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왕 마검의 주인-115화 (115/307)

# 115

& 글리터 (3)

신전 내부는 넓었으며 동시에 아늑했는데, 실내에는 타오르는 작은 초로 가득했다.

굳이 밝은 횃불을 쓰지 않은 건 주변을 밝히기보다 약간 어두운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다.

어떤 장소든 너무 밝은 곳이라면 필요 이상으로 노출되는 듯해, 오히려 꺼려지는 것이 사람 심리이다.

수많은 사람이 모인 가운데 신부가 연단에 섰다.

그는 앞에 몰려든 사람들을 한번 바라본 후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의자들은 멀찌감치 물러나 벽에 닿아 있었다.

바닥에는 두꺼운 깔개가 있어 바로 앉기 편했다.

신전 안을 가득 채운 것은 난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지금 사자의 발톱을 피해 몬스터의 아가리로 들어온 듯 불안에 떨고 있었다.

이들을 안정시키는 것도 신부의 몫이다.

그는 기도문을 읊는 대신, 한 개의 촛불로 자신의 얼굴을 밝히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이야기는 물론 신부 자신의 얘기였다.

“이 이야기에 특별한 주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저는 그냥, 제가 가장 괴로웠던 경험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리고서 그는 자신이 언데드로 변했을 때의 참담함과 괴로움, 절망감을 이야기했다.

어느덧 몰려든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신부의 치부라 말할 수 있는 부분을 들었다.

그들의 눈빛은 의아함과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어 있었는데, 그 앞에서 신부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신전에서 주관하는 고백의 밤이란 그런 것이다.

이 밤의 궁극적인 목적은 치유나 용서였다.

그러려면 전제돼야 하는 것이 바로 용기였다.

집단 앞에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 말이다.

때론 그것은 환부에 소금을 뿌리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웠다.

동시에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후련하기도 했고 말이다.

신부의 고백이 끝이 나고, 처음엔 연단에 서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용기를 낸 것이 시발점이었다. 그러자 연단에 올라가는 사람들로 줄을 이었다.

그중에는 파고라는 사람도 끼어있었다.

손때가 가득한 밀짚모자를 양손에 든 파고가 우물쭈물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저는 파고라는 농부입니다. 이곳에서 멀리 있는 고향에서 살았습니다.”

정작 그의 고향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여기는 묻고 답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때, 신부는 열린 문으로 두 명의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두 사람은 문가의 의자에 조용히 앉아, 난민들의 고백을 경청했다.

신부만 빼고, 그 둘의 출현을 아무도 알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아버지를 따라 매일 작물들을 관리했습니다. 처음에는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닭도 키우고. 돼지도 키우고.”

파고는 허공의 한점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그의 과거가 고스란히 있었다.

손에 잡힐 듯 선명한데,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이었다.

“결혼도 했고 아내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자식도 낳았고요.”

이야기하다 보니, 목소리에 열기가 녹아들었다.

촛불이 가져다준 온기일까?

아니면 그의 앞에서 반짝이는 수많은 눈빛에 자극을 받아서일까?

“주변이 시끄러워도 저는 제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농사밖에 없었고요.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파고는 영주의 빈자리를 이야기했다.

그 빈자리는 어느 날 나타난 산적들의 행패와 맞닿아 있었다.

파고는 그들이 저지른 끔찍한 일들을 낱낱이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이야기를 듣는 청자들의 눈빛은 더욱 반짝거렸다.

왜냐하면, 그들도 익히 겪었던 일이기에 공감하는 것이다.

“산적들이 소탕되었을 때, 전 바보같이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상처는 치유하면 되니까요.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새 영주는 세금을 올렸고, 세금을 내지 않으면 모든 것을 빼앗아 갔어요.”

파고는 자신의 아내와 자식이 어떻게 짓밟혔는지 이야기했다.

그 충격과 더불어 그가 느낀 것은….

“너무 뒤늦게 깨달았어요. 영주는 우리 마을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것이었어요. 저는 반기를 들었던 친구들의 시체를 보고 나서야 바보같이 깨달았죠. 그리고 물에 젖은 시체를 불에 태우라고 지시한 영주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깨달은 거예요. 그래요, 그는 웃고 있었어요.”

이미 모든 것을 잃은 파고는 왜 홀로 여기까지 온 것일까?

그것은 본인도 알지 못했다.

다만 파고는 마지막에 울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통을 때리며 흐느꼈다.

그 흐느낌은 사방으로 전염되었다.

마지막에 신전으로 들어온 두 사람은 그런 난민들을 보다가 울지 않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울지 않는 사람들은 이제 눈물마저 말라버렸는지 수동적인 얼굴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신전 안에는 새벽이 끝날 때까지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거기에는 보통사람이 어떤 학대를 받고, 편견 아래 불이익을 강요받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망가지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구구절절하게 녹아들어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동안 신부는 끊임없이 작게 기도했다.

그렇다고 모인 사람들에게까지 기도하라고 말하진 않았다.

이들은 이미 보이지 않는 신에게 충분히, 질리도록 기도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절망적인 화답도 받았다.

아침이 되기 전, 마지막으로 들어왔던 두 사람은 신전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얼굴을 가렸던 두건을 뒤로 벗겨내는데, 인적이 없는 길 위에 서 있던 것은 미스틸 테인과 세리스였다.

미스틸 테인은 굳어진 얼굴로 세리스를 바라보았다.

“왜 나를 풀어주고, 저런 이야기를 듣게 해준 것입니까?”

“말은 확실히 해야죠. 당신은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야만 해요. 아직 풀려날 시간은 아니거든요. 그리고 당신을 풀어준 건 어제 본 세인님입니다.”

“….”

“그리고 그분은 당신들의 목숨을 살려줬죠.”

세리스의 말에 테인은 이를 악물었다.

그의 앞에 있는 것은 인간 여자였다.

아름다움을 떠나 인간 기사가 확실하다. 게다가 과분한 호의도 받았다.

그를 신전에 데려간 것이 호의에서 비롯되었음을 아는 테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제 본 세인을 몬스터라고 생각했다.

“저들의 비탄을 이해합니다. 신분은 다를지라도 같은 인간이니까요. 당신도 인간이니 저에게 이런 호의를 베풀었겠죠. 다만 당신은 왜 그자 아래에 있습니까? 저는 그게 이해가 안 되는군요. 그는 더럽고 사악한 자입니다.”

테인의 말에 세리스는 잠시 날 선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기억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당신은 이미 그에게 수치를 준 적이 있어요.”

사실은, 그녀도 다른 기사들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였다.

“당신은 트리엔의 인물이죠? 과거 땅을 빌리기 위해 세인님이 찾아갔을 때, 앞에서 모욕을 주었다고 들었어요.”

“….”

테인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리며 작게 ‘아-.’하고 소리를 냈다.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난다.

왜 그게 어젯밤엔 기억나지 않았지?

세리스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자 테인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녀가 없어진다면 탈옥으로 간주할지도 모르니까.

그러면서 다시 말을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자는 몬스터 입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몬스터란 게 이상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본질은 바뀌지 않습니다. 어떤 정신머리 없는 자가 그런 몬스터에게 근방의 땅을 허용합니까? 그걸 허락한다면 조상들이 무덤을 박차고 나올 일이죠.”

세리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미스틸 테인. 저는 어제 당신의 용기에 감탄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함께한 무리가 어떤 실수를 했는지 되짚어 주고 싶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자라면, 신전에서 보고 느끼는 게 있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제는 당신이…. 당신이 있을 곳으로 돌아가 현명하게 처신할 거라는 믿음이 가지 않네요.”

“….”

“당신은 내게 왜 몬스터 밑에 있냐고 물어볼 처지가 아니에요. 더구나 그 몬스터로 말할 것 같으면, 당신 앞에서 분명히 인간의 언어로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면박을 주었든 평화적으로 물러났을 거예요. 왜냐면 지금 당신이 멀쩡히 살아있다는 것이 그 증거니까요. 아닌가요?”

세리스의 물음에 미스틸 테인은 차마 대꾸하지 못했다.

“지금 당신의 태도를 보니, 거기에 제가 있지는 않았어도 왜인지 알 수 있을 것만 같네요. 분명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살펴보지 않고 당신의 주장만 했겠죠.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당신은 여기에 왔어요. 그리고 어제 이곳의 최고 자리에 앉은 자에게 대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당신은 어쨌든 살아 있습니다. 죄 없는 사람들에게 화살을 퍼부으라 명령한 귀족만 빼놓고 말이죠. 모두가 살아 있어요.”

“나는….”

“그는 당신에게 괴물처럼 굴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 단 한 번도요. 그리고 당신이나 다른 이들은 냉정하게 본질을 꿰뚫어 봐야 할 사람들이죠. 그러나 그러지 못했죠. 그런데도 당신들이 되돌아갈 수 있던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엉망이 된 나라들을 현명하게 보살피기 위해서예요. 저 난민들은 당신네에게 가혹한 취급을 받을 재산이 아닙니다. 당신네에겐 그들을 추격할 권리가 없어요. 권리라는 것은 의무를 다했을 때, 비로소 행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말을 하는 세리스의 옆얼굴은 아름다워 보였고, 동시에 매우 강인해 보였다.

그 강인함이란 한 치의 의심도 없는 확고부동한 신념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귀족들이 왜 처음부터 믿음이 가게끔 행동하거나, 믿어달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그래 놓고서 지금 고작 하는 방법이, 짐승을 사냥하는 것처럼 말에 타고 인간들을 추적하는 꼴이었다.

귀족이 현상금 사냥꾼인가?

아니면 용병인가?

참으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제가 보기에 당신들은 순서가 틀렸습니다. 급한 불부터 끄세요. 땅이 안정되고 전체적인 균형이 지켜지는 게 급선무입니다. 백성들은 그런 안전한 자리를 찾아 본능적으로 이동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때가 되면 오지 말라고 해도 몰려들 거예요. 그런데 사방에 불을 질러 놓고, 질식하지 않기 위해 도망가는 사람들을 쫓는 게 말이 되나요? 귀족 이전에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인간답게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그 소리가 왠지 모르게 미스틸 테인의 가슴에 박혀 들었다.

그리고 그 파편이 쩌르르 울렸다.

뭐지 이 느낌은?

고개가 무거워지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세리스가 덧붙였다.

“백성들을 쫓지 마세요. 몬스터들처럼…. 그래요, 마치 몬스터처럼 말이에요.”

미스틸 테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으며, 고개가 땅을 찾듯 숙여졌다.

*  *  *

세인은 새벽부터 은밀한 방문을 받았다.

그 방문자는 바로 한센이었다.

“전에도 그랬지만, 오지까지 와서 장사하느라 수고가 많군.”

세인은 그렇게 한센을 맞이했다.

그런 그의 무표정한 얼굴 앞에서, 한센은 약간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들의 사이에는 모닥불이 마지막 힘을 내려는 듯 타닥거리고 있었다.

세인은 새벽이 끝나가자, 더는 모닥불에 장작이라는 먹이를 던져주지 않았다.

“저는 꼼짝없이 오지를 겉돌 팔자인가 봅니다.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덕분에.”

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을 했다.

앉으라는 표시다.

전 같았다면 어림도 없었지만, 한센은 조금 거리를 두고 바닥에 앉았다.

이러고 나니 유목민 같은 느낌도 들었다.

검고 차가운 산에 앉은 유목민이라….

둘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세인은 눈이 아프지도 않은지, 타들어 가는 불길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것을 따라 하려다가 눈물이 질끔 난 한센은 바깥쪽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새벽녘에 물든 파란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모습에 한센은 여기로 온 목적도 잊고 입을 벌렸다.

그런 그의 표정에는 순수한 감탄이 서려 있었다.

“완성되면 거대한 도시의 모습이 되겠군요.”

“그래. 몬스터가 있었다면 꿈도 못 꾸었을 도시지.”

그리고 그 몬스터가 바로 세인이라고, 한센이 떠나온 곳의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 중간에 낀 한센은 물론 난감했다.

“건물마다 노란색 깃발이 걸려 있군요. 오늘이 무슨 날입니까?”

그런 그의 질문에 세인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어색함에 헛기침한 한센은, 마차에서 마주쳤던 인물에 관해 이야기를 꺼낸다.

“실은 오면서 동행하게 된 사람이 있습니다.”

“….”

“지금은 헤어졌지만 뒤늦게나마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쯤 이곳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관찰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가 누구인가?”

세인의 질문에 한센은 단숨에 대답했다.

“슈나이더라는 자로서 블랙 라이어드 상단의 주인입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