차마 아무 말도 못 하는 남자의 목을 쳐버리는 세인이었다.
남자의 목이 땅 위를 데굴데굴 구를 때, 하늘에서 날아오는 물체가 있었다.
날아온 그대로 세인의 어깨에 앉은 존재는 바로 까마귀였다.
“여기에서 시간을 축내고 있는 건가? 이렇게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닐 텐데?”
습격한 남자들의 말을 찾던 세인이 까마귀의 말에 대답했다.
“일단 장단을 맞춰주지 않으면 더 위험해질 수가 있어.”
“바보라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저들은 인질극을 준비하고 있다. 누가 인질인지는 말 안 해도 알겠지?”
“나는 바보가 아니야.”
말의 고삐를 낚아채던 세인은 잠시 멈칫하더니 말을 덧붙였다.
“바보보다 약간 나은 수준이긴 하지만 바보는 아니야. 그건 확실하지.”
새로 탄 말은 주인을 가리지 않았다.
게다가 세인이 타고 여기까지 왔던 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튼튼했다.
달릴 때마다 땅이 쭉쭉 뒤로 밀려났다.
그 바람에, 안장에 앉았던 까마귀가 위로 날아올랐다.
너무 요동치니 계속 앉아 있을 수가 없었던 탓이다.
그는 날아오르며 걱정스러운 말도 남겨주는 걸 잊지 않았다.
“조심해라.”
세인의 신변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일을 그르칠까 봐서였다.
그런 까마귀의 염려를 뒤로하고, 세인은 말과 함께 계속 달려나갔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세인은 멜라니가 납치된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을 주변에는 무장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디서 몰려나왔는지 숫자가 꽤 많았다.
무장 수준이나 기세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세인을 방해하는 대신 멀리에서 노려보며 길을 터주었다.
말에서 내린 세인이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자, 물러났던 사람들이 외곽을 빈틈없이 채웠다.
그럼으로써 마을을 완벽히 포위하는 형국이 되었다.
마을 안쪽으로 걸어가는 세인은 피 냄새를 맡았다.
하지만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전부 건물들 안쪽으로 치운 것 같다.
반과 슈나이더는 멀리에서 세인이 다가오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의 처지에서 세인은 무적의 생물이나 다름없을 텐데, 긴장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자존심이나 자신감에서 비롯되는 것뿐만이 아니다.
지금 그들은 직사각형의 커다란 유리 안에 있었다.
그 유리가 그들로 하여금 안정감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사각형의 공간 안에는 세 사람이 있었다.
첫 번째는 멜라니로, 그녀는 정신을 잃고 누워 있었다.
멀쩡한 겉모습을 보니 특별한 위해를 가하지 않은 상태다.
가슴의 고른 기복을 봐서는 아주 포근한 잠에 빠진 것 같았다.
약물로 인해 정신을 잃고 있는 멜라니가 이곳에 있는 사람 중 가장 마음이 편안한 상태일 것이다.
세인은 복잡한 얼굴로 멜라니를 바라보았다.
그로서는 딸과 첫 대면이었다.
그런데 전혀 처음 같지 않은 느낌이 참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물론 지금 그런 여운을 즐기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는 잘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돌려 슈나이더와 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누가 반이지?”
반과 슈나이더가 서로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반이 웃으며 앞으로 나왔다.
그래 봤자 유리 안이었지만 말이다.
“세인. 드디어 만났군. 지금부터 우리는 한 가지 일을 진행해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수지. 그러니까 설명을 좀 하도록 하지.”
세인을 바라보며 흥미로운 동물을 바라보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반이었다.
그동안 초상화로는 신물 나게 봐왔지만 실제로는 처음인 것이다.
누가 봐도 반의 시선은 아주 교활해 보이고 독을 품은 것처럼 느껴졌다.
시선에 깃든 집요함 안에서는 광기가 반짝이고 있었다.
세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반이 유리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이건 너의 공격을 막아낼 물건이야. 본국에서 가져오느라 고생 좀 했지. 불이나 물리력, 마법조차 무효화 하는 물건이야. 일단 한번 작동하면 태산이 무너져도 일정 시간 동안 막아주지. 외부의 힘에서 말이야. 물론 당신이 작정하고 힘을 쓰면,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이 물건조차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 하지만 그 정도로 힘을 쓸 수 없을 거라고, 나는 지금 생각하고 있어. 그럴 시간에 우리가 놀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동의하나?”
그러면서 반이 누워있는 멜라니를 보았다.
세인도 그를 따라 멜라니를 보았다.
이 유물은 성국의 물건이었다.
이걸 손에 넣기 위해 엄청난 희생과 돈이 들어갔다.
한번 쓰고 나면 힘이 사라지는 공간을, 천금을 주고 구한 반도 미친 사람이었다.
대신 효과는 아주 탁월했다.
이 정도의 유물을 파괴하려면, 그 안에 있는 멜라니가 무사할 수 있을지는 운에 맡겨야만 할 것이다.
긍정의 표시로 세인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씨익 하고 웃는 반이었다.
피를 닦아낸 그녀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평소 미스틸 테인이 알던 아름다움과 큰 차이가 있었다.
“좋아. 착한 녀석이군. 그러니까 이 유리는 나와 슈나이더에게 시간을 만들어 준다는 거야. 동시에 훌륭한 방패이고 말이야. 나는 드레퓨스 제국의 황제고 이 물건은 그런 내가 보증하는 물건이야. 그러니 이 안전장치에 대한 더 이상의 설명은 귀찮아서 하지 않겠어. 안 그래도 해야 할 말이 많거든. 난 우리가 어서 대화를 끝내고 합의점에 도달해서, 네가 현명한 행동을 하길 바란다.”
반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세인은 무덤덤한 얼굴로 한 마디를 내뱉었다.
“계속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