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
& 긴 여행을 마치고 (2)
다가오는 케이드의 주변이 일그러졌다.
강렬한 기운이 가시화되면서 생기는 아지랑이 같은 것이었다.
단적으로 말해 세인이 케이드를 이길 가능성은 전무했다.
힘과 속도 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세인도 많은 아수라장을 헤쳐왔다. 그래서 쌓은 경험이나 실력이 결코 적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는 무려 테러로드가 신임하는 테러 나이트였다.
그 수많은 몬스터 중에서 뚜렷이 두각을 나타낸 존재라는 뜻이 된다.
과연 ‘라이트닝 블러드’라는 뒷받침만으로 그를 이길 수 있을까?
무서운 존재의 총애를 받는 테러 나이트, 그런 케이드가 약할 리 없었다.
“….”
실제로 케이드는 세인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케이드가 보기에 물론 저 마족은 대단한 실력을 갖춘 검사임이 분명할 것이다.
칼스가 아무리 봐줬다곤 하지만 그와 겨루어 오랜 시간 동안 버틴 녀석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사실 칼스도 마음만 먹었다면 멀리에서 날리는 마법만으로 세인을 흔적도 없이 지울 수 있었을 테지.
세인이 안중에도 없다는 듯 시선을 돌린 케이드는, 싸움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뒤로 물러나는 유미리를 바라보았다.
그는 멈춰 서서 생각에 잠긴 얼굴로 턱을 쓰다듬었다.
“아쉽군. 어떻게 하지?”
생각 같아서는 당장 없애지 않고 끌고 가고 싶었다.
그래서 칼스 앞에서 잔인하게 해체하며 죽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세리스가 대군을 이끌고 몬스터 군대를 치는 마당이다.
그게 케이드에게는 큰 부담이었고, 이 판국에 유미리를 따로 챙긴다는 건 어렵다.
결국 ‘포기해야만 하나.’라는 생각 속에서 한숨을 쉬는데, 세인이 앞으로 나와 유미리를 가려버렸다.
그러자 케이드의 눈가가 실룩인다.
같잖은 놈이 감히 자신의 시선을 가로 막다니….
기분이 비틀린 것이다.
“야. 난 이제야 너와 직접 마주쳤지만, 네가 누군지 단숨에 알 수 있어. 네가 누군지 알아?”
갑자기 친근한 척 말을 걸어오는 케이드 앞에서 세인이 검을 들어 올렸다.
그 앞에서 케이드가 말을 끝냈다.
“주제도 모르는 놈. 그게 바로 너다.”
마지막의 ‘너다.’라는 말이 끝났을 때, 케이드의 신형이 세인 앞에 도달했다.
칼스나 엘라이저와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이었다.
그때 믿을 수 없게도 세인의 검이 케이드의 목젖을 찔렀다.
계산된 공격이라기보다는 거의 반사적인 찌르기였다.
하지만 그건 다시 옆으로 움직이는 케이드의 잔상만을 꿰뚫었을 뿐이다.
콧방귀를 뀌는 케이드의 굵은 팔이 구렁이처럼 세인의 목을 휘감았다.
그리고 세인의 몸이 번쩍 위로 들어 올려졌다.
몸부림을 치는 세인의 귀에 케이드가 낮게 속삭였다.
“대답해봐.”
그리고 세인의 귀를 깨물었다.
피가 나오도록 깨문 것이 아니라 아주 살짝 말이다.
장난처럼 그렇게 깨무니 기분이 더러웠다.
그리고 케이드는 재빨리 고개를 뒤로 젖혀 날아오는 세인의 손을 피했다.
이윽고 세인의 몸이 앞으로 날아간다.
볼썽사납게 바닥을 구르다 몸을 일으킨 세인은 케이드를 노려봤다.
다행히 케이드는 세인을 끝내고 유미리에게 가려는 모양이다.
이어서 유미리를 해치는 게 아니라 그녀에게서 아예 등을 돌린 상태였다.
케이드가 연극 속의 배우처럼 양팔을 좌우로 벌렸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대답해봐. 누가 너를 낳아 주었지?”
케이드는 상대가 마족이니까 어차피 너도 몬스터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말한 것이었다.
하지만 세인의 대답은 딴판이었다.
“내 어머니에게 신경 꺼.”
그리고 그가 땅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마검을 이리저리 휘두르면서 말이다.
케이드는 상체를 젖혀 그 공격을 피해냈다.
그것도 땅에서 발을 떼지 않고서였다.
천천히 뒷짐을 진 그는 이어서 날아오는 세인의 팔꿈치를 피해냈다.
그 과정에서 그의 상체가 비스듬히 좌로 기울었다.
세인의 검이 반원을 그리며 케이드의 하체를 베어갔을 때였다.
상체를 기울이며 생긴 반동으로 케이드의 꼬리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왔다.
그리고 채찍과도 같이 세인의 등을 후려쳤다.
“으윽!”
자세가 무너진 세인이 비틀거릴 때 케이드의 꼬리가 다시 한번 맹렬히 몰아쳤다.
그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세인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그는 케이드의 상대가 아니었다.
단지 케이드는 의외로 단단한 세인 앞에서 장난감을 얻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생각보다 튼튼해서 때리는 맛이 있었다.
세인의 검이 빠르게 움직이며 케이드의 가슴을 베었다.
그러나 그것은 상처가 아니라 불꽃으로 남았을 뿐이다.
케이드는 자신에게 데미지는 커녕 흔적도 남기지 못하는 검날을 무시할 권리가 있었다.
“보답이다.”
케이드의 꼬리가 빠르게 움직이며 잔상을 남겼다.
마치 여러 갈래로 보일 정도로 말이다.
그 연타가 깊숙한 펀치처럼 세인에게 고스란히 들어갔다.
복부에 신나게 얻어맞고 새우처럼 몸이 꺾어지는 세인의 어깨를, 케이드의 한 손이 잡았다.
그리고 옆으로 던져 버렸다.
날아간 세인의 몸이 바닥에 닿았을 때, 뒤따라온 케이드의 무릎이 세인을 내리찍었다.
바닥에 처박히는 세인 앞에서 케이드가 혐오감 어린 시선과 함께 손을 뻗는다.
그의 눈에 서린 혐오감은 약자에 대한 철저한 무시가 원인이었다.
“무릎 꿇어라. 이 하찮은 것아.”
세인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내리누르자 세인이 무릎이 꺾어지며 바닥에 파고들었다.
“누가 너를 낳아줬는지 모르겠어? 그런데 패륜을 벌이다니. 그런 걸 쓰레기 같은 짓이라고 하는 거야. 뭐? 네 어미에 관해서 묻지 말라고?”
케이드가 입술을 비틀이며 웃었다.
그리고 주먹으로 세인의 얼굴을 내리쳤다.
세인의 얼굴이 피로 물들자 유미리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케이드가 단지 유미리를 노려보았을 뿐인데 그녀는 반대쪽으로 날아가 나뒹굴었다.
케이드는 다시 세인의 얼굴을 걷어찼다.
그리고 뒤로 쓰러지는 그의 멱살을 낚아챘다.
이 모든 동작이 연계로 이루어질 수 있는 까닭은 그만큼 케이드의 움직임이 빠르기 때문이었다.
“씨를 뿌려준 게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네가 태어날 수 있었던 게 누구 덕분인 것 같아? 그런데 은혜도 모르고 인간들 편에 붙어?”
케이드는 웃으며 세인의 뺨을 후려갈겼다.
그러자 세인의 몸이 좌우로 흔들렸다.
신나게 손바닥을 날리던 케이드가 날아오는 세인의 왼손을 잡았다.
“반항이 깜찍하구나.”
그 상태로 박치기를 먹이자 세인의 머리가 뒤로 완전히 꺾여진다.
여기까지였다.
잠깐 흥이 났을 뿐 세인은 결국 이 정도의 장난감이었다.
금세 시큰둥해진 케이드가 그의 손을 놔주었다.
이제 세인은 뒤로 쓰러질 것이다.
하지만 세인의 상체는 뒤로 넘어가지 않았다.
피로 젖은 얼굴로 케이드를 바라보는 세인이었다.
케이드는 그 반항적인 자세에 ‘이것 봐라?’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의 사납게 생긴 얼굴이 세인의 얼굴 앞에 바싹대어졌다.
“아빠. 라고 부른다면 고통 없이 보내주지.”
아버지도 아니고 아빠라고 부르란다.
어린아이에게 요구하듯, 실컷 이죽거리는 케이드의 얼굴 앞에서 세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끔찍한 얼굴이 그의 앞에 있었다.
파충류를 닮은 인류의 적이 내뱉는 콧바람과 역겨운 숨결이 그의 속눈썹을 가늘게 떨리도록 만들었다.
눈앞의 이놈은 얼마나 많은 살육을 벌였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그동안 수많은 생명을 죽였겠지. 넌 나 같은 놈이다. 이 악마 같은 놈.”
세인의 말에 케이드의 얼굴이 무표정해졌다.
세인의 말에 화가 났다기보다는 자신이 한심해졌기 때문이다.
눈앞의 놈은 죽었다 깨어나도 자신을 이길 리 없는 놈이었다.
케이드의 기준으로는 쓰레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을 빼앗기고 나니 한심스러워졌다.
칼스의 일도 그렇고 요즘 들어 되는 일이 없다.
그리고 세리스. 그 망할 년을 생각하니 가슴이 더 답답해져 왔다.
그년은 정말 무지막지하게 강한 년이었다.
인간이길 포기한 것처럼 말이다.
케이드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세인의 한쪽 귀를 붙잡았다.
그대로 상대의 귀를 찢어내어 내지르는 비명을 들을 작정이었다.
잘 뽑아내려면 몸을 고정해야 했기에 다른 손은 세인의 목을 붙잡았다.
“조각조각 찢어 주지.”
그렇게 속삭이는 케이드의 가슴에 뭔가가 와서 닿았다.
툭.
그 물건에 달린 육각형의 표식이 반짝거렸다.
“이게 뭐지?”
케이드의 질문에 세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긴, 브리리 길드를 통해 구입했던 붉은 자루였다.
그런데 지금 이걸 가슴에 가져다 대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이 안에 뭐가 들어 있든 지금 상황을 역전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케이드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생각은 틀렸다.
세인의 입술이 벌어지고 속삭임이 흘러나왔다.
“선물.”
그리고 붉은색 주머니 속에서 초록색 연기가 뭉클뭉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얼마나 집어넣고 밀봉했던 것인지, 막상 내용물이 흘러나오니 주변을 에워쌀 만큼 한 가득이었다.
그 초록색 연기가 케이드의 상반신을 뒤덮었을 때.
아차. 싶었던지 케이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런 미친? 어떻게 알았지?”
케이드야 상대가 초록색 물질에 대해 모른다고 생각한 게 당연한 것이었다.
상대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하찮은 미끼에 불과했으니까.
칼스를 괴롭히기 위한 미끼 말이다.
그리고 케이드가 부리는 종들은 소리까지 전달하는 기능이 없었다.
제공하는 건 오로지 시각뿐이니 유미리의 설명까지 케이드가 들을 수 있었을 리가 만무하다.
게다가 그의 주인인 테러로드라면 모를까.
케이드가 유미리에게 신경 쓸 리 없었다.
주인과 멀리 떨어져 행동하는 케이드는 유미리에게 집중하지 않았다.
과거 유미리가 어떤 파티에 끼어 있었든지 간에 상대적으로 세리스가 너무 부각된 점이 컸다.
지금의 테러로드는 그의 사정으로 인해 케이드와 연결이 끊어진 상태였다.
그러니 케이드가 유미리나 세인에게 집중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케이드는 독자적으로 테러로드를 위해 움직였고, 대신 그의 판단이 신중하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케이드에게 있어서 주의할 대상은 오직 세리스 뿐이었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세리스의 존재가 모든 것을 가린다.
이 모든 것이 맞물려졌다.
이제 초록색 연기는 허겁지겁 몸을 피하는 중인 케이드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케이드에게 달라붙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케이드는 그것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건 당연하다.
원래 소환물질은 몬스터들끼리 이루어진 약속 같은 것이었다.
이게 독 연기라면 케이드는 여전히 콧방귀를 뀌었을 것이다.
그에게 어떤 해도 입히지 못할 테니까.
그런데 이건 해로운 물질 따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약속하는 물질이었다.
이로운 역할을 하는 증표라는 의미다.
지금의 케이드에게는 그게 아니지만.
“이런 빌어먹을! 안 돼!”
케이드가 소리를 질렀지만 소용없었다.
테러 나이트의 주인들이 응한 계약이었다.
케이드에게 그 특권을 거부할 권리는 없었다.
뒤늦게 상황 판단을 한 케이드가 손을 날렸다.
이동되기 전에 이런 짓을 벌인 원흉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손끝이 세인의 얼굴에 닿았지만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이미 실체가 흐려졌기 때문이다.
결국 피에 젖은 세인의 앞에서 케이드의 형체가 점점 희미해졌다.
그 광경을 보며 세인이 중얼거렸다.
“이게 네 운명이야.”
* * *
초록색 연기에 먹혀버린 케이드는 엄청난 시간을 건너뛰어서 다른 시대에 도착했다.
“크헉?”
먹구름 아래 있는 우쿨레 얼음산.
케이드가 모습을 드러낸 곳이었다.
밀도가 다른 공기와 환경을 만나자, 케이드 주변의 연기가 초록색의 불길로 화했다.
그리고 그것이 땅 위로 번져 나갔다.
비틀거리며 그 속을 빠져나오는 케이드의 눈이, 세인의 붉은 눈과 마주쳤다.
둘의 시선이 교차한 것은 아주 찰나였다.
검은 기사의 몸이 검은 선을 이루었다.
그리고 무서운 속도로 케이드를 들이박았다.
케이드로서는 갑자기 봉변을 당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런 기습이 없었어도 그로서는 여기 있는 세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마검의 힘을 제대로 쓰는 세인 앞에서,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세인을 몰아붙이던 케이드의 상황이 역전되어 버린 것이다.
“이 하찮은 것이!”
뒤로 밀려나는 케이드가 그렇게 외쳤지만, 세인의 주먹이 그의 얼굴을 갈겨 버렸다.
순간 케이드의 콧잔등이 주저앉았다.
쏟아져 나온 피가 허공에서 춤추며 케이드의 머리가 돌아갔다.
“크윽!”
엄청난 충격에 비틀거리는 케이드의 목덜미를 잡은 세인이 살기를 터트렸다.
그 기합에 케이드의 몸에 머물러 있던 초록색의 불꽃이 뒤로 밀려나며 흩어져 버렸다.
눈 섞인 흙들이 터져 나갈 때, 세인이 케이드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마치 솜뭉치를 들듯이 말이다.
그때 발악처럼 케이드의 발이 세인의 허리를 때렸다.
케이드가 처음에 만났던 세인이라면 이 일격에 허리가 끊어져 나갔을 것이다.
그만큼이나 전력을 다한 발차기였다.
하지만 지금의 세인에게는 같잖은 수작일 따름이었다.
투구 속에서 세인이 피식하고 웃었다.
“간지럽구나.”
그렇게 말한 세인은 진짜 발차기가 뭔지 제대로 보여주었다.
손을 놓은 상태에서 제대로 발차기가 들어가자, 케이드의 몸이 공중에서 일직선을 그렸다.
폭발이 일어나고 얼음으로 이루어진 절벽이 흔들거렸다.
얼음 조각들이 우수수 쏟아질 때, 세인은 천천히 반쯤 몸이 파묻힌 케이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피를 게워내는 케이드를 잡아 끌어냈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펀치가 케이드의 몸을 때린다.
이제는 케이드가 세인의 장난감이었다.
그 속에서 저항을 해보지만 부질없었다.
지금 케이드 처지에서는 이 모든 게 아주 죽을 맛이었다.
과거에서 세인을 가지고 놀았던 그가 소환물질을 통해 미래로 이동한 것이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기사에게 묵사발이 되고 있었다.
도착한 곳이 어디인가 파악하기도 전에 말이다.
그러니 그가 속으로 이렇게 절규를 지르는 것도 이해가 된다.
‘대체 이놈은 뭐지?’
반면, 이 시대의 세인 입장에서는 갑자기 나타난 케이드의 힘에 살짝 놀랄 법도 했다.
테러 나이트인 케이드의 힘은 그 자체로도 엄청난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세인은 어차피 이곳에서 절대자였다.
드래곤도 해치워 버린 그의 입장에서는 다 고만고만한 놈들일 뿐이다.
그가 지금 하나 신경 쓰고 있는 건 강력한 케이드의 정체가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여기에서 이놈을 놓치면 어딘가에서 학살을 벌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케이드가 만만한 건 세인뿐이지 다른 이들에게도 그런 것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혹독하게 그를 대했다.
물론 살려줄 마음도 없다.
발작적으로 케이드가 내지른 주먹을, 세인의 손이 너무나도 수월하게 잡아챘다.
그리고 세인의 손안에서 케이드의 손이 박살 났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케이드의 팔을 뽑아내는 그였다.
뽑혀 나가 땅 위에 내동댕이쳐진 케이드의 팔이 갓 건져낸 대어처럼 팔딱거렸다.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케이드의 얼굴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주먹질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인은 그의 복부를 걷어차 무릎 꿇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걷어차 케이드를 뒤로 나자빠지게 했다.
그다음은 케이드의 머리 위에 발을 올려놓고 남은 그의 한쪽 팔을 뽑는 일이다.
세인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살벌한 짓을 벌이는 바람에 케이드는 이제 양팔을 잃었다.
자신의 발아래에서 비명을 지르는 케이드를 담담히 지켜보고 있던 세인은 훌쩍 뒤로 물러났다.
그가 방금 전까지 있던 자리를 케이드의 꼬리가 휘저었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다가온 세인의 손안에서 휘어진 꼬리가 터져 나갔다.
케이드의 뜨거운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 붉은 액체는 세인의 갑옷에 뿌려졌다.
그게 그나마 케이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이었다.
고작 이 정도가 말이다.
“재미없어, 약하군. 네가 누구인지도 알고 싶지 않아졌다. 하찮은 미물아. 죽어라.”
세인의 말에, 케이드의 눈에는 치욕감과 무력감이 교차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세인의 그림자가 다가올 때, 케이드의 두 눈은 헤어날 수 없는 공포로 뒤덮였다.
어떤 힘을 가지고 있든 지금의 세인 앞에서는 강아지나 다름없었다.
그걸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케이드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진 이유는, 세인이 투구를 해체했기 때문이었다.
“너… 너는?”
세인으로서는 이렇게 약해 빠진 놈 앞에서 투구를 고집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해제한 것이다.
그는 뭔가 말하려고 하는 케이드의 얼굴에 거침없는 발길질을 했다.
지금 케이드를 유린한 세인은 후일 검은 새를 따라 과거로 가게 된다.
그리고 거기 있는 초록색의 물질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결정적인 단서가 된 건 나비와 뱀이 공존하는 변덕의 산에서였다.
거기에서 유미리는 케이드에 대해 말했다.
그녀의 자세한 설명을 들은 세인은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퍼즐 맞추듯 단서를 조합해 냈다.
‘그때 왜 그런 강자가 우쿨레 산에서 나타난 거지? 너무 뜬금없잖아. 혹시 그 녀석이….’
마검과 같이 하던 세인에게는 하품이 나올 만큼 약한 녀석이었지만, 그거야 그의 기준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갑자기 그런 강자가 불쑥 튀어나온 게 너무 이상했다.
그 정도의 놈이 평소에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냐는 말이다.
‘설마?’
일단 세인은 브리리 길드를 통해 초록색 물질을 전달받았다.
어차피 그 물질은 인체에 무해했고, 용도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브리리 길드는 세인의 바람대로 그것을 가져다주었다.
붉은 자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세인은 섣불리 그것을 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의 생각이 틀렸다면 무지막지한 괴물을 미래로 보내버리게 된다.
그건 후손에게 대죄를 짓는 것과 같았다.
초록색 물질을 이용해 이곳의 몬스터들을 사라지게 만들면 결국 후대가 혈채를 갚아야 한다.
선대는 후대를 지켜야 하는 거지 해치는 존재가 아니었다.
당장 이 세상이 지옥이라 해서 괴물들을 미래로 보내버린다면, 그건 그 행위 자체가 마물과 다름없었다.
자손을 해치는 길이니까.
아마 이점 때문에 소환물질에 대해 알면서도, 굳게 함구하는 지식인들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세계수의 지하 지역에서 케이드와 직면했을 때 확신이 들었다.
케이드의 모습은 과거 그가 죽였던 괴물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한다.
세인의 입장에서 과거 벌어졌던 일은 현재의 결과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저놈을 요리해야 할까?
‘지금 저놈은 나보다 엄청나게 강하다. 그럴 때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방심을 유도하고 함정을 설치해야지.’
그래서 그는 결국 케이드를 예정된 미래로 보내버린 것이다.
* * *
미래에서 보낸 소포를 받아본 세인.
그는 케이드가 달아날까 두려워 그를 산산조각 냈다.
벌레를 짓밟듯이 짓이기고 몸을 해체했다.
재생하는 능력이 있을까 봐 그렇게 한 것이다.
결국, 부서져 나가는 케이드의 비명이 우쿨레 산에 메아리친다.
그런 케이드를 내려다보는 세인의 눈은 차갑고 무심했다.
그냥 해충 한 마리를 밟아 죽이듯이 말이다.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겠다. 장난도 지치니까.”
그 조롱은 케이드에게 있어 치를 떨리게 했다.
지금 케이드 입장에서야 세인을 장난감이라고 조롱했던 게 불과 조금 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가 세인의 철저한 장난감이 되어버린 것이다.
“말도 안 돼! 나는 아까….”
케이드가 다시 뭔가 말하려 했지만, 세인이 그런 그의 얼굴을 발로 걷어찼다.
“더럽게 말도 많은 놈이군. 수다는 죽어서 떨어.”
결국, 세인의 손이 케이드의 숨통을 끊어 놓았다.
케이드의 머리를 양손에 들고 품평하듯 이리저리 돌려보던 세인은 쓰레기를 버리듯이 그걸 아래로 던졌다.
그리고 땅에 나뒹구는 케이드의 머리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
콰직.
피와 뇌수가 땅바닥 위로 진득하게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