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왕 마검의 주인-134화 (134/307)

# 134

& 진격과 전투 (2)

경사를 타고 내려온 말들은 빠른 속도로 목책을 스쳐 지나갔다.

그제야 졸던 보초들이 깨어나 창을 고쳐 잡았지만, 이미 세인은 멀어진 후였다.

그들은 세인 쪽을 바라보다 다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뒤따라온 기수들의 창대에 맞아 그들은 땅바닥을 구르는 시체가 되어야 했다.

고삐를 움직여 말이 달리는 속도를 줄인 세인은 그 자리에서 말과 함께 몇 바퀴 돌면서 높은 곳을 찾았다.

정확히는 높고 크게 지어진 건물을 눈으로 찾았다.

그런 그에게 작은 동산 위에 지어진 석조 건물이 보였다.

란슬롯은 기사답지 않은 짓을 하다가 수배 명단에 올랐던 자였다.

더벅머리에 근육질인 그는 깊은 산속으로 도피해 있었다.

그러다 가이더 재건 때 다시 마을을 찾았다.

그의 힘과 과격함에 반한 총책임자는 란슬롯에게 감독 자리 중 하나를 떼어주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캐시오가 다스리는 가이더의 일 처리는 대개 이런 식이었다.

총감독 자리에 오른 란슬롯은 딱 두 개만 신경 썼다.

하나는 벽을 쌓는 일을 서두르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만족이었다.

여기에서 그가 품은 여자만 쉰 명을 넘어간다는 소리가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그는 잘 먹고 잘 쉬었다.

그래서 옆구리 살이 엄청나게 불어났다.

그가 술과 함께 기름진 음식을 먹는 동안, 셀 수도 없는 시체들이 땅에 묻히지도 못하고 들판에 버려졌다.

“뭐야? 무슨 소리냐?”

침대 위에 엎어져 있던 란슬롯은 시끄러운 고함에 의해 잠에서 깨어났다.

입을 열자 지독한 술 냄새가 풍겼다.

“밖에 누구 없냐? 이봐! 이봐!”

문밖에서 대답이 없자 그는 투덜거리며 침상에서 일어났다.

그러다가 털이 난 자신의 가슴에 묻어 있는 피를 보곤 깜짝 놀랐다.

그러나 곧 자신의 피가 아니라는 것을 보고 안도하는 그였다.

그 피는 음주를 하다가 홧김에 때려죽인 계집의 피였다.

방구석에 쓰레기처럼 처박힌 여자 시체를 일별하고는, 혀를 차며 바지를 꿰입는 그였다.

말에서 내린 세인의 손목이 움직였다.

그 움직임을 따라 선을 그린 장검이 달려 나온 보초들의 눈을 교란할 때, 그의 몸이 비스듬히 움직인다.

그가 몸을 빼낸 공간에서 적의 검이 움직였다.

그렇게 휘둘러진 검 빛이 갈무리되기도 전에, 이번에는 허리를 세우는 세인의 팔꿈치가 남자의 목덜미를 후려쳤다.

아래로 쓰러지는 남자의 몸을 밟았고, 발을 떼어내며 장검으로 앞쪽의 병사를 찔렀다.

검은 가볍게 상대의 목을 관통하고 다시 뒤로 회수된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의 목까지 내리 찌르고 나서야 검날은 속도를 줄였다.

“으으….”

답답한 신음과 함께 피를 토해내는 남자들을 무시하고 세인은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석조 건물 내부의 통로는 그리 넓지 않았으며 발소리가 울렸다.

그래서 보초병들이 몰려온 소리는 모조리 그의 귀에 잡혔다.

급격히 꺾어지는 통로에서 벽에 등을 붙이고 대기하던 그는, 사람의 머리가 보이자 발을 걸었다.

달려오는 속도 그대로 넘어지는 남자를 무시하고, 나머지 사람들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검광이 어지럽게 선을 그으며 춤을 추자, 솟구치는 피와 함께 남자들이 쓰러졌다.

그때 세인의 뒤에서 얼굴이 빨개진 남자가 씩씩대며 몸을 일으켰다.

보아하니 일반 병사가 아니라 간부급은 되어 보이는 사람 같았다.

그는 단검을 매섭게 휘두르며 세인에게 다가왔다.

그래 보았자 가소롭게만 보일 뿐이다.

그러나 세인은 그를 죽일 생각이 없었으므로, 장검을 뒤로해 등에 대었다.

그리고 허리를 뒤로 젖히며 단검을 피해냈다.

남자는 분한지 고함을 질러댔고, 이 소리 때문에 자고 있던 란슬롯이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귀가 먹먹해지도록 소리 지르는 남자가 단검을 뻗어왔다.

세인은 팔로 상대의 공격을 휘감았다.

그리고 무게 중심을 옮기며 허리를 숙였다.

졸지에 그 힘에 딸려 들어간 남자가 ‘어, 어-.’하는 소리를 내며 반 바퀴를 돌았다.

단검은 좁은 통로 안에서 불똥을 튀기며 벽에 반원을 그렸고 말이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남자의 가슴을 밟은 세인이 우두머리의 행방을 물었다.

“책임자의 방은 어느 쪽이지?”

그러나 남자는 눈알만 바쁘게 굴릴 뿐 대답하지 않았다.

“멍청한 놈.”

장검이 바쁘게 그의 몸 위를 누비고 다니자, 피에 젖은 남자는 공포에 질려 란슬롯이 있는 장소를 불고 만다.

세인은 위에서 장검 끝으로 남자의 얼굴을 겨눴다.

남자는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그게 남자의 마지막이었다.

“죽어라.”

세인이 그렇게 속삭이자 남자의 의식이 끊겼다.

검을 거둔 세인은 남자가 알려준 방향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거짓말일 수도 있었지만, 함정일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의 검은 망토가 바쁘게 벽을 스치며 돌아다닐 무렵, 란슬롯은 옷을 다 입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갑옷까지 다 걸쳤다는 소린 아니다.

그는 아쉬운 대로 무기를 찾아 손에 들며 방문을 잡고 벌컥 열었다.

“제기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그리고 밖으로 나섰다. 아니, 나서려고 했다.

우지직! 쾅!

방 문째로 박살이 나면서 란슬롯은 우스꽝스럽게 뒤로 나동그라졌다.

쏟아지는 파편을 얼굴과 가슴으로 맞던 란슬롯은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세인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반사적으로 무기를 휘둘렀는데, 세인은 뒤로 훌쩍 물러나며 피했다.

곧 세인이 몸을 다시 되돌리는 반동으로 란슬롯의 손을 걷어차 버렸다.

“으윽.”

무기가 날아가는 방향을 보던 세인은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시신을 보았다.

크기가 작은 게 어린 소녀 같았다.

그는 란슬롯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침대 쪽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거칠게 내동댕이쳤다.

그 과정에서 란슬롯은 상대가 엄청난 괴물이라는 것을 깨달아 버렸다.

전력을 다해 세인의 복부에 주먹질했지만, 손목만 부러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인은 충격을 느낀 것 같지도 않았다.

그는 차가운 얼굴로 손목을 쥐고 신음하는 란슬롯에게 명령했다.

“가만히 있어.”

그리고 뭔가를 기다리는 듯 허리에 손을 올리고 가만히 있었다.

란슬롯은 이때다 싶어 세인에게 달려들며 머리로 들이박았다.

하지만 그걸 가슴으로 받아낸 세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의 복부에 주먹을 질러 넣었다.

“꺼윽!?”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보처럼 입을 벌린 란슬롯의 입가에서 침이 흘러나왔다.

“물어볼 게 있어서 살려줬더니 매를 버는구나.”

세인은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외부로 향하는 문을 찾는 데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다.

상상외로 경비가 허술하다 못해 형편없는 상태인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국경선이나 마찬가지인 여기가 이런 상태라면 나머지도 보나마나였다.

그래서 한결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쇠뭉치를 맞은 느낌과 함께 뒤로 넘어갔던 란슬롯의 멱살이 잡혔다.

짝!

세인은 거침없이 그의 뺨을 후려갈겼다.

그러자 랄슬롯의 얼굴이 옆으로 꺾어지듯 돌아갔다.

그게 제 자리로 돌아오기도 전에 세인은 다시 그의 뺨을 날렸다.

방에서 뺨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인의 부하들이 달려올 때까지 그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란슬롯의 볼은 퉁퉁 부었고, 코에서는 진득한 코피가 흘러나왔다.

부러진 이는 멀리 튕겨 나가 구른 지 오래였다.

부하들이 들어오자 세인은 한 명만 남겨두고 나머지 사람들은 문을 찾아 열라고 지시했다.

“꺼내.”

세인의 명령을 받은 남자는 자루에서 그림을 꺼내 란슬롯 앞에 펼쳤다.

란슬롯은 멱살이 잡힌 채 정신을 못 차리는 중에도, 이게 무슨 뜻인지 생각했다.

“이곳이 어딘지 말해 준다면 고통 없이 죽여주겠다.”

세인은 한점의 감정도 묻어나지 않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란슬롯의 멱살을 잡고 뒤흔들었다.

그 모습에서는 란슬롯을 물건처럼 대하는 마음가짐이 보였다.

란슬롯의 얼굴은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살려주겠다고도 아니고 고통 없이 보내주겠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가?

게다가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풍경화가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 정말로 모른다.

“대답해. 여긴 어디지?”

세인의 고저 없는 음성이 저승사자의 목소리처럼 들려왔다.

*  *  *

그 시각 방벽 한구석의 문이 열렸고, 그곳을 통해 물이 쏟아져 들어오듯 글리터의 병사들이 밀려 들어왔다.

그리고 늘어진 벽을 따라 전투가 벌어졌다.

추운 곳에서 필사적으로 훈련해 온 글리터의 군은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원래가 아레이즈의 영지민이었던 자들은 강화된 신체를 지닌 자들이다.

게다가 기사들도 큰 전투를 치러본 경험이 있는지라 상당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아무리 벽을 튼튼하고 높게 쌓아도 그것을 지키는 것은 인간이었다.

집단의 결속이 강력하고 항시 긴장하지 않으면 모든 게 무용지물이었다.

지금은 그것이 다시 한번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오히려 문제는 전투가 아니라 곳곳에서 일어난 화재였다.

그 화재는 급히 진압되었지만, 이미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괜찮다. 이렇게 넓은 지역을 소리소문없이 진압한다는 건 불가능해. 이 정도면 충분하다.”

세인은 그렇게 말하며 글리터의 병력을 방벽에 배치했다.

이로써 캐시오가 공을 들여 세운 방벽은 글리터의 수중으로 넘어가게 된다.

북에서 북의 허리띠로 가기 위한 최단거리 관문을 확보한 것이었다.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였으므로 세인은 많은 인원을 써서 점거하는데 망설이지 않았다.

새벽이 오기 전이라 곳곳에 불을 피워 놓은 가운데, 세인은 뒷짐을 지고 건물 주변을 거닐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갇혀 있는 곳에 시선을 주었다.

얼핏 보면 짐승을 가둬놓는 우리인지 뭔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캐시오는 정말 여러 의미로 죽일 놈이었다.

그렇다고 당장 사람들을 풀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몸을 돌린 세인은 화로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건물에서 빼내온 화려한 의자에 앉았다.

그의 앞으로 포박된 남자들이 한가득이었는데, 모두가 변변찮은 저항도 못 하고 사로잡힌 모습이었다.

그중 한 명이 유난히 좋은 옷을 입었고 팔팔하게 날뛰었다.

“우리는 귀족이다! 그런데 이런 취급을 하다니! 패배했을지언정 귀족다운 대우를 원한다!”

세인은 콧수염을 기른 남자를 보며 뚱한 얼굴로 옆의 행크에게 물었다.

“저놈이야?”

“예. 저놈이 여기 지역의 총괄자입니다.”

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림을 가져오라고 일렀다.

그리고 일어나서 앞으로 걸어가는데, 병사들이 화려한 의자를 번쩍 들어 콧수염 기른 남자의 앞에 옮겨 놓았다.

물론 그 총책임자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 의자에 다시 앉은 것은 세인이다.

그가 다리를 꼬고 물건을 관찰하듯, 콧수염 기른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가만히 있는 사람도 울컥하게 하는 뭔가가 깃들어 있었다.

“성질이 보통이 아니구나. 좋다. 이름이 뭐지?”

“귀족의 예법을 지켜서 물어보라! 이게 무슨 짓이냐? 너희는 예고도 없이 습격을 감행했고 무단으로 이곳을 점거했다. 우리의 국왕이 이 사실을 안다면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다.”

세인은 그와 다투고 싶지 않았다.

말을 길게 섞을 가치도 없는 자였다.

다만 물어보고 싶었던 게 있었기 때문에 받아주고 있을 뿐이다.

그는 손짓으로 병사 한 명을 부르더니, 그림을 남자의 면전에 들이밀게 했다.

그리고 점잖은 목소리로 물었다.

“넌 이것만 대답해 주면 된다. 이 풍경화에 그려진 곳은 가이더의 어디에 있는 곳이지? 이 건물은 어디에 있나?”

변방에만 있던 세인이 그림에 있는 건물만 보고 어딘지 알아챌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래서 이렇게 물어봐야만 했다.

하지만 강단이 있는 콧수염 남자는 갑자기 히죽 웃더니 ‘퉤!’하고 침을 뱉어 버렸다.

그림의 한쪽은 피 섞인 침으로 얼룩졌다.

다들 속으로 기겁하며 세인을 바라보는 가운데, 세인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리더니 입에서 곧 길고 긴 한숨을 뱉어냈다.

그리고 한숨은 언어로 이어졌다.

“이봐 란슬롯이라고 알아?”

콧수염의 남자는 란슬롯의 이름을 아는지 웃음을 거두었다.

“란슬롯은 내 앞에서 애원하며 죽어갔어. 그가 얼마나 내 앞에서 쩔쩔맸는지 말해줘도, 넌 믿지 못할 거야. 이게 보여?”

그리고 남자에게 다가간 세인은 다짜고짜 묶여 있는 남자의 뺨을 손바닥으로 후려갈겼다.

옆으로 쓰러지는 남자의 머리채를 잡고 거칠게 일으킨 그는, 다시 한번 거칠게 뺨을 후려갈겼다.

철썩이는 소리가 공기를 가르고 울려 퍼졌다.

몇 차례 그렇게 상대를 유린한 세인은 그의 머리를 땅에다 처박았다.

입과 코가 땅에 밀착되자 남자는 숨을 쉬지 못했다.

그저 등과 배를 오르락내리락 움직일 뿐이었다.

거칠고 답답한 신음이 이어지는 가운데, 모두는 얼어붙은 듯 세인을 바라보았다.

헐떡거리는 소리가 잦아들 때쯤 상대의 머리를 들어 올린 세인이 다시 말했다.

“이게 보여?”

남자는 콜록거리며 말했다.

“뭘? 뭘 보라는 거냐?”

세인은 그의 얼굴을 다시 후려친 후 자신의 소매를 눈에 들이댔다.

“이게 란슬롯의 피야. 이게 보이냐고.”

이 마당에 그게 어떻게 눈에 보이겠는가?

결국, 이건 콧수염의 남자를 놀리는 것이다.

“….”

“나는 너희들 따위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아. 격이 떨어지니까. 그런데 굳이 말을 섞는 이유는, 저 그림에 관해 묻고 싶은 게 있기 때문이야. 이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어? 지금 네가 신나서 그림에 침이나 뱉어댈 때야? 명색이 지휘관 이란 놈이 참 팔자가 좋군. 눈치가 없어.”

그리고 몸을 일으킨 세인은 다시 의자로 걸어가 앉은 후 명령했다.

“죽여라.”

설마 콧수염 기른 남자를 죽이란 소리는 아닐 테고, 사람들은 잠시 당황했다.

말뜻을 살피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다가 그 의미를 알아차린 병사들이 포로들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기사들은 잠시, 아주 잠시 이런 명령을 내린 세인을 말려야 하는지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그만두었다.

지금 세인의 옆얼굴을 보니 누가 끼어들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남의 충고를 용납하지 않고 있었다.

울부짖으며 버티려는 포로들이 개처럼 질질 끌려 나왔다.

병사들은 마지막으로 세인의 허락을 구하는 듯 그를 쳐다보았지만, 세인은 시선조차 던지질 않았다.

결국, 칼과 창이 움직이고 무자비하게 포로들의 몸을 찔렀다.

“아악!”

튀어 오르는 피.

흘러내리는 피.

새하얗고 포동포동한 얼굴에 번져나가는 피가 콧수염을 기른 남자의 눈에 담겼다.

귀족 대우는커녕 다 도살당할 판이었다.

세인의 눈치를 살피던 사람들은 다음 열을 끌고 피 웅덩이 속에 패대기쳤다.

그러자 공황 상태가 된 남자들이 울부짖으며 몸부림치다가 병사들의 발에 차였다.

그 참혹한 광경에 세리스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가운데, 세인은 벌벌 떠는 콧수염의 남자에게만 시선을 집중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이것 참 의외군.”

그 말을 들은 콧수염의 남자가 크게 눈을 뜬 그 표정 그대로 세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에 비친 세인은 끔찍할 만큼 침착해 보였다.

“너희들이 보기에 우린 몬스터라며? 이 정도 잔인함은 몬스터들에게 식후 운동 거리 아냐?”

그리고 세인이 말을 이었다.

“죽여라.”

다시 한번 칼과 창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포로들의 목숨이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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