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왕 마검의 주인-114화 (114/307)

# 114

& 글리터 (2)

세인은 오크들을 들이는 동시에, 드워프들도 땅에 들였다.

드워프 들이야 이제 전우나 마찬가지인 관계라, 그 밑바탕에 신뢰가 쌓여있었다.

그 신뢰가 울프크릭으로 하여금 움직이게 했다.

크릭은 세인에게 광산에 대해서 들었다.

그리고 몬스터들이 없어졌기 때문에 개발될 여지가 있었다.

그런 곳이 수십 개는 가뿐히 넘어간다는 것에 크릭은 동의했다.

소유권에 대해서 잠시 이견이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글리터의 지리적 위치가 광산개발에 도움이 된다는 것도 인정했다.

그다음은 뭐 밀고 당기기였다.

크게 보면 어차피 드워프들에게도 좋고, 글리터의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이렇게 드워프는 그렇다 치자.

하지만 문제는 오크들이었다.

크릭도 그렇지만 다른 드워프들은 세인의 이번 결정에 대해 말이 많았다.

이걸 지도자의 현명하고 과감한 결단이라고 해야 할지.

감당할 수 없는 불씨를 품에 안은 무모함이라고 해야 할지… 헷갈리는 상태였다.

몬스터는 언제나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애초에 오크들을 주둔지로 자청하여 끌어들인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금기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성을 만드는 것에는 엄청난 시간과 노동력이 요구된다.

어느 날 대마법사가 짠하고 나타나 소원을 들어준다면 몰라도…. 하루아침에 성이 만들어지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까.

“결국, 전에 오크들을 학살하지 않길 잘한 셈이로군요.”

코다로가 오크들의 이동을 동의하며 했던 말이다.

비비안은 그런 그의 앞에서 ‘그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지요.’라고 대답했다.

드워프들이 보기에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 치고는, 세인은 태평하게 행동했다.

게다가 글리터의 사람들도 경악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런 것 치고는 큰 동요나 혼란스러운 기색이 없어 보였다.

그런 마당에 드워프들만 호들갑을 떨 수도 없는 일이다.

드워프들은 근처에 있는 광산에도 들르는 한편, 지하의 온천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성의 설계에도 관여했다.

그런데 이들의 건물 짓는 방식은, 인간들의 방식과 차이가 있었다.

일단 단단하고 고급스러운 광석을 성터에 잔뜩 끌어 모았다.

그것들은 날이 갈수록 불어나더니, 종국에는 글리터 중앙에 거대한 검은 산처럼 생겨났다.

그리고 그 중앙으로 오크들이 암석이나 자재를 날랐다.

매일매일 망치와 정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남들이 볼 때 드워프들의 모습은, 마치 신에게 바칠 거대한 예술품을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 정도로 혼을 불태우는 것이리라.

세인은 그 산의 중턱에서 뚱한 표정을 한 채로 앉아 있었다.

그런 표정을 한 세인의 얼굴을, 석양의 뒤꼬리가 미약하게나마 붉은 여운으로 뒤덮었다.

그의 앞에 서 있는 것은 아비게일로, 그는 현재 글리터의 상황에 대한 보고로 여념이 없었다.

돌더미 위에 앉아 나뭇가지 끝으로 바닥을 긁적이고 있던 세인은, 그 보고를 인내심을 발휘하며 들어 주었다.

“지금 가장 불안한 점은 오크들의 숫자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공사는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그들이 반란을 일으키면….”

“그땐, 그 오크들이 다 죽는 거지.”

“예?”

“아니야. 계속해봐.”

아비게일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세인을 힐끔거리며, 오크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세인은 다시 인내심을 발휘하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고 말이다.

보통 사람은 상급자에게 보고하는 것에 있어 부담을 느끼기 마련인데, 아비게일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보고를 못 하면 불안해했다.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 모습이 유별나다 싶을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세인은 귀찮다고 물리치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었다.

아비게일도 물론 그런 세인을 눈치챘다.

그리고 그런 점은 아비게일에게 의외로 다가왔다.

그가 아는 세인은 존경을 받는 군주였다.

그보다 더 지지와 사랑을 받는 지도자는 또 없을 것이다.

그 증거로 오크가 삶의 터전에 들어왔는데도 주민들은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아비게일에 있어 세인은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마검을 휘두르며 어둡고 강력한 힘을 행하는 그의 말을 거부할 수 없는 아비게일이다.

그가 아비게일의 보고를 듣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아비게일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세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건 정말 그의 처지에서는 의외다.

그런데 갑자기 세인이 아비게일에게 말을 걸어왔다.

“진짜 걱정이 뭐야?”

“예?”

“오크들의 반란보다도, 당장 생각하기에 진짜 문제가 뭐냐고.”

“….”

“어떻게 들릴까 걱정하지 말고 말해봐.”

주저하던 아비게일은 결국 속내를 털어놨다.

“대륙 전체가 저희를 악의 축으로 보는 일입니다.”

“….”

“지금 상황을 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합니다.”

세인은 말의 내용보다도, 아비게일이 벌벌 떨면서 할 말은 하는 것에 ‘용쓴다’는 얼굴을 했다.

아니 이 정도 내용을 가지고 저렇게 떨 것은 없는데 말이다.

‘누가 보면 평소에 내가 두들겨 패는 줄 알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피식거리는데, 그 웃음을 비웃음으로 오해했는지 아비게일은 음성에 힘을 실었다.

“가볍게 받아들이실 일이 아닙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명분입니다. 이곳이 노출될수록 오크들은 눈에 띄게 되고, 그것은 다른 곳이 쳐들어올 명분을 주게 됩니다. 난민들로 이미 충분히 노출되었으니까요.”

세인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불빛들에 시선을 주었다.

이제 태양의 잔광조차 완전히 땅 아래로 숨어 버리고, 대지는 검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다.

하나둘씩 켜지는 불빛이 세인의 발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과거, 그는 불안한 마음으로 북의 허리띠 너머에 있던 불빛을 보았었다.

그리고 인간의 위기를 예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어느덧 인간이 일으킨 불빛들이 글리터 지역을 뒤덮어 버렸다.

“저긴 어디지?”

“신전 부근입니다.”

유난히 빛들이 모여있는 곳은 바로 신전이었다.

글리터를 찾아온 난민들은 아차 싶었을 것이다.

오크들의 모습도 모습이지만, 언데드가 주민으로 있는 곳을 보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목숨을 건 여행을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고통과 미래 없는 삶을 피해 괴물의 품으로 뛰어든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위기감을 종식해 주는 곳이 바로 신전이었다.

신전 안을 보면 위기감이 좀 희석되겠지.

아비게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밑이 시끌벅적해졌다.

아비게일은 무슨 소린가 하고 아래쪽을 힐끔거렸지만, 세인은 신경 쓰지 않았다.

산 밑에서 횃불이 밝히는 빛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그 빛이 세인의 발등을 덮었을 때는 여러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 후였다.

“저 사람들은?”

세인이 선두에 선 세리스에게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난민들을 쫓아온 지휘부입니다.”

더이스와 행크가 옆으로 몸을 비키자, 생선 엮듯 밧줄에 묶인 남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에는 세인에게 있어 낯익은 얼굴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는 체를 하지 않고 묵묵히 세리스의 설명을 들었다.

설명이 끝났을 때, 그는 포로로 끌려온 귀족들에게 물었다.

“공개 처형이 낫겠나? 아니면 그냥 여기서 죽는 게 낫겠나?”

그 말에 가슴이 먹먹해진 것은 당연히 포로들이었다.

여기에 와보니…. 과연 몬스터들의 소굴이라 죽음을 각오하긴 했었다.

하지만 이렇듯 사형 선고를 면전에서 받고 나니, 눈 뒤집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귀족들이 소리를 지를 때, 세리스가 황급히 다가와 세인에게 속삭였다.

“저들을 놓아줘야 해요. 저들마저 없다면, 가뜩이나 귀족이 부족한 나라의 백성은 누가 보살피나요. 그리고 생각해 보세요. 어떤 상황에서도 귀족들의 목숨을 보장하는 것은 ‘인간’들의 규칙이라고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세인이 맥을 봤다.

그의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그러자 맥은 불경하게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태도도 어쩔 수 없는 게, 그는 세인과 세리스를 이미 각별한 사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대부분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마당이라, 맥만의 특별한 착각도 아니었다.

그의 처지에서 보자면, 세리스와 세인 사이에 끼어드는 것은 지극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래도 바라봤으니 말은 하긴 해야겠지.

그런 맥의 상황을 눈치챈 더이스와 행크는, 자신들에게도 질문이 떨어질까 봐 걱정했다.

그리고 보인 행동은, 포로들을 향해 몸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게… 오크들을 본 마당입니다. 각지로 돌아가 무슨 보고를 하겠습니까? 몬스터 소굴이라며 떠들고 다니겠지요.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는 돌려보내지 않아야 한다고 봅니다. 보고를 늦출 수 있을 테니까요.”

“어차피 많은 사람에게 목격된 마당이에요. 우리가 떳떳하니 정보를 통제할 필요도 없고요! 언젠가는 외부에서도,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줄 거예요. 오크들과 동맹 관계가 아니라, 그들을 노예로 부리고 있다는 사실도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선 안 됩니다. 사람들의 목숨이 걸린 일이고, 지금은 전시가 아닙니다.”

세리스의 강경한 말에 맥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세인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아비게일이 서 있었다.

세인은 얼굴을 굳힌 세리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가 전장이고, 세인님의 명령을 받은 상태라면 주저치 않고 사람의 목을 베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내놓을 수 있는 제 대답은 하나예요. 온정을 보여주세요. 지도자로서의 덕을 보여주세요.”

그 소리를 들은 세인이 아비게일에게도 물어보았다.

“그쪽 생각은 어때?”

“예?”

갑자기 불벼락을 맞은 아비게일의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기사들의 의견을 들었으니, 마법사의 의견도 참고해봐야 하겠어. 저자들을 살려 보내는 게 좋겠나? 아니면 처형해야 할까?”

보고서를 든 아비게일은 석고상이 된듯했다.

게다가 식은땀을 흘리는데, 세인은 괜히 물었나 싶었다.

그때였다.

발작적인 고함이 터져 나온 것은.

“너희들이 무슨 권리로 인간의 목숨을 저울질하는 것이냐!”

더이스의 굵은 팔에 목이 휘감긴 포로 한 명에게서 그 고함이 터져 나왔다.

상대는 젊은 청년이었는데, 고생을 하도 많이 해서 그런지 검은 머리 곳곳에 흰머리가 섞여 있었다.

더이스가 그 포로를 제지하려고 했지만, 세인은 손을 들어 더이스를 말렸다.

그리고 더 말해보란 뜻으로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때 포로들도 힘을 실어 주려는 듯 옆에서 소리를 쳐댔다.

“귀족은 반환시켜야지!”

“당연하다! 그게 바로 법이야!”

“우리는 이곳을 공격하지 않았어! 우리 재산을 지키려 했을 뿐이다. 그것을 지키러 온 우리들을 방해한 강도가 바로 너희들이야!”

그런 목소리 사이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난 청년은 전혀 딴소리를 했다.

그 내용에는, 세인과 글리터 사람들을 인간으로 대하는 내용이 담겨있지 않았다.

“너희들은 몬스터 들이야. 너희들의 본능은 그저 죽이고, 다시 죽이는 것이다. 그런 주제에 같잖은 인간 흉내를 내지 말란 말이다. 너희들이 인간의 사회를 알겠나?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도중에 그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올 때 몇 차례 얻어맞았는지 피가 섞인 침이었다.

“선택이니 뭐니 인간 흉내를 내지 마라. 괴물 주제에 우리를 저울질하지 말란 말이야.”

세인은 청년의 눈 안에서 활활 불타고 있는 적의를 보았다.

몬스터에 대한 무조건적인 악의였다.

그것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세인 본인도 그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상대에게 동질감을 느꼈을 때, 그것은 분노한 인간끼리의 동질감이었다.

상대가 이런 세인의 감정을 안다면 동의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청년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죽음 앞에서도 한치의 비굴함 없이 자기 목소리를 높이는 그였다.

그런 그의 웅변을 다 듣고 난 세인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세리스에게 귓속말로 뭔가를 물어보았다.

그런 그의 손에는, 어느새 검은 검이 들려 있었다.

마검이 빛을 받아 번쩍이자, 불길처럼 말을 토해 내던 청년.

트리엔의 미스틸 테인이 눈을 잠시 감았다가 떴다.

눈꺼풀이 한차례 닫혔다가 열렸을 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했다.

세인의 존재감이 너무나 크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어둡고 인상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이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인은 미스틸 테인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리고 마검을 들어 올렸다.

테인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곤,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그래. 오라, 죽음아! 이 정도면 열심히 살았다.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다.’

비록 젊은 나이지만, 미스틸 테인의 결기 어린 눈빛과 세인의 눈빛이 겹쳤다.

그리고 그사이를 끊어 놓겠다는 듯, 마검이 움직이며 바람 소리를 내었다.

쿵!

그리고 이것은, 살해 현장을 본 아비게일이 눈을 하얗게 뒤집어 까며 뒤로 넘어가는 소리였다.

주위 사람들은 아비게일이 뇌진탕에 걸리진 않았을까 염려해야 할 정도였다.

너무 깨끗하게 넘어졌으니까.

“으윽!”

죽음을 각오한 미스틸 테인이었지만, 그는 볼을 적시는 피에 비틀거리고 말았다.

그의 얼굴 반쪽은 피 칠갑이 되었다.

그러나 목에는 이상이 없었다.

죽음을 모면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피는 누구의 것일까?

비껴간 죽음은 그의 옆 사람을 베었다.

테인은 흔들거리는 눈빛으로, 바닥을 구르는 귀족의 머리를 보았다.

“내일 아침 해가 떠오르면 남은 자들을 풀어주겠다. 하지만 난민들에게 화살 세례를 명령한 녀석은 안 돼. 너희들은 몰라도 나는 그런 놈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니 귀족 대접을 해줄 필요도 없는 거야.”

세리스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세인이 그 한 명을 단칼에 죽여버렸다.

그리고 이것을 끝으로 더는 이들에게 볼일이 남아 있지 않았다.

“….”

그가 손짓으로 신호를 보내자.

병사들과 기사들은 포로들을 이끌고 장내를 떠나갔다.

미스틸 테인은 마지막으로 끌려가면서도,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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