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왕 마검의 주인-136화 (136/307)

# 136

& 진격과 전투 (4)

어둠이 걷히고 새벽이 열리자 한 무리의 기마가 출발했다.

갑주를 걸치지 않은 건장한 말들은 머리를 앞뒤로 움직이며 땅을 박찼다.

그 위에는 무장한 남자들이 타고 있었다.

말의 숫자는 꽤 많았는데, 방벽에 있는 모든 말을 끌어모은 것만 같았다.

말 위에 꼭 사람이 탄 것도 아니었다. 등이 비어있는 말도 보였다.

말이 쉽게 지치지 않기 위해 주기적으로 갈아타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우르르 달리며 뒤로 먼지를 피워 올린 말들은 우거진 나무 사이를 힘차게 달렸다.

어둠이 점점 땅속으로 물러나자, 새벽 추위에서 깨어난 나무들은 본연의 초록색을 되찾고 있었다.

양옆에서 흘러나온 숲 내음은 바람과 함께 기수들의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숲을 지나가면 탁 트인 개활지였다.

시냇물이 흐르고 있는 지역을 지나 계속 가다 보면 언제나 그리웠던 땅, 아레이즈가 나온다.

세인은 가슴이 먹먹해지기 싫어 일부러 아레이즈를 빠르게 지나쳤다.

그 바람에 말들이 혹사당한 느낌도 있었다.

아레이즈가 멀어져 뒤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

그들은 말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게 했다.

후들거리는 발로 땅을 딛고 쉬는 사람들 사이에서 세인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옆에 서 있는 맥에게 말했다.

“맞출 수 있을까?”

맥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거울처럼 맑았다.

그 거울 속에 있는 것은 까만 점으로 화한 한 마리 새였다.

병사에게서 장궁을 받아든 맥은 잠시 위로 올렸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활을 다시 병사에게 건네며 세인에게 말했다.

“무립니다. 너무 멀어요. 구름도 없어서 원근감조차 느껴지지 않고…. 화살 낭비입니다.”

세인은 자신의 말 쪽으로 걸어가 안장에 채워둔 검집에서 마검을 꺼내 들었다.

마검 오버 더 데스가 칠흑의 검날을 드러내자, 주변의 온도가 약간 낮아지는 느낌마저 든다.

그것을 바람 소리 나게 몇 번 휘둘러본 그는 검 끝을 하늘로 겨눴다.

그리고 신중하게 새를 재확인한다.

하지만 너무 멀었다.

그렇게 검은 점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이상한 상상도 들었다.

죽으라는 단어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져 엉뚱한 상대가 맞는 상상 말이다.

“정말 너무 멀군. 어차피 한 마리만 풀린 것도 아니겠지.”

검을 내리는 세인을 보며 행크가 질문했다.

“그 능력이 정확히 어디까지 통하는지 실험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아니.”

“개미 같은 것들로 거리를 실험해 봐도 좋지 않을까요? 일렬로 잡아놓고 어디까지 통하는 지를요.”

“꼭 개미는 생명체가 아니라는 말로 들리는데.”

애꿎은 개미가 뭔 죄냐는 요지의 말에, 둘의 대화를 근처에서 듣고 있던 더이스가 수통 마개를 따며 묘한 표정을 짓는다.

생명 운운하기에는 어제 사람들을 산채로 태워 죽인 마당이다.

그런데 수통에 입을 가져다 대는 더이스를 보며 행크가 깜짝 놀란 표정을 했다.

“이봐 더이스! 설마 벌써 물을 마시려고?”

“목이 말라서요.”

“물론 목이 마르니까 물을 마시겠지.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물을 벌써 마시면 되나? 가지고 온 물 자루가 몇 개 되지 않아. 좀 아껴서 마셔봐. 여길 벗어나면 시냇물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그의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아 입술만 축이는 더이스였다.

그러고 보니 앞으로 시냇물이나 강을 만난다는 보장도 없는데 벌컥벌컥 마셔버리면 답이 없었다.

약간의 휴식 시간을 가진 후, 천을 목과 입에 두른 남자들은 다시 말 위에 올라타 출발했다.

말을 탄다는 건 그 자체로 상당한 중노동이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말의 동체 위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고, 전방을 주시하며 방향을 정해줘야만 했다.

말을 오래 타면 어깨와 허리는 물론이고 허벅지 안쪽이 아파왔다.

게다가 그들은 홀가분한 복장도 아니었다.

무장 상태니까 본인들도 힘들고 하중을 받는 말도 힘들었다.

주위를 살펴야 하니 긴장감도 풀어놓을 수 없었다.

어디선가 화살이라도 날아오면 그 긴장감이 목숨을 살리는 데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땀이야 당연히 흘러내렸고 먼지는 코와 입속으로 끊임없이 밀고 들어왔다.

당연히 더이스도 종일 말 위에 있으려니 죽을 맛이었다.

가끔 쉬어가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관자놀이가 격하게 뛰었다.

도중에 참지 못해 수통을 열고 물을 마시려고 했는데, 행크가 그런 그를 말렸다.

“더이스. 더이스! 좀 참으라고. 지금 주위를 봐봐. 언제 끝날지 모르는 황야잖아. 아니 자네는 인중이 그렇게 길어서 그것도 못 참나?”

울컥한 더이스는 행크에게 따져 물었다.

“아니 제 인중이 긴 거랑 참을성이란 무슨 상관인데요!?”

“아니 나는 그저 얼굴 긴 사람과 인내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적절한 충고를 하고 싶었을 뿐이야.”

행크는 형이하학적인 말을 하며 무안한 듯 그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남겨진 더이스는 새겨들을 건 새겨들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맛있는 걸 아껴 먹는다는 심정으로 참아보면 못할 것도 없잖아.”

행크에게 바보가 옮았는지 이상한 소리를 지껄인 더이스는, 행크에게 다가가 그래도 선배인데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행크는 언제나 그렇듯이 사과를 받아들였고 말이다.

여기까지만 했으면 참 훈훈한 결말인데, 여기다 하나를 더 추가한 게 문제다.

맥은 물마시고 싶은 욕망을 참는 둘을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끼는 건 좋지만 또 저렇게까지 할 건 아닌데.’

그리고 내기 거리로 불침번 시간을 거는 것을 보며 진저리를 쳤다.

“그래. 뭐 저런 짓거리라도 해야 피비린내 나는 생활에 활력소라도 되는 거겠지.”

애써 합리화한 맥은 그 내기에 끼어들지 않았다.

전체적인 상황은 의외로 순탄하게 흘러갔다.

도중에 다른 사람이나 몬스터의 습격 같은 우발 상황은 없었다.

다만 근처에서 물을 찾아볼 수 없었는데 그건 이미 각오한 바였다.

가끔 목을 축이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더이스와 행크는 서로의 눈치를 보며 갈증을 참았다.

수통에 잔뜩 모아놓은 물이 찰랑거리면 둘은 그 소리를 들으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주 늦은 나이에 저축의 기쁨을 알아가는 둘이다.

“길이 험합니다. 자갈들도 많고요. 말들의 편자가 걱정되니 내려서 걷는 게 좋겠습니다.”

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세인은 위에서 내려와 말의 고삐를 잡았다.

그들 앞에 펼쳐진 길은 산자락을 타고 올라가서 구불구불한 산등성이까지 쭉 이어져 있었다. 산의 정상은 매우 비좁았는데 길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뉜 환경이 극과 극이었다.

왼쪽은 초록색의 대향연이었다.

한계 없이 우거진 초목 밑으로 멀리, 거대한 호수가 보였다.

네 개의 크고 작은 원이 서로 붙어 있는 아름다운 호수였다.

이렇게 위쪽에서 보면 호수가 마치 한 마리 작은 나비처럼 보였다.

더이스는 그 호수를 바라보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경탄하기보단 호수 자체가 커다란 물통으로 보였다.

‘저기에 빠져 죽는다면 정말 행복하겠군.’

그러나 호수까진 엄청나게 멀었다.

하루 이틀 정도로 도달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좁은 길의 오른쪽은 하얀 암석지대였다.

약간 분홍빛을 띠는 암석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렇게 돌의 바다처럼 이어져 끝에 가서는 골짜기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 골짜기는 좁고 깊었으므로, 이렇게 위에서 내려다보면 구불구불한 긴 뱀이 일행들을 따라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왼쪽에는 나비.

그리고 오른쪽에는 뱀이 있는 형국이다.

그 사이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굴러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말을 몰았다.

거센 바람이 불면 말의 목을 끌어안고 안심시켜 주는 사람도 있었다.

“여기가 바로 변덕쟁이 산이로군요.”

맥의 말에 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시인이 이곳은 여자의 내면을 닮았다고도 썼지.”

뒤따라 오던 더이스는 턱을 매만지며 알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자신과 함께 사는 여자가 그렇게나 복잡한 존재였던가?’를 생각하는 얼굴이다.

“알 수 없는 게 여자 마음이군요.”

“갑자기 이런 이야기는 이상하지만, 저는 그 여자가 부자였으면 좋겠습니다.”

“이봐 더이스. 너무 뜬금없어. 무엇보다 자네의 사리사욕이 반영되어 있잖아. 왜 여자의 변덕에서 여자의 부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거지?”

“그럼 함께 사는 여자가 돈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행크는 잠시 진지하게 고민했다.

굳이 이렇게 진지할 것까진 없었지만 그로서는 쉽지 않은 고민이었다.

“돈도 많고 변덕도 덜 부리면 가장 좋지. 내게 친절하게 굴어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이는 꼭 닦아야 해. 청결은 공동체 모두를 위한 거잖아? 애들에게 자상하게도 굴어야 한다고. 가정적인 여자가 좋으니까. 요리도 잘하고 무엇보다 술 좀 끊었으면 좋겠다.”

“샤워는요?”

“더이스 넌 뭘 모르는구나. 샤워는 매일 땀 흘리는 나도 힘들어. 그냥 자기 전에 발이나 닦았으면 좋겠다. 침대를 더러운 발로 오르는 건 죄악이야.”

그러자 더이스가 행크를 따라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요.”

그리고 거기에 작은 소망을 덧붙였다.

“이도 좀 안 갈았으면 좋겠어요.”

“이도 안 갈고 코도 안 골아야지. 난 가끔 미칠 것 같아. 각방을 쓰지 않는 것은 참 힘든 일이야. 가정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위해 희생해야 할 앞날이 곧 우리의 삶이다. 거기에 변덕까지 있으면 폭풍이 몰아치는 것 같지. 애들은 그 혼란 속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 닻이야. 나를 잡아준다고. 그나마 애들이 있어서 살아가는 거지.”

그렇게 더이스와 행크가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말을 나누고 있을 때, 맥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 시인에게 지금 자네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군.”

그리고 세인에게 얼굴을 돌렸다.

“여자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세인님도 어서 결혼해서 후계자를 만드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자?’ 세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칼날 위에서 사는 사나이들은 이런 맛이 있었다.

아무리 심각한 상황 속에 놓여있더라도 농담을 할 줄 아는 맛 말이다.

어쩌면 그게 전사로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자세일지도 모른다.

세인 역시 가벼운 농담으로 맥의 말을 받아쳤다.

“여기 마플의 첩자가 있군.”

그때 선두 쪽에서 누군가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갈림길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두 갈래의 갈림길이다.

“어느 쪽이지?”

두 길 모두 급경사를 이루며 아래쪽으로 사라졌기에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순수하게 왼쪽 방향의 길은 왼쪽, 오른쪽 방향의 길은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요?”

“여기 괴팍한 지형을 봐봐. 순수란 말이 나와?”

행크가 투덜거리며 답답한 마음에 큰 돌 하나를 발로 밀어 보였다.

그러다가 경악성을 발한다.

“여기 뭔가 쓰여 있는데요?”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아닌 게 아니라 아주 오래전에 누군가가 뾰족한 것으로 파놓은 자국이 보였다.

긴 선들이 위아래로 나뉘다가 마주치는 듯 엉켜 있었는데, 그건 두 갈래의 길을 표시한 것이었다.

그걸 본 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쪽으로 가지.”

돌에 적힌 대로 수도를 향해 제대로 가는 길은 오른쪽이었다.

비탈진 산길을 조심스레 내려온 사람들은 다시 말을 탔다.

그리고 질풍처럼 달렸다.

그렇게 달릴 때 ‘바람과 함께 달린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쉴 새 없이 바람을 맞으며 달리기 때문에, 바람과 싸우는 느낌이 강하다.

세인 일행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수도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멀리에서 성곽이 보이면 돌아갔다.

다행히 성에서 나온 정찰대와 마주치지도 않는 걸 보면, 대부분 성이 제대로 된 정찰대를 운영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저항이 없어 순조로운 날들이었고, 그 순조로움에는 운도 많이 따라주었다.

더이스와 행크의 내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적당히 하다가 말겠거니 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둘의 근성은 꽤 오래갔다.

그리고 그 마음가짐은 어느새 주위 사람들마저 전염시켰다.

계속 물이 있는 곳이 나오지 않았기에 위기의식이 작용한 탓도 있다.

행크와 더이스는 뒤늦게 물을 아끼는 사람들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중간중간 물을 자주 마셨던 터라 둘보다는 덜 고통스러웠지만, 이제 상황은 역전된 것이다.

“이제 한계로군. 그래도 보람이 있었어. 내기 따윈 그만하고 물을 마시지.”

“동감입니다. 목말라 죽겠어요. 그래도 이렇게나 많이 물이 남았으니 뿌듯하군요.”

둘이 그렇게 말하고 있을 때 갑자기 서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늘이 진 것이었다.

둘은 행동을 멈추고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통의 마개를 열고 있던 그들의 머리 위로 짙게 드리워진 먹구름이 보였고.

곧이어 엄청난 비가 왔다.

“….”

고개를 든 채, 그대로 물줄기를 맞고 있는 둘은 잠시간 말이 없었다.

뿌옇게 수증기가 일어나는 가운데 사방이 물 천지다.

갑작스러운 소나기 속에서 굳어 있는 둘의 뒤로, 세인이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는군.”

인간은 끊임없이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  *  *

다른 나라에 반란군이 있는 것처럼, 가이더에는 왕실이 적으로 규정한 불온 세력이 있었다.

그곳의 두목이 머리에 노란 두건을 쓰고 있어서 옐로우 헤드라고 불렀다.

그들은 부패한 가이더에 반감을 품었다.

하지만 가이더에 무조건 맞서 싸운다기보다는, 저쪽에서 먼저 건들면 응수한다는 취지였다.

수탈당하지 않으며 자기들끼리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옐로우 헤드가 뭉치는 밑바탕이 되었다.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 사는 그들을 산적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확실한 것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력은 점점 불어나서 영지 한두 개 정도는 금방 삼킬 수 있게 성장했지만 좀처럼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토벌대가 올 때마다 압도적인 힘으로 궤멸시킬 뿐이다.

지금 그곳의 두목은 한 장의 그림을 받아보고 있다.

건장한 체격에 노란 두건을 쓰고 있는 그가 부하에게 물었다.

“이런 자들이 주변을 지나가고 있다고? 잔뜩 몰려서 말이야?”

“예. 무장 상태를 보나, 분위기를 보나 보통이 아닌 놈들로 보입니다.”

꼼꼼하게 스케치 된 그림을 보던 두목은 눈가를 떨었다.

“이자가 우두머리인가?”

“살펴본 바로는 틀림없습니다. 모두가 고개를 조아리니까요.”

“으음….”

의미심장한 표정을 하는 두목에게 다른 부하가 말했다.

“말에서 내려 걷고 있을 때가 기회입니다. 덮칠까요? 말들만 되팔아도 막대한 수입이 생겨날 겁니다. 사람들이 아니라 언데드이니 죽인다고 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도 없고요.”

상대의 숫자가 부담스러웠지만, 너무나도 먹음직스러운 먹이였다.

해치워도 뒤탈이 없다는 게 매력적이니까.

부하의 말을 들은 두목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세인 일행은 슬슬 길이 순탄해지자 말에 올라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앞에 갑자기 남자들이 나타났다.

길을 막으며 모습을 드러낸 남자들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 적지 않은 수효에 일행이 긴장할 때 측면에서도 무장한 남자들이 나타났다.

‘포위당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였다.

전면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그는 머리에 노란 두건을 쓴 남자로, 길을 막은 무리의 두목이다.

“행색을 보니 먼 길을 가는 여행 중이신 것 같습니다.”

바로 이게 그 남자가 세인 일행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꺼낸 말이다.

몬스터로 보일 것이 분명한 글리터의 사람들에게 말이다.

무슨 수작일까?

맥과 행크는 서로 눈짓을 하며 앞으로 나서려 했다.

일단 날뛰면서 이목을 끌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포위망을 뚫을 수 있겠지.

“잠깐.”

그들의 행동을 세인이 제지하고 나섰다.

게다가 노란 두건을 쓴 두목에게 말을 걸기까지 했다.

“보시다시피. 그런데 무슨 용건이지?”

그러자 맥이 다가와 세인에게 귓속말했다.

“아시는 분입니까?”

세인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

노란 두건의 사내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상인들입니다.”

“퍽이나.”

더이스가 작게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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