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왕 마검의 주인-178화 (178/307)

# 178

& 밤을 맞이하고 (5)

제이가 앞쪽으로 움직이자, 그의 머리와 하나가 된 괴물이 드러났다.

긴 목을 가지고 네 다리로 땅을 디딘 생물이었다.

등에는 뾰족한 가시가 달려 있었는데 노란색이었다.

이제 아래로 드리워진 긴 목의 끝에서 제이의 얼굴이 실룩였다.

그에 따라 그의 머리에서 떨어지는 피의 양도 많아졌다.

그의 초점 없는 눈은 공허했고, 푸들거리는 아래턱은 마지막 말을 내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힐다. 나는, 당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지… 못 하겠… 어요.”

“미안하다 제이. 너를 지켜주지 못해서.”

제이는 나야말로 항상 짐이 돼서 미안하다고 말해줄 작정이었고, 그는 평소에 항상 그런 생각을 했다.

힐다는 겉으로 보기에 난폭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남에게 함부로 구는 사람은 아니었다.

평소 제이는 그런 그녀에게 신세를 많이 졌었다.

하지만 말 대신 뿔이 그의 입안을 뚫고 나왔다.

그의 눈 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시와도 같은 세 개의 뿔이 힐다를 겨냥했다.

그리고 괴물이 비명과 함께 앞으로 전진했다.

“으아아악! 으아악!”

얼굴 안쪽부터 뚫고 나온 뿔의 고통은, 곧 제이의 비명이었다.

힐다의 가슴을 노린 그 공격을, 뛰어든 세인이 방패로 막아냈다.

단단한 노란 뿔이 방패 표면에서 미끄러졌고 괴물의 목이 휘청거렸다.

자신의 앞을 막고 지나간 방패 뒤에서 힐다가 민첩하게 움직였다.

평소에 보여주던 폭발적인 움직임에 국한된 것이 아닌, 고양이처럼 민활한 몸놀림이었다.

그 동물적인 움직임에, 괴물의 목은 도끼날이 그리는 선을 예측하지 못했다.

도끼날이 촘촘히 박힌 푸른 비늘을 파고들자, 이번에는 괴물의 몸체 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몸부림치며 빠져나가려는 긴 목을 기어코 도끼가 잘라냈다.

본체와 연결되어 고통을 느끼던 제이의 머리도 그제야 해방이 되었다.

땅 위를 구르는 제이의 머리에서 비명이 잦아들자 힐다는 몸을 옆으로 피했다.

그러자 돌진해 오던 괴물의 몸체가 힐다의 몸을 들이박지 못하고 지나쳐 갔다.

피워 놓은 불을 몸체로 덮어버리려는 찰나.

세인이 옆에서 방패째로 괴물을 후려쳐버렸다.

그러자 괴물의 몸뚱이가 옆으로 주르륵 밀려나며 처박힌다.

허공으로 떠오른 네 다리가 파르르 떨리더니 아래로 축 늘어졌다.

방패를 고쳐 잡고 가죽끈을 팔에 감던 세인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하늘은 유난히 어두웠다.

먹구름에 가려 별빛 한 점 없었다.

“최대한 불을 지켜야 해.”

그의 목소리에 상단주와 유미리가 불가로 다가섰다.

그리고 모아둔 목재 중 일부분을 던져 넣었다.

“어쩌면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어.”

힐다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투지를 불태웠다.

한 놈을 처지 했지만, 주변의 기척이 늘어나고 있었다.

비 내리는 어두운 밤 곳곳에서 긴 검은 선들이 세로로 일어난다.

그리고 그 기둥들이 다가오고 있다.

장대처럼 높게 솟아올라 상인들의 머리를 매달고 있었다.

세인은 마검을 상단주에게 던져 주었다.

되살아나서 힘을 쓰기 어려운 유미리 보다는 그가 나을 것 같아서였다.

‘힐다가 도끼를 가졌고 방금 한 놈을 처치했으니, 일반적인 그녀의 공격은 유효하다. 그렇다면 수비로서 그녀를 도와줘야 해.’

얼떨결에 검을 받아든 상단주에게 세인은 이렇게 말했다.

“불이 꺼지더라도 그녀는 꼭 지켜야 합니다. 그것만 명심하세요.”

유미리가 곧 세상의 희망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세인의 뜻을, 상단주는 최후까지 연약한 여자를 지키라는 말로 알아들었다.

그래서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장검을 들어 올렸다.

물론 불편한 몸으로 상업에 종사하는 그에게서 전투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힐다와 세인은 몰려드는 모든 괴물을 막아내야만 했다.

힐다는 잠시 도끼를 내려놓고 붉은 머리를 정돈했다.

뒤로 넘겨 끈을 다시 묶어 맨 것이다.

그리고 솥뚜껑같이 큰 두 손에 침을 탁하고 뱉었다.

다시 도낏자루를 집어 든 그녀가 세인을 향해 윙크를 해 보였다.

“이렇게 된 거, 아침이 올 때까지 버텨 보자고.”

그리고 그녀는 눈앞의 괴물처럼 눈과 입에 피어싱하는 취미는 없다고 중얼거렸다.

멀리에서 후끈한 내음이 다가왔다.

무거운 발로 땅을 밟는 소리도 전해져왔다.

뿔이 돋아나며 소리 지르는 상인들의 비명이 사방을 메웠다.

비는 계속 내렸고 불은 죽지 않기 위해 발악하듯 타올랐다.

발악해야 하는 것은 지금 여기의 인간들도 마찬가지다.

어둠을 헤치고 비에 젖은 괴물이 나타났다.

괴로워하는 상인의 얼굴에 돋아난 노란 가시가 위협적이다.

마치 말 위에 탄 기사의 랜스 차징 같았다.

곧바로 들어오는 그 공격을 세인의 방패가 먼저 받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뒤로 튕겨나거나 허리가 부서졌을 것이지만, 세인은 끄떡없었다.

그렇게 공격을 받아내면, 이제 힐다의 도끼가 어둠 속에서 예기를 뿌렸다.

촘촘하고 작은 비늘로 코팅된 목의 안쪽은 부드럽고 신축성이 있었다.

비까지 오는 이런 상황에서, 그걸 완전히 잘라낸다는 건 힘만으론 부족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노련한 전사는 기교를 부려, 한 번에 머리를 깔끔히 잘라낸다.

그렇게 적의 공격을 거세해 버리면 남은 건 상대의 돌진이었다.

불쪽으로 향하는 괴물의 몸체를, 세인의 방패가 다시 부딪쳐 각도를 바꿔놓는다.

그럼 피를 철철 흘리던 괴물은 바닥에 쓰러져 버둥댔다.

망설이던 상단주가 그런 괴물에게 다가가 검을 찔러 넣으면 죽어가던 괴물이 잠잠해진다.

그렇게 또 하나의 엄폐물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런 흐름이 몇 번 계속되자.

세인 일행의 주위에는 괴물의 사체로 만들어진 벽이 여러 개 생겨났다.

하지만 진짜 전투는 지금부터다.

집결이 끝났는지 수많은 발소리가 그들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간만 봤던 셈인 거다.

“좋아 덤벼라! 나는 언제나 자유롭지! 자유 힐다! 나가신다!”

힐다가 소리치며 신나게 도끼를 휘둘렀다.

괴물의 크고 날카로운 노란 뿔에 옆구리라도 스치면 그대로 치명상일 텐데, 그녀는 위축되는 기색이 아니었다.

고함을 지르느라 호흡이 흐트러질 때도 있었지만, 이 용감한 여전사는 그것보다 기세를 이어 나간다는 게 중요했던 모양이다.

그녀의 도끼질 한방이 적들에게는 사형 선고였다.

반면에 세인은 눈을 빛내며 방패를 움직였다.

직선 공격이 들어오면 그걸 흘리거나 막아냈고, 철퇴처럼 후려쳐오면 방패를 비스듬히 위로 들어 올려 튕겨낸다.

힐다야 벌목하는 기분일지도 모르지만, 그는 정말 대단했다.

보통 사람이 그렇게 몇 번 막아내다간 손목이나 팔이 부러져 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방어와 중간을 철저하게 받쳐주니, 힐다의 공격이 살아났다.

그들의 주변에 사체들이 늘어나자,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는지 한 번에 대여섯 마리가 돌진해 왔다.

서로 얽혀져 공세가 무뎌질 수도 있는 무식한 공격이었다.

세인은 아래쪽에서 쓸어 오는 긴 밧줄 같은 목을 뛰어넘었다.

그를 지나간 상인의 머리가 타오르는 불 한구석을 때린다.

불티가 물방울과 함께 부서지고 재가 흩날리는 가운데, 힐다의 도끼가 그 맥을 끊어 놓았다.

세로로 내리쳐진 도끼날에 피가 솟구쳐 올랐다.

세인은 잘린 목을 밟고 위로 올라갔다.

괴물의 등 쪽으로 올라간 그는 방패를 옆으로 밀어 다른 상인의 머리를 막아냈다.

방패에 부딪혀 튕겨 나가는 목을 다시 힐다가 잘랐고, 그 도끼는 옆으로 휘둘러져 다른 머리를 박살 냈다.

“으아악!”

박살 난 상인의 머리에서 노란 뿔들이 떨어져 나왔다.

우수수 떨어지는 육편.

그리고 비명과 후끈한 열기 속에서 세인은 계속 움직여 다른 괴물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이쪽 등에서 저쪽 등으로 옮겨 가면서 말이다.

힐다는 그의 뒤를 따르며 맹렬히 도끼를 움직였다.

헐떡거리는 시간이 지나간 후 장내에는 여섯 마리의 괴물만이 남겨졌다.

얼굴에 달라붙은 검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던 세인은, 다시 주변에서 꼿꼿이 세워지는 괴물들의 목과 머리를 보았다.

빗속에서 뿔에 뚫려 울음을 터트린 인간의 머리들이, 그들에게로 다가선다.

그 속에서 힐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전혀 기죽지 않은 전사의 웃음소리였다.

*  *  *

전쟁은 종종 인간들에게 이해 못 할 광기를 선사한다.

얼마나 많은 지휘관이 전쟁터에서 어이없는 이유로 부대 전체를 죽음으로 몰아넣는지.

역사서를 보지 않는다면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중앙 깊숙한 곳에 있는 ‘헤카테’란 나라는 그런 집단적인 광기에 휩싸인 나라였다.

단단한 성벽과 절벽이라는 천혜의 방비를 약속받은 이 나라였는데, 매우 풍요롭고 거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과 좀 고립되어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그 나라도 대전쟁의 지원을 부담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내부를 들여다보면 전혀 달랐다.

국왕은 미치광이였다.

그는 괴물들을 숭배했다.

타락한 교회와 결합해 여러 가지 이유를 댔는데, 사실 알고 보면 그 숭배의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그들은 강하잖아. 그리고 세상의 주인이 될 거야.”

강하다는 것은 미녀의 유혹처럼, 그 자체만으로도 이성을 끊게 하는 위력이 있었다.

사람을 사정없이 끌어당기는 것이다.

그래서 왕은 자기 생각을 국민들에게 전파했다.

물론 몇몇 반대파들이 있었지만, 형장의 이슬로 화해 사라졌다.

중부 위쪽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던 인간들은 세계수 구출에 실패한 이후로 위축되었다.

그런데도 날카로운 공세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중부와 남부에서 올라온 물자로 뒷심을 받으며 말이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났다.

인간의 공격과 방어를 뚫고 괴물들이 헤카테로 향한 것이다.

“대체 왜?”

중부군 총사령관 오베론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괴물들은 무리한 돌진으로 인간들의 난타를 얻어맞으며 헤카테에 들어설 수 있었다.

일방적인 공격에 엄청난 희생을 내면서도 행한 것이다.

“헤카테의 왕과 국민들은 미쳤습니다. 그들은 알몸으로 괴물들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국왕과 왕비는 물론이고 백성들까지 말입니다.”

오베론의 부관이 다가와 하얗게 질린 낯빛으로 보고를 해왔다.

그리고 헤카테는 멸망했다.

모두가 죽임을 당했다.

괴물들에게 아주 끔찍하게 말이다.

그리고 괴물들은 헤카테에 포진하고 있었다.

“헤카테 왕은 그걸 몰랐을까?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그리고 괴물들은 왜 그렇게 엄청난 피해를 보아가면서 헤카테로 들어선 것일까?

거기 사람들을 다 죽이기 위해서?

그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어느 싸움이든 일정한 규모 이상이 되면 진형이란 게 만들어진다.

대승을 거두려면 그 진형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괴물들이 헤카테를 점령하며 자신들의 진형 일부분을 무너뜨렸다.

그건 누가 봐도 우둔한 짓이었다.

헤카테에서 무슨 일을 벌이든 그들이 감수한 피해는 상쇄될 수 없어 보였다.

지금 인간들은 이 기회를 이용하려 혈안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헤카테를 신경 쓸 수 없었다.

눈앞에 무너진 괴물들의 약점을 공략하는 게 최우선이니까 말이다.

그러다 보면 많은 땅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헤카테에 있는 괴물들이 위협이긴 하지만, 전체적인 구도로 보면 그건 그들의 자충수야. 난 이번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들은 왜 손해를 본 걸까? 무엇을 위해?”

오베론은 그렇게 말하며 고뇌했다.

괴물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전장에서 짜 맞추지 못하는 퍼즐이 있다는 게, 그를 내심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오베론은 죽기 전 헤카테의 왕이 보낸 밀서를 받아보게 된다.

그건 호의라기보다는 상대를 놀리는 듯한 내용이었다.

“나는 다시 돌아온다?”

헤카테 왕은 그 밀서를 쓰면서 속으로 오베론을 비웃었을 것이나, 오베론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  *  *

헤카테, 중부의 풍요로운 나라 중 하나다.

자연이 방어를 도와주는 은혜로운 나라.

하지만 이제 암녹색 하늘 아래의 헤카테는 폐허가 되어 버렸다.

모든 인간이 능욕당하고 죽음을 면치 못했다.

강한 것에 끌려 이성을 벗어던진 나라 전체는 스스로 빗장을 풀었고, 괴물들에게 몸을 바쳤다.

지금 세상을 지배하는 상식과 궤를 달리하는 행동이었다.

무서우니까 오히려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다는 말론, 지금의 참혹한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거리 전체에 벌거벗은 시체가 잔뜩이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넝마가 되어 있었다.

얼마나 고통에 몸부림쳤는지, 찢긴 얼굴 구석구석에 잘 드러나 있는 상태다.

하천과 산이 인간의 시체들로 뒤덮였다.

이건 왕궁도 마찬가지였다.

왕비는 첨탑의 꼭대기에 매달려 있었고, 왕의 시체는 조각나 정원에 뿌려져 있었다.

사방에 살이 썩어가는 악취가 가득했다.

인간들이 동산처럼 쌓여 있는 곳에서 괴물들이 어슬렁거리며 지나다녔다.

그중 작은 시쳇더미가 들썩였다.

그리고 시체들을 헤치며 몸을 일으키는 괴물이 있다.

파충류를 연상시키는 인간형의 괴물은 덩치가 산만 했다.

그의 생김새는 벌거벗은 인간 남성을 닮아 있었다.

하지만 머리카락 대신 여러 갈래의 촉수가 달려, 등 뒤에서 흔들거렸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광대의 여러 갈래 모자를 연상시킨다.

하품하며 시체들 속에서 일어난 그는 앞으로 걸어가더니, 피로 가득 찬 분수대 난간에 앉았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불길한 암녹색의 하늘을 바라보던 케이드는 작게 중얼거렸다.

여자의 목소리가 섞인 것 같은 중성적인 목소리가 헤카테의 왕을 추억한다.

“헤카테 왕. 당신의 행동은 의미 있는 행동이었어.”

그런 것 치곤 헤카테 왕은 너무 울부짖으며 죽어갔지만, 케이드는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고통에 살려달라고 빌며 오물을 보인 왕의 모습도 기억에서 지웠다.

케이드가 기억하기론 헤카테 왕은 인간 중에 드문 진짜배기 남자였다.

그러지 않고서야 나라를 통째로 들어다가 바칠 리가 만무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인간들은 지옥을 맛보았다.

세상은 드넓고 미친놈들은 많았으며, 자리를 가리지도 않았다.

“강함에 대한 동경. 그 지고지순한 순정을 잘 보았다. 당신의 숭고한 행동은 결실을 볼 거야.”

무서운 외모에 비해 케이드는 한 손으로 턱을 받치고, 사색에 잠긴 표정으로 눈을 반개했다.

이 끔찍한 괴물은 한나라 전체를 피에 잠기게 해놓고도, 여기서 한가하게 이런 소리나 지껄이는 중이었다.

그때 소의 머리를 한 괴물이 케이드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아주 공손하게 상부의 명령을 전한다.

소머리 괴물도 평소 한자리하는 놈이었지만, 테러 나이트인 케이드에게는 함부로 굴 수가 없었다.

테러 로드를 모시는 테러 나이트들은 주군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했으며, 무지막지하게 강한 힘을 가졌다.

“대마법사 칼스가 움직였다고 합니다.”

“….”

케이드는 눈가를 꿈틀거렸다.

칼스는 엘프 쪽의 마법사였다.

이노센트는 엘프들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지금은 괴물의 편을 자처하고 나선 게 엘프들이었지만, 방심할 수가 없었던 탓이다.

그중에서도 칼스 같은 존재는 오베론과 같이 항상 주목하고 있는 존재였다.

칼스가 투항했을 때 케이드가 맞이하기도 했고, 그와는 인연이 좀 있었다.

그래서 케이드의 담당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중요한 일에 매달린 상황이다.

“왜?”

그가 차갑게 묻자 소머리 괴물이 역시나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것까지는 알 수 없고 남부로 향한다 하는데, 어쩌면 케이드님의 생각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칼스야 자신의 제자였던 유미리가 되살아난 것을 알고 움직였지만, 지금 여기 처박혀 있는 괴물들이 그걸 알 리가 없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를 생각해 봐. 아무리 그가 대마법사라고 해도 나는 이곳에서 몸을 뺄 수가 없어.”

“예. 그래서 상황을 지켜보시다가 적절한 판단을 원하신다고….”

케이드는 혀를 찼다.

뭐 어쩌라는 건가?

“내가 몸이 두 개인 줄 알아?”

빗방울이 한두 개씩 떨어지자 케이드는 귀찮다는 듯이 손을 저어댔다.

그러자 소머리 괴물은 허겁지겁 그에게서 멀어졌다.

케이드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 후, 케이드는 하늘에서 내리는 검은색 빗줄기를 맞고 있었다.

마치 하늘에서 구정물이 내리는 것처럼 역한 액체가 헤카테 전역을 두들겼다.

땅과 강.

우아하게 세워졌던 구조물이 폐허가 되어 버린 곳에도, 케이드의 등 뒤에 있는 분수대에도 검은 비가 가득 찼다.

분수대 안의 붉은 피는 검은 물과 섞여져 악취를 뿜어냈다.

테러 나이트인 케이드는, 그런 빗물 속에서 방금 가졌던 답답한 기분이 좀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이게 다 내가 유능하니까 벌어진 일인 거잖아.’

검은 빗물이 조각상처럼 앉아있는 그의 몸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 기괴한 상황 속에서 케이드는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앞만 주시했다.

어쨌든 당장 여기를 비울 수는 없었다.

나중이 되면 이리저리 붙는, 박쥐 같은 칼스를 만나러 가겠지만 말이다.

그게 바로 케이드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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