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
& 옆에 설 수 있는 자격 (9)
그가 보기에 멀리 앉아 있는 세리스와 필립스는 긴밀한 대화를 나누는 듯싶었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이상 중 하나가 바로 저것이었다.
몬스터 앞에서 인간들은 서로 단결했다.
그 결과는 보시다시피 한때 적으로 만났던 기사들조차, 저렇게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마음가짐이었다.
공동의 적 앞에서 저렇게 단결할 수 있었다면, 적이 사라진 지금은 왜 안 되는가?
전에도 할 수 있었다면 지금도 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는 자신이 바라는 게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에 대해서 가끔 고민했다.
세인의 앞에 앉아 있던 남자가 한 손을 들자, 옆에 공손히 서 있던 바르보사가 다가와 그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었다.
그 반지에는 커다란 루비가 박혀 있었다.
반지를 끼워준 바르보사는 다른 남자들과 함께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그러면서 주위를 경계한다.
이제 세인과 바이테스의 황제는, 더욱 긴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은 너무 넓어서 진실이 조작되거나 흐려지기 쉽지요. 하지만 나는 그런 혼동 속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그래서 이 땅을 찾아왔소. 그 결과, 아주 만족스러움을 느낍니다. 당신들이 인간의 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으니 말이요.”
“당신은 세계 지도에 손을 올려놓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동지인 드레퓨스에게 따끔한 충고를 하지 않죠?”
바이테스의 황제는 세인의 말에 잠시 헛웃음을 흘렸다.
“내가 생각할 때 드레퓨스의 지배자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자요. 그런 아둔한 자가 과연 지적인 충고를 들으려 할까? 그는 맹목적인 짐승이요. 지금도 나는 그가 대체 뭐를 위해 달려가고 있는지를 모르겠소. 아무리 땅을 정복한들, 그는 그 땅들의 참모습을 조금도 알지 못하고 죽을 거요. 그것도 자신의 왕실 침대 위가 아닐 가능성이 농후하지. 그를 정의하자면, 세상을 마상경기의 기록처럼 이해하고 달려들려는 자이지.”
“….”
“그 멍청한 정복왕이 인간들에게 어떤 이로운 영향을 끼칠까? 아무것도 없소. 땅을 정복하며 끼치는 해악에 비하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 후대가 그를 위대하게 포장하든 말든, 그의 실체는 정신병자에 불과한 것이오. 게다가 그 정신병은 주변 인간들에게도 전염되지. 인간 중에서도 극도로 저능한 품종이 태어나곤 하는데, 내가 볼 때 그는 그런 자요. 그래서 말이 통하고 자시고가 없소.”
황제는 드레퓨스의 지도자를 냉혹하게 깎아내렸다.
“깃발 놀이나 하며 정복한 땅을, 그 위의 백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불길로 태우는 그 모습. 그건 몬스터나 마찬가지지. 하지만 그런 비극을 알면서도 나와 주변국들은 그를 참견할 생각이 전혀 없소.”
“성국도요?”
“남부 전체는 나와 같은 생각이라오.”
의외의 말이었다. 결국, 세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바이테스의 황제는 그런 세인의 사색을 기다려 주었다.
황제가 생각하기에 글리터는 몬스터의 소굴이 아니었다.
그는 글리터의 상태를 확인하고 마음을 놓은 것이었다.
다만 세계수 쪽도 사람들을 풀어 정탐하고 싶었지만, 그건 그로서도 힘들었다.
왜냐하면, 글리터가 그 길목을 지키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생각을 정리한 세인은 황제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럼 남부는 중앙과 북부가 어떻게 되든, 구경만 하고 있겠다는 생각뿐이란 말입니까?”
황제는 굳어 있는 세인의 얼굴 앞에서 자기 뜻을 설명해 주려 했다.
“백성들을 앞에 불러다 놓고, 귀를 기울여본 적이 있소?
“….”
“막상 불러다 놓으면 긴장해서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있지. 그래서 변복을 하고 나가는데, 이런 몸으로 나갈 때 그들은 술술 잘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푼다오. 그걸 들어보면 그들은 어떤 영광이나 이상을 위해서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오. 그냥 하루를 열심히 일하고 그 보상을 온당하게 받길 바라지.”
말을 많이 한 탓일까, 황제는 탁자 위에 놓인 컵을 들어 입술을 적시곤 다시 운을 뗐다.
“대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집착하기보다 현실을 생각한다오. 그리고 인간의 일생은 짧지. 그런데 지배자들이 이거 해라, 저거 하라며 간섭을 하다 보니. 시간이 부족하고 그들의 결혼, 그들의 사냥, 그들의 성장통, 임신, 출산, 죽음까지…. 정치가 그들의 삶에 끼어들면 정작 자유롭게 사는 시간은 일순간에 불과하오. 가뜩이나 인간의 인생 자체가 찰나와도 같은데 말이오. 그게 바로 비극이지.”
이정도에서 세인은 황제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깨달았다.
그는 바이테스의 황제였다.
그가 정의를 위해서 검을 뽑아 들면, 그건 자국민을 고통스럽게 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성국이나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였다.
황제는 세인을 향해 상체를 숙였다.
그리고 속삭였다.
“당신은 지도자로서 이곳의 사람들을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겠지? 뭐든 바칠 수 있겠지? 그건 나도 그렇소. 당신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당신이 책임지는 사람들의 행복이 최우선이겠지? 나도 그렇소. 내가 드레퓨스를 향해 달려가면 곧바로 대전쟁이오. 그리고 내가 바로 세우려는 정의가 만약 틀렸다면? 지금 드레퓨스의 저 열등한 인간들도 자신들의 꿈이 정의라 철석같이 믿고 있을 거란 이야기요. 정말 누가 옳은지 그른지는 신만이 아시겠지.”
왕이 자신의 나라를 일 순위에 놓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황제니까 책임져야 할 나라도 한두 개가 아닐 것이었다.
밖에서 어떤 지옥이 펼쳐지든 상관 않겠다는 그의 말은, 비이성적으로 들리면서도 한편 공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백성들 처지에서 보자면 더더욱 말이다.
“이대로 놔두면 드레퓨스는 화근이 될 겁니다.”
“왜 세상에 여러 나라가 있는가 하면, 왜 세상이 큰 하나의 나라가 아니냐 하면, 인간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살 수 없기 때문이오. 땅이 다르며 가치관이 다르고 인간이 다른데, 어떻게 큰 몸뚱어리가 될 수 있겠소?”
“….”
“몇 세대 후 드레퓨스의 상태는 비참할 거요. 그리고 끝은 지옥이나 다름없겠지. 그들은 자신들이 정복한다고 믿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은 절망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요. 더 넓은 땅과 많은 자원이 천국을 약속하진 않지.”
세인은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
그걸 본 황제의 측근들이 몸을 움찔거렸지만, 결국 움직이지는 않았다.
황제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자신의 손을 잡아 온 세인의 손을 보았다.
그리고 그 손안의 온기도 느꼈다.
대륙은 글리터의 실체에 대해서 잘 몰랐다.
세인에 대해서도 몰랐다.
호사가들의 이야기 속에서 진실은 왜곡되었다.
세인이 중앙의 괴물들을 괴멸시킨 것도 몰랐고, 어떤 생각으로 북쪽에 자리를 잡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황제는 정보기관을 통해 다 알고 있다.
그래서 눈앞의 남자를 믿을 수 있었다.
그게 바로 지금 손을 잡게 해준 이유였다.
그는 손을 빼내지 않았다.
상대의 간절함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모든 것을 걸고 한 가지를 이야기한다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
“앞으로 더욱 강한 몬스터들이 다시 나타난다고 주장하면, 그걸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인간들이 다시 뭉쳐, 그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면요?”
세인의 진실한 음성 앞에서 황제는 솔직히 대답했다.
“아니오.”
그리고 덧붙였다.
“내가 그것을 믿는다 해도, 사람들에게 주장할 수는 없을 거요. 혼란을 바라지 않으니까.”
결국, 남부는 위쪽이 어떻게 되든 수수방관만 하고 있겠다는 소리였다.
그동안 그랬듯이.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건 백성들의 행복과도 직결되어 있었다.
풍족한 삶과 기름진 땅 위에서 호의호식하는 백성들은 평화를 만끽할 것이다.
세인은 그 가치의 중요함을 알고 있었다.
지금 황제가 말하는 상황도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장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황제의 손을 놓아 주었다.
황제는 진심이 통하지 않는 인간은 아니었다.
다만 백성들을 끔찍이 위하는 위인일 뿐이다.
세인은 마지막으로 말한다는 생각에서 입을 열어본다.
“당신의 자리는 높고 넓으며, 당신의 혈관에는 고귀한 피가 흐르고 있지. 당신 정도 위치가 되면 자신의 땅만 살필 수 없는 노릇 아닌가?”
그때 가슴 안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 더이상 말이 공손하게 나가지 않았다.
“내가 이런 괴물의 몸이라서, 내 말을 신용할 수 없다 한다면 그건 이해한다. 하지만 드레퓨스가 인간으로서, 같은 인간을 학살하기 전에 제동을 걸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를 괴롭히던 몬스터가 사라졌고, 이제 인간들은 드디어 서로의 손을 맞잡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왔다.”
“….”
“다가올 끔찍한 미래 정도는 내가 어떻게든 해보겠어. 하지만 나는 지금 귀족인 당신에게, 그 귀족의 정점에 서 있는 당신에게. 고귀한 피를 가진 자로서 의무를 다하라는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당신은 제국의 황제다.”
황제는 세인의 서늘한 눈을 바라보았다.
황제는 상대가 엄청난 존재임을 인정했다.
왜 아니겠는가?
그가 이미 증명한 전투력은 상상 불가의 힘이었다.
그러므로 상대가 폭군이고 몬스터와 같다면, 세상이 남아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세인은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황제는 먼 훗날 드레퓨스와 세인이 부딪히는 것도 상상해 보았다.
엄청난 피가 대가로 지불되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바이테스에게 좋았다.
드레퓨스의 폭주가 멈출 테니까 말이다.
세인이 나중에 악마가 되더라도 그것 또한 어쩔 수가 없다.
지금 어차피 못 막는 대상이므로 변하는 것도 없었다.
그의 계산은 여러 갈래로 진행되었지만, 바이테스의 사람들을 위해서는 방관만 하고 있는 게 가장 좋았다.
그건 비겁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바이테스 백성들의 행복을 유지하는 문제였으니까 말이다.
“당신은 세상 전체의 인간을 생각해야 해. 당신은 당신의 나라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인간을 행복하게 해줄 의무가 있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상은 지옥이었다. 그런데 가까스로, 기적과도 같은 기회가 우리 앞에 다가왔다. 그런데 황제인 당신이, 누구보다도 고귀한 당신이 고작 한다는 말이. 이 기적과도 같은 시간 안에서 팔짱을 끼고 앉아있겠다는 말인가? 인간들은 저렇게 서로 싸우며 땅을 불태우고 있는데? 저 바보 같은 낭비와 실수를, 당신같이 자격 있는 인간이 아니면 대체 누가 멈추지?”
지금 세인은 수세에 몰린 상태였다.
그는 나름대로 꾀를 내어 마검을 완벽 다스리려고 했다.
그 이유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괴물들의 의식 전에 그들을 처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소용없는 일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도 황제에게 미래의 위기를 알리거나.
최소한 땅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고 납득시켜야 했다.
하지만 결국 다 실패했다.
그러면서도 황제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더욱 상대의 생각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말이다.
황제는 세인 앞에서 아까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그것이 세인의 간절함에 대한 대답이었다.
“당신은 이곳의 사람들을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겠지? 뭐든 바칠 수 있겠지? 그건 나도 그렇소. 당신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당신이 책임지는 사람들의 행복이 최우선이겠지? 나도 그렇소.”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이테스의 황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바이테스의 백성이다.
명예나 어떤 아름다움도 결국 백성들 아래에 있는 것이다.
“전쟁이 뭔지 모르는 애송이들이, 그 끔찍함을 체감하지 못한 놈들이 전쟁을 쉽게 이야기하고 입에 올리오. 그들에게 전쟁이란 탁상공론이지. 막상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터로 끌려가지도 않는 놈들이 지껄이는 놀음이지. 하지만 내게는, 그리고 내 밑의 전쟁전문가들에게는 전쟁이란 어떤 짓을 해서라도 피하고픈 비극이오.”
“….”
“과부들의 울음소리. 그리고 그 밑에서 죽은 눈으로 이불을 움켜쥔 고아들의 눈빛. 그것을 한 번이라도 보지 못한 자는 전쟁을 논할 자격이 없소. 그런 의미에서 당신이 하는 말은 자격이 있었소. 내게 그런 충고를 할 자격 말이오. 왜냐면 당신은 전쟁의 피비린내를 겪은 자니까. 같이 겪고도 저 잔인한 짓을 하는 드레퓨스 보다 낫지.”
측근들의 부축을 받는 황제의 말에, 세인은 아까의 말을 사과했다.
“흥분한 나머지, 제 말이 과했다면 사과드립니다.”
“아니오. 아니오. 다만….”
황제는 바이테스로 떠나기 전에 세인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버무려져 있었다.
착잡함도 그중 하나였다.
“나는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소. 그리고 그런 바람은 먼 미래의 세상 모두의 행복보다, 내가 책임지는 사람들을 우선시하며 달려가오. 지금 현실 속 웃는 아이들의 부모를 지킬 수만 있다면, 후세사람들이 내 묘비에 침을 뱉어도 좋소.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소.”
세인은 그렇게 멀어져 가는 황제를 잡지 못했다.
왜냐면 그도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아 주먹을 쥐고 있는 세인.
그리고 충신들의 호위 아래 멀어져 가는 황제.
그렇게 두 귀족의 만남은 끝났다.
황제를 따라 걷던 바르보사는 조용히 다가와 곁에 선 필립스를 보곤 눈짓을 했다.
세리스를 회유하는 데 성공했냐는 물음이었다.
하지만 필립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실패했군. 그럴 줄 알았어. 그래도 아쉽구나. 저런 여기사를 바이테스가 품을 수 없다는 건 아주 안타까운 일이다.”
아군이 된다면 엄청난 전력이 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런 바르보사의 혼잣말에, 필립스는 왠지 자신이 죄를 지은 듯 고개를 푹 숙여 보였다.
황제는 글리터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도시를 바라보았다.
춥고 어두운 공간 안에서 빛을 뿜어내는 도시는 이제 따듯함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차갑고 검푸른 밤 아래, 더욱 검은 지평선에서 점점이 떨어져 있는 불빛들이 글리터를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그 빛들은 글리터가 땅 위에 뿌려놓은 지상의 별 같았다.
별들은 서로에게 걸어가며, 더 이상 외롭지 않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좋은 곳이다.”
그리고 황제는 등을 돌렸다.
한편 세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인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우울한 표정으로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윗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긴 뭐하지만, 정강이를 차인 표정이세요.”
“….”
세리스는 세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가 내밀어진 그녀의 손을 바라보자, 세리스가 입을 다시 열었다.
“어쩌면, 어쩌면 세인님은 몬스터 같아요.”
자극적인 말에 세인은 그녀의 내민 손을 잡을 생각도 하지 않고 반응했다.
“무슨 의미지?”
“저는 변질되어 버린 것 같아요. 아니면 처음부터 제가 생각하던, 제가 아니었거나요. 올바른 답 때문에 여기까지 달려왔고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요. 그 원인은 세인님입니다. 처음으로 제가 옳고 틀림을 가리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주 위험한 생각이죠. 그렇게 절 변하게 만드셨어요. 위험하기로 따지자면 제게 있어 몬스터나 마찬가지예요.”
세인이 말없이 그녀를 바라볼 때 세리스가 말했다.
“손을 잡으세요. 일어나셔야죠.”
그녀는 전의 누구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의 어깨에는 큰 것이 걸려 있었다.
그것은 강력함을 떠나, 고민과 선택에 따라 뒤바뀌는 결과였다.
모든 것을 죽이고 능욕할 힘이 있다면, 종처럼 부릴 힘이 있다면…. 인간을 지킬 수 있을까?
귀족의 의무를 다할 수 있을까?
그 답은 여기에 있다.
세리스는 그녀가 아는 힘 중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세인을 보면서도, 결코 그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일어나세요. 손을 잡아 드릴게요.”
세인은 세리스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개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인의 손을 놓지 않은 세리스가 이렇게 말했다.
“같이 걸어요. 우리가 갈 수 있는 곳까지.”
도달할 수 있는 곳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