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 헌터 타워 (2)
성에서 나온 세인은 커다란 마차에 탔는데, 특수 제작된 마차는 아주 견고해 보였다.
매어진 말들은 지구력이 강한 개량 품종으로 픽풋이라 불렸고, 건강 상태도 아주 좋아 보였다.
마차의 내부는 침대와 작은 책상이 들어갈 정도로 넓었다.
그리고 창문 없이 평평한 벽만 있었는데 그렇다고 답답하게 밀폐된 느낌은 없었다.
어디선가 틈이 있어 공기가 들어왔다.
마차의 문이 닫히자 천장 구석에 박혀 있던 램프에서 불이 들어왔다.
램프는 물 같은 것으로 꽉 차 있었는데 안에는 마정석이 들어 있었다.
거품과 함께 마정석이 빛을 내는 것이다.
밝아진 마차 실내에서 침대 모서리에 앉은 그는 책상 위의 반지를 집어 들었다.
붉은 선이 들어간 검은 반지가 첫 번째였고, 금반지는 첫 번째 반지를 따라 약지로 들어갔다.
그렇게 반지를 끼우고 있는데 마차가 출발하는 듯 미약한 흔들림이 있었다.
지금 주변에는 직접 보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마차를 에워싸고 있을 것이다.
세인은 출병식을 따로 열지 않았다.
앞으로 이렇게 훈련을 위해 나갈 때마다 사람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해야 한다면 정말 질색이었다.
그는 부츠를 벗고 상의의 단추를 풀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팔베개를 했다.
처음에는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런저런 상념이 그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가 결국 천천히 눈이 감겼다.
그가 낮게 코를 골고 있는 사이에 마차는 글리터를 완전히 빠져나왔다.
수백 명의 병사가 마차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이 병사들은 선발대에 불과했다.
차후 글리터에서 병력의 이동이 더 있을 예정이다.
목적지는 바로 가이더의 방벽 지대 중 하나였다.
병사들의 뒤쪽에는 기사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더이스, 행크, 세리스와 힐다의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이번에 기사가 되려는 사람들도 보였다.
과거 세인에게 구출된 질리언.
과거 대장장이 일을 하다가 전투에 참여하거나 정찰 임무를 맡기도 한 잭.
그 외에도 씩씩하고 재능있는 젊은이들이 모두 말을 탄 상태다.
이제 기사가 되려는 자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훈련받은 사람들이었고, 이번에 마지막 훈련을 거쳐 완전한 기사로 거듭나기 위해 움직이는 중이다.
말 위에서 움직이는 것에 서투른 자들은 입을 열려고 하다가 혀를 깨물 수도 있었기 때문에 다들 말을 아끼는 상황이었다.
그들을 제외한 노련한 기수들은 수다를 떠느라 정신이 없었다.
“도시락 뭐 싸 오셨어요?”
이번이 세 번째 질문이었다.
맥과 이야기를 나누던 행크는 인상을 쓰며 더이스에게 말했다.
“아까부터 왜 그렇게 남의 도시락에 관심이 많아?”
“바꿔 먹읍시다.”
순간 행크의 얼굴에 고뇌가 서렸다.
물론 아내가 해준 도시락이지만 단점이 있었다.
내용물이 뻔히 짐작된다는 것이다.
“난 그 맛에 길들어 있다고. 익숙하고 편한 길을 쫓는 게 낫지.”
“하지만 재미가 없잖아요. 매일 먹는 그 맛을 야외에 나와서까지 먹을 필요가 있어요?
그러니 바꿔 먹읍시다.”
더이스가 슬슬 꼬시자, 행크의 얼굴에는 고뇌가 서렸다.
마치 친구 보증을 서줄 것이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선 사람 같았다.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보는 주위의 기사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저런 거로 이렇게 고민할 건 아닌 거 같은데.’
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없었으므로,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건 알 리 없었다.
“에이, 됐어. 그래도 집에서 만들어준 정성이 있는데, 사람이 의리 없이 그러면 안 되지.”
“그러면 그러시던가요.”
오히려 더이스가 빼는 식으로 나오자 행크는 찝찝함을 느꼈다.
그리고 아쉬움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차라리 더이스가 더 밀어붙였다면 행크는 거절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둘은 서로 도시락을 바꿔 먹기로 합의를 보았다.
천인공노할 짓이었다.
아내들이 알면 쌍욕을 먹을 행동이다.
하지만 글리터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으니까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더이스는 요즘 건강을 생각해 준답시고 기름기를 쫙 뺀 채소 위주의 식단을 떠넘길 수 있었다.
요즘 몸에 군살이 많이 붙었다며 만든 도시락.
더이스의 도시락은 고기라고는 한 점도 없는 도시락이었다.
반면에 행크의 도시락은 당연히 고기 위주였다.
‘난 당근이 싫어.’
* * *
밖의 상태가 어떻든 세인은 내리 잠만 잤다.
깊은 잠은 아니었지만, 눈을 뜨니 피로가 좀 가시는 느낌이다.
침대에 몸이 파묻힌 상태로 세인은 오른발을 들어 작은 배게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바깥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 마차에는 창문이란 게 없었다.
대신 이게 있었다.
그가 머리맡에 붙어 있는 마정석 단추를 조작하자 벽이 투명해졌다.
그리고 노을이 진 바깥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천장은 물론이고 4개의 벽 모두가 투명해진 상태였다.
단 안에서는 바깥이 보이지만, 바깥에서는 안을 보는 게 불가능하다.
마정석을 엄청나게 쓰면 결국 이런 마차도 만들 수 있었다.
세인은 느리게 움직이는 바깥을 구경하며 노을을 눈에 담았다.
실제로는 마차의 안인 여기까지 닿는 게 불가능하겠지만, 붉은 광선이 볼에 와닿는 느낌마저 들었다.
고개만 옆으로 돌려 멍하니 그걸 바라보고 있는데 불쑥 더이스가 나타났다.
그는 세인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뭐라고 입을 열었다.
물론 그 소리는 마차 내부까지 들리진 않는다.
아마 식사에 대해서 떠드는 거 같았다.
왜냐하면, 행크가 도시락 같은 것을 들고 더이스에게 화를 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밥을 안 먹었군.”
출발하기 전 마플과 아침을 먹은 게 전부였다.
하지만 내리 잔 것 때문인지 배가 출출하진 않았다.
더이스는 안을 들여다보려는 것인지 얼굴을 마차에 가져다 대었다.
그래 봤자 보일 리가 없었다.
세인은 더이스의 얼굴을 마차 안쪽에서 바라본 감상을 짧게 말했다.
“길다.”
그리고는 턱을 안쪽으로 당기며 다시 눈을 감았다.
잠을 청하기 위해서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투명한 천장 위로 별이 총총하게 뜬 상태였다.
모래알처럼 뿌려진 별들을 침대 위에 누워서 올려다보고 있자니, 이것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호사를 오래 누리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침대에서 일어난 그는 옷을 벗고 잠시 벌거숭이가 되었다.
그리고 바닥에 있는 검은 옷을 집어 들었다.
앞으로 기사단의 기본 복장이 될 옷으로, 착 달라붙는 재질에 흰 선이 팔과 다리에 그어져 있는 복장이었다.
등에는 얇은 후드가 달려있었고 신축성이 아주 좋아서 두 배 가까이 늘어날 수 있다.
그 위에 투명한 방수용 외투를 걸친 그는 문을 열고 마차 밖으로 나갔다.
가장 먼저 세인을 반겨준 건 차가운 밤공기다.
밤인데도 불구하고 마차는 사람들을 따라 이동 중이었다.
다만 낮만큼 속도를 낼 수는 없었다.
움직이는 바퀴를 잠시 바라보고 있던 세인은 땅 위로 훌쩍 뛰어내렸다.
착지 후 천천히 걸으니 그를 추월한 마차가 점점 멀어졌다.
그걸 바라보던 세인은 두 팔을 허리 위로 들어 올리며 천천히 뛰기 시작한다.
야밤에 시작하는 달리기였다.
일정한 보폭을 유지하며 계속 뛰고 있는데, 뒤쪽에서 말이 푸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따각이는 소리와 함께 말의 흰 동체가 그의 옆을 차지했다.
“한밤중에 뭐하시는 거예요?”
시선을 올려보니 세리스였다.
파란 십자가가 들어간 하얀 외투를 걸친 그녀는 약간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세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운동이야. 이러다간 영혼까지 잠들 거 같아서. 저긴 인간적으로 너무 안락하다고.”
“밥은 먹고 뛰는 거예요?”
“답을 알고 있잖아.”
“잠깐. 그렇다면 제가 만든 음식이 좀 남아 있어요. 일단 그걸 먹고 운동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세리스가 안장으로 손을 뻗어 무언가를 뒤적이는데, 세인은 정색했다.
“그만둬.”
난 배고프지 않아.
“….”
* * *
자정이 넘어가자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한밤중까지 움직이던 무리는 그제야 행군을 멈췄다.
이 근방은 내일 오전까지 기온이 떨어진 게 유지돼서 점심 무렵에서나 다시 움직일 생각이었다.
편성된 야영지 속에서 다시 이동하기 전까진 말들이 푹 쉴 수 있을 것이다.
배불리 먹고 잠들고 나면 내일 다시 달릴 힘을 얻겠지.
그리고 그건 인간들도 마찬가지였다.
야영지 가장 안쪽에 세워진 마차 앞쪽으로 세인이 앉았다.
바닥에는 두꺼운 모포가 몇 겹이나 깔려 있었기 때문에 엉덩이가 시리진 않았다.
세리스는 세인의 몸 위에 얇은 모포를 덮어주고 자신의 간식도 나눠주었다.
새로 피운 불에 냄비가 달구어지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기 때문에 세인은 그 간식을 받아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봐, 세리스.”
“왜요.”
“가지고 있는 걸 나눠줘서 고맙지만, 이건 아닌 거 같아.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아.”
하지만 세리스는 냄비 속에 감자를 넣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에요.”
“뭐가 아니란 거야.”
“생각해 보세요. 제가 벌꿀 같은 걸 넣을 줄 몰라서 안 넣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그렇게 단맛을 내면 결국 뭐겠어요?”
불길에 상기되어 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세인은 이렇게 생각했다.
‘뭐긴 뭐겠어? 결국, 맛있겠지.’
그러나 세리스는 이렇게 생각했다.
“잠깐 달콤하고 그다음은 물을 찾겠죠. 그리고 물을 마시고 나면 또 입이 밍밍해서 다시 단것을 찾을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무한 반복이에요. 개미지옥이라고요. 그리고 우린 평소에 너무나 단맛과 짠맛에 길들어 있다고요. 이제 그런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요. 이런 것을 유념할 때 음식 투정은 무가치한 것이고요. 건강은 가치, 그 자체죠.”
세인은 진지한 얼굴로 그런 말을 내뱉는 세리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계속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에게 눈길도 안 주자, 고개를 돌려 더이스와 행크를 바라보았다.
‘누가 이 여자 좀 말려봐. 이게 제정신이야?’
그런 눈빛을 보냈지만 더이스와 행크는 말이 없었다.
사실 그들은 입이 싼 마플을 통해 이미 둘의 관계(?)를 알아차린 지 오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기 싸움에 끼어드는 것은 결코 현명한 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세리스에게 밉보여서 얻는 게 무엇인가?
없었다.
세인은 계속 심각한 얼굴로 냄비에 소금을 개미 눈물만큼 치고 있는 세리스를 향해 말했다.
“요리를 못하는 자가 창의성을 발휘하거나 신념을 가지는 것만큼 위험한 건 없다고.”
그녀는 지나가는 어투로 이렇게 말했다.
“뭐. 그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누군데요?”
* * *
북부의 나라 중에서는 분명히 딴생각을 하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겉으로는 글리터와 하나가 된 척하면서, 뒤로는 드레퓨스에 화친을 표시하기 위해 사신을 보낸 왕도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드레퓨스가 평소 하는 짓을 볼 때 그 사신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이제 대부분 왕은 일단 글리터와 연합하자는 뜻을 지키려고 하는 것으로 보였다.
물리적으로도 북의 허리띠 지역을 이길 수 없었고, 아래쪽에서는 드레퓨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 글리터는 가깝고 드레퓨스는 멀었다.
그것도 그것이지만, 중간에 낙오되어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면 더 문제였다.
샌드위치 신세가 되어 죽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언젠가 먹힐 샌드위치보다는 차라리,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박쥐가 나았다.
그래서 합동 훈련을 하자고 했을 때 많은 나라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이런 훈련을 통해 서로의 간극을 좁혀 가는 노력을 하고자 했다. ‘얼마나 밀도 높은 군사 훈련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제쳐 두고서라도 가이더 국경에 이미 수천 명이 모였다.
그리고 각국의 용병들이 대거 몰려들고 있어서 점점 늘어날 듯싶었다.
각국의 왕들은 전부터 글리터에서 보내온 공문을 살펴보았다.
병사와 기사를 원한다고 되어 있었다.
다만 왜 원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쓰여 있었지만, 그 규모에 대해서 딱히 가이드라인은 없었다.
즉 각국은 자율적인 판단하에 보낼 사람을 정해도 된다는 뜻이다.
당연히 몇몇 왕들은 딴생각을 했다.
보내지는 기사에 대해서 일종의 볼모로 생각해서 유망주를 파견하진 않았다.
트리엔 같은 경우는 오히려 미스틸 테인을 보내버렸다.
트리엔의 늙은 군주는 이번 글리터의 일에 적극적인 협력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양질의 병사들은 물론, 미스틸 테인까지 파견해 버렸다.
그리고 또 하나의 나라.
미얄로페에서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미얄로페의 왕으로 앉아 있는 자는 에릭센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뚱뚱하고 체구가 아주 작은 남자로, 왕위에 앉기 전 난쟁이라고 놀림 받았다.
그리고 그가 왕위에 앉고 나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요즘 북부가 다 그렇지만 그도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한 왕이었다.
꼭 반란군의 성격을 띤 반발집단이 아니더라도, 백성들이 선술집에 가서 공공연히 떠드는 이야기 중에는 ‘우리의 진정한 귀족과 왕은 이미 죽었다.’라는 말이 있었다.
심지어 에릭센조차도 그런 말에 동감하는 편이긴 했다.
정말 귀족다운 귀족들은 몬스터와 싸울 때 다 죽어 버렸다.
그래서 그와 같은 인물이 왕위에 앉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출신은 좀 비참했다.
공작가의 사생아로, 원래 공작가를 음지에서 밀어줄 상인으로 자라난 게 바로 그였다.
그런데 운명이 기묘하게 꼬이더니 결국 에릭센이 미얄로페의 왕좌에 덜컥 앉아버린 것이다.
에릭센은 혼자서 자주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나 같은 인간이 왕이 되다니 정말 말세로군.”
자학은 그의 취미였다.
그런데 지금은 자괴감보다는 국정에 머리를 굴려야 할 듯싶다.
미얄로페의 왕은 글리터에 얼마나 협조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지금 그가 하는 고민이 다른 나라의 왕들도 하는 고민일 것이다.
나라마다 이 훈련에 대해서 해석차도 있을 테고 온도 차도 있을 것이었다.
글리터와 얼마나 어디까지 깊게 연계해야 할까?
북부의 나라들은 상태가 다 좋지 않았다.
그들은 판돈을 걸 나라를 선택해야만 했다.
글리터는 그래도 신사적으로 굴었다.
글리터의 뒤에는 세계수라는 저력이 있었고 이미 연대하기로 계약을 한 마당이다.
하지만 그들은 몬스터다.
그리고 이유야 어찌 되었건 가이더를 침공했다.
정작 가이더는 그런 글리터에게 복수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에 비교해 드레퓨스는 인간들의 집단이었다.
그리고 강대국이다.
이미 중앙을 점령해버린 셈이고 어쩌면 앞으로 대륙 전체의 패자가 될지도 몰랐다.
다만 드레퓨스의 군주는 타국의 사신조차 마음에 안 들면 참수해 버리는 자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
게다가 호전적이었고 탐욕적이었다.
아마 드레퓨스와 맞닥뜨리는 날, 최소 드레퓨스는 글리터처럼 부드럽게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창과 칼을 들고 오는 놈들이 신사적으로 나오길 바라는 건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도박꾼이라면 누구에게 판돈을 걸어야 할까?
무려 국운이 달린 도박판이었다.
저마다 이마의 골이 깊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명예와 실리, 금전과 성향 등등이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에릭센은 나름대로 장고 끝에, 결국 글리터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로 마음먹었다.
몬스터에 대한 혐오고 뭐고 나라가 엮인 일이었다.
글리터는 달콤한 과실을 주고 있었다.
그 과실을 쳐내고 침략자인 드레퓨스와 손을 잡는다?
그거야 이쪽 생각일 뿐이고, 드레퓨스가 이쪽을 존중하기보다는 밀어 버린다면?
“그래 결정했다. 우리는 다 같은 북부인이다. 백성들에게 그렇게 알려라.”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나라도 있었고, 적대감을 숨기고 협조하는 나라도 있었다.
그리고 몇몇 나라는 결국 글리터에 크게 걸어 버렸다.
대표적인 나라들이 바로 가이더, 트리엔, 미얄로페였다.
그들은 아예 대놓고 글리터를 지지해 버렸다.
절대 쉽지 않은 선택이나.
글리터와의 밀착된 운명을 선택한 것이다.
참 공교로운 것은 가이더는 글리터에게 침략받고 수도를 뺏긴 오욕을 남긴 전적이 있었다.
미얄로페와 트리엔은 한때 세인의 일행이 세계수로 향하기 전, 온정을 원했으나 문전박대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이래서 세상은 가끔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