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왕 마검의 주인-176화 (176/307)

# 176

& 밤을 맞이하고 (3)

필립스는 말 위에 몸을 실었다.

지금 그의 임무는 멀리 까지 한 바퀴 돌고 오는 것이었다.

그렇다 해도 완전히 사람들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위험한 임무는 아니었다. 주변을 살펴보기 위해 으레 하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습관적으로, 가벼운 얼굴을 한 필립스는 말 고삐를 잡았다.

그리고 말을 채근했다.

말의 늘씬하고 긴 황토색 다리는 주인의 재촉에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말발굽이 첨벙거리며 물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드러날 때 물이 튀었다.

그렇게 날아간 물이 수레바퀴 살에 맞아 산산이 부서졌다.

습도가 약간 높았지만, 신선한 공기가 말의 다리 뒤로 밀려났다.

말의 다리는 점점 속도를 붙였다.

그에 따라 상단이 있는 곳이 멀어졌고, 점점 뒤에 위치하게 되었다.

맘의 몸 위에서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필립스가 기분이 좋은지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말의 다리는 주인의 의도에 따라 앞으로 쭉쭉 나갔다.

그리고 상단을 중심으로 크게 반 바퀴를 돌았다.

거기까진 아무 이상도 없어 보였다.

이제 필립스에게 남은 길은 말과 함께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달리는 속도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느려진 말의 다리는 결국 우뚝 서고야 만다.

서서히 필립스의 흥얼거리는 소리가 잦아들었고, 말의 다리는 가만히 서 있었다.

필립스와 말은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미동도 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때 갑자기 끈적한 뭔가가 주르륵하고 말의 다리로 흘러내렸다.

그 끈적한 액체는 점점 양이 많아지더니, 결국 말의 배를 타고 아래로 흘러내렸다.

핏방울이 강의 수면 위로 뚝뚝 떨어졌다.

그 사이에도 말의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고요한 순간이 지나간 후 말의 다리는 천천히 움직였다.

아주 천천히 물살을 가르며 땅에 스치듯 발굽이 움직인다.

말의 다리가 향하는 방향은 상단 쪽이었다.

그런데 점점 빠르게 달리기 시작한 말의 다리는 지칠 줄 몰랐다.

지치기는커녕 점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전력 질주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속도였다.

말굽에 채인 물들이 미친 듯이 뒤로 밀리더니, 덩달아 말의 다리에 묻은 피도 밀려난다.

말의 털들이 마지막 순간 그 핏방울을 잡아두려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공기 속으로 놓아주었다.

그때 말 위에서 비명이 들렸다.

그건 분명 필립스의 목소리였으나 평소 때의 미성이 아니었다.

한 낯선 존재가 그의 성대를 빌려 울부짖는 소리일 뿐이었다.

“으아! 으아! 으아아아아!”

상단은 그때 변고를 알아챘다.

안쪽에서 용병들이 뛰쳐나오자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필립스가 보였다.

필립스의 머리는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 있었다.

평소에 단정하던 그의 이목구비는 바람이 가득 찬 풍선처럼 늘어나 기괴하기 짝이 없다.

눈과 코, 입과 귀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필립스의 얼굴.

그것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말 위에서 터져 나갔다.

“으악!”

난리를 피우는 말도 말이었지만, 사방으로 튀기는 피가 사람들의 얼굴을 붉은색으로 뒤집어씌웠다.

머리가 없어져 버린 필립스의 시체가 제 역할을 다했다는 듯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시체가 바닥에 처박힐 때, 어디선가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날벌레가 날아다니는 소리 말이다.

피를 정통으로 맞은 몇몇은 얼굴에서 느껴지는 열기에, 두 손을 자신의 머리로 가져가려고 했다.

손을 피부로 가져가 대자 화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너무 아파.”

어느덧 그들의 얼굴도 무섭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그게 너무 무서웠다.

끔찍한 두통보다도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에 두려운 것이었다.

그사이 다른 용병들은 필립스의 말을 창으로 찔러 죽여버렸다.

말의 피가 후두둑 소리를 내며 강바닥으로 떨어진다.

그 파편 세례에 그들이 서있는 강바닥은 검붉은 색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머리가 터져나가자, 그 붉은 영역은 점점 확대되어 갔다.

훨씬 짙은 색으로 말이다.

상단은 혼란에 휩싸였다.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사람들의 머리가 터져나가는 가운데 몇몇은 반대쪽으로 달려 나간다.

그렇게 쉽게 사람들이 흩어졌다.

용병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그들을 제지하려 해도 속수무책이었다.

이성보다도 피에 맞으면 자신의 머리가 폭발할 것이라는 현실이 문제였다.

용병들 입장에서는 아군을 강력하게 규제할 수 없었다.

흩어진다고 해서 칼을 휘두를 수 없는 일이다.

세인은 눈앞에서 부풀어 오른 머리의 상인이 비틀거리다가 강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상인은 머리를 바닥에 처박고 한참 꿈틀대다가, 수박 같은 머리가 박살 나서야 잠잠해졌다.

그에게서 파생된 검붉은 영역이 바닥을 침식해 오자.

세인은 유미리를 마차 안에 밀어 넣었다.

마차 문을 닫기 전에 유미리가 그의 손목을 잡으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단련된 인간에게는 처음의 저주가 소용없겠지만, 중첩되면 결국 방어할수 없어.”

유미리는 마법사이자 시체학자였다.

그래서 이런 방면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 그녀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인의 선택은 단호했다.

그는 사람들을 아끼지만, 돌아가는 상황에서 무리수를 두는 사람은 아니었다.

지금은 유미리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들어가 있어.”

닫히는 문 사이에서 유미리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사라졌다.

돌아선 세인은 피바다가 된 풍경 속에서 홀로 서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바르보사였다.

그는 몸이 부풀어 올라 뚱뚱보가 된 채, 고개를 옆으로 꼬고 있었다.

피범벅이 된 얼굴의 눈은 금방이라도 불거져 나올 듯이 양옆으로 벌어졌다.

그의 시력은 이미 상실된 듯했다.

바르보사를 채운 악의는, 부풀어 오른 머리를 세인에게 돌리게 했다.

그리고 코를 벌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그때 세인은 바르보사의 주위로 웽웽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마차 입구 쪽에 있던 방패를 집어 들고, 그것으로 전면을 가렸을 때.

바르보사의 몸이 터져나갔다.

살 조각은 물론이고 핏방울들이 악마의 노크처럼 방패 표면을 두들긴다.

어찌나 기세가 대단한지 방패를 든 세인의 몸이 뒤로 약간 흔들릴 정도였다.

그가 든 방패는 마차를 보호하는 싸구려였기 때문에, 무겁기만 하고 형태도 엉망이었다.

그래서 미련 없이 방패를 집어 던져 버린 세인은 주위에 주목했다.

이제 사방에서 무기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피에 오염된 자들이 상단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세인의 머리 위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목표인 것 같지는 않아. 그러니 피하는 게 어떨까?”

고개를 들어 위쪽을 보니 까마귀였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내리니, 머리 없는 용병이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세인은 몰랐겠지만, 그는 용병대장 피츠였다.

아무리 전사라고 해도 한꺼번에 많은 피를 뒤집어쓰면 도리가 없었다.

양손에 둔기를 든 그는 그것을 휘둘러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세인 입장에서는 하품이 나올 만큼 공격 속도가 느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불행이라면, 바로 세인 등 뒤의 마차에 유미리가 타고 있다는 것이다.

까마귀는 세인이 방금 집어졌던 방패를 다시 집어 드는 걸 보았다.

그건 곧 피츠의 공격을 막는 수단이 되었다.

방패를 다시 든 이유는, 공격이 무섭다기보다 튀는 피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건 좀 구차해 보이는군.”

피츠의 공격을 방패로 튕겨내는 세인은 꽤 여유로워 보였다.

아무리 마검의 힘을 기대할 수 없다고 해도 그는 라이트닝 블러드였다.

모순이라 마검의 힘을 기대할 수 없어도, 이미 타고난 핏줄은 배제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그동안 쌓은 전투 경험이 녹록지 않다.

그는 명령만 내려놓고 뒤에서 구경만 했던 귀족이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부담이라고 이야기하긴 어렵다.

“좀 더 거리를 벌려라, 세인.”

그렇다고 팔자 좋게 위에서 떠들 뿐인 까마귀가 곱게 보인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봐 부탁이 있는데.”

“뭐냐?”

“상황 가리지 않고 떠드는 누군가가, 입 좀 다물면 좋겠어.”

세인이 밀리지 않자 피츠가 양손의 둔기를 모았다.

그리고 번쩍 어깨 위로 올렸다.

아마 힘을 줘서 한 번에 내리칠 모양이다.

그런데 그전에 세인의 방패가 피츠의 가슴을 받았다.

균형을 잃은 피츠는 비틀거리다가 뒤로 벌러덩 나자빠졌다.

그가 일어나려고 허우적거릴 때 육중한 방패의 끝이 피츠의 가슴을 함몰시켰다.

완벽하게 말이다.

세인은 가볍게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차 사이사이로 도망가는 상인들과 그 뒤를 쫓는 머리 없는 용병들이 보였다.

대다수는 내부의 혼란을 피해 바깥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는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사냥하는 존재와 사냥당하는 사람.

울부짖는 사람 속에서 세인은 고민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지만, 마차 안에는 유미리가 있었다.

그는 방패의 헐거운 가죽끈을 고쳐 잡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지?’

*  *  *

“이렇게 하는 거다!”

힐다의 도끼가 무서운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용병의 몸뚱어리를 갈랐다.

허리가 동강 난 시체가 강바닥에 쓰러질 때, 거기에 발을 올려놓은 그녀가 침을 뱉었다.

“공격은 이렇게 하는 거지.”

야만족인 그녀는 덩치가 아주 크고 힘이 엄청난데, 사각 턱과 우람한 근육을 가진 여전사였다.

자유 용병이었던 그녀와 대비적으로 작고 왜소한 사내는 그녀의 뒤에 숨어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제이라는 남자로 힐다의 심부름꾼이었다.

상업을 배우고 있던 그는 바깥으로 도망가는 것보다 이 강한 야만인의 뒤에 숨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건 결과적으로 현명한 생각이었다.

“이봐 제이. 달라붙는 건 좋지만 거치적거리진 말라고!”

“예! 예!”

힐다는 바람처럼 달려나가며 머리 없는 용병에게 무릎 차기를 날렸다.

황소에게 들이 받힌 듯 튕겨 나가는 것을 보며, 힐다는 속 시원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야만족인 데다가 자유 용병이라고 은근히 따돌림당했던 그녀로서는 린치를 가하는데 망설임이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바람처럼 몸을 움직이며 적들을 휩쓸었다.

그럴 때마다 몸에 피가 튀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힐다는 엄청나게 단련된 전사였다.

저주가 갉아먹을 정도로 만만한 몸뚱이가 아닌 것이다.

더구나 하늘도 그녀 편이었다.

짙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움직인 힐다는 하늘을 잠깐 바라보았다.

‘먹구름이다.’

게다가 바람도 축축한 게 곧 한바탕 쏟아질 거 같았다.

비가 내리면 몸에 묻은 피는 당연히 씻겨 내려간다.

다만 시간은 그녀뿐만 아니라 모두의 편이 아니었다.

그녀는 일어나려는 용병을 걷어차며 제이에게 외쳤다.

“이봐, 잘 따라오라고! 어두워지기 전에 여길 벗어나야 해!”

“예!”

머리를 감싸 쥔 제이가 풍차처럼 도끼를 휘두르는 힐다를 따라 달렸다.

힐다의 무력은 가공했지만, 무겁고 큰 도끼를 연속으로 휘둘러대니 지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서두르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상단주 때문이다.

‘제이와 몸을 빼내는 건 어렵지 않아. 하지만 상단주는 구출해야지.’

꼭 계약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상단주는 선행으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그가 사라진다는 것은 곧 인간 진영의 손해였다.

힐다는 몬스터들의 습격 목표가 상단주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그녀는 본능적으로 인간의 의리를 지키고자 했다.

“빌어먹을.”

그러나 상단주의 마차 앞에는 머리 없는 용병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힐다는 그뿐만 아니라, 두 발로 일어나기 시작하는 말을 보았다.

머리 없는 용병의 어깨에 앞발을 올려놓은 말들이 머리를 뒤로 젖히고 헐떡거린다.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다.

“힐다님! 무리에요! 저렇게나 많다고요!”

“닥쳐! 이 의리도 없는 놈아!”

제이에게 소리를 지른 힐다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도끼를 붕붕 휘두르며 달려나갔다.

그 앞으로 달려든 용병들은 박살이 났다.

하지만 말들과 용병들이 뒤엉키는 가운데, 제아무리 힐다라도 그 상황이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제이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다.

지금 그가 달려가 봐야 방해만 될 뿐이다.

그래서 뒤로 물러나며 응원만 했다.

문제는 그런 응원에도 불구하고, 분전하는 힐다의 동작이 점점 느려진다는 것이다.

드디어 긴 도낏자루가 한 용병의 손에 잡혔을 때였다.

그 용병의 몸체를 어디선가 나타난 방패가 가격했다.

우당탕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용병의 뒤로 세인이 나타난다.

그는 다짜고짜 힐다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게 상단주의 마차인가?”

힐다는 상황이 상황이었으므로 고맙다는 말보다는 악을 썼다.

상대가 마족이냐 아니냐는 이 순간에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마차 깃발 보면 몰라?”

“….”

최근 합류한 세인으로서는 당연히 몰랐다.

그는 약간 머쓱해지는 것을 느끼며 방패를 위로 들었다.

그의 얼굴이 방패에 가려지고 불똥이 튀긴다.

금속 막대를 휘두른 용병은 세인이 다시 반응을 하기도 전에 힐다에게 걷어차여 바닥을 굴렀다.

“그래도 다행이야, 눈이 없으니까 활을 쏘는 놈이 없잖아?”

그녀의 농담을 들으며 세인은 한 손으로 마검을 빼 들었다.

그리고 마차로 향하는 길을 열었다.

방패를 들었을 때도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이었지만, 지금 그의 행동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적이 무기를 휘두르면 그 무기와 함께 휘두르는 팔이 잘려나갔다.

마치 짚단으로 채운 허수아비처럼 말이다.

세인의 주변으로 용병들이 쓰러져 나뒹굴었다.

마지막인 덩치 큰 용병과 한 손 방패로 부딪혔는데, 그 용병이 뒤로 붕 떠서 날아가 버렸다.

그 힘에 힐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마족은 원래 저렇게 강한가?’

말 그대로 괴물 같은 힘이었다.

하긴 마족이니까 괴물 같다는 말도 이상한 건 아니지.

그렇게 생각한 힐다가 피식 웃으며 마차 문을 두드렸다.

“이봐요! 살아 있습니까? 살아 있으면 나와봐요!”

그러자 안에서 인기척이 일어났다.

마차의 두꺼운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는데, 안에는 하얀 옷을 뒤집어쓴 남자가 반쯤 서 있었다.

은색 가면을 뒤집어쓴 그의 모습을 보면서도 힐다는 놀라지 않았다.

상단주는 원래 얼굴을 비롯한 몸에 심한 화상을 입고, 몸이 불편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마차 안에 있다가 이렇게 밖으로 나온 그에게는 바깥의 풍경이 목불인견의 참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위에 피 냄새가 지독한데도 상단주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음성이 미미하게 떨렸지만 그뿐이었다.

“거의 다 죽었군.”

그 목소리를 들은 세인은 반사적으로 바이테스의 황제를 떠올렸다.

설마?

자신을 진정시키려는 듯이 하얀 장갑을 낀 손을 쥐었다 폈다 한 상단주가, 천천히 마차의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그때 제이가 달려와 비틀거리는 상단주를 부축한다.

상단주의 안전을 확인한 힐다는 마차의 옆으로 돌아갔다.

용병들이 견고하게 제작된 마차를 뒤흔들었지만, 매어진 말들에게는 손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난장판에서 말이라고 무사할까 싶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오. 다행이다.”

정말 다행히도 말들은 큰 변화 없이 매어진 채 나란히 서 있었다.

푸르릉거리면서 말이다.

마부석으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말 한 마리가 그녀 쪽으로 머리를 홱 하고 돌렸다.

힐다는 말의 핏발선 눈과 마주쳤다.

말의 눈은 점점 불거져 나오는 중이었다.

“제길.”

결국, 더욱 부풀어 오르려는 말의 머리를 힐다의 도끼가 잘라 버렸다.

머리를 잃은 말의 몸체가 주저앉았고, 그녀는 결국 마차를 포기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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