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 박치기 축제 (5)
“어라? 축제는 내일이 아니었나?”
이런 말을 한 소년은 대로에서 좀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글리터는 북의 허리띠 지역 중에서 가장 따뜻한 곳에 속하는 곳이었지만, 그에게는 아직 추운 듯 볼이 달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이따금 코를 훌쩍였다.
그도 그럴 것이 소년은 최근에 이곳으로 정착한 사람 중 하나였다.
시린 한쪽 손을 주머니에 넣었는데, 다른 쪽 손은… 아예 없었다.
그 공허한 왼쪽 팔의 소맷자락이 바람에 펄럭였다.
“디카, 얘야. 밤이 늦었어. 손님도 없을 텐데 들어가 보지그래.”
나무통에 물을 긷고 지나가던 아줌마가 디카라는 소년에게 말을 던졌다.
하지만 소년은 씩 웃어 보일 뿐 대답하지 않았다.
아줌마는 어린애가 고생한다고 혀를 차며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디카는 호객행위를 위해 자진해서 집 밖으로 나온 참이었다.
그래서 찬 바람을 쐬며 계속 어슬렁거렸다.
소년의 가족은 대륙 밑 부분에서 여기까지 올라왔다.
처음부터 북부로 향한다는 자각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냥 멀리에서 들려온 드레퓨스의 전쟁을 피한다는 것이,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래도 북부의 나라들이 장애인들을 위쪽으로 올려보낼 때 여기 낄 수 있었던 것은 아주 행운이었다.
평소 불편한 몸으로 북의 허리띠 지역을 종단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디카는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가 외팔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몬스터가 날뛰었던 세상이었다.
따지고 보면 몸이 불편하게 된 사람이 아주 많았다.
그러나 그런 명예로운 이유로 불구가 되는 이들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선천적으로 불편한 몸을 갖은 채 태어난 사람들도 있었고, 최악인 경우가 바로 디카의 가족 같은 경우였다.
죄를 지은 결과, 영주의 처벌로 인해 팔이 잘린 경우다.
어떤 벌을 줄 것이냐는 영주의 재량이었다.
영주는 디카의 가족들에게 낙인 같은 것을 찍는 대신 화끈한 방법을 선택했던 것이었다.
사람들이 안 보이자, 심심함에 돌기둥을 발끝으로 툭툭 차던 디카였다.
소년은 아직도 영주의 목소리가 귀에 선했다.
얼음장 같은 얼굴로 자신의 아버지에게 말하던 그 모습이 눈에 선했다.
‘친족 살해! 죄질이 아주 고약하다! 아들로서 아버지를 죽인 점!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네놈은 물론이고 가족 전체가 책임을 져라!’
그날 자신과 어머니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표정.
하얗게 질린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던 그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잊히기는커녕 밤중에 꿈속까지 따라오곤 했다.
어린 그로서는 마음에서 쉽게 내려놓기 힘든 기억이다.
추상같은 명령 때문에 아버지는 물론이고 어머니와 자신마저 팔이 잘렸다.
그래도 디카는 아버지를 원망해본 적이 없었다.
왜냐면 병상에 오래 누워있던 할아버지가 밤마다 아버지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애원하는 소리를 듣곤 했기 때문이었다.
죽여달라고.
제발 전신을 갉아 먹는 이 지옥 같은 고통에서 해방해 달라고 말이다.
디카의 어머니도 아버지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소년은 아버지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또한, 아버지를 사랑했다.
그래서 만약에 옆에서 지켜보았던 할아버지처럼….
훗날 아버지가 자신에게 그런 얼굴로 병상에 누워 호소한다면, 나머지 한쪽 팔을 희생해야 한다 쳐도 당연히 그럴 용의가 있었다.
디카는 아버지의 고통과 행동을 이해했다.
왜냐면 옆에서 모든 걸 지켜보았으니까. 그러나 인간은 결코 자살하거나 살인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고 믿는 영주였다.
그런 영주 입장에서는, 그 당시 디카의 아버지가 처한 상황을 자세하게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도 이젠 행복해. 다행이야.”
디카는 그렇게 말하며 밤하늘 아래에서 웃어 보였다.
가족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무너지던 가장은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대뜸 이렇게 말했다.
‘떠나야겠어.’
그건 야반도주를 뜻한다.
하지만 디카나 어머니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점점 망가지는 아버지인 동시에, 남편을 보느니 차라리 목숨을 걸고 떠나는 게 낫겠다 싶었던 것이다.
글리터에 오게 된 건 참 다행이다.
원래 사는 곳의 신부는, 디카네 가족의 죄를 사해주지 않았다.
친족을 살해한 죄인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글리터에 와서는 이곳의 신부로부터 가족들의 용서를 받을 수 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신부는 엄숙한 얼굴로 죄를 사하노라고 선언했다.
그 대가로 그는 돈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머물 곳을 가르쳐 주었다.
원래대로라면 디카의 가족은 지금처럼 식당을 할 수 없었다.
타인에게 음식을 팔려면 기본적으로 죄가 없어야만 했다.
범죄자가 음식에 독극물이라도 타면,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그러니 식당을 하려면 사전 검증을 받아야만 했다.
그런데도 디카의 가족은 이곳에서 식당을 열 수 있었다.
그것을 도와준 사람은 신부에게 사정을 들은 아스칼리온이라는 할아버지였다.
그는 이곳에서 꽤 영향력이 있는 인물 같았다.
난민들의 분쟁도 아스칼리온이 나선 덕분에 수월하게 해결되었다.
어느 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아스칼리온이 말했다.
‘내 주제에 감히 영주님의 뜻을 다 헤아리지는 못하지만, 당신들을 여기까지 허락한 것은 품에 끌어안겠다는 뜻이네. 설령 그중에 몸이 불편한 사람이 속해 있어도 상관없다는 뜻이야. 그 정도는 나도 파악할 수 있어.’
그런 파격적인 내용을 들은 난민들은 혼란스러웠지만, 아스칼리온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영주님은 당신들에게 낙인을 찍지 않았어. 그러니 그런 당신들끼리도 낙인을 찍지 말게. 행여나 낙인을 찍는다면, 그것을 영주님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내가 용서하지 않을 것이야.’
그때 아스칼리온의 눈에서는 불길이 이글거리는 것만 같았다.
그럴 때를 제외하면 아스칼리온이 겉으론 거칠게 보여도, 결국 꽤 자상하고 믿을만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아스칼리온을 떠올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앞에서 다가왔다.
땅을 보고 있던 소년이 고개를 번쩍 드니 어떤 남자가 보였다.
그 남자는 다짜고짜 두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얼어붙은 그의 귀를 양손으로 감싸주었다.
“….”
그런 남자의 뒤에서는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한가득 보였다.
“밤늦게 수고하는구나. 끼니를 해결할 곳으로 안내해줄 수 있을까?”
“예! 물론입니다 나리!”
디카는 세인의 손바닥 사이에서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그리고 상대가 기분 나빠 하지 않도록 손길을 빠져나왔다.
디카는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세인의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디카의 안내에 따라 움직였다.
세인과 함께 말이다.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눈짓을 보냈다.
‘뭐야? 세인님이 아는 아이인가?’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때 맥이 헛기침을 크게 하자, 새까만 후배나 마찬가지인 힐다 앞에서 추태 부리던 행크와 더이스가 고개를 바로 했다.
길잡이의 임무는 단지 식당을 안내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거기까지 가는 동안 상대가 지루하지 않도록 이야기도 풀어내야만 했다.
세인은 디카의 안내를 받으며 골목길을 걸어갔다.
그러면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디카의 동생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내 할아버지와 이름이 같구나.”
“그러세요? 대단한 우연이네요. 제 동생 이름과 같다고 알려주시면 그분도 좋아하실 거 같아요.”
“죽었어.”
“아… 네, 네!”
디카는 무표정한 얼굴로 중얼거린 세인을 보며 상대가 왠지 음침하다고 생각해 버렸다.
그러고 보니 이 남자와 남자의 일행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글리터에서 인간이니 아니니 하는 언쟁은 불필요했다.
여러 사람을 식당으로 데리고 간다는 것이 디카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그뿐이었다.
그런데 세인이 말을 덧붙였다.
“아주 오래전에 죽었지. 뭐, 죽은 거야.”
“아, 네. 그… 그렇군요.”
이걸 어떻게 잘 받아쳐야 할지, 디카는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뭐야. 이분은 좀 이상해.’
하지만 이상하다고 밥을 못 먹는 건 아니니까, 그거면 되었다.
이상해도 입만 달려있으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디카의 안내를 받아 찾아간 곳은 허름한 식당이었다.
그래도 좁지 않아서 뒤따라온 사람들이 다 들어갈 만한 공간은 되었다.
병사들이야 당연히 입구 밖에서 힐다와 함께 있겠다는 것을 세인이 말렸다.
그는 간단한 손짓으로 다 같이 들어와 먹자는 표시를 했다.
갑자기 손님들이 우르르 들어오자 당황한 것은 디카의 아버지와 어머니였다.
들어오기 전에 세인에게 배불리 먹을 만큼 많이 시키란 말을 들은 더이스였다.
그는 세인의 명령에 따라 앞으로 나서서 이것저것 주문했다.
“여기에서 제일 잘하는 게 뭐요?”
“예. 닭고기와 피타 빵입니다.”
“좋아. 그거랑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음식 다 주시오.”
“….”
뭔가 주문이 좀 이상했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주인은 주방으로 사라졌다.
아내 되는 사람은 밖으로 다시 나가려는 디카를 불러들였다.
이렇게 손님이 많이 왔으니 더 이상의 호객행위는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디카의 부모님은 처음에 당황하던 것과 달리 곧 익숙하게 음식을 준비했다.
디카는 열기를 보존하기 위해 문을 닫고 화롯불을 다시 지폈다.
그리고 물을 가져 왔는데, 테이블의 가장 안쪽. 벽을 등지고 앉은 세인이 물컵을 집어 들었다.
힐다가 먼저 불순물이 없나 확인해 보려고 했는데 한 박자 늦은 것이다.
세인이 물을 쭉 하고 들이키자, 다른 사람들도 물컵에 손을 가져갔다.
기사들이 먼저고 그다음은 병사들이었다.
병사들이 눈치를 보며 말을 아끼는 가운데 맥이 힐다에게 귓속말을 했다.
세인이 원해서 집 안으로 들어왔지만, 병사들이 같은 테이블을 쓴다면 죽을 맛일 것이었다.
귀족들과 한 테이블을 쓴다는 것 자체가, 귀족 당사자는 눈감아 준다 해도 병사들은 엄청난 부담이었다.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리가 만무하다.
그래서 세인의 눈치를 보던 힐다는 병사들에게 손짓하며 일어섰다.
그제야 사람들은 이제 살았다는 얼굴을 하며 슬금슬금 옆 테이블로 옮겼다.
사실 그것도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였다.
세인이야 식당의 매상 때문에 다 끌고 들어온 것이었으므로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팔짱을 끼고 벽에 걸린 그림을 감상했다.
더이스와 행크의 시선은 자연스레 세인을 따라가다가 입을 벌리게 되었다.
“설마 저거 바다인 건가요? 여기 주인장이 운치가 있군요.”
벽에 걸린 그림은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였다.
삽화에서 보던 형태에 색을 더 아름답게 입혔다.
“더이스. 입 좀 다물게, 좀.”
맥이 눈치를 주자 그제야 더이스가 합죽이가 되었다.
사실 맥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힐다가 아무리 막내라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지만, 세인이 물컵을 집어 들기 전에 미리 내용물을 맛보아야만 했다.
적어도 그의 기준에서는 그랬다.
게다가 세인이 그림을 보는데 수하된 자가, 주인이 감상하는 물건에 입을 연다는 건 큰 문제였다.
물론, 더이스는 분위기를 봐가며 입을 연 것이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맥은 이렇게 생각해 봤다.
‘나도 이곳의 평화로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만, 여기에서 너무 나태해지면 안 될 텐데.’
다른 사람들이 눈치를 보든 말든 세인은 바다 그림을 감상했다.
그리고 옅게 미소를 지었다.
곧이어 음식이 나오고 사람들은 조용히 빵과 수프를 먹기 시작했다.
물론 세인이 스푼을 든 후였다.
수프 안에는 채소와 고기가 들어 있었고, 고기는 약간 덜 익었다.
대신 채소가 아주 식감이 좋았는데, 입안에서 아삭이며 부서졌다.
곧이어 나온 닭고기는 아주 최고였다.
세인이 손짓하며 먹으라는 시늉을 하자 사람들은 걸신들린 듯이 고기를 해치웠다.
그리고 이어지는 물고기 찌개도 일품이었다.
미지근한 온천에 사는 송어를 통째로 넣은 찌개엔 감자와 다슬기도 들어있어 아주 풍성했다.
모두가 말을 잊고 식탐에 빠져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세인은 바다 그림에 시선을 던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식당에 들어오고 나서 한마디 말도 꺼내지 않은 상태다.
목소리를 듣고 상대가 자신을 알아볼까 싶어서였다.
포식이 끝나고 세인은 품에서 금화 한 닢을 꺼냈다.
그걸 본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져 있는데, 탁자에 금화를 소리 나게 놓고 일어선 세인이었다.
식당 밖으로 나오는데 더이스가 허둥지둥 쫓아왔다.
아까 맥에게 주의를 들은 더이스였지만, 금화는 정말 큰돈이었다.
“저쪽은 거스름돈이 없을 텐데요.”
“거스름돈은 받지 않아. 그리고 저건 식대가 아니고 그림을 본 값이야.”
식비는 따로 계산하라는 말에 더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무슨 바람이 불었나 싶었는데 인연이 있는 집임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금화를 내놓을 리가 만무하다.
병사들이 세인을 호위하러 나오자, 식당 안으로 들어가려는 더이스를 세인이 불러 세웠다.
그리고 주인에게 전해주라고 이런저런 말을 했다.
세인의 말을 모두 들은 더이스는 주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상대를 관찰하며 말을 걸었다.
“장사 잘 됩니까?”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그럭저럭 입에 풀칠은 하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더이스는 말을 편하게 하지 않았다.
자세한 관계는 모르지만, 세인이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간판이 있던데 당신 이름을 적은 겁니까?”
“예. 제 이름을 가게 이름으로 했습니다.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됩니까?”
공손하게 물어오는 외팔이 주인장 앞에서 더이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문제 될 건 없는데 그냥 도움이 될까 싶어서 이야기하는 거요. 여기는 까막눈이 많아요. 당신처럼 대륙의 아래쪽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이름을 쓸 수 있죠. 그리고 어느 정도 읽을 수는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글자가 적혀 있으면 일단 거부감부터 든단 말이지.”
“아….”
“그러니 차라리 간판을 뒤집어서, 거기에 음식 그림을 그리는 게 나을 거요. 그리고….”
“예. 말씀해 주십시오.”
더이스는 문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내부 열기를 유지하느라 평소 문을 닫고 있으면, 음식 냄새로 행인들을 유혹할 수 없잖아요. 화룡석 정도는 기본적으로 지원해주는 게 있으니까. 그걸 바닥에 깔든지 해요. 그리고 좀 떨어진 곳에, 음식점이 여기 있다고 작은 간판을 따로 세워도 불법은 아니오.”
“제가 이곳에 처음이라서 모르는 게 많았습니다. 다른 분들이 도와주신다고 도와주시는데 말입니다. 도움이 되는 의견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진짜 도움은 지금부터였다.
더이스는 식비 외에도 금화 한 닢을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상대가 놀라서 손을 거두자, 더이스는 상대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억지로 금화를 쥐여주었다.
“여기 음식은 맛이 좋더군요. 확실합니다. 앞으로 장사가 잘될 거요.”
“아니. 이건 받을 수 없습니다. 너무 액수가 엄청나요.”
“추운 날에 아이를 바깥으로 돌리지 마시오. 이 정도 맛이면 입소문으로도 충분해요. 당신들도 잘살아 보려고 여기에 왔겠지? 내가 모시는 주인이 그걸 알고, 바다 그림도 마음에 든다고 하셨소. 이건 감상 값이오.”
더이스는 원래 약자 앞에서 이러지 않는 인물이었는데 드물게 인상을 써보였다.
그냥 잔말 말고 받으라는 표시였다.
밖에 서 있는 세인을 오래 기다리게 할 수가 없었던 탓이다.
결국, 눈시울이 붉어진 남자는 떨리는 한 손으로 금화를 받아들었다.
동정은 나쁜 게 아니다.
동정은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이 곡해하지만 않으면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남자는 전에 그걸 깨달은 적이 있었다.
남자의 어깨를 두드려 준 더이스가 몸을 돌렸다.
그의 앞에는 디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 있었다.
그런 디카에게 눈 한쪽을 찡긋 해 보인 더이스가 디카의 머리를 어루만지고 지나갔다.
세인의 돈으로 생색을 낸 기분이었지만, 그건 나중에 이곳을 애용하는 것으로 갚을 생각이었다.
빈말이 아니라 여긴 정말 음식이 맛있었다.
더이스가 식당에서 나오자 세인은 그에게 눈길을 주었다.
일을 완수했다는 의미로 더이스가 고개를 숙여 보였다.
마주 고개를 끄덕인 세인은 맨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힐다가 다가와 그의 손에 장갑을 씌워 주었다.
손이 따듯해지는 것을 느끼며 세인은 발을 움직였다.
그런 그의 등 뒤로 가게의 간판이 살짝 보였다.
앞으론 글 대신 그림이 그려질 간판이었다.
맥그리거의 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