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왕 마검의 주인-143화 (143/307)

# 143

& 그는 왜 따라오는 것일까?

정말 예상치 못한 순간이었다.

지상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멕베드가 아무리 캐시오의 가려운 속을 긁어줬다 한들

이렇게 빨리 성을 떠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왜 이렇게 빨리 나오는 거냐고 멱살 잡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황당함은 둘째 치고 어둠 속의 더이스는 행크와 눈빛을 교환하려고 애를 썼다.

두런두런 이어지는 말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첫째로 대화를 나누는 어조는 침착했다.

그러니 이쪽을 눈치채지 못한 셈이다.

둘째로 대화 중간마다 ‘전하.’라는 단어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분명 캐시오가 일행 속에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오히려 이건 기회잖아. 그렇다면 가까워졌을 때 습격해야 해!’

이대로 지나가 버린 다음 뒤를 잡으려고 하면, 걸어가는 와중에 들킬 확률이 높았다.

최고의 기회는 지금이다.

더이스와 행크, 둘은 동시에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호치의 도움 따위는 기대도 하지 않는 두 기사였다.

그들은 발소리를 파악하고, 적이 몇 명인가 계산하며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하지만 벽 뒤는 너무 어두웠다.

하긴 그래서 들키지 않은 것이지만, 겹치지 않는 공격 방향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사이 캐시오와 그의 부하들이 앞을 스쳐 지나갔다.

‘지금!’

‘지금이야!’

절호의 기회 속에서 둘은 일단 뛰쳐나갔다.

격렬한 움직임과 함께 흔들리는 시야 앞으로 호위대의 등이 확대됐다.

‘뒤에 무장한 세 명.’

‘앞에 비무장 두 명.’

둘은 동시에 그렇게 생각했다.

앞장선 둘 중 하나는 캐시오일 것이다.

뒤는 호위하는 친위대일 것이었다.

여기까지 동행할 정도면 실력도 실력이지만, 충성심도 대단할 것이 분명했다.

커다란 몸집의 사내들은 쇠줄로 짠 옷을 입고 있었다.

뒷목까지 올라오는 옷이었다.

게다가 투구를 쓰고 망토까지 두른 마당이다.

검을 빼든 행크와 더이스는 빈 공간을 나와서야 눈빛을 교환했다.

덕분에 몇 초의 시간이 허무하게 흘러갔다.

그래도 서로 부딪히지 않고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뉘어 달려갈 수 있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뒤의 남자들이 고개를 돌릴 때쯤, 행크와 더이스는 상대의 옆구리를 노렸다.

최정예라고 말할 수 있는 친위대가 뒤를 돌며 습격자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행크와 더이스도 다시 태어나면서 강한 육체를 가지게 되었고, 그동안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기사들이었다.

두 명이 잠깐 얽혔다가 떨어졌을 때 피를 흘리며 쓰러진 쪽은 바로 친위대였다.

캐시오로 보인 비싼 옷의 남자는 상황을 파악하고 도망치려 했다.

부하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친위대 한 명이 쌍검을 뽑아 들었는데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그때 더이스는 칼에 찔렸으면서도 악착같이 늘어지는 한 명 때문에 골탕을 먹고 있었다.

하는 수없이 행크가 쌍검의 남자와 정면으로 붙었다.

서로의 무기가 상대를 잡아먹을 기세로 부딪히고, 거친 소리가 통로 안을 가득 메웠다.

쌍검 중 하나에 팔을 베인 행크가 뒤로 물러났을 때 더이스가 뒤늦게 끼어들었다.

둘은 모르지만, 쌍검을 든 남자는 친위대의 수장이었다.

굉장한 실력자라는 이야기다.

그사이 캐시오로 보인 남자와 부하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벽 쪽에서 호치가 뛰쳐나왔다.

급한 마음에 어떻게든 해보려고 한 것이다.

달그락 소리를 내며 램프가 땅 위에서 굴렀다.

하지만 상대는 무려 두 명이었다.

그리고 호치는 힘만 쓸 줄 알지 단련된 전사는 아니다.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하는 그와 캐시오가 맞붙었다.

캐시오는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호치는 분발했다.

젖먹던 힘까지 짜내 덤벼든 것이다.

캐시오 옆의 왜소한 체격을 가진 남자는 거리를 벌리며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호치에게는 다행이었다.

적어도 캐시오에게 한방은 먹여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으악!”

“으윽!”

엎치락뒤치락하던 캐시오와 호치는 동시에 몸이 경직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한편 쌍검의 사내가 필사적으로 덤벼들었지만, 더이스와 행크가 동시에 덤벼들자 고전을 면치 못했다.

더이스와 행크는, 둘 다 강해진 육체에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아수라장을 헤쳐 나온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일대일이라면 모를까, 합이 맞는 두 명이 동시에 덤벼드니 결국 쌍검의 남자는 목줄기에 칼을 허용하고 말았다.

더이스가 남자에게 마무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고개를 돌린 행크가 침음성을 터트렸다.

뒤늦게 피에 젖어 누워 있는 캐시오와 호치를 발견한 것이다.

둘은 서로 끌어안은 채 옆으로 뒹굴었던 듯했다.

캐시오의 몸집이 만만치 않은데 호치가 한 방 먹인 걸 보면 의지의 승리였다.

하지만 그 대가로 그의 목숨은 경각에 달했다.

더이스와 행크가 혀를 차며 달려갔을 때, 캐시오는 이미 눈을 부릅뜬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호치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경련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목숨이 경각에 달한 모습이었다.

“호치! 이봐 정신 차려! 제기랄! 호치!”

더이스가 그를 끌어안고 뺨을 툭툭 때렸다.

그러자 호치가 입안에 피를 머금은 채 더이스의 품 안에서 그의 손을 잡았다.

호치의 부들거리는 손을 느끼며 더이스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건 행크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호치가 더이스의 손을 잡은 상태로 뭐라고 속삭였다.

눈물이 가득한 눈을 모아 가늘게 뜨며, 사력을 다해서 말이다.

더이스는 그 필사적인 시도에 자신도 모르게 귀를 가져다 대었다.

“헉, 헉! 캐….”

“호치? 뭐라고?”

“캐… 시… 오.”

그러자 호치의 입에서 기울였던 귀를 뗀 더이스는 그를 안쓰럽다는 듯이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위로하듯 중얼거렸다.

“그래. 호치. 넌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잘했어. 캐시오는 네 손으로 해치운 거야. 이제 네 동료는 하늘에서 편히 쉴 수 있게 되었구나. 네 손으로 원수를 갚았잖아.”

그러자 호치가 다시 말했다.

모기가 우는 듯한 목소리로 말이다.

“캐, 시…오.”

캐시오가 수많은 동료를 죽인 것에, 직접 복수한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호치와 더이스는 마지막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호치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걸 바라보던 행크는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물론 그도 호치의 죽음이 안타까웠다.

호치가 동료들의 복수를 하고 싶은 심정도 이해했고 그는 결과적으로 잘 싸워 주었다.

그건 대단한 일이지만 캐시오는 이렇게 가서는 안 되었다.

여기서 죽기엔 그가 지상에서 저지른 죄가 컸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렇게 만나 쉽게 죽일 수 있었던 것을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 것인지도.’

내심 그렇게 생각하며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남자에게 행크는 질문을 던졌다.

“이봐.”

“예?”

왜소한 체구의 남자는 기가 질린 듯 저자세로 나왔다.

그로서는 도망가고 싶어도 무리였다.

앞의 둘은 이름난 검사를 해치워버린 인물들이었다.

싸우자니 승산이 없었고 도망쳐도 곧 잡힐 것이다.

“이름이 뭐야?”

“사, 살려주십시오! 저는 캐시오와 안면만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제발!”

퍽이나 그렇겠다.

이놈은 캐시오의 심복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성에 부하들을 남겨놓고 내빼는 치욕적인 모습을 함께할 리가 만무했다.

“아 그러니까 이름이 뭐냐고!”

행크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상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마지못해 대답했다.

“멕베드 입니다.”

“그래 멕베드. 이렇게 된 거 우리랑 동행해야겠어. 허튼짓하면 각오해!”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제발!!”

“진정해. 이 못난 위인아.”

캐시오 곁에서 한자리 해 먹는 인물일 텐데 저렇게 비굴하게 나오니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행크는 상대를 살려준다는 보장은 하지 않았다.

여기는 지하 통로의 중간쯤 되는 곳이었다.

캐시오가 죽어 버렸으니 더 이상 전진한다는 것은 무의미했다.

이제 남은 것은 되돌아가는 길뿐이었다.

안타깝게도 호치의 시체를 둘러업고 간다는 것은 그들로서도 부담이 되었다.

일단 한 사람을 감시해야 했고, 앞으로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몰랐다.

그래서 체력을 낭비할 수 없는 것이다.

“미안하다. 호치….”

행크는 안쓰러운 듯 싸늘한 주검이 된 호치를 내려다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런 행크 옆에서 더이스가 말했다.

“캐시오의 시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상까지 들고 갈 수 있다면 내성 귀족들의 사기를 꺾을 수 있을 텐데….”

행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전하게 빠져나가는 것만 생각하자. 어차피 캐시오가 없어진 걸 내성 쪽 귀족들이 눈치채면 결과는 같아. 되돌아가는 데 한참 걸린다고. 그럴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고 생각하지만, 친위대가 뒤따라 올지도 몰라.”

멕베드는 내키지 않는 심정을 표현하듯 발을 질질 끌었다.

그런 멕베드를 앞에 세운 행크와 더이스는, 왔던 길을 거꾸로 돌아가며 무거운 침묵을 유지할 뿐이었다.

캐시오의 죽음은 아쉬웠지만, 예상치 못한 쾌거가 분명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적의 우두머리를 말도 안 되는 행운으로 처리한 것이다.

“이봐. 어째서 이렇게 빨리 나오게 된 거지? 우린 캐시오가 그래도 훨씬 오래 버틸 줄 알았는데. 어떻게 이리 쉽게 성을 포기할 수 있냔 말이야.”

“그건 제가 설득해서이기도 하지만 기사들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가슴이 답답한 행크는 멕베드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그러면 멕베드는 마지못해 대답해 주었다.

하긴 저이도 지상에 가면 좋은 꼴은 못 볼 테니 두려울 테지.

캐시오와 함께 탈출하며 살아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되니 뒤통수 맞은 기분일 것이다.

“그런데 이 통로는 대체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걸 내가 말해줄 의무는 없잖아. 그리고 멕베드라고 했나? 질문은 나만 하는 거야. 뭔가 착각하는 거 같은데 그러지 말라고. 사람이 참 경우가 없군그래.”

행크가 멕베드에게 면박을 주는 걸 들으며 걷던 더이스는 왠지 석연치 않은 점을 느꼈다.

그리고 그걸 부채질한 건 뒤통수를 당기는 느낌이었다.

그는 이상한 느낌에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전율했다.

뒤에 누군가가 있었다.

‘친위대?’

아니었다.

산 사람이라면 다가올 때 눈치를 챘을 것이다.

소리도 기척도 없이, 등 뒤에 바싹 달라붙듯 걷는 사람.

마치 처음부터 일행이었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따라오고 있는 사람.

틀린 말은 아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일행이 분명했으니까.

더이스는 뒤따라오는 존재를 확인하고 등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그는 호치였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호치는 하얀 얼굴, 하얀 알몸인 상태로 일행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다행이었다.

호치가 고개를 들면 금방 눈이 마주칠 것 같았다.

더이스는 간신히 고개를 원위치시키며 생각했다.

앞에 걷고 있는 행크와 멕베드의 등을 보면서 말이다.

‘왜 따라오는 거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이 어두운 통로에 혼자 남겨지지 않고 싶어서?

아니면 시체를 버리고 온 일행이 원망스러워서?

더이스는 전투를 겁내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귀신이라면 딱 질색이었다.

그것도 이렇게 음침한 지하 통로에서 마주치는 유령이라면 아주 죽을 맛이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뜬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보았다.

여전히 호치가 보였다.

둔한 행크는 멕베드에게 질문을 퍼붓느라 뒤의 이 상황을 모르는 것 같았다.

멕베드도 그의 질문에 시달리느라 같은 꼴이었고 말이다.

더이스는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해 보려 애를 썼다.

‘대체 왜 따라오는 거야?’

마지막에 눈이 마주쳤기 때문에?

그러고 보니 ‘망자가 죽기 직전에 눈이 마주친 사람을 따라온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것도 같았다.

더이스는 당연히 혼자서는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없으니, 행크를 부르려고 했다.

그리고 그게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그런데 문득 호치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어두웠다.

통로는 너무 길었고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여기에 남겨진 호치….

그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이번에는 호치가 보이지 않았다.

환상을 본 걸까?

눈을 비빈 더이스는 목이 마른 것을 느끼며, 허리춤에서 수통을 꺼내 물을 마셨다.

그러자 목울대 움직이는 소리가 앞의 둘을 자극한 것 같다.

행크도 수통을 꺼내 목을 축이자 멕베드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저도 목 좀 축여도 될까요?”

“그거야 당신 자유지.”

고개를 끄덕인 멕베드는 자신의 허리 쪽에서 수통을 빼내 마개를 열었다.

그때 뭔가가 섬광처럼 더이스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왜 호치는 따라오는 것일까?

그는 복수를 했다.

그런 마당에 따라올 정도로 이승에 미련이 남은 걸까?

대체 왜?

그리고 불현듯 마지막에 호치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건 사력을 다해 더이스에게 전해주려던 말이었다.

그는 그걸 두 번이나 되풀이했다.

죽음 직전에서 무려 두 번이나.

그건 호치에게 있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그만큼이나 필사적으로 이야기해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더이스는 마지막에 호치의 눈빛을 기억해 냈다.

그건 만족한 눈빛이 아니었다.

왜 그랬을까?

물론 죽음은 너무 괴롭지만, 직전에 동료들의 복수를 했으니 어느 정도 만족을 해야 하잖아?

더이스는 논리의 귀결보다는 본능이 시키는 대로 크게 말했다.

“캐시오?”

그건 아까 호치가 했던 말과 같은 단어였다.

하지만 그는 이제야 그 단어의 뜻을 깨달은 것이다.

호치가 단어를 말했을 때 몰랐던 의미를, 그가 말한 어조로 되풀이하니 더이스는 이제야 머리로 깨달아 버렸다.

“캐시오!”

더이스가 그렇게 소리를 치자 행크는 놀라 더이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더이스의 부릅뜬 눈을 발견했다.

그는 그 찰나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더이스도 방금 간신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단지 더이스의 시선은, 옆에서 물을 마시려고 하는 멕베드에게 꽂혀 있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오랜 시간 더이스와 함께 해온 행크는 반사적으로 멕베드에게 달려들었다.

행크가 무섭게 들이닥칠 때, 멕베드는 오히려 침착한 모습으로 물만 마시려고 들었다.

그러나 그건 절대 안 될 말이다.

행크가 멕베드를 잡고 뒹굴었을 때, 달려온 더이스가 손을 뻗어 멕베드의 수통을 확인했다.

“물이 아니군. 안에 든 것은 물이 아니야.”

중얼거리는 더이스 옆에서 행크가 몸으로 멕베드를 찍어 누르며 물었다.

“뭐야?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이놈은 멕베드가 아니에요.”

“뭐?”

“캐시오.”

행크는 밑에 깔린 멕베드의 얼굴과 확신에 찬 더이스를 번갈아 보았다.

멕베드, 아니 캐시오는 저항을 포기하며 신음을 흘렸다.

한눈에 봐도 몹시 좌절한 얼굴이다.

캐시오는 자기 목숨에 대한 집착이 작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지자 빨리 도주를 선택했다.

그 외에도 도중에 일이 틀어질까 두려워, 건장한 멕베드에게 호화로운 옷을 입히게 했다.

대신 표적이 되길 원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이 캐시오라고 광고할 이유가 없었다.

도피하는 자가 눈에 띄는 화려한 옷을 입고 도망친다는 건 웃기는 일이다.

그는 친위대와 멕베드를 믿었지만, 결국 모든 게 틀어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무엇인가?

그는 너무나 살고 싶었지만 이미 틀린 마당이었다.

건장한 기사 둘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고, 이대로 끌려가면 정체가 발각되는 건 시간문제다.

남은 것은 고통 없이 갈 것인가, 아니면 엄청난 조롱과 수치를 당하며 긴 고통 속에서 목숨을 빼앗기느냐의 선택뿐이었다.

같은 결과라도 과정이 다르다.

차라리 여기에서 자결하는 게, 마지막으로 놈들에게 비웃음을 날릴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캐시오의 시도는 보기 좋게 무산되고 말았다.

“잡았다, 캐시오. 너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 기대하라고.”

더이스는 행크 밑에 깔린 캐시오를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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