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
& 리턴 라메아 (2)
멜라니는 미스틸 테인 이 건네준 닭고기 꼬치를 받아들고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미스틸 테인은 그런 멜라니가 귀엽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멜라니는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정작 발작을 하진 않았다.
그게 바로 멜라니의 묘한 경계였다.
그녀는 정식 귀족의 교육을 받았다.
그러므로 미스틸 테인이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봐왔던 미스틸 테인이지만 깊은 정이 든 것은 아니다.
세리스를 통해 멜라니가 받은 교육수준은 매우 지체 높은 귀족이 받는 수준이었다.
많은 개인 교사들이 멜라니에게 달라붙어 제왕학을 가르쳤던 것이다.
멜라니에게 있어 미스틸 테인은 공적인 만남 그 이상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바쁜 세리스는 멜라니를 섬세하게 돌볼 틈이 없었고, 이 작은 소녀에게는 약간이나마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지금만 해도 가출 도중에 미스틸 테인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은가?
“관용의 경계는 참 애매해. 애매하다고.”
그렇게 중얼거리며 닭고기 꼬치를 빼먹는 소녀를 미스틸 테인이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멜라니는 미스틸 테인에게 별 감정이 없었지만, 미스틸 테인에게 있어 멜라니는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가 지켜봐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언제 돌아가실 겁니까?”
꼬치를 손에 든 멜라니가 반짝 기분이 좋아 보이자 미스틸 테인은 넌지시 물어보았다.
이때다 싶었던 것이다.
그러자 멜라니는 별걸 다 묻고 있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러는 너는 언제 트리엔으로 돌아갈 건데?”
그러자 미스틸 테인이 두 손을 들며 말했다.
“이거 한 방 먹었군요.”
꼬마 숙녀는 볼을 부풀렸다.
꼬치를 두 개 사서 먹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뒤늦게 든 것이다.
하지만 미스틸 테인에게 두 번이나 심부름시키는 것은 몹쓸 짓이었다.
주변에 변복하고 있는 병사 한 명에게 부탁할까 말까 망설이는 그녀다.
그런데 여기서 그녀가 그 병사를 움직인다면, 일반인으로 변장 시킨 의미가 없었다.
“그래도 돌아가셔야죠. 왕성에서 얼마나 걱정하고 있겠습니까?”
“일 중독자 엄마 말이야? 서류 보느라 정신이 없을걸? 그리고 솔직히 당신은 지금 살판났지 않아?”
그러자 미스틸 테인이 팔을 그녀 쪽으로 빼며 몸을 약간 밀착시켰다.
그러면서 은근히 압박을 주었다.
“병사들에게 비밀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약속 때문에 꼬치를 사다 준 거란 말입니다.”
그러자 멜라니가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이럴 때 보면 생긴 건 아주 귀여운 어린애인데 행동하는 것은 다 큰 어른 같았다.
그런데 묘한 건 그런 멜라니가 위화감이 없다는 것이다.
“비밀은 무슨. 라온을 여기까지 동행시켰으면 바보라도 관계를 알겠다. 솔직히 말해봐. 좋잖아? 여기서라면 남의 눈치 안 보고 야외 데이트를 즐길 수도 있고 말이야.”
“그러니까 멜라니님 빼고는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단 말입니다. 라온님은 멜라니님의 시녀로 되어 있으니까요.”
‘이 아저씨 진짜 정녕 바보인 거야?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걸 왜 혼자만 몰라? 사랑에 눈이 먼 거야?’
멜라니는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미스틸 테인을 바라보았다.
아마 당사자들만 비밀 연예를 한다고 생각하나 보다.
그 한심하다는 눈빛 앞에서 미스틸 테인은 잠시 울컥하는 시간을 가졌다.
꼬맹이에게 저런 눈빛을 받는다는 건 즐거운 인생을 위한 권장 사항이 아니다.
그런데 진짜로 울컥할 일은 따로 있었으니….
“알았어. 알았다고. 그러니 꼬치 한 개만 더 부탁해.”
“….”
미스틸 테인은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멜라니에게 풀려났다.
멜라니는 병사 몇 명의 보호를 받으며 자신의 방에서 잠들었다.
미스틸 테인 입장에서는 글리터와 멜라니의 중간에 낀 상황이 되었다.
그로서는 빨리 멜라니를 꼬드겨 왕성으로 돌려보내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멜라니와 척질 수 없는 게 그의 처지였다.
“저러다 시큰둥해지면 돌아가겠지.”
그렇게 말한 미스틸 테인은 거울 앞에서 몸단장을 했다.
당장 왕성에 돌아가지 않는 멜라니의 입장도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멜라니가 그동안 쳐왔던 사건 사고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아무리 반항심 때문이라지만 용납될 수 없는 일을 저질러 버린 것이다.
세리스가 극도로 분노했음은 안 봐도 뻔한 일이다.
어머니의 분노가 잦아들 때까지 돌아가지 않는다는 멜라니의 행동은 현명하긴 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사고를 치지 않았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거울 앞에 선 미스틸 테인은 고개를 저어 보였다.
멜라니에 대한 생각을 털어내기 위해서였다.
멜라니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인생도 중요하다.
그는 주점에서 마주친 라온이라는 여자와 잘되어 가고 있었고, 이미 잠자리도 몇 번 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미래를 약속한 사이다.
머지않아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에게 인사도 시킬 예정이었다.
트리엔의 왕은 미스틸 테인을 눈독 들였다.
못생겼지만 심성이 고운 공주와 짝지으려고 하는 게 그 증거였다.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은 것이다.
하지만 이미 미스틸 테인은 라온의 노예였다.
전문용어로 사랑의 포로라는 표현도 쓴다.
그는 출세를 위해 공주를 선택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미 라온만으로 충분했고, 그녀를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부자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 * *
그답지 않게 가벼운 휘파람을 분 미스틸 테인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복도로 나가자마자 꽃향기가 흘러나왔다.
놀라서 옆을 보니 아름다운 미인이 그림처럼 서 있었다.
그의 연인인 라온이었다.
“옆 건물에서 기다린다고 했잖아요?”
“조바심이 나서 기다릴 수가 없었어요.”
활짝 웃은 라온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미스틸 테인은 그 손을 잡으며 웃었다.
전에도 그랬지만, 요즘도 그는 살맛이 나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여관을 빠져나온 둘은 이제 다정하게 팔짱을 끼었다.
그 상태로 몬먼드의 번화가를 걸어 다녔다.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다리 위에서 수면 아래의 물고기를 구경하기도 했고, 화단의 꽃냄새를 음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미스틸 테인은 꽃향기가 당신의 내음보다 향긋하지 않다는 느끼한 대사도 날렸다.
아마 이 자리에 멜라니가 있었다면 느끼함에 진저리를 쳤을 것이다.
입막음용으로 닭고기 꼬치 수십 개를 요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멜라니는 여기에 없었다.
그저 손을 입가에 대고 수줍게 웃는 라온만이 있을 뿐이었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미스틸 테인과 라온은 갈림길 앞에 섰다.
왼쪽은 서커스였고, 오른쪽은 연극을 하는 소극장이었다.
“어디로 갈까요?”
미스틸 테인의 질문에 라온이 대답했다.
“저는 상관없어요. 원하시는 방향으로 가세요.”
미스틸 테인은 라온의 이런 점이 좋았다.
그녀는 자기 멋대로 굴지 않았고 남의 의견을 존중했다.
그리고 수다스럽지도 않았다.
항상 미스틸 테인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잘 들어 주었다.
그래서 미스틸 테인은 그녀에게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부담 없이 하며,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남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는 것은 누구에게나 커다란 장점이다.
“그럼 연극을 보러 가죠. 서커스의 동물들은 냄새가 심할 수도 있거든요.”
미스틸 테인은 라온과 함께 소극장으로 들어갔다.
반원형의 극장에는 생각보다 인파가 몰려 있었다.
“어서 오세요. 오늘 작품은 총 세 작품입니다. 그중 두 개가 리턴 라메아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리턴 라메아가 뭔지 다 아시죠? 예술성을 극대화한 전개죠.”
사회자가 설명을 마치고 모자를 벗자 박수가 쏟아졌다.
미스틸 테인과 라온도 의자에 앉아 손뼉을 쳤고 말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리턴 라메아 형식이란, 거꾸로 전개되는 극을 말한다.
먼저 엔딩을 보여주고 전개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프롤로그로 가서 끝맺음을 하는 식이었다.
결말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이게 얼핏 들어보면 재미가 없을 것 같지만 의외로 호응이 좋았다.
물론 극도 잘 만들어야 하지만 관객들도 주의 깊게 집중해야 한다는 점은 필요했다.
박수가 끝난 후 이제 극장 안에는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정적에 휩싸였다.
그리고 배우들이 나와 연극을 하기 시작했다.
첫 연극은 비극에 대한 이야기였다.
먼저 헤어지는 연인들의 결말을 보여준다.
그리고 역순으로 짚어 나가며 그 이유에 대해 보여주는 식이었다.
“오 맙소사.”
여자들과 라온은 감탄사를 터트렸다.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남자 주인공이 사랑하던 여주인공의 여동생을 대신하여, 그녀를 대체물 취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것이다.
“저러니 나중에 헤어질 만하지.”
“본인을 사랑하지 않았다니. 쯧쯧.”
“비극은 예견되어 있었어.”
사람들은 연극에 감정 이입 하며 남자 주인공을 혐오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중간에 나온 분위기 전환용 희극에서는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미스틸 테인과 라온도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다음은 해피엔딩에 대한 리턴 라메아였다.
잘되는 연인들을 보여주고 그 이유를 역으로 짚어 나간 것이었다.
“아 그랬구나….”
실은 서로 기억은 못 하지만 어릴 적의 첫사랑이었다는 대목에서 다들 가슴이 찡한 느낌을 받았다.
비록 소년 소녀는 성인이 돼서 서로를 몰라보지만, 어릴 적 첫사랑이었다.
서로 그것을 인지하진 못했을지라도, 훗날 그 순수가 결실을 보았다는 게 관객들에게 감동을 만들어 냈다.
이렇듯 역순으로 짚어나가는 전개도 묘한 재미가 있었다.
연극이 끝나자 미스틸 테인과 라온은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
거기에 다른 사람들도 동참했고 말이다.
좋은 리턴 라메아였다.
그 후로 둘은 심야에 연극 하나를 더 보았다.
그것은 고대의 이야기를 각색한 연극이었다.
괴물로 변한 아내와 여행을 떠난 남자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기 충분했다.
여행을 떠났던 남자는 어느 날 무서운 존재를 만나게 된다.
그 존재는 이렇게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네 아내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딸의 아비다.”
남자는 괴물에게 달려들었지만 보기 좋게 패하고 말았다.
애초에 그의 상대가 아니었던 탓이다.
그런데 괴물은 패한 남자를 죽이지 않았다.
괴물은 괴벽이 있었다.
그 괴벽이란 솔로몬 같은 남자를 찾아내, 게임을 거는 것이다.
예를 들어 뱀을 작게 해보라는 식의 게임이었다.
그 일화는 책으로도 만들어져 과거에 세인이 읽은 바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어둑어둑해지는 가운데 괴물은 남자에게 내기를 걸었다.
먼저 자신의 몸을 크게 부풀렸다.
남자보다 두 배 정도 되는 크기로 말이다.
“나를 너보다 작게 해봐라.”
남자가 생각하기에 방법은 두 개였다.
첫 번째는 괴물을 반 토막 내서 작게 하는 것이다.
이건 처음부터 가능성이 없으므로 포기해야 했다.
두 번째 방법은 자신의 아내를 머리 위에 올려 상대보다 더 큰 크기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 위에 다른 사람이 중심을 잡고 올라선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가고 있다.”
괴물이 의미심장하게 웃었을 때, 궁지에 몰린 남자는 꾀를 냈다.
그는 어두운 곳에서 초를 켰다.
그리고 그 초의 위치를 이리저리 변경한다.
결국 남자의 그림자가 괴물보다 훨씬 길게 자라나자 괴물이 웃었다.
촛불의 빛을 받으며 웃는 괴물의 얼굴은 끔찍했지만, 한편으로는 위엄 있는 악마 같았다.
“훌륭하다. 나 가미긴은 네 꾀를 인정한다. 내 딸을 거두어 주마.”
그리고 그 괴물은 딸과 함께 사라졌다.
남자는 아내를 돌려받을 수 있었고 말이다.
연극이 끝나자 그 여운을 안고 라온과 미스틸 테인은 극장에서 빠져나왔다.
그들은 이야기를 음미하려는 듯 천천히 걸어 여관으로 향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토레스란 남자는?”
“글쎄요. 아주 옛날 일이니까요. 아내를 다시 돌려받았으니까, 좋은 마무리가 되지 않았을까요? 아내인 앤이 의식을 찾았으니 다시 남편과 잘 살았겠죠.”
라온의 물음에 그렇게 대답한 미스틸 테인은 갑자기 멈춰 섰다.
라온이 무슨 일인가 싶어 그를 바라보자 미스틸 테인이 약간 붉어진 얼굴로 그녀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라온이 피식 웃었다.
“엉큼한 사람.”
둘의 얼굴은 하나로 합쳐졌고 키스를 교환했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말이다.
이렇듯 사랑은 사람을 제정신으로 만들지 않는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휘파람을 부는 가운데 그들의 입맞춤은 계속되었다.
* * *
“분위기 좋군.”
아래쪽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자 슈나이더는 무슨 일인가 싶어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두꺼운 커튼을 살짝 젖혀 보았다.
아래에서 입을 맞추고 있는 미스틸 테인과 라온이 보인다.
하지만 지금의 그로서는 휘파람을 불 기분이 아니었다.
며칠 동안 잠복하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었기 때문이다.
분위기 좋다는 말과 함께 어깨를 으쓱거린 슈나이더는 다시 천천히 걸어 자신의 소파로 돌아왔다.
소파 위에는 여러 장의 카드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는데, 방금까지 카드 점을 쳤던 흔적이었다.
슈나이더는 멜라니를 따라 몬먼드 도시까지 왔다.
다 공작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멜라니의 얼굴은 자세히 몰랐다.
초상화로만 봤을 뿐이니까 말이다.
지금의 슈나이더는 반의 지시를 받고 따라붙은 것에 불과했다.
글리터의 보안은 이미 뚫린 바가 있다.
독살당한 마플이 그 증거다.
그런데 그 보안을 뚫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반이 미친 사람이고, 고작 한번 찔러 보는데 천문학적인 금액을 아끼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당장 생각해봐도 글리터에는 엘프들이 득실거린다.
그중에서는 진실을 보는 눈을 가진 엘프들도 수두룩할 것이다.
물론 엘프들이 언제나 진실의 눈을 쓰는 것은 아니었다.
원한다고 해서 아무 조건 없이 무제한으로 남발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러나 의문을 가진 상대에게 쓰는 것 정도는 가능한 일이다.
슈나이더는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그는 글리터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멀리에서 맴돌며 공작을 진행할 뿐이었다.
그는 반이 공격적으로 나가려 할 때면 저지하는 역할도 했다.
세인의 딸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반과 슈나이더는 매우 기뻐했다.
세인을 겨냥한 인질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니까 말이다.
마플은 그들이 볼 때 친혈육이 아니었으므로 공작을 가한 것이었다.
인질로서 효력이 약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세인이 너무 안 나타나자, 의구심에 자극해 볼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소파에 앉아 있는 슈나이더는 카드를 한데 모은 후 잘 섞었다.
그리고 그중에 한 장씩 골라 앞에다 내놓았다.
102장 중 12장을 골라낸 것이다.
12장 중에 정해진 순서대로 9장을 빼낸다.
그리고 거기에서 다시 몇 장씩 무작위로 골라내었다.
그리하여 뒤집힌 카드 3장만이 남았다.
그것을 차례대로 뒤집는 슈나이더다.
첫 번째 카드를 뒤집자, 나비 카드가 나왔다.
두 번째 카드를 뒤집자, 구불구불한 뱀 카드가 나왔다.
슈나이더는 이 의미를 해석할 수가 없었다.
총 102장의 카드는 뒤집힌 위치, 또는 전후 연결에 따라 많은 의미를 내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낯선 조합은 처음이다.
이 조합이 의미하는 바는 뭘까?
“먹이 관계? 하지만 뱀이 나비를 먹던가? 누군가가 나를 노리고 있나?”
카드가 말해주는 그의 처지는 뱀일까? 나비일까?
결론을 내릴 수 없던 그는 마지막 카드를 뒤집었다.
그러자 새로 나온 그림도 그를 당혹하게 했다.
다시 생뚱맞은 연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눈앞에 보이는 마지막 그림은 그를 끝까지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
마지막 한 장의 카드를 집어 든 슈나이더는, 잠시 탁자 위를 검지로 두들겼다.
그러다가 그 카드를 자신의 품 안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