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
& 예정된 새로운 만남 (1)
세인은 눈 위에 드러누워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그를 제외하면 온통 하얀색밖에 없는 허허벌판이다.
팔짱을 낀 채로 눈 속에 오래 누워 있었지만, 그의 피부는 파랗게 질리지 않았다.
적어도 동사 걱정은 없는 듯 보인다.
세인은 눈을 하얀 솜털 이불처럼 느끼며 애꿎은 하늘만 쳐다보았다.
그런 꾸준한 시선에 심술이 났는지 하늘은 눈을 떨어뜨려 주었다.
하나둘씩 눈송이가 내려와 그의 얼굴에 닿았다.
그리고 녹아 없어졌다.
눈이 내리는 데도 세인은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냥 편안하게 내리는 눈을 감상했다.
완전한 각성을 마친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예전에도 드래곤을 해치울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졌었지만, 지금은 그런 수준조차 초월한 상태였다.
팔짱을 푼 세인은 양팔을 옆으로 늘어뜨렸다.
그리고 입을 벌렸다.
그러자 눈송이 하나가 내려와 그의 혀를 적셨다.
아이처럼 눈을 받아먹는 세인은 졸린 듯 눈을 깜박이다가 완전히 닫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고른 숨이 수면에 접어든 그의 상태를 말해 주었다.
예전의 그라면 이런 눈밭에서 잠을 청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강력해진 힘은 이런 상황조차 가능하게 만들어 버렸다.
각고의 연마와 끝없는 수련으로 이렇게 강해진 것이 아니다.
무인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 세인의 상태야말로 질투가 나서, 화가 날 상태일 것이다.
그러나 막상 잠에 빠져든 세인이 즐겁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는 내리는 눈 속에서 꿈을 꾸었다.
그 꿈속에 들어 있는 것은 몬스터들의 침입을 받지 않는 아레이즈 영지였다.
그는 거기에서 소영주였고, 밝은 얼굴의 사람들을 실컷 구경했다.
그러다가 유미리라는 처녀와 눈이 맞아 영지를 떠나게 되었다.
소영주의 신분을 낡은 옷처럼 벗어 던지고 말이다.
그리고 유미리와 함께 알콩달콩 살았다.
둘은 농사를 지으며 힘든 가운데에서도 웃음을 나눴다.
그러다가 드물게 번화한 마을로 내려가 시장을 보기도 했다.
하루는 지나가는 기사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기사 중에는 아름다운 여성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여성의 얼굴이 낯익었다.
하지만 세인은 옆의 유미리가 훨씬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게 객관적인 사실이 아닐지라도 그가 진심으로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게 중요한 것이다.
그때 그런 생각을 탓하기라도 하듯, 말 위에 앉아 있는 아름다운 여성이 세인을 돌아보았다. 그 차가운 시선. 얼굴만큼이나 아름다운 눈이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세리스.”
세인은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이름에 이끌려 깨어났다.
눈을 떠보니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 아래였다.
그리고 지치지도 않는지 별빛 하나 없는 하늘은 계속 눈을 뿌리는 중이다.
그는 약간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옷에 묻은 눈을 털어낸다.
머리 위의 눈도 털어냈지만 금세 눈이 다시 쌓였다.
세인은 앞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놓았다.
말도 없고 방향도 약간 헷갈렸지만, 적어도 여기에서 얼어 죽을 염려가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 후로 아침이 밝아 올 때까지 걷고, 좀 피곤하면 아무 데나 누워서 잠을 청했다.
긴장감을 잃어버린 것처럼 행동하던 그가 다시 잠에서 깨어난 것은 자의가 아니었다.
눈을 밟아 오는 작은 발소리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벌떡 일어나는 대신 회색빛의 구름이 가득 찬 하늘에 시선을 던지고 있는 그였다.
그런 그의 시선 위로 불쑥하고 나타나는 작은 얼굴이 있었다.
추위 때문인가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는 소녀는 동그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리고 소녀는 세인의 기색을 살폈다.
세인은 여기에서 입을 여는 것도 이상했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누워 있는 상태였다.
그런 그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소녀가 그의 옆에서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검지를 세인의 코 밑에 가져다 대었다.
잠시 어색한 침묵 끝에 소녀가 중얼거린 소리가 세인의 귓가에 닿았다.
“착각인가? 숨을 쉬는 것처럼 느껴지네.”
‘으음.’
세인은 속으로 침음성을 삼켰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말을 걸어볼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말을 걸면 상대가 놀라서 기절할 것만 같아 보였다.
그래서 망설이고 있는데 소녀가 갑자기 불쌍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작은 손을 내밀어 세인의 눈꺼풀을 아래로 밀어 감겨 주었다.
그리고 소녀의 손이 세인의 옷을 뒤지기 시작한다.
즉 여기까진 시체의 눈을 감겨주고 가진 것을 터는 착한 소녀인 것이다.
자신의 몸에 손이 와 닿는 것을 느끼던 세인은 결국 헛기침을 하고야 말았다.
“꺄아악! 뭐야! 뭐지?”
예상대로 소녀는 자지러질 듯 놀라 엉덩방아를 찧고야 말았다.
그녀 처지에서 보자면 눈밭에서 얼어 죽어 있는 시체가 지금 기침을 터트린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때 세인이 몸을 일으켰다면 소녀는 허겁지겁 일어나 달아났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세인은 그 자리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녹색 옷을 입고 있는 소녀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는지 한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러다가 가만히 있는 세인에게 말을 걸어본다.
“유령이에요?”
“길을 잃은 사람 정도로 해두지.”
“전 얼어 죽은 시체로 알았어요.”
누운 상태로 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넌 왜 홀로 여기를 헤매고 있는 거지? 민가도 안 보이는데 말이야.”
세인의 물음에 소녀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리고 뒤늦은 자기소개를 했다.
“아까는 미안했어요. 배가 고파서 어쩔 수 없었어요. 제 이름은 에스에요.”
“내 이름은 세인이야.”
세인이라는 이름에 에스가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세인이라 말한다 해도 글리터의 지배자를 떠올리기는 어려웠다.
그런 추측은 여기에서 글리터까지의 거리만큼이나 현실에서 동떨어진 생각이다.
에스는 손을 내밀며 일어나라고 말해주었다.
세인은 그녀의 손을 잡지 않고 일어났다.
그렇게 둘은 눈 위에서 동행하게 되었다.
에스는 친부모를 잃고 숙모 아래에서 자란 소녀였다.
아직 한참 앳된 기가 남아있는 그녀는 최근 큰 잘못을 저질러 버렸다.
그래서 그 벌로 지하 창고에 오래 갇혀 있었다고 말했다.
“물이랑 약간의 식량뿐이었어요. 나가게 해달라고 소리쳐도 문을 안 열어 주더라고요. 그래서 지하실의 구멍으로 빠져나왔어요. 숙모는 아마 제가 빠져나간 것도 모르고 있을 거예요.”
세인은 에스를 끌어당겨 자신의 몸에 붙게 해주었다.
그래야 불어오는 바람 앞에서 그녀가 잘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러면서 혀를 차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 막무가내로 이런 눈 덮인 벌판까지 뛰쳐나왔다고?”
그러자 에스가 무안함에 얼굴을 붉혔다.
“그래도 계속 지하 창고에 가둬 둔 것은 너무했어요. 얼마나 무서웠다고요.”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때 에스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세인은 그 소리를 듣고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짐승 따위가 눈에 띌 리 만무하다.
실제로 여기까지 걸어오면서도 동물 한 마리도 못 보았다.
길 잃은 눈토끼 따위도 없었다.
세인은 에스의 허기를 달래주기 위해 말을 걸었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지?”
“부모 없는 애라고 놀린 플러드의 코를 박살 냈어요. 안 그래도 플러드는 납작코였는데 말이에요.”
세인과 에스는 작게 이야기를 나누며 계속 걸었다.
에스는 자신이 살던 마을로 안내해 주겠다고 말했다.
어리지만 궂은일을 많이 해서 그런지 영악한 면이 있는 소녀였다.
세인 같은 길손을 마을로 데리고 가면 숙모에게서 덜 혼날 수 있다고 믿는 것만 같았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도둑질을 하려 했다고 추궁하지 않았으니 위험인물로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에스는 걸어가며 내내 숙모의 흉을 보았다.
“어찌나 욕심이 많은지. 먹는 것도 진짜 조금 줘요. 게다가 잡일은 모두 저를 시킨다고요. 툭하면 화를 내고. 심술도 많아요.”
그러면서 쌓여 있는 눈 뭉치를 차려고 하는데 헛발질을 해서 넘어질 뻔했다.
옆에서 에스의 투덜거림을 듣고 있던 세인은 손을 뻗어 그런 에스의 몸을 잡아 주었다.
여린 몸에 손이 닿으니, 새삼 녹색 옷에 가려져 있는 에스의 앙상한 몸이 느껴졌다.
잠깐 닿았다가 떨어졌지만,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그 감촉에 세인은 약간 슬퍼졌다.
‘아직도 굶주리는 사람이 많군.’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세인이 없는 동안 세리스는 자신의 딸에게도 신경 써주지 못할 만큼 일을 열심히 했다.
그래서 글리터는 정말 무섭게 성장했다.
그리고 주변의 국가들을 한곳에 묶어 연방도 탄생했다.
구제 불능처럼 보이던 나라들이 글리터를 중심으로 뭉쳐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크게 자라난 양지가 있다면 뒤에 가려진 음지도 존재했다.
“삼촌은 안 계시니?”
“오래전에 돌아가셨어요.”
“숙모가 좋은 분이구나. 피붙이도 아닌 너를 키워 줬으니까.”
“나쁘다니까요.”
아무리 나라가 발전하고 부강해져도 없어지지 않는 게 있었다.
첫째는 빈민층이다.
나라가 잘살고 복지 정책을 펴도 빈민층을 없앨 수는 없었다.
사회 구조가 아무리 긍정적으로 발달해도 빈민층은 언제나 존재한다.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빈민층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어쩔 수 없는 게, 자연스레 생겨나는 집창촌이었다.
세 번째로 어쩔 수 없는 것은….
그때 에스의 배에서 들려오는 꼬르륵 소리가 다시 세인의 귀를 간질였다.
세인은 옆에서 따라 걷고 있는 에스의 정수리를 바라보다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기름진 머리에 눈이 녹아 엉겨 붙어 있었다.
하지만 세인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에스는 다정한 손길에 세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웃어 보였다.
억지로 웃는 그 얼굴에 세인은 가슴이 더욱 아팠다.
“마을은 아직 멀었니?”
이런 오지에 세워져 있는 마을이라고 해봤자 뻔한 수준이겠지만, 적어도 먹을 것과 잠자리를 구할 수 있을 터였다.
그래서 물어본 것이다.
에스는 세인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아직 한참 남았어요.”
“용케 여기까지 걸어왔구나.”
“제가 좀 씩씩해요.”
세인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에스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약간 위쪽으로 솟아 나온 작은 언덕 같은 것이 보였다.
그리고 언덕 밑에는 역시나 작은 동굴이 검은 입을 벌리고 있는 상태였다.
“저기서 좀 쉬어 가자.”
에스는 고개를 끄덕였고 세인의 뒤를 따랐다.
눈덩이를 뭉쳐 토굴 안쪽으로 던져본 세인은 안에 동물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기어들어 간 동굴은 안쪽이 높거나 넓어지는 형태가 아니었다.
그냥 비좁은 굴이 계속될 뿐이었다.
적당히 안쪽으로 들어가 앉으니 머리 위에 천장이 닿았다.
그래도 허리를 숙이지 않는 것이 다행이랄까?
검은 장검을 꺼내 천장을 받치는 것을 바라보던 에스가 혹시나 싶어서 입을 열었다.
“혹시 기사세요?”
“검을 들고 다닌다고 다 기사라면 나도 기사겠지.”
부정인지 긍정인지 모를 모호한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인 에스는 엉덩이를 움직였다.
그렇게 세인의 곁에 바싹 달라붙었다.
둘은 그 상태로 침묵을 지켰다.
굴 밖에서는 한층 더 요란해진 바람 소리와 눈발들이 난리를 치고 있었다.
눈보라가 그칠 때까지 여기에서 피해 있는 게 현명한 행동인 듯 보인다.
묵묵히 어둠 속을 바라보고 있던 에스가 세인의 동태를 살폈다.
그러다가 흠칫 놀라고 말았다.
세인의 눈동자에서 보라색의 빛이 보였기 때문이다.
착각인가 싶어 눈가를 비빈 에스가 다시 보자, 세인의 눈동자는 아무런 빛도 머금지 않은 정상이었다.
“왜 그렇게 바라보니?”
“아뇨, 그냥. 제 몸에서 나는 냄새가 역할까 봐요. 오랫동안 씻지도 못했으니까요.”
“괜찮아. 그것도 어차피 사람 냄새야. 정말 역한 냄새는 따로 있지.”
그게 뭐냐고 물어보았지만, 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에스는 어색한 침묵을 못 견뎌 하며 그 후로 재잘재잘 떠들어 댔다.
그로 인해 에스에 대해 더욱 잘 알게 된 세인이었다.
그는 잠시나마 저렇게 떠들면 허기가 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소녀를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아무리 당돌해 보이고 영악스러워 보여도 에스는 소녀였다.
그녀라고 불안한 마음이 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런 에스의 내심을 눈치챈 세인은 이런 말도 해보았다.
“에스. 지금 네가 가장 원하는 게 뭐니?”
“지금요?”
“그래.”
에스는 주위를 둘러보다 무심코 내뱉었다.
“이 어둡고 습한 곳을 벗어나는 거요.”
정확히 말해 동굴 안은 어두울 뿐 습하진 않았다.
오히려 동굴 밖과는 대조적으로 바싹 말라 있었다.
땅과 천장을 건드려 보면 물기 없는 흙이 툭툭 떨어질 정도였던 것이다.
그러나 뭔가 알아들었다는 듯이 세인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대답했다.
“그래. 그럼 어서 나가자.”
에스와 세인은 다시 걸었다.
그리고 커다란 언덕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언덕 앞에서 에스가 반색했다.
“이곳만 넘으면 제가 사는 마을이 나와요.”
그리고 힘을 내어 발을 떼려고 하는 에스의 어깨를 잡는 손이 있었다.
세인의 저지에 의아함을 느낀 에스가 얼굴을 들어 보니, 고개를 가로젓는 세인이 보였다.
“왜 그러세요.”
“뒤를 봐.”
에스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지나오며 본 풍경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의아함을 느끼는데 세인이 다시 말했다.
“에스. 지하창고에는 구멍이 없어. 누가 지하창고에 소녀가 빠져나갈 만한 큰 구멍을 파놓겠니? 땅속에서 지상으로 이어지는 길을 만드는 건 장정이라도 힘든 일이야. 내게 삼촌이 없다고 말했지? 그럼 굴을 만들 사람이 더더욱 없지. 이제 아래를 보렴.”
그러자 에스의 시선이 땅에 닿았다.
거기에는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세인의 발자국이 말이다.
방금 걸어왔는데도 눈 위에는 세인의 발자국뿐이었다.
에스의 발자국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건….”
말끝을 흐리는 에스 앞에서 세인이 말했다.
아주 무거운 음성으로 말이다.
그건 에스의 가슴을 짓누른다기보다는 무한한 신뢰를 가져다주는 역할을 했다.
“기다려라. 곧 거기에서 벗어나게 해주마.”
세인은 검은 마검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확실히 못 박았다.
“죽어 있든. 살아있든 너를 그곳에서 꺼내 주겠다.”
그 말을 들은 에스의 몸이 급격히 흐려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에스가 없어진 후 세인은 홀로 언덕을 넘었다.
사실 언덕을 제대로 넘기도 전에 뭔가 타는 역한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그래서 곧 펼쳐질 풍경을 예상할 수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언덕 위에 선 세인의 눈앞에 엉망이 된 마을이 나타났다.
거의 쑥대밭이 된 마을과 안쪽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무리 나라가 발전하고 부강해져도 없어지지 않는 게 있었다.
첫째는 빈민층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어쩔 수 없는 게, 자연스레 생겨나는 집창촌이었다.
세 번째로 어쩔 수 없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범죄자들이다.
“씻지 못한 사람 냄새보다 역한 냄새가 있지. 마음이 썩은 냄새야.”
그렇게 중얼거린 세인은, 검을 든 상태로 언덕을 미끄러지듯이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