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4
& 리턴 라메아 (6)
설레는 가슴을 안고 방문한 반은 슈나이더의 얼굴이 굳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의아한 마음이 들어 질문했다.
“자네는 안 기쁜가? 드디어 놈을 요리할 수 있게 되었다고.”
슈나이더는 바위처럼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이 너무 쉽게 풀립니다. 마치 연극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말이죠.”
“이게 연극이라면 각본가는 우리야. 그는 비극의 주인공이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반은 슈나이더의 안색을 살폈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슈나이더가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세인을 죽이느냐 아니냐는 그들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슈나이더에게는 복수 실현의 기회였다.
여기에서 세인을 제거하지 못하면 언제 또 기회가 올지 모른다.
반에게 있어 이번 일의 중요성은 두 번 말해보았자 입만 아플 뿐이었다.
드레퓨스가 세상을 정복하려면 세인을 꼭 죽여야만 한다.
그는 남부 전체를 합친 것만큼이나 위험하기 때문이다.
“자네가 왜 이러는지는 알아. 우린 엄청난 거사를 앞두고 있다. 세상의 흐름을 결정하는 일이니 부담감이 없다면 그것도 이상하다. 그런데 말이야, 슈나이더. 공놀이를 해보았는가?”
슈나이더는 대답 없이 반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반은 그의 시선을 받으며 웃었다.
아주 잔인한 웃음이었다.
별 의미 없이 웃는 것 같은데 잔인함이 저절로 얼굴에 묻어난다.
“높은 신분의 사람이 공놀이를 하다 보면 말이야. 막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당연하지 않겠는가? 누가 그걸 적극적으로 막겠어. 이제 공을 차서 원하는 곳에 넣기만 하면 돼. 그런데 열 번 차면 몇 번이나 빗나갈 거 같나?”
슈나이더 앞에서 손가락 두 개를 내보인 반이 다시 말했다.
“그런데 공을 차는 귀족의 부모가 바라보고 있어. 꼬장꼬장한 늙은 신하들도 보고 있어. 그럼 몇 번이나 공이 빗나갈 거 같나?”
내내 말이 없는 슈나이더는 이번에도 반이 보여주는 손가락 일곱 개를 보았다.
“부담감이란 그런 거야. 여전히 방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넣지를 못하거든. 그런데 그러면 안 돼. 자네도 큰일을 하는 사람이지? 여럿 거느리잖아. 그러니 알 거야. 우린 어떻게든 공을 넣어야 해. 방해하는 것은 우리 마음뿐이야.”
“너무 일이 쉽습니다.”
“쉬운 일이 아냐. 착각하고 있군. 긴장했기 때문에 그 시점에서 이건 난이도가 높은 일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공을 안 넣을 거야? 우린 어떻게든 공을 넣어야 하는 사람이야. 그게 우리 의무야. 정신 차려 슈나이더. 복수를 해야지. 세인을 죽여버려야지. 지금 당장 움직이면 죽일 수 있어.”
그제야 슈나이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은 그걸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돌아가는 반을 배웅한 슈나이더는 마음을 다잡았다.
기필코 세인을 죽일 것이다.
천재일우의 기회가 다가왔다.
절대 놓칠 수는 없었다.
반의 말이 맞았다.
그는 어떻게든 공을 넣어야 하는 사람이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말이다.
기회가 왔을 때 넣는다.
그 외의 일은 용납이 되지 않았다.
* * *
드레퓨스에 잠입 중인 잭은 그곳의 귀족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수많은 노력과 아첨 끝에 잭은 점점 반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많은 연회에 초대받았고 드레퓨스에 대한 충성심을 시험당했다.
그 시험에서 잭은 언제나 만점이었다.
“내게 이런 재능이 있었을 줄이야.”
대광장에서 열리는 귀족들의 파티에 초대받은 잭은 술잔을 들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화려함의 극치랄까?
광장에 있는 물건들은 한결같이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사치품이었다.
유리로 만든 분수대나 꿀을 채워 넣은 수정 동상 같은 것은, 그중에서 평범한 축에 속했다.
잭은 바닥에 파놓은 수로를 따라 걷다가 고개를 돌려 보았다.
얼음이 둥둥 떠 있는 수로 안에는 살을 발라낸 물고기가 헤엄을 치고 있었다.
초일류 요리사가 솜씨를 자랑한답시고 한 짓이었다.
머리와 꼬리만 남은 물고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좀 서글퍼지는 잭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그런 감정을 털어내 버렸다.
폴리오가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기 때문이다.
잭은 자신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지금 만날 사람은 반의 얼굴을 보기 위해 꼭 통과해야만 하는 목표였다.
하얀 법의를 입고, 머리에 황금으로 장식된 하얀 관을 쓴 남자가 잭에게로 다가왔다.
엄청나게 살이 찐 그는 지팡이 없이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그가 잭을 바라보며 웃는데, 입안에서 여러 개의 금니가 반짝였다.
“오! 이 젊은이가 바로 그인가요?”
“예. 제가 말씀드렸던 결사대의 12조장입니다. 드레퓨스에 충성을 맹세한 풍운아죠.”
폴리오가 비굴하게 손을 비비며 말하자, 뚱뚱한 남자가 크게 웃었다.
어찌나 요란스럽게 웃는지 지나가던 귀부인들이 부채로 입을 가리고 눈을 흘길 정도였다.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남자는 잭에게 눈웃음을 쳐 보였다.
“잭이라고 합니다.”
“그래. 아주 마음에 들어요! 마음에 쏙 듭니다. 튼튼하고 매력이 넘치는 젊은이군요. 잘 들으세요. 반 전하의 사열을 받을 기회는 흔한 게 아닙니다. 운이 좋으면 반 전하의 연설도 들을 수 있어요. 그걸로 훈장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평생의 영광이지요. 가문의 영광이에요.”
그러자 폴리오가 웃으면서 속삭였다.
“결사대라서 연고는 없습니다.”
“아하. 그렇지요. 충성심 하나만으로 만인이 인정하는 자리에 오른 결사대! 어디! 어디! 그 충성의 흔적을 봅시다.”
눈앞에서 뚱뚱한 남자가 손뼉을 치면서 촐싹대는데, 거절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잭은 억지로 웃으며 왼쪽 손의 장갑을 벗었다.
그러자 새끼손가락만 남은 손이 드러났다.
네 개의 손가락은 충성의 표시로 잘라야만 했다.
또 그래서 그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오! 과연 대단합니다! 이게 바로 부정할 수 없는 충성의 맹세!”
호들갑을 떠는 남자는 잭의 손을 끌어당기더니,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손을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심지어는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맡아보기까지 한다.
완전 미친놈이었다.
대장장이이기도 한 잭의 입장에서는 왼쪽 손가락을 잘라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드레퓨스에 침입하기 위해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드레퓨스의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손가락을 차례차례 자르며 충성의 맹세를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단이 지금 다시 인정을 받고 있었다.
“아주 좋아요. 그런데. 유독 하나가 거슬리는군요.”
부담스러운 눈길로 잭의 새끼손가락을 바라보던 남자는, 고개를 들어 잭과 눈을 맞추었다.
그런 남자의 눈 속에 깃들어 있는 불같은 요구를 읽어낸 잭이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폴리오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나 폴리오는 이미 눈을 질끈 감은 후였다.
지금 상황에서 폴리오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은 잭 혼자 헤쳐 나가야만 한다.
잭은 터져 나오려는 실소를 참으려 했다.
‘미친놈들.’
역시나 드레퓨스 놈들은 미친놈들이다.
그동안 드레퓨스에 와서 잭이 보고 느낀 것은 이놈들이 다 미쳤다는 것이다.
광기에 휩싸인 미치광이들이었다.
절대 이놈들이 북부를 짓밟게 두어서는 안 된다.
또 그러니까 눈앞 남자의 비위를 맞춰야만 했다.
이런 결심을 하는 와중에도 남자는 잭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어서 증명을 하라는 듯이.
결국 실소를 지어 보인 잭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잘랐다.
주변에 있던 여자들은 기겁을 해서 흩어졌다.
그 모습이 발에 채인 비둘기 떼를 연상하게 했다.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일을 주도한 뚱뚱한 남자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는 반을 섬기는 종교의 추기경 중 하나였다.
“나는 만족합니다. 정말 만족해요. 눈앞에서 보았잖아요. 분명 반님도 만족하실 겁니다. 당신은 폴리오의 말대로 반님의 앞에 설 자격이 있어요. 내가 보증하죠!”
술로 손을 소독하고 있는 잭에게 남자가 다가왔다.
그리고 살찐 손가락으로 그의 팔을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눈웃음을 쳤다.
“그런데 피를 흘리게 해서 어쩌죠? 왠지 제가 부추긴 것 같잖아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래도 제가 죄송해서 그래요. 아 참 그렇지. 이대로 보내는 것은 너무 죄송하니까. 제 집에서 쉬게 해드리죠. 어때요?”
잭은 자신의 팔을 느끼하게 만지는 남자의 눈을 보았다.
그 안에 있는 의도도 읽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폴리오의 눈을 보지 않았다.
드레퓨스는 무너져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잭은 반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할 수 있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꼭 반과 대면할 것이고, 그의 초상화를 만들 것이다.
그 정보는 지금 천금을 주고서도 살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일단 반의 얼굴이 공개되면, 더러운 짓이지만 암살도 고려해 볼 수 있었다.
“그러면 하루 신세를 지겠습니다.”
“좋아요! 아주 좋아!”
잭 앞에서 남자가 흥겹다는 듯 다시 박수를 쳤다.
* * *
멜라니를 보호하고 있던 미스틸 테인은 고민이 많았다.
그건 당연한 것이었다.
몬먼드 시에서 소란이 일자 신경이 쓰인 것이다.
그는 세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밖에서 소란이 일어나는 것을 알고 바로 문단속을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전부 멜라니와 함께 지하실로 대피해야 했다.
“대체 이게 무슨 난리야. 왜 그러는 건데?”
멜라니가 계속 투덜거렸지만, 지하 철문 뒤에 선 미스틸 테인은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지금 벌어진 소란이 멜라니와 관계될 이유가 없고, 이유가 있다 해도 이런 식으로는 아닐 것이다.
그걸 미스틸 테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로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작금의 현실을 상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재 가출한 멜라니의 곁에는 기사들이 다 떨어져 나간 상황이다.
“연락을 더 할걸.”
멜라니를 챙기느라 글리터에 자주 연락을 못 했던 게 조금 후회되는 미스틸 테인이었다.
최근에 위치를 알리기 위해 몇 번 전서구를 보냈는데 이상하게 답변이 없었다.
물론 슈나이더가 중간에 가로챈 것을 지금의 그는 몰랐다.
“당분간 여기에서 지내셔야 합니다.”
미스틸 테인의 말에 멜라니가 절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다른 기사들의 협조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인지라 미스틸 테인은 엄격하게 굴었다.
그는 지하에 멜라니를 밀어 넣은 상태에서 위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지켰다.
치안대로 심부름꾼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너무 과민 반응 같아요. 물론 여기가 자유 도시이지만 누가 우리에게 시비를 걸어오겠어요? 지키는 남자들도 이렇게 많은데. 게다가 멜라니님의 사정도 헤아려 봐요. 저렇게 억지로 가둬 놓으면 부작용만 커질 텐데.”
옆에서 라온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지만, 이번만큼은 미스틸 테인도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이미 멜라니를 방치한 자신을 꾸짖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멜라니가 세리스의 화를 감당해야 한다 해도 그건 그녀의 몫이었다.
괜히 부녀 사이에 끼어들어 멜라니를 위해준답시고 일을 이렇게 만들어 버렸다.
“치안대는 뭐라고 하던가?”
심부름꾼이 돌아오자 미스틸 테인이 물었다.
그러나 심부름꾼은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입에 자물쇠를 걸어 잠근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미스틸 테인은 너무 과민 반응을 하는 것만 같아 보였다.
하지만 미스틸 테인은 멜라니만 빼놓고 모두 모아놓은 상태에서 이렇게 말했다.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돌아간다고요? 멜라니님이 절대 동의하시지 않을 텐데요?”
남자들은 웅성거렸고 라온도 난처한 얼굴을 했다.
멜라니가 얼마나 성질을 낼지 상상도 하기 싫었을 것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미스틸 테인도 잘 알았다.
“꼭 이번 소란 때문만이 아니라, 언제까지고 허술한 방비 상태에서 머무를 수는 없으니까요. 세리스님에게는 제가 복귀한 후에 용서를 빌겠습니다. 철수 준비를 해주세요.”
결국 다들 한숨을 쉬며 바쁘게 움직였다.
그 와중에 라온이 다가와 정말 괜찮겠냐고 물었다.
“제가 너무 독단적으로 굴죠?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미스틸 테인이 미안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라온이 애써 웃어 보였다.
“멜라니님을 위한 거니까 그분도 이해하실 거예요.”
그리고 익살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물론 당장은 아니겠지만.”
그 익살에 미스틸 테인이 피식 웃어 보였다.
라온은 심각했던 그를 웃겼다는 것에 만족했는지 덩달아 웃음을 터트렸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