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왕 마검의 주인-128화 (128/307)

# 128

& 옆에 설 수 있는 자격 (8)

세인은 노점의 작은 탁자에 앉아, 허리춤에 찼던 단검 한 자루를 음식값으로 건넸다.

그러자 여인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 너무 비싸 보이는데?”

“여기에서 술도 팝니까?”

그의 공손한 말에 여인은 눈가를 좁혔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이곳의 언데드들은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인간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인간들처럼 글리터에 오기까지 몬스터를 증오했던 사람이었다.

물론, 그런 생각은 예전 영주가 그녀의 밭과 집을 불태우면서 좀 수정되어야만 했다.

지금은 그녀도 그렇지만, 글리터에 정착 중인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건 같은 인간의 횡포였다.

“그건 제 동생이 팔고 있어요.”

“여기 없다면 됐습니다. 이게 맛있다면 조금 더 먹죠.”

“그렇다면 미리 잘라놔야겠네. 분명 더 시키게 될 거에요.”

여인의 자신만만한 표정과 말은 허풍이 아닌듯했다.

문어 조각을 위로 들어 올리는데 식욕을 돋우는 향기가 코를 찔렀기 때문이다.

그걸 입으로 넣으려는 바로 그 순간 고사리 같은 손이 탁자를 ‘탁!’하고 친다.

그가 동작을 멈추고 앞을 보니 작은 엘프가 보였다.

하얗고 뽀얀 피부에, 통통한 볼과 커다란 눈을 가진 엘프는 한눈에도 귀여워 보였다.

그 귀여움에 뒤에서 ‘풋.’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인이 웃음을 참는 소리다.

글리터에서 엘프들은 확실히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다.

뭐를 먹는지 입을 오물오물하던 엘프는 갑자기 입을 벌리며 크게 외쳤다.

“야야!”

“….”

“야야! 야야!”

공용어를 하지 못하는 엘프인 거 같았다.

공용어를 하는 엘프들은 시를 읊거나 노래까지 부를 줄 알지만, 어린 엘프 중 많은 수가 언어로 교감하지 못했다.

귀여운 엘프는 눈을 빛내며 세인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세인이 문어를 든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자, 엘프의 머리도 같이 따라 움직였다.

한숨을 쉰 세인이 문어를 건네줬다.

그러자 엘프는 짧은 양팔을 휘둘러 그것을 ‘척.’하고 잡았다.

그리곤 잽싸게 입에 넣었다.

오물오물하던 볼은 볼록해지더니, 이내 터질 듯 빵빵하게 부풀었다.

문어를 포식한 어린 엘프가 최고라는 듯 엄지를 추어올리며 이렇게 감탄사를 흘렸다.

“야야!! 야야!”

전혀 알아먹을 수가 없다고 세인이 생각할 때, 엘프는 어딘가로 뛰어가 버렸다.

아주 기세 좋게 말이다.

저런 엘프를 붙잡고 공짜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 알려주려 한들, 다 부질없어 보였음은 물론이다.

피식 웃은 여인이 탁자 위에 다른 문어 조각을 놓아주었다.

세인이 그것을 집어 들고 다시 입으로 가져가려는 찰나.

한 중년인과 눈이 마주쳤다.

한쪽 팔이 없는 남자였는데 그는 다리를 약간 절고 있었다.

목도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이 머리가 좀 기울어져 보였다.

게다가 곱사등이다.

그 남자는 참 맛있겠다는 눈빛으로 세인이 손에 든 문어 조각을 바라보고 있었다.

걸치고 있는 옷은 평범해 보였고, 뒤에 서 있는 남자들은 일행인 듯 아닌 듯 모호했다.

세인이 문어를 입에 넣으려 하자 불구인 남자는 침을 삼켰다.

그런데 그 소리가 주위에 다 들릴 만큼이었다.

꼴깍하는 소리를 들으며 세인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러면서 내심과는 다르지만, 남자에게 문어를 권해 본다.

“드시겠습….”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와 그것을 낚아채듯 받아들었다.

그리고 입에 넣고 씹는다.

그 앞에서 세인은 천천히 팔짱을 꼈다.

글리터에 온 청년 엘프들이 어떤 이유로 왔는지는 모른다.

세계수 지역에 갇혀 있는 것이 답답해서 일수도 있겠지만, 이유는 제각각일 터였다.

어린 엘프들은 자신들이 글리터로 오고 싶다 한 이유를 까먹은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어린 엘프는 세상에서 요정과 가장 가까운 상태였다.

이들은 조건 없는 순수의 눈으로 사물을 볼 수도 있었고, 동시에 대책 없는 큰 사고도 칠 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행동, 이유 없는 짜증과 웃음을 보여줄 수 있는 희귀한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다크 엘프들이 타락하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존재들이기도 하다.

같은 시각 세리스는 광장의 주점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낡은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그래서 본인 스스로는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단 착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미모를 제외한 이야기다.

게다가 술에 취한 사람들은 그녀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범상치 않아서 접근하지 않고 있었다.

세리스는 어떤 남자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런 남자의 어깨너머로 달려가는 어린 엘프가 보였다.

그 엘프는 풍성한 금발 머리를 가지고 있었고, 통통했으며 귀여웠다.

양 뺨은 복숭앗빛이었고 눈은 꿈꾸는 듯 멍해 있었다.

그리고 작고 도톰한 입술을 벌리자 붉은 혀가 잠깐 드러났다.

그 엘프는 광장 중앙에서 큰소리를 질렀다.

어린 엘프가 까르르하고 웃자, 다른 엘프들이 몰려나오며 저마다 소리를 질렀다.

그때 한 남자가 골치 아프다는 듯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대체 누가 쟤들에게 단 걸 준거야?”

단맛에 취한 엘프들은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더니 빙글빙글 돌며 춤까지 추는 게 아닌가.

어디서 가져왔는지 양손에 냄비 뚜껑을 들고 맞부딪히는 엘프도 있을 정도였다.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엘프들은 입을 벌리고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말의 꼬리는 한 갈래

여자아이의 머리는 양 갈래

닭발은 세 갈래」

“아니야! 멍청이들아! 닭발은 세 갈래가 아니라고!”

그때 한 주정꾼이 일어서서 악쓰는 소리가 들렸고, 이에 사람들이 낄낄거렸다.

여기서 오해인 것은 엘프들이 말하는 닭발이란, 세계수 지역의 약초를 가리키는 말이었다는 것이다.

그 풀은 정확히 세 갈래다.

사람들은 환호하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엘프들은 그 모든 걸 무시하며 들썩하게 노래를 부르고 행진했다.

어린 엘프들은 점점 어디선가 몰려나왔고, 취한 남자들도 합세했다.

그리고 인간 아이들도 그 노래에 끼어들었다.

엄마들이 자러 가야 한다고 재촉해도 소용없었다.

숟가락과 포크로 테이블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한데, 한 엘프가 선두에 나와 지휘를 시작했다.

「양손에 당근을 들고.

영차영차 춤을 추자~

야야! 춤을 추자

춤을 추자!

쟁반은 탁자 위의 물건

양초는 불 밑의 물건!

하늘은 별빛 밑의 물건

시냇물은 춤추는 물건!

춤을 추자 야야!

난 오늘 흥이 폭발했어요.

야야! 우리 모두 춤을 춰요!」

그때 한 엘프가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단 게 좋아요! 미쳐버리게 좋아요. 야야! 네 엄마 아빠를 합쳐도 단것엔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근처 탁자 위에 올라가 접시를 발로 걷어차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부리나케 추는 막춤이었다.

옥수수 알들이 사방에 튀고, 봉변을 당한 사람들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엘프들은 사방에서 춤을 추고, 물건들을 걷어차며 단것을 찬양했다.

그 소란에 이층집의 창문이 열리며 크릭이 나타나 소리를 질렀다.

“빌어먹을! 제발 좀 조용히 하라고!”

그러면서 엘프들을 향해 물을 뿌리는데, 그걸 맞은 것은 엘프가 아니라 애꿎은 행인이었다. 행인이 욕설을 퍼붓자 크릭은 도끼를 창문 밖으로 보여주며 짜증을 냈다.

눈을 감고 빙글빙글 도는 엘프들도 있었고, 제각기 소리를 지르다가 틀린 가사로 노래를 부르는 엘프들도 보였다.

사실 이렇게 개판인 곳에서 지적이고 성숙한 대화가 이루어지기는 지난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세리스 앞에 앉아 있던 의문의 남자는, 정신을 부여잡고 대화를 이어 나가려 애를 썼다.

물론 그것은 세리스와 남자 사이에 있던 탁자 위로 엘프가 뛰어오를 때 잠시 중단되었다.

더벅머리 엘프는 탁자 위에서 격렬하게 춤을 추었다.

손뼉을 머리 위와 턱 아래로 치며 스텝을 밟다가, 가끔 양손의 검지로 전방을 겨누기도 한다.

그 격렬함에 남자는 어떻게든 안간힘을 쓰며 말을 이으려고 했다.

그 모습이 좀 안타까워 보이기도 한 것은 착각일까?

어쨌든 엘프가 탁자에서 내려와 어딘가로 쪼르르 달려갈 때까지, 그는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난장판이 된 식탁을 중간에 두고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의외의 질문을 한다.

“이렇게 개판으로 만들어 놓으면 보상은 누가 합니까?”

“저 엘프들의 보호자들이 이곳에서 하는 일은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에요. 그러니 성에서 보상을 해주죠. 그리고 이런 분위기도 나쁘진 않게 느껴집니다. 너무 활기가 부족했던 곳이었으니까.”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남자는 조심스럽게 다시 용건을 꺼냈다.

“세리스님. 당신은 인간입니다.”

“예. 당신이 인간인 것처럼요. 그리고 여기 주변의 사람들도 다 인간이죠.”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는 그녀의 말 앞에서, 남자는 자신의 두 손을 맞잡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당신은 그런 인간 중에서도 굉장히 강한 인간입니다. 그리고 기사죠. 기사의 쓰임은 당연히 아시겠죠. 저란 인간이 여기에 온 이유를 배제하고 생각해 주십시오. 제 말의 내용으로만 사견 없이 판단해 주십시오. 그리고 스스로 물어보세요. 당신이 여기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지 말입니다. 더불어 당신이 어디에 속해야 기사의 본분에 맞는지를 말입니다.”

남자는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의 목적은 세리스를 여기에서 빼내어, 자신이 사는 곳으로 유도하는 일이었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여기서 남자는 어떤 숭고한 사명감까지 느끼고 있을 정도였다.

이 고귀한 보석을 몬스터의 소굴에서 빼내야 한다는 사명감 말이다.

인간과 엘프가 같이 하는 땅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그의 제의 앞에서 오히려 시큰둥한 태도의 세리스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몬스터가 얼마나 끔찍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로 피난 온 사람들도 그렇고, 이 여성도 그렇고, 태연히 몬스터와 한배를 타려고 하다니.

그건 너무 비상식적이고 무모했다.

“당신이 뭘 보고, 뭘 느꼈든 그건 당신 인생의 대답이 아니에요. 몬스터의 본성은 변질되지 않아요. 당신이 상대에게서 다른 본질을 느꼈다면 그건 기만일 겁니다. 정신 차리세요, 세리스. 그리고 나를 따라갑시다. 온전한 인간의 세상에서, 인간을 대표한 봉사의 길이 있다고 말해드리러 왔습니다.”

그리고서 그는 많은 말을 했는데 딱히 꼬투리를 잡기가 어려웠다.

말에서 세리스를 꼭 여기에서 빼내겠다는 의지가 느껴졌고, 거기에 배어 있는 것은 악의가 아니라 선의였다.

세리스는 그의 말에서 맞는 부분을 살펴봤다. 그리고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했다면, 아마 이 남자의 말에 넘어갈 수도 있었을 거로 생각됐다.

그녀는 자신이 오래전 품은 생각이 대의라 여겼다.

본인이 기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누군가의 방패나 검이 되어 활용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어쨌든 그녀는 가이더가 망할 때 몸을 빼낸 배신자였다.

그리고 지금은….

커다란 뜻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한 개인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생각하는 그 개인은, 두 사람이 만나는 자리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는, 세인은 지금 몸이 불편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에 여기에 왔을 때 놀랐던 건, 외부에 대한 경계가 삼엄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문을 활짝 열어놓은 것처럼 보이더군요. 인간들에게.”

팔이 없는 남자가 나머지 한 손으로 그릇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면서 볼이 움직이는 게, 혀로 남은 문어 조각을 고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이 사람은 이런 유흥을 좋아하는군.’이라고 세인은 생각해 버렸다.

“경계심을 벽처럼 높이고 빗장을 단단히 걸어 두는 게 좋습니다. 사람은 도둑질하는 존재니까요. 그게 아니더라도 밑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몸에 장애가 있는 남자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세인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대륙의 동태를 다 알 수 있었다.

드레퓨스의 움직임과 가이더가 개판인 것.

그리고 몬스터가 사라진 땅에서 얼마나 인간들이 혼란스러운 시간을 겪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노점의 여주인은 남은 문어를 다 썰자, 동생이 운영하는 곳으로 걸어가 버렸다.

도와주려 자리를 비운 듯싶었다.

그래서 몸이 불편한 남자와 세인은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

“이곳에 대한 인상이 어떻습니까?”

“몬스터들이 점령한 땅처럼은 안 느껴지더군요.”

“제 이런 모습을 보고도요?”

“당장 그런 편견에 갇히기에는 제 모습이 이렇습니다.”

남자는 몸이 불편한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였다.

그리고 멀리에 앉아 있는 세리스를 가리켰다.

“저 여인은, 대단한 여인이 아닙니까? 대단한 가치를 가진 여인이지요. 본인도 인정할지 모르지만, 소드 마스터에 근접할만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각과 가치관이 바르죠. 힘만 가지고 날뛰면, 북부 아래 어딘가의 짐승처럼 행동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만…. 좋은 가치관과 이성을 가지고 그 힘을 쓰면 모두가 인정하는 존재가 되죠.”

세인은 그의 손가락을 따라 멀리 앉아 있는 둘에게 시선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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