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1
& 리턴 라메아 (3)
세인과 에스는 자연스럽게 몬먼드 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걸어가는 도중 휴식 시간이 잦았는데, 그때마다 세인은 깊은 생각에 빠진 듯 보였다.
아마 마플이 주고 간 단서 때문이리라.
에스는 처음에는 말하는 까마귀를 보고 놀랐다.
몬스터인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인이 잘 설명해 주었다.
“확실히 이상한 까마귀야. 네가 볼 때 소름 끼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적도 아니고 물지도 않아. 그게 중요한 거지.”
그 성의 없는 설명에도 까마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만 이제 떠나도 되겠냐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세인의 대답은 ‘아니.’였다.
“왜 안 된다는 거지?”
멀리 몬먼드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까마귀가 물어보았다.
그들은 지금 절벽 위에 서 있었다.
주저앉은 에스는 지금 수통의 물을 마시느라 여념이 없다.
에스에게서 멀리 떨어진 세인도 땅에 앉은 상태였다.
하지만 에스와 달리 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앉은 것이다.
“좀 더 나를 도와줘야겠어.”
세인은 미간을 좁히더니 한 손을 쭉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땅에 박혀 있는 아주 작은 돌이 약간 들썩였다.
세인의 옆에 앉아 있는 까마귀도 그걸 보고 있었다.
그는 세인의 집중을 도와주기는커녕, 흩뜨려도 상관없다는 듯이 말을 걸었다.
“네가 과거로 돌아가기 전이라면 나의 조언이 필요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제는 아니지. 너는 지금 엄청나게 강한 상태고, 세상의 흐름에 대해 각성을 한 상태다. 이제 내 도움은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내 동행은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
까마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세인이 손바닥을 안으로 말아 쥐었다.
그러자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돌이 심하게 들썩였다.
그걸 보는 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누군가가 내 등에 비수를 꽂았어.”
마플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세인은 까마귀가 그를 도와줘야 하는 이유를 간략하게 말했다.
“나는 누가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
마플이 남긴 유산이 답을 알려주었다.
“그놈은 어쩌면 벌써 어디선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지. 아주 여유롭게 말이야. 그래서 네가 필요한 거야. 남이 볼 때 넌 그냥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까마귀지만, 실제로는 생각도 하고 말도 할 줄 아는 까마귀잖아. 이런 상황에서 내가 왜 너의 조력을 포기해야 하지? 지금의 난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고.”
세인의 눈이 희미한 보라색을 띠었다.
그때 작은 돌이 크게 움직이며 덜그럭 소리를 내었다.
그러다가 땅에서 쑤욱 뽑혀 나오며 커다란 몸집을 보인다.
알고 보니 작았던 돌은 전체 중 지상에 드러난 부분이 극히 일부였을 뿐이다.
땅에 박혀 있던 부분이 드러나자 성인 남성도 들기 부담스러울 크기가 되었다.
“내 한 몸 지키는 것은 문제가 아니야. 하지만 암살자가 내 주변을 또 노린다면 어떻게 되겠어? 그 대상이 멀리로는 글리터에 있는 사람들이고, 가까이에는.”
그리고 세인은 말을 아끼며 눈짓을 해 보였다.
그의 눈짓을 따라가니 앉아 있는 에스가 보였다.
까마귀는 그제야 손을 거두는 세인 옆에서 투덜거렸다.
“알겠다. 하지만 한 번만 더 나를 전령 따위로 쓸 생각이라면 정말 화낼지도 몰라.”
까마귀가 그렇게까지 이야기했지만, 세인의 반응은 뻔뻔했다.
“전령으로 쓸 수도 있는 쓰임새 때문에 네가 필요한 거야.”
까마귀는 세인의 눈을 다시 보았다.
세인은 지금 침착한 듯이 보였다.
가라앉아 있는 시선도 그렇다.
하지만 폭풍 전의 고요함처럼 불길한 분위기가 세인에게 머물고 있었다.
현재의 그가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는 신만이 알고 있으리라.
그러나 지금 이 마당에 증오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세인은 분노를 가슴 깊숙이 감추었다.
그리고 대신 이성적인 생각을 하려 노력하는 듯 보였다.
그게 까마귀의 눈에는 보였다.
까마귀는 푸드득 하고 날아가 앉아 있는 에스의 어깨 위에 올라탔다.
날개가 볼에 스치자 기겁하는 에스였지만, 까마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날면서 따라가는 건 피곤해.”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세인이 넌 모습을 숨겨야 한다고 말하자 혀를 차며 떠나야만 했다.
그는 하늘 높이 떠올라 세인의 머리 위를 빙빙 돌았다.
그 상태로 주위를 살폈다.
그런 까마귀를 올려다본 세인은 에스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에스가 그의 손을 잡자 일으켜 주었다.
“조금만 더 견디면 돼. 오늘 내로 도시로 갈 수 있을 거다. 가서 푹 쉬어라.”
에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세인의 옆에 가서 섰다.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세인의 장담대로 그들은 그날 저녁에 몬먼드로 들어설 수 있었다.
* * *
위성 도시인 몬먼드는 실험적인 성격이 강했다.
연방이 합작해서 접근성 좋은 여러 도시를 내놓았는데, 몬먼드는 그중 하나였다.
거기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자유롭게 물건을 사고팔았다.
몬먼드는 글리터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었고, 글리터에서 관리하는 곳도 아니었다.
법적으로도 그렇다.
그 증거로 엘프들이 얼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글리터에 비해 훨씬 개방적이다.
신분패도 까다롭게 검사하지 않는다.
그래서 타국의 사람들이나 용병들도 부담 없이 몰려든 것이다.
헌터 타워가 생긴 후 헌터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글리터 친화적으로 되어 가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머독의 사조직화가 되어 가고 있다느니.
자유 의뢰라곤 하지만, 결국 글리터에 종속되어 뒤치다꺼리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물론 헌터들 내부에서가 아니라 겉도는 용병들의 말이다.
머독을 앞잡이로 세우고, 용병들을 길들이기 위해 헌터 타워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몬먼드 같은 곳에 모여드는 용병들의 표현에 따르자면, 그들이야말로 태생적으로 자유로운 영혼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영혼들이 모인 한 용병 사무소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대장님! 대장님!”
한 여자가 호크아이에게 헐레벌떡 달려오자, 호크아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여자가 문을 너무 거칠게 열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거친 용병들은 문을 터프하게 열어젖히고 오는 게 박력을 자랑할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놈의 박력 때문에 자신의 주머니에서 일정하게 돈이 나가고 있었다.
문을 갈아 끼우느라 말이다.
“사라. 진정해.”
호크아이는 빚을 갚지 못해 몸을 저당 잡힌 자들의 문서를 뒤적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업소에 넣을 애들을 살펴보고 있던 참이다.
그런데 사라가 다가와서 테이블을 두 주먹으로 내리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라는 그의 기분에 아랑곳하지 않고 외쳤다.
“큰일 났습니다, 대장님!”
“이봐 사라. 이건 병아리 감별 작업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야. 도자기를 빚는 섬세함과 정성도 필요하지. 적재적소에 인재를 넣어야 하거든. 그러니 옆에서 목청을 높이면 어떻게 되겠어? 형편없는 곳에 인재가 가게 된다고 생각해봐.”
“스톤헤드 애들 아시죠? 전서구가 안 왔잖아요? 집결 장소에도 오지 않아서 곤란을 겪었고요.”
“걔들은 원래 그래. 오늘만 사는 애들이야. 내일까지 사는 우리들보다 더 미래가 없는 녀석들이지. 그래도 우리는 잠자리에서 내일 정도는 생각한다고. 난 그놈들에게 까무러칠 만한 벌금을 먹일 생각이야. 기대해도 좋아. 내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말이야. 저번에 집단 폭행 사건도 눈 감아 줬어. 그런데 이번에는 날 물 먹이다니.”
사라는 호크아이의 말을 막으면서 떠들어 댔다.
“그놈들의 외투를 입은 남자가 입구에 들어섰어요. 이상하지 않아요? 올 놈들이 안 오고 웬 놈이 대신 옷을 입고 왔다고요.”
호크아이는 사라를 바라보다가 양손을 올려 발 베개를 했다.
그가 보기엔 사라가 너무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만 같았다.
생각해보면 심부름꾼 하나가 외투를 대신 입고 올 수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그걸 지적하려 하는데 사라가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 외투를 입고 온 놈이 마족이에요.”
마족이란 말에 호크아이가 움찔했다.
다 떠나 마족이 얽히면 정말 좋지 않다.
그들을 건드리는 건 엘프들을 건드는 것만큼이나 아주 곤란해질 여지가 있었다.
마족들은 어지간하면 글리터의 깊은 곳에서 나오지를 않는다.
그런데 마족이 나타났고. 굳이 문제아들만 모인 용병단의 외투를 입고 왔다고?
외투에는 용병 마크가 찍혀 있을 텐데?
“혼자야?”
“여자아이를 데리고 있어요. 그리고 그 애도 외투를 걸쳤는데 스톤헤드 것이에요.”
“마족이면 심부름꾼이랑은 거리가 한참 멀어. 심부름꾼이 아니라면 용병 마크가 찍힌 옷을 줄 이유가 없어.”
“어떻게 된 걸까요?”
“착각이면 좋겠지만 스톤헤드가 마족을 납치하려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스톤헤드는 충분히 그럴 수 있거든. 거기 약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냐.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지. 그래서 얽힌 걸까?”
사라와 호크아이는 머리를 굴려봤지만, 진실을 알 수가 없었다.
그건 당연하다.
탁자 위에서 진상을 밝혀내는 게 쉽다면 사람을 써서 발품을 팔 이유가 없으니까.
결국 두 손을 들어버린 호크아이는 사라에게 명령을 내렸다.
“일단 감시꾼 몇 명을 붙여. 그리고 뭐든 고발할 수 있는 장소로 이동하면 일단 막아서라고 해. 소매치기를 붙이든지 해서 이목을 끌라고 말이야. 뭔가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것 같아. 스톤헤드의 형제 용병단이 누가 있지? 연락 좀 해봐. 스톤헤드 애들이 그 녀석들에게는 소재지를 밝혔을지도 몰라.”
호크아이의 선택은 마족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보통 때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마족이라는 의미 때문에 좀 커져 버렸다.
그래도 그는 마족이 관계된 일이니, 되도록 작게 축소하고 덮어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세인에게 그럴 의사가 없다는 것이었다.
* * *
도시를 둘러본 세인은 여관에 들어가 하루를 쉬었다.
그리고 다음 날 에스를 불러서 앉혔다.
그는 솔직하게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위협을 받고 있어. 그런 내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는 여기의 치안대에게 너를 맡기는 것이다. 하지만 나를 위협하는 놈들이 보통은 아니라서 너에게 손을 뻗을 수도 있어. 두 번째는 너를 데리고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너는 피를 봐야 해. 그것도 아주 많은 피를 봐야 할 거야. 어떤 게 좋겠니?”
불안해하는 에스는 당연히 피를 보지 않는 선택을 했다.
에스는 이상한 능력도 있었고 보통 소녀와는 좀 많이 달랐다.
담력도 있는 편이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피와 뼈가 보이는 싸움터에 갈 것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요.’라는 답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성은 세인의 곁에 있다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의 곁에 있는 것은 절벽에서 줄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다.
아무리 줄이 튼튼하다고 말해보았자 소용없었다.
대개는 절벽 옆의 오솔길을 통해 아래로 내려갈 것이다.
그 오솔길에 이따금 짐승이 나타난다 해도 말이다.
에스는 이 와중에 질문을 던지는 모습도 보였다.
“만약 제가 인질이 되면, 세인님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나요?”
세인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침묵은 긍정 같기도 했고 부정 같기도 했다.
에스는 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짐이 되지 않겠노라고 대답했다.
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에스의 뜻을 존중해 주었다.
그리고 그녀를 몬먼드 시의 치안대에 맡겼다.
치안대가 한가롭게 여행자의 신병이나 보호해주는 곳은 아니었다.
그들은 폭력적인 분쟁에나 어쩔 수 없이 나서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세인의 얼굴을 본 그들은 순순히 협조해 주었다.
상대가 마족이었기 때문이다.
세인을 박대했다가 나중에 글리터 쪽에서 문제로 삼으면 일이 커질 수도 있음을 상기했다.
치안대를 나오는 세인의 어깨 위로 검은 까마귀가 내려앉았다.
그러자 까마귀에게 시선 한번 주지 않는 세인이 입을 열었다.
“놈들이 여기 어딘가에 있다는 것은 알아. 하지만 정확히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어. 글리터로 향하면 전장이 글리터로 옮겨지는 거겠지.”
“여기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알지?”
“나도 들어와서 여기 도시 이름을 듣고 알았어.”
세인이 목도리를 끌어내려 단어들을 보여주는데, 그중 하나의 단어가 까마귀의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는 ‘몬먼드’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그걸 본 까마귀가 물었다.
“거기에 적힌 단어들의 뜻을 다 알 수 있겠나?”
그때 세인이 호크아이가 붙인 감시자와 눈을 마주쳤다.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린 세인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풀을 건드리면 뱀이 튀어 나올 거야.”
“그 뱀은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 왔을 거다. 그리고 인내에는 다 이유가 있어. 그렇지 않나?”
까마귀의 의미심장한 말에 세인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래서 네가 필요한 거야.”
까마귀는 세인을 떠나 높이 날아갔다.
그리고 뾰족하게 솟아 있는 종탑 위에 앉았다.
이제부터 그가 할 일은 세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세인의 주위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위에서 말하는 까마귀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렇게 내려다보니 몬먼드 시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회색빛과 고동색으로 세운 벽들이 오밀조밀하게 서서 칸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떠들썩한 사람들이 호객 행위를 하며 장사하고 있었다.
중앙의 큰 광장에서는 공연을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길거리를 채운 사람들의 복색은 가지각색이다.
여러 나라에서 몰려든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자유는 방종을 낳기 쉽지만, 이처럼 활기찬 힘도 만들어냈다.
거리에서 침을 뱉고 소리를 쳐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벽에 소변을 보는 어른도 있었다.
비틀거리는 게 술에 취한 것 같다.
골목에는 공을 차는 아이들도 보였다.
까마귀가 아래를 살펴보느라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는데, 지붕 한쪽에서 소리가 났다.
뭔가? 하고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니, 큰 둥지 안에 있는 독수리 새끼들이 보였다.
그들은 까마귀를 황당하다는 듯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독수리의 영역에 까마귀가 침입했으니 어이가 없기도 할 것이다.
그들은 루비 독수리였는데, 이름대로 붉은 눈이 특징이다.
성체가 되면 야간에 붉은빛을 발하기도 한다.
호기심 많은 놈들은 까마귀의 등장에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그들과 눈이 마주친 까마귀는 이렇게 말했다.
“실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