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왕 마검의 주인-188화 (188/307)

# 188

& 오후 속에서 여행을 떠난다. (2)

고블린 한 마리가 땅에 엎드렸다.

그놈의 등 위에 올라탄 다른 고블린이 양손을 휘두르며 달려왔다.

레드는 몸을 굽히고 방패로 공격을 막아낸다.

불똥이 옆으로 튀며 지나가는 가운데 장검이 휘둘러졌다.

네발로 땅 위를 달리던 고블린은 등 위가 허전해진 것을 느꼈다.

등에 올라타고 팔을 휘두르던 고블린은 목이 잘린 채 땅 위를 뒹굴었던 것이다.

레드는 제자리를 지키지 않았다.

그는 끊임없이 이동하며 고블린들을 막아내고 공격을 가했다.

고블린의 수가 많았기 때문에 세상의 적대감을 한몸에 받는 느낌이었다.

그 외로움과 고통이란 직접 당해보지 않는 사람은 모른다.

하지만 레드는 이미 그런 적대감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의 검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파육음이 나면서 고블린들이 조각났다.

그리고 땅에 떨어진 그들은 다시 일어났다.

육체가 부서져야 하는 게 아니라, 안에 깃든 악이 박살 나야 끝나는 싸움이었다.

“우아아아아!”

작은 고블린이 퉁방울눈을 해 가지곤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달려왔다.

안아달라는 듯이 양팔을 활짝 벌리고 말이다.

웃으며 입가에 침을 질질 흐르는 그 녀석은 그대로 레드의 품에 안겨들었다.

그리고 납작한 이마를 망치처럼 아래로 내리쳤다.

그 망치질에 레드의 방패가 조금씩 패였다.

레드는 고블린을 신경질적으로 쳐내면서 옆으로 굴렀다.

그가 피한 자리에 고블린들의 뿔이 틀어박힌다.

작은 고블린을 걷어차 날려버리고 옆의 고블린을 방패로 찍어 버린 레드는 몸을 숙였다.

그리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검을 위로 올려 뒤쪽의 고블린을 관통했다.

고블린에게서 천천히 검을 빼내자 핏물이 비처럼 쏟아진다.

쿵, 소리를 내며 넘어가는 고블린 위에서 레드가 헐떡였다.

다시 달려오는 작은 고블린을 레드가 방패로 쳐내 버렸다.

날아간 고블린은 등을 나무에 부딪혔다.

나무가 쓰러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고 먼지를 피워 올렸다.

이 소란 속에서 한바탕 웃는 고블린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이게 재미있는 파티 정도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고개를 뒤로 젖힌 고블린이 크게 울부짖었다.

그러자 녀석의 입이 여러 갈래로 찢어지면서 이빨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입안을 헤집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여러 갈래의 집게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회전하면서 레드의 목을 노린다.

그걸 어김없이 차단하는 것은 레드의 방패다.

비록 막아냈지만, 충돌하는 힘을 이기지 못한 레드가 땅 위를 굴렀을 때였다.

“으아아아!”

다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작은 고블린이 달려왔다.

사방에서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레드는 가까스로 달려온 고블린을 발로 걷어차 버렸다.

그러자 작은 고블린이 날아가 덤불에 처박혔다.

“크루세이더.”

회전하는 집게 밑으로 입이 드러났다.

고블린의 목 쪽이었다.

새로 생겨난 입은 이렇게 말했다.

“너를 죽일 거야. 그리고 이걸로 네 여자들을 요리해주겠어.”

집게가 서로 부딪히며 따닥이는 소리를 냈다.

“야.”

그 앞에서 레드는 피식 웃었다.

“고블린이 아니라, 요리사냐?”

재미없는 농담에 다시 고블린들이 달려들었다.

땅이 울리고 둔탁한 소리가 이어졌다.

갑작스러운 고블린의 기습으로, 뿔에 받힌 레드의 몸이 하늘 높이 날았다.

땅에 거꾸로 처박히기 전 그의 검이 밑쪽에 있던 고블린의 등판을 관통했다.

고블린이 고통에 찬 소리를 지를 때, 고블린에게 매달린 레드는 녀석의 목을 졸랐다.

우두둑 소리가 나며 고블린의 목이 부러진다.

그때 다시 작은 고블린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고.

옆구리를 받힌 레드는 옆으로 굴렀다.

난장판이었다.

뜨거운 숨과 피가 뒤엉긴 현장은 계속 이어지면 한 사람의 죽음만을 바랐다.

그 속에서 레드는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그가 검을 움직이자 고블린들의 허리가 끊어졌다.

그리고 내장들이 쏟아져 나왔다.

김이 무럭무럭 솟아오르는 내장이 땅 위로 쏟아졌을 때였다.

다른 고블린의 공격을 피하려던 레드는 물컹한 내장을 밟아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다.

우당탕 소리를 내며 쓰러진 가운데 한쪽에서 다시 외침이 일어났다.

“우아아아!”

또 작은 고블린이었다.

놈은 얄밉게도 큰 고블린 사이에서 요리조리 약삭빠르게 움직이며 레드를 공략하고 있었다.

다시 양팔을 높이 들고,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달려오는 작은 고블린이었다.

끈적이는 내장 더미 위에서 방패를 든 레드는 녀석의 충돌을 기다렸다.

하지만 작은 고블린의 몸은 레드에게 닿지 못했다.

뒤에서 그를 잡아채는 손이 있었기 때문이다.

“엇? 어엇?”

모두의 시선이 작은 고블린을 낚아챈 손의 주인으로 쏠렸다.

세인은 마검을 들어 작은 고블린의 턱에 쑤셔 박았다.

정수리를 뚫고 검이 삐죽이 빠져나올 때, 고블린이 푸들거리며 경련했다.

그 작은 손끝 날카로운 손톱이 세인의 팔을 헤집었지만, 세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에 더욱 힘을 주어 검을 돌렸다.

듣기 거북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작은 고블린의 목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그리고 세인은 쓰레기처럼 작은 고블린의 시체를 땅에 던졌다.

물론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의 발이 작은 고블린을 짓밟자 과자가 터지듯이 몸이 부서져 나간다.

그리고 뜨거운 김을 뿜어내며 굴러다니는 육편 위로 세인의 조롱이 쏟아진다.

“장난감도 아니고 연약해 빠졌군.”

“넌 누구냐? 어떻게 이 결계 안에 들어왔지?”

고블린 중 한 마리가 그렇게 말하며 세인을 노려보았다.

지나가다 들렸다고 말하는 대신, 세인은 옆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힘껏 뻗은 그의 손등에 고블린의 머리가 정통으로 맞았다.

고블린의 콧잔등이 내려앉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터져 나갔다.

평소 강도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것뿐만이 아니라 고블린의 머리가 움푹 파이며 안쪽으로 들어간다.

덕분에 상대적으로 눈알이 불거져 나오고, 피가 앞쪽으로 튀었다.

머리가 함몰된 고블린이 뒤로 데굴데굴 굴러다닌다.

그리고 다른 한 마리가 세인에게 달려들다가, 그대로 머리가 잡혀 목에서 뽑혀졌다.

우드득!

박살 나는 소리에 다른 고블린들의 손이 움찔할 정도였다.

자신들의 귀를 막기 위해 반사적으로 살짝 반응한 것이다.

“옷이 더러워졌군.”

그렇게 중얼거리는 세인은 손을 쥐었다 폈다 해 보였다.

전에 부러졌던 팔은 불과 며칠 만에 말끔히 나아있었다.

정상적인 회복력이 아니다.

레드는 솔직히 세인이 살아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당황했다.

그리고 이곳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것도 의심스러웠다.

보통 존재는 이 싸움에 끼어들지 못한다.

그런데 세인은 갑자기 나타나 그를 도와주고 있었다.

고블린 몇 마리가 방해꾼을 향해 달려들었고 박살이 났다.

마검은 고블린 여러 마리를 손쉽게 갈라버렸고 수복을 허락하지 않았다.

고블린 안에 깃든 영혼은 마검에 깊게 베어진 듯 비명을 지르며 꿈틀거렸다.

그렇게 세인이 몇 차례 공격을 하자, 고블린들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리고 거대한 톱날에 분쇄된 것처럼 흩어졌다.

땅에 쏟아진 육편들이 다시 모여 거대하게 일어나는데, 덩치가 어마어마하다.

커다란 네 개의 손을 가진 고블린의 어깨 위에는 여러 개의 머리가 달려 있었다.

그중에는 두꺼비 입술의 머리도 보인다.

“죽어라!”

두꺼비 입술이 외치자 괴물의 가슴이 갈라지며 여러 개의 입이 드러났다.

벌려진 치아 사이에서 푸른 불길이 쏟아졌다.

그 불은 땅을 태우며 직선으로 흘렀다.

세인과 레드는 양쪽으로 피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눈을 마주친 그들은 앞으로 달려나갔다.

두꺼비 입술이 기괴한 신음을 지르자 괴물의 팔이 길게 늘어나며 땅을 때렸다.

파랗게 불타는 땅이 부서지며 들썩인다.

파편들이 달려드는 세인과 레드의 몸을 때렸지만, 둘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팔들이 쇄도해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무릎을 굽힌 레드는 몸을 뒤로 뉘었다.

그 상태에서 앞으로 미끄러지듯 이동했고, 거대한 팔은 그런 그를 헛치고 지나갔다.

얼굴 위로 통나무 같은 것이 그림자를 만들며 지나가 버린 것이다.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운 레드는 검으로 팔을 잘라냈다.

세인도 세인이지만, 두꺼운 근육질의 팔을 단숨에 잘라내는 이 남자도 절대 보통은 아니었다.

크루세이더로서 살아남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괴물은 고통에 울부짖기보단 몸을 숙였다.

그리고 닫혔던 가슴을 열려고 했다.

그러면 파란 불길이 쏟아져 나와 레드를 태워 버릴 것이다.

그때 레드가 두 손을 깍지 끼었다.

그리고 달려온 세인의 발을 받아냈다.

레드가 세인을 위로 올려주자 허공으로 붕 떠오른 세인의 몸이, 두꺼비 입술의 머리에 도달했다.

다른 고블린 머리들이 아우성을 칠 때 두꺼비 입술의 머리는 새하얗게 질렸다.

그렇게 탈색된 얼굴을 검이 무참히 가로질렀다.

야만인이 양손으로 잡고 전력을 다해 내리치는 힘보다도 더욱 무겁고 강력한 힘이었다.

그 무시무시한 힘이 두꺼비 입술의 머리를 박살 냈다.

두개골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뇌수가 세인의 얼굴에 튈 정도였다.

물론 피는 덤이다.

그 순간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세인의 얼굴은 무섭도록 차분했다.

그가 싸워온 괴물들만 해도 별별 것들이 다 있었다.

비록 전처럼 드래곤을 박살 낼 수는 없었지만, 이 정도는 여흥에 불과하다.

두꺼비 입술의 머리를 박살 내고도 모자라 마검은 가슴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갈비뼈들이 으스러지며 장기들의 찢기는 소리가 세인의 귀에도 들렸다.

마검은 아래로 그어지며 결국 가랑이까지 두 쪽을 내버렸다.

두 조각난 거체가 허물어지며 쓰러졌을 때 세인은 몸을 돌렸다.

피범벅이 된 그의 모습에서 두 눈만이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앞에 남은 고블린, 고블린의 탈을 쓴 악들은 전율을 느꼈다.

그것은 두려움이라는 생소한 감정이었다.

“검의 힘이 없어도 너희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도망가지 마라. 쫓기 귀찮으니까.”

세인의 그 말이 결정타였다.

이제 사냥하는 자와 사냥당하는 자가 뒤바뀌었다.

남은 고블린들은 말 그대로 학살당했다.

악들이 다시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 세우면, 세인은 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고블린의 몸을 두 조각내 주었다.

고블린의 비명을 찢고 세인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그건 레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밤이 지나갔고, 레드는 마경에서 처음으로 혼자가 아닌 상태로 아침을 맞이했다.

땀범벅이 되어 주저앉은 그는, 검을 지팡이처럼 짚고 서 있는 세인을 바라본다.

세인은 그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로 밝아오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흉측한 색으로 번져오는 빛깔이 세인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아침이 마치 노을 같아.”

그런 말을 중얼거리던 세인은 고개를 레드 쪽으로 돌렸다.

그 깊은 눈빛 안에서 레드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끈끈한 뭔가가 자신을 직시하고 뒤흔드는 느낌이었다.

내면을 직시하고 이유 없는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그 눈은, 레드의 가슴을 울렁이게 했다.

형제나 친구를 가져볼 수 없었던 지금의 레드에게는 굉장히 생소한 감정이다.

‘레드. 아델과 마찬가지로 너는 이 시대 속에서 고독하게 싸워왔구나. 왜인지는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알 것 같아. 나라도 그랬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하는 세인이 다가가 손을 내민다.

그러자 레드는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레드는 이미 세인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가까이에서 유미리를 지켜본바, 그녀에게 뚜렷한 적의가 일어나질 않았다.

그래서 더욱 지금 물어봐야 했다.

여기서 확실하게 해두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생소한 감정에 이끌릴 것만 같았다.

“유미리. 그녀는 마족이 아니라 되살아난 자이죠? 그녀와 당신은 사악한 자입니까?”

레드의 질문 앞에서 세인은 속 시원히 처음부터 끝까지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자신을 미래에서 왔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상대가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이다.

“그건 네가 직접 확인해야지. 내가 사악한 자라면 거짓말도 그럴듯하게 할 테니까.”

레드는 자신의 팔을 툭툭 치는 세인에게 뭔가 더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지금 상대의 동작에는, 오랜 시간 함께한 전우가 빚어내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안에서 사실 규명을 위해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것은 시간 낭비였다.

세인은 언덕 위로 올라가 자신의 생환을 알렸다.

유미리는 세인을 보면서 환하게 웃어 보였다.

멜라니는 세인에게 대체 어떻게 거기에서 올라왔느냐며 캐물었다.

이 와중에 그런 것을 물어볼 수 있다는 것에서, 멜라니는 과연 대단한 여자였다.

멜라니는 레드에게도 다가가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쿡 찔렀다.

그리고서는 씨익 웃었다.

“이번에도 버텼네? 잘했어 레드.”

“뭐야 그 표정은? 안타깝다는 감정이 여기까지 전해지는 것 같아. 내가 살아남아서 유감이냐?”

“어라? 오늘은 농담도 하는 게 왠지 팔팔해 보이는데?”

그러면서 멜라니가 계속 웃었다.

지금처럼 짓궂은 농담을 던질지언정, 레드가 살아남기를 강하게 바란 사람이 멜라니였다.

그걸 꼭 자신의 책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  *  *

아침을 나눠 먹은 그들은 다시 길을 떠났다.

여행자들의 기본 법칙은 가급적이면 대로를 이용하고 뭉쳐서 다닌다는 것이다.

세인 일행의 경우 어떤 것도 이에 해당되지 않았다.

다만 되도록 물줄기를 따라 걷는 상식 정도는 지키고 있었다.

좀 쉬어가는 순간이 오면 멜라니는 어김없이 물가에 낚싯대를 드리웠다.

그리고 귀신같이 물고기를 낚아 올렸다.

그 실력에 유미리도 감탄하며 입을 벌릴 정도였다.

낚시에 소질이라는 말이 적합할는지 모르지만, 멜라니는 정말로 소질이 있어 보였다.

“멜라니. 차라리 어부를 하지 그랬어.”

“낚시랑 많이 잡는 건 이야기가 다른 거야. 전자가 도락이라면 후자는 그물을 던진다는 이야기거든.”

그렇게 대꾸하는 중에도 멜라니는 또 한 마리를 낚아 올렸다.

가느다란 낚싯줄로 살이 통통하게 오른 대어를 용케 끌어 올리자, 유미리가 손뼉을 쳤다.

낚시라곤 생전 구경도 못 해본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면 멜라니는 왠지 우쭐해져서 자만감에 쩔은 말을 남발하는 것이었다.

“가끔 나는 재능이 넘쳐나서 미칠 거 같아! 내가 바로 낚시의 고수다! 언젠가는 황금 잉어를 낚고야 말겠어!”

팔뚝만 한 물고기의 아가미를 손으로 쥐고 저렇게 말하니 이상하게 멋져 보였다.

대어라는 실물이 주는 마력이었다.

유미리는 주변에서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웠다.

그리고 물고기를 구웠다.

연기를 피워 올리며 껍질과 속살이 노릇노릇하게 익어간다.

너무 타들어 가는 듯하자 레드가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손을 제지한 멜라니는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놀람 무쌍한 낚시 실력뿐만 아니라, 대담한 요리 철학까지 선보일 줄 아는 여자였다.

정말 키가 작고 성격 더러운 것만 빼면 완벽하다.

“그만둬. 더 익어야 해. 검뎅이가 몸에는 안 좋지만, 맛을 북돋워 준다고.”

“한두 개 정도는 정상적으로 먹어도 괜찮잖아.”

“닥치고 요리 철인인 내 말을 잘 들어! 몸에 해로워도 그런 게 혀에겐 맛있는 거야. 때론 혀를 위해 몸을 포기할 줄 알아야지! 사람이 다 가지려고 하면 안 돼!”

그 말을 들은 세인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적어도 맛없는 건강식보다는 해롭더라도 맛있는 음식이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드는 이렇게 대꾸한다.

“혀도 몸이야.”

그렇게 멜라니와 레드가 다투는 가운데, 로브를 걷어 올린 유미리가 물가로 다가갔다.

아까 낚시에 방해가 될까 봐, 하지 못했던 것을 하려는 것이었다.

유미리의 늘씬한 종아리가 나타나고 곧 물에 잠겼다.

그렇게 물속으로 걸어간 유미리는 미소를 띤 채 멀리 보이는 산과, 그 산을 담아낸 물그림자를 바라보았다.

물가에 나 있는 갈대들이 흔들리는 가운데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이, 뒤에서 바라보는 세인에게는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갈대들뿐만 아니라 그녀의 머리카락까지 잡고 가볍게 흔든다.

허공에 떠 있는 먼지마저 손에 잡힐 듯 밝고 따뜻한 햇볕에, 그녀의 피부에 나 있는 하얀 솜털마저 빛났다.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는 고개를 숙여 물 바닥을 보았다.

자갈들이 아래를 채우고 있었고 그 위로는 송사리와 도롱뇽 같은 것들이 헤엄쳐 다녔다.

그녀가 차가운 물에 손을 담그자 송사리들이 놀라 흩어진다.

납작한 돌을 주워든 그녀는 수면 위로 힘껏 던졌다.

그러자 물 위를 몇 번 튕기며 날아가는 돌이었다.

그렇게 몇 개를 던지니 그녀의 속이 시원했다.

어렸을 때 곧잘 하던 놀이다.

그때 멜라니가 불러, 유미리는 자리로 돌아갔다.

그들이 식사를 끝낸 후에는, 설거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물수제비를 많이 만드는 쪽이 편해지는 거지. 가장 적게 만드는 사람은 설거지를 하는 거고 말이야.”

그렇게 말한 유미리가 납작한 돌을 던지자 수면 위로 돌이 날아갔다.

퐁퐁 소리를 내며 돌이 멀리까지 날아갔고, 뒤늦게 일어난 파문들이 줄을 이었다.

“뭐야. 꾼이냐?”

그렇게 중얼거린 멜라니는 납작한 돌을 들고 던지는 자세를 취했다.

각이 잡힌 게 제대로 던질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신은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재능을 몰아주지 않는다.

결국 멜라니는 설거지를 도맡아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녀가 아까 말했듯, 사람이 다 가지려고 하면 안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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