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
& 눈을 뜨기 위해 (2)
“우르릉! 쿵!”
비가 내린 후의 땅바닥은 진흙이었다.
그 바닥에 층이 지더니 괴물이 일어났다.
진흙을 뒤집어쓴 괴물의 모습은 사람이 포대를 뒤집어쓴 형태였다.
여러 개의 팔을 가진 녀석은 눈이 없었다.
놈은 거대한 성에 도달하기 전 여행자들의 방심을 노렸다.
맨눈으로 성이 보이면 긴장감이 느슨해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녀석의 공격에 노출된 사람들은 풋내기들이 아니었다.
세인과 레드가 일제히 방패를 들어 올려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그리고 반격을 가해왔다.
양쪽에서 검들이 움직이자, 우르릉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던 괴물은 허무하게 분해되고 말았다.
그의 길고 날카로운 팔이 땅바닥을 힘없이 뒹굴었다.
그중 하나가 멜라니의 발끝에 닿는다.
멜라니는 널브러진 팔을 툭툭 차보더니 유미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성 근처에 이런 게 있을 줄을 몰랐는데? 마정석이 되지 못한 원혼의 찌꺼기야. 이런 게 여기에서 모습을 보일 정도면, 어디선가에서 학살이 일어났던 모양인데.”
유미리는 멜라니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시했다.
사람이 죽어 영혼이 결정화되는 게 마정석이다.
영혼 하나가 통째로 마정석화가 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보통은 영혼의 잔재가 뭉쳐 마정석이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마정석은 집약된 영혼들의 순도에 따라 에너지가 달라진다.
그중 ‘우르릉’은 마정석이 되지 못할 정도로 순도가 낮은 영혼 찌꺼기가 모인 합성체였다.
멜라니의 발이 팔을 짓이기자 안쪽에서 노란 진흙 같은 것이 드러났다.
찌걱 이며 노란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본 그녀는 잽싸게 발을 빼냈다.
“어쩌면 성에 갔더니, 대학살이 벌어져 있을 수도 있겠어.”
레드는 물론이고, 세인과 유미리는 이런 엽기적인 말을 하는 멜라니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물론 농담이겠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칠 농담은 아니었다.
“넌 정말 오해받기 쉬운 여자구나.”
세인이 방패를 등에 메며 그렇게 말했다.
“오해? 무슨 오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일행 속에서 대화가 이어졌다.
그들은 칼카자가 성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넌 이따금 거친 말을 하지만, 거기에 어떤 나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야. 너는 그냥 시원시원하고 자기가 내키는 대로 행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여자야. 겁도 없고 한 가지에 집중하면 주변을 생각하지 않아. 그리고 입 밖으로 속마음을 꺼내놓지.”
멜라니는 의도치 않은 자신의 분석에 볼을 긁적거렸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던 세인이 갑자기 자신을 분석하고 나오니 당황스러웠던 탓이다.
한편 레드는 그런 그녀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너무 긍정적으로 보는 거 같은데.”
세인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말을 마무리했다.
“넌 오해를 하기 딱 좋아. 하지만 너와 오랜 시간을 같이하고 이야기를 나눠보면, 진짜 너를 파악할 수 있을 거야. 넌 나쁜 사람이 아니거든. 넌….”
이런 표현을 해도 될까?
세인은 약간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넌 과격하지만, 순수한 사람이야.”
세인의 말을 다 들은 멜라니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이 뜬금없는 말은 분명 그것 같았다.
그녀는 레드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이렇게 물었다.
‘이거 그거지? 분명 그거일 거야. 그렇지?’
레드는 멜라니의 의중을 몰랐지만, 대충 받아넘기기 위해 어깨를 으쓱거렸다.
손을 입에 가져다 댄 채 ‘흠흠.’하고, 헛기침을 몇 번 한 멜라니는 목소리를 깔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야. 너 나에게 반했냐?”
“….”
“그래. 실은 난 책을 쓰는 지적이고 정숙한 여자야. 하지만 이건 아냐. 일단 넌 제정신이 아니잖아. 미래에서 왔다고 믿는 정신머리 가지고는 나도 커버가 곤란해. 미안해. 이쯤에서 마음을 접어. 이제 그만하자. 이게 다 널 위해서야.”
멜라니를 제외한 사람들은 말없이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멜라니는 자기 딴에는 최대한 세인에게 상처를 안 주려는 듯 달래느라 바빴다.
그녀는 자신의 인기가 사실 짐이 될 때도 있었다고 실토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내가 키가 좀 작은 걸 빼면 모자란 게 없어. 낚시 잘하지. 글 잘 쓰지. 예쁘지. 성격 개성적이지.”
시끌벅적한 가운데에서도 이동은 이루어졌으므로 그들은 칼카자가 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칼카자가 성은 멜라니의 말대로 암울한 상황은 아니었다.
다만 평소와 달리 긴장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성의 경비는 평소보다 두 배로 강화되어 있었다.
성곽 위로 돌아다니는 병사의 수도 많았고, 그들의 움직임에서 군기가 바싹 서 있는 게 느껴졌다.
그 이유는 성내에 들어서니 바로 알 수가 있었다.
거리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헤카테 쪽에서 문제가 생겨 중앙 통로이자 관문인 이곳을 곧 봉쇄한다는 소식이었다.
“좀비들이 쏟아져 나오니 앞쪽을 다 막아버린다는 이야기야.”
멜라니가 머리를 긁적이며 그렇게 말했다.
원래 여기에서 마차를 구해 대로로 이동할 계획이 어그러져 버렸다.
일행은 일단 여관을 잡았다.
그리고 다음 날 출발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여유를 부릴 수가 없게 된 상황이었다.
머지않아 이곳은 봉쇄될 테니 말이다.
세인인 여관 주인에게 뭔가를 묻더니 지도를 구하러 밖으로 나갔다.
“정밀한 지도를 구할 수 있다니 좋군.”
이런 말을 중얼거리면서 나가는 그를 아무도 잡지 않았다.
유미리와 멜라니는 이 층의 방에서 쉬길 원했다.
그리고 일 층의 식당 테이블 의자에 앉은 레드는 뭔가를 생각했다.
뜨거운 차를 시켜놓고 생각에 잠긴 그는 차가 식을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차가 담긴 컵을 지그시 바라본다.
마음을 정한 레드는 그 차를 물리고 다른 차를 주문했다.
그리고 그 안에 뭔가를 털어 넣었다.
그다음은 기다림이다.
멜라니는 레드의 예상대로 일 층으로 내려왔다.
그녀는 레드가 혼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맞은편에 앉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유미리는 좋은 사람인 것 같아. 안 그래?”
“그래.”
레드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며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멜라니는 자연스럽게 찻잔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바로 마시는 게 아니라, 손안에서 빙글빙글 돌리며 레드를 감질나게 만든다.
“뭐야 반응이 왜 그리 싱거워?”
“그녀도 마냥 착해 보이지는 않던데. 단지 너랑 죽이 잘 맞는 것뿐이지. 네 말을 다 받아주잖아.”
멜라니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 컵을 들어 입가에 가져다 댔다.
레드의 동공이 확장되었을 때, 멜라니는 갑자기 찻잔을 내려놓았다.
내용물을 마시지 않고 말이다.
그러자 레드가 손을 불끈 쥐었다.
‘끝까지 피곤하게 하는 군, 정말.’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이 여자는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언제나 사람을 애먹이는 여자였다.
“뭐야? 그 말은 내가 착하지 않다는 뜻이야?”
“그런 뜻은 아니었어.”
결국, 멜라니는 식어서 미지근해진 차를 쭉 들이켜 버렸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위층으로 통하는 층계를 밟는 멜라니를 가만히 바라보던 레드다.
그러다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멜라니의 뒤를 쫓았다.
그가 차에 탄 것은 강력한 진정제였다.
다쳤을 때 쓰는 것인데, 지금 멜라니가 마셔버렸으니 곧 정신을 잃을 것이다.
약효가 빨리 돌아 복도에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안 되니 뒤쫓아 간 것이다.
레드가 빠른 걸음으로 이 층 복도에 올랐을 때였다.
그는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멜라니와 마주쳤다.
“음….”
레드가 신음을 흘릴 때, 멜라니는 그를 약 올리듯이 볼을 움직여 보였다.
볼록한 그녀의 볼은 울렁댈 뿐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순간 레드는 그녀의 볼을 잡고, 입안의 내용물을 목 안으로 넘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젠 글러 버린 일이다.
멜라니는 입안의 내용물을 뱉어냈다.
미지근한 찻물이 바닥에 뿌려진다.
“무슨 짓이야 레드? 숙녀를 기절시키려 하다니. 질이 나빠. 원래 너는 쓰레기긴 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 뒤늦게 나의 매력에 눈을 뜬 거야? 요즘 들어 급격히 나에게 반하는 사람이 많군.”
입가를 소매로 닦으며 멜라니가 따져 묻자 레드는 침묵했다.
하지만 설명을 해줘야만 하는 일이다.
그는 결국 한숨을 쉬며 셔츠를 열어젖혔다.
그의 상반신이 드러났고 멜라니는 레드의 벗은 몸에서 회색으로 물든 부분을 발견했다.
계속 악의 증오에 노출되다 보니 오염된 것이다.
멜라니는 약간 안색을 굳힌 채 레드에게 다가가 그의 상체를 매만졌다.
그러면서 물어보았다.
“느낌이 있어?”
“아직은.”
“이것 때문에 북쪽으로 향하려 한 거구나. 그것도 나를 떼어놓고서 말이지. 기절한 나는 내일 저녁때까지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겠지? 그리고 너와 저쪽은 봉쇄된 성 밖에 있을 테고 말이야.”
멜라니의 말에 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꼭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마경 안에 있을 때 누군가가 나를 찾아온 적이 있었어. 내 스승님이었지. 크루세이더였던 그분은 어둠에 침식돼서 괴물이나 다름없는 상태였어. 내 손으로 그를 끝장내야만 했어. 나는 그런 경험을 내가 알던 사람들에게 경험시키고 싶지 않아. 그건 괴로운 일이야.”
레드가 다시 셔츠를 수습하려 하는데, 멜라니의 손이 그런 그의 손을 잡았다.
“네가 그렇게 변할 거란 보장이 어디 있는데? 레드. 북쪽에서 꼭 비참하게 홀로 죽어가야 해? 그게 네 결정이야?”
“방금 설명했잖아, 멜라니. 넌 계속 네 꿈을 위해 살아. 그게 너답고 당연한 일이야. 난 언젠가 북쪽에 가보고 싶었어. 그리고 몬스터들과 싸우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거지.”
그리고 레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이런 이별은 정해져 있었던 거야.”
“우리가 친구로서 만났을 때부터.”
멜라니가 밝게 웃으며 말을 받자, 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별거 아니란 어조로 멜라니가 말을 이어나갔다.
“레드. 네 딴에는 나를 위해서였겠지만, 이런 행동은 용납이 안 돼. 남을 기절시키는 건 아주 나쁜 일이야. 보통은 그렇다고. 나는 내키는 대로 행동할 거야. 그 자유를 막는다면 아무리 너라도 용서 못 해.”
“멜라니.”
“글을 위해 살던. 낚시를 위해 살던. 뭘 위해 살던 그건 내가 하고 싶기 때문이야. 야. 너 좋으라고 사는 인생이 아니라, 결국 나 좋으라고 사는 인생이야. 난 내 멋대로 할 때가 가장 좋다고. 그런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 난 고통받는 네 길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존중해. 적어도 존중하려고 애쓰고 있어. 그러니 너도 날 존중해야 해.”
그때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멜라니와 레드는 몸이 굳어졌다.
문이 열리며 복도로 나온 것은 유미리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주 낮잠을 즐긴 듯 멍한 표정으로 복도에 나왔다가 레드와 멜라니를 발견했다.
그리고 레드의 벗겨진 상체와 거기에 손을 대고 있는 멜라니를 번갈아 보았다.
손을 서로 잡고 있는 둘에게 시선을 던진 유미리는 잠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굳이 복도에서 왜?”
멜라니와 레드는 뭔가 설명을 하고 싶었지만, 유미리는 단호한 얼굴과 어조로 말했다.
“누구나 성적 향유권이 있지만, 그렇다고 공공장소에서 그걸 누린다는 건 옳지 못해. 그건 매우 풍기 문란한 짓이야.”
그리고 남에게 실례라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굳이 둘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다시 방 안에 들어가 버렸다.
단호한 얼굴과 음성을 유지한 그대로, 그렇게 뒷걸음질로 물러나는 유미리의 모습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남겨진 멜라니와 레드는 잠시 침묵을 공유했다.
그리고 서로 뒤로 물러났다.
레드는 서둘러 상체를 다시 가렸다.
그런 그에게 멜라니가 쾌활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도 친구잖아. 마지막에 네가 어떻게 죽든지 간에. 그걸 볼 권리는 있다고.”
그리고 예고도 없이 발로 레드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거의 전력을 다한 킥이었다.
“크윽!”
레드가 비틀거릴 때 멜라니는 그의 허리를 잡고 연달아 킥을 먹였다.
정말로 인정사정없이 상대를 끝장내겠다는 빠르기와 위력이었다.
“똑바로 서! 똑바로 서라고! 토끼띠도 아니고, 깡충깡충 대지마! 이 자식아! 곁에 설 권리 정도는 나에게도 있어! 네가 뭔데 나를 결정해?”
“이봐, 멜라니.”
“똑바로 서라고!”
다음날 칼카자가 성을 떠날 때 그녀도 함께할 것이다.
결국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 *
세인은 시장을 돌며 필요한 물건을 샀다.
그중 지도는 가장 좋은 거로 구입했고 말이다.
음식을 챙기고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대장간이 붙어 있는 상점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잭이 나와서 물을 뿌렸다.
그는 세인을 힐끗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무뚝뚝한 대장장이가 아닐 수 없다.
“이해하세요. 저 친구는 사교성이 없어서.”
세인은 손님을 맞이하러 나온 상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상인은 마족으로 보이는 사람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니 속으로는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모든 손님을 귀족처럼 모시는 게 평소 그의 판매 정신이었다.
상인은 양손을 비비며 그를 상점 안으로 안내했다.
옆에서는 망치질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그가 진열된 물품들을 가리킨다.
“딱 보아하니 여행자시군요! 이 수통 어떻습니까? 놀라지 마십시오! 이 수통으로 말할 것 같으면! 단물을 넣어도 개미가 몰려들지 않습니다! 박하 처리를 했거든요!”
하나도 놀랍지 않았다.
“시큰둥한 표정이시군요.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무려 철로 된 식판입니다. 유사시에 무기로도 쓸 수 있지요.”
왜 식판을 굳이 무기로 써야 하는 거냐고 묻는 대신 세인은 팔짱을 끼었다.
그리고 상인을 바라보았다.
그 바라보는 시간이 무례할 정도로 길었다.
상인은 이 손님이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어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이러니 짜증도 약간 난다.
그러나 먹고 사는 걸 생각하면 얼굴을 찌푸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혹시 뭐 따로 원하시는 게 있습니까?”
“흉갑을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아 그렇군요. 진작에 말씀하시지. 단단한 나무 흉갑으로 드릴까요?”
세인은 고개를 저었다.
더 단단한 게 필요했다.
“강철이 필요해.”
“무거울 텐데요? 그중에서 가벼운 건 비쌉니다.”
“상관없어.”
대장간이 붙어 있는 가게라서 그와 관련된 제품을 이것저것 살 수 있었다.
상인은 머무는 곳을 알려주면 배달도 가능하다고 말해 주었다.
세인은 장화 등의 물품을 들어 보다가, 구매할 것을 다 정하고는 일괄 배달을 부탁했다.
그렇게 일을 마치고 가게를 나서는데 상인이 따라 나왔다.
배웅을 해주려는 것이다.
이런 행동을 봐도 이 사람은 상인이 천직이었다.
“배달원은 지크라는 청년입니다. 이름을 대고 노크할 때 문을 열어주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하는 상인에게 등을 보였던 세인은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자 상인은 ‘저 사람이 왜 저러나?’ 싶은 얼굴로 세인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세인은 그 자리에 선 상태로 입을 열었다.
“아까 말이야.”
“예?”
“미안해.”
“아? 아하. 노골적으로 빤히 바라보신 거 말입니까? 사과하실 것까지는 없는데요.”
“미안해. 당신에게 미안했다. 날 용서해 줘.”
세인의 말에 상인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방금 내 말을 듣긴 들은 거야? 너무 일방적이잖아. 이게 사과하는 태도야?’
이상한 사람임이 분명했다.
그가 가고 나면 소금을 뿌려야 할까?
‘소금 비싼데….’
이 순간 세인은 상인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든 상관없었다.
오늘의 그에게 사과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사과를 마친 세인은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그대로 걸었다.
그렇게 세인은 한센에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