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왕 마검의 주인-106화 (106/307)

# 106

& 낯선 시대 (2)

하얀 땅 위를 한 마리의 말이 거침없이 달렸다.

그 질주에 세인의 망토 끝자락이 쉴 새 없이 펄럭였다.

바람을 맞는 세인은 몸을 앞으로 숙여 저항을 줄이는 대신, 오히려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탁 트인 평야가 그의 눈 아래에 펼쳐졌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평원의 몬스터 수는 급격히 감소하여 있었다. 하지만 아예 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말의 옆으로 흙더미가 솟구쳐 오르더니, 분홍색 기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기둥은 아래로 휘어지며 말을 잡으려 했지만, 말은 날쌔게 그 기둥을 지나쳐 버렸다.

말이 달리는 속도를 줄인 세인은 반 바퀴 돌며 다가오는 기둥을 보았다.

여러 개의 분홍색 줄들이 그를 찾아, 차갑고 단단한 땅거죽을 뚫고 허우적거렸다.

저렇게 간절히 찾는데 모른척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안장에 매달린 마검을 손에 든 세인이 말에서 뛰어 내린다.

그리고 기둥으로 다가서며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차가운 검날은 저항 없이 분홍 촉수들을 베고 지나갔다.

마치 수수의 줄기를 베는 것처럼, 잘린 촉수들이 바닥에서 펄떡였다.

그러다가 탄력이 좋은 촉수는 세인의 발목을 휘감아 왔다.

그러나 세인은 발목에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는 검은 검날을 거꾸로 세우고는, 그대로 몸을 숙여 바닥을 찍었다.

검날이 땅에 파고들자 땅이 미미하게 흔들거렸다.

그리고 검붉은 끈적이는 액체가 아래에서 펑펑 솟아 나온다.

그에 따라 세인의 발목을 휘감았던 촉수도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마검을 땅에서 빼내자 검날에 달라붙은 작은 촉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도 몸체에 검날을 박을 때, 본능적으로 휘감은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은 빨판을 내보이며 힘없이 아래로 떨어져 내릴 뿐이다.

검날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피를 뿌린 세인은 말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말 너머를 향해 감탄사를 내뱉곤, 말 등에 올라타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그를 금세 작은 언덕 위로 올려놓았다.

그러자 세인은 전방에서 움직이고 있는 동물들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으음….”

먼지를 일으키며 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은 야생마들이었다.

대체 언제 숫자를 저렇게 불린 것인지, 적지 않은 수가 선두를 따라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노란색, 갈색, 검은색의 갈기를 휘날리는 말들 곁으로 아직 다 자라지 못한 망아지도 보였다. 그들은 짧은 다리로 어미의 곁에서 열심히 뛰는 중이었다.

동물들이 저렇게 엄청난 숫자로 불어날 수 있는 까닭은, 그만큼 몬스터의 수가 위축되었기 때문이리라.

세인은 팔짱을 끼며 그 말 떼의 이동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저들은 뜯어 먹을 풀을 찾아 이동하는 중이다.

그렇게 돌고 돌다 보면 언젠가 또다시 여기로 찾아오겠지.

동물들의 생존을 위협하던 포식자가 줄어들었으니, 머지않아 소 떼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이렇듯 인간들이 망설일지라도 자연은 기민하게 움직인다.

고개를 끄덕인 그는, 폐부를 가득 채운 신선한 바람을 안고 주둔지로 돌아왔다.

마구간으로 돌아가니 아직도 자리를 떠나지 않은 세리스가 보였다.

그녀는 생각에 잠겨 있는 듯했는데, 세인은 처음으로 그런 그녀에게 반말을 했다.

“세리스. 아까도 말했지만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전처럼 공포의 날이 다가온다고 해서, 움츠리고 있다간 이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 거야.”

세리스는 세인의 반말에 웃어 보였다.

이제 그녀를 자신의 사람으로 여긴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화려한 서임식은 없었지만, 이미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건 어떤 기회입니까?”

세리스의 물음에 말에서 내리는 세인이 대답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시간. 여행하고 평온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지.”

각자에게, 더 나아가 각 나라에 시간이 주어졌다.

남부의 바이테스나 성국 또는 그 주변의 나라처럼, 안전을 고려하며 자리를 보존할 수 있다.

혹은 드레퓨스처럼 몬스터의 공포가 사라진 땅 위에서 야망을 활화산처럼 불태울 수도 있었다. 활개 치며 땅들을 정복하는 것 말이다.

혹은 세계수의 번우드처럼, 완전한 휴식과 은둔을 누리려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세인은 다가올 공포의 날을 경계하되, 사람들의 행복을 경시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천막으로 돌아온 세인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이것저것 지시를 했다.

그중에는 망루를 바깥쪽으로 빼는 것도 들어 있었다.

“너무 멀지 않겠습니까? 경계보다 교대하는데 시간을 더 잡아먹을지도 모릅니다.”

“돌로 토대를 만드는 거니까. 손이 두 번 가지 않게 하려면 멀리 빼야 해. 이곳은 성터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세인이 속내를 드러내 보이자 행크와 더이스는 침음성을 흘렸다.

‘정말로 둥지를 틀려고 하시는 거구나.’

세리스는 잠자코 듣고 있을 뿐이었고 말이다.

“아비게일은 어떤가? 생각했던 대로인가?”

“계산도 잘하고 아주 쓸 만합니다. 한동안 골치를 썩였던 문제 말이죠. 쌓여 있는 물자 분류를 순식간에 끝내더군요. 솔직히 감탄했습니다.”

행크는 그렇게 말하며, 속으론 과연 데려올 만한 가치가 있는 연적이라고 생각했다.

세인 입장에서는 뼈 아프겠지만, 현명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과연, 개인적인 감정은 접어두고 실리를 취한다는 것이로군.

“맥은 어떻게 할까요? 믿을만한 사람이 더 필요할 텐데요.”

“내버려 둬. 마플의 곁을 지킬 사람이 있어서 나쁠 건 없어. 그게 어디라고 해도 말이야.”

“….”

“그가 원한다면 언제라도 불러올 수 있어. 그가 원한다면 말이야.”

세인은 다시 세계수에 전갈을 보냈다.

그리고 그쪽의 레인저들로부터 뭔가를 받았다.

커다란 궤짝에 실려 온 것은 가죽 뭉치들이었다. 그리고 머독이 작성한 종이도 약간 섞여 있었다.

거기에 작성된 것은 북의 허리띠 지도였다.

그 가죽 퍼즐들을 맞춘 세인은 커다란 나무판을 세운 뒤, 주둔지 중앙에 놓아두었다.

번복되는 부분은 겹쳐 그리게끔 해서 펼쳐놓으니 아주 커다란 그림이 되었다.

이곳의 새로운 길잡이가 바로 이 그림이다.

하지만 더 완벽하게 만들어야겠지.

그렇게 생각한 그는 정찰병들을 사방에 풀고 좀 더 정밀한 지형을 그려오라 지시한다.

아주 멀리 까진 아니더라도, 이 근방에 대해서는 세세히 알아야만 했다.

그러면서 약초꾼들을 통해 풀에 대한 정보나, 동물들의 움직임.

가끔 목격되는 몬스터들에 대해서도 아낌없이 받아들여 가죽에 적어 넣었다.

조각 모음은 날짜가 지날수록 점점 늘어나다가 어느 순간 멈추었다.

그리고 거기에 기록된 정보는 세밀함을 넘어서, 빽빽이 사방을 채웠다.

언뜻 보면 이 무질서해 보이는 기록을, 세인은 모두에게 공개했다.

그림은 물론이고 글을 아는 사람에게는 필사도 허용했다.

그리하여 글리터의 사람들 전부가 커다란 지도를 공유하게 되었다.

약초꾼은 약초꾼대로, 사냥꾼들은 사냥꾼들대로 그 정보를 유용하게 쓸 것이었다.

그때쯤 되자 전에 지시했던 식량 창고도 완성되었다.

다음으로 만들어져야 할 무기 창고는 보류되었다.

그래서 화살이나 전투용 기름 등은, 공용 창고에서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세인은 그 외에도 무기들을 가정마다 들려주었다.

마검을 가지고 있어 좋은 점이 있다면, 무력으론 아무도 그를 위협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반란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고, 등 뒤에서 들어올지 모를 배신의 칼날에 잠 못 이룰 필요도 없었다.

“온천은 식수로 쓸 수 없어. 근방의 강을 확보해라.”

그의 명령에 따라 강 곳곳에 거점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안에는 병사들이 짝을 이루며 들어가 앉았다.

세인은 필요할 때 거침없이 명령을 내리고 기다렸다.

모든 건 일사천리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나를 시행하면 제대로 돌아가기까지 숙성되는 시간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처음으로 추수를 하던 날까지의 인내도 그랬고, 동물 치던 사람들이 새끼를 얻기까지도 그러했다.

서둘러서 되는 일은 없었다.

다만 지도자가 가능한 한 멀리 내다보고, 그 사이사이를 단단한 징검다리로 채울 때.

그런 시간이 많이 축약될 수 있었다.

망루를 과도하게 멀리 세운 이유 중 하나도 바로 그것이다.

멀리에서 몬스터 떼들이 쳐들어오는 것을 한 망루에서 발견했다.

때마침 맑은 날이라, 수기로 다른 망루에 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는 일사불란하게 주둔지까지 이어졌다.

“승리를 바치겠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세리스는 보란 듯이 그렇게 말했다.

새로운 터에 자리를 잡은 지금, 모두에게 안정을 가져다줄 승리가 필요했다.

어두운 힘에 기대지 않은 승전보는 모두의 기운을 북돋아 줄 수 있었다.

그 주체가 전의 전쟁터에서 눈부신 활약을 했던 아름다운 여기사라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할 것이다.

그녀는 많은 병사도 아닌, 소수를 이끌고 기세 좋게 말을 몰았다.

그리곤 반나절도 채 되지 않아, 완승을 하고 돌아왔다.

굶주림에 인간들의 거주지를 습격하려고 했던 몬스터들은 괴멸되어 땅 위에 쓰러졌다.

당연히 글리터의 주민들은 환호했다.

그리고 세인은 승리의 표식으로 몬스터의 머리를 바치는 세리스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지금 눈앞의 그녀는, 세리스라는 인간은….

글리터의 주민들을 자극하는 아련한 향수였다.

그리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굳건한 자부심으로 거듭날 수 있는 미모. 그리고 실력을, 그녀는 가지고 있었다.

중년의 나이로 가정이 있는 행크와 더이스는, 당연히 이 젊은 여성이 기사단의 주축이 될 거로 여겼다.

그저, 자신들은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을 하게 되겠지.

그리고 거기에 불만은 없었다.

검은 의자에 앉은 세인의 가까이에 행크와 더이스가 앉았다.

그다음은 세리스였다.

능력으로 보면 세리스가 가까이 앉아야 하겠지만, 그녀보다 더 오래 같이 한 인물들이 바로 행크와 더이스였다.

옛사람을 먼저 챙기는 모습을 소홀히 하지 않는 세인이었다.

현재 그는 글리터의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받는 중이었다.

그러면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질문을 했다.

“수원은 어디까지 확보했나?”

“아래쪽은 당장 필요 없으니 내버려 뒀고, 위쪽으로 십여 킬로미터 정도입니다.”

“망루를 지키는 병사들 상태는?”

“다들 잘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인원을 투입하면 안 될까요? 삼 교대 상태로 망루를 옮겨 가니까, 몇 달이 지나야 복귀하는 셈입니다.”

종이를 뒤적이던 세인은 고개를 저었다.

“상시 경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만 그럴 수는 없어. 지금 꼭 해야만 하는 일은, 세계수 지역까지의 길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일이야. 지금 당장은 식량과 물자가 충분하지만, 우환이 생겼을 때 뒤쪽의 배경은 큰 힘이 된다. 난 자립을 원하는 거지 고립되고 싶은 것은 아니니까.”

이제 세인은 세리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생각에 세계수 루트를 안전하게 확보하는 건 네 몫이다.”

그러자 세리스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세인은 그런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어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그럼 우린 뭐하냐는 눈빛을 던지는, 행크과 더이스가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세인은 의외의 말을 꺼냈다.

그건 바로 광산에 대한 것이었다.

“광산… 말입니까?”

“자연 동굴에 매장된 돌을 캘 거야. 전 같으면 어림도 없는 채굴이겠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하다. 몬스터의 수가 얼마 되지 않는 지금은 말이야.”

좌중의 시선이 말을 꺼낸 세인에게로 모였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행크가 물었다.

“그런데 그 돌들로 뭘 하실 생각입니까?”

질문자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게, 성 말고는 답이 없었다.

하지만 성이란 게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시간과 힘을 엄청나게 잡아먹는 일이다.

성이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었다면, 너도나도 앞다투어 만들 수 있었겠지.

그렇기에 대마법사가 관여한 비비안의 성은 기적 그 자체였고, 앞으로도 두고두고 전설로 회자 될 가능성이 컸다.

“성을 지어야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는 말에, 무례인 줄 알면서도 행크와 더이스는 깊은 침음성을 흘려야만 했다.

‘그러니까 어떻게요? 돌만 있다고 뚝딱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묻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아내는 표정이 둘 다 역력했다.

그에 비해 세리스는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그런 그녀를 일별한 세인은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단숨에 해치우자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서둘러도 완성까진 한참이 걸릴 거야. 나도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일이야. 어차피 해내야만 한다면, 차일피일 미루는 것보단 시작을 서두르는 것이 좋다.”

“….”

그리고 말을 맺은 세인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말을 하다말고 짧은 사색에 빠지는 경우였다.

그라고 완벽할 수는 없었다.

모든 일을 추진하면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모든 것에 임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요즘 생각이 유독 많다.

잠시후 생각에서 깨어난 세인은 자신도 모르게 숙여졌던 고개를 들었다.

“참 복잡한 상황이다. 그렇게 노력했지만, 여전히 모두의 앞날은 불투명하다. 커다란 위험이 예고되어 있어. 하지만 이건 기회이기도 해. 괴물들이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르지만, 이른 시일 내는 아닌 것 같다. 한정되었지만 자유가 약속되어 있어. 이 자유를 끝까지 누릴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의 눈빛은 음성과 마찬가지로 매우 무거웠다.

“이상한 검이 내 운명이었고, 당신들은 본의 아니게 그 운명에 휘말린 셈이야. 그래서 꽤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내가 생각하는 주춧돌의 무게를 감당해야 할 것 같다.”

모든 것을 설명하고 대화하기엔 끝이 없는 주제였다.

그들은 침략을 피해 다시 차가운 땅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이제 뿌리를 깊게 내리려 하고 있었다.

세인은 세계수 지역으로 가는 것을 택하지 않았는데, 커다란 힘과 함께 외면할 수 없는 책임이 제 품으로 굴러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때 더이스가 입을 열었다.

“처음에 저는 땅에 충성을 바치는 기사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세인님에게 충성하기 위해 숲 쪽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누가 저를 다시 살게 하고. 누가 저희를 위해, 무엇을 짊어졌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 사실이 앞으로의 제 행동을 이미 증명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관되게 그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그러자 행크도 고개를 끄덕이며, 더이스의 말에 자신의 말을 덧붙였다.

“영주님. 과거에 제가 훌륭하지 않은 마음을 품지 않았다고 말하면, 그건 거짓말일 겁니다. 그러나 과거야 어떻든, 영주님에 대한 제 봉사는 제가 죽을 때 끝날 것입니다.”

약점이 있는 마음은, 주로 이유가 있는 마음이다.

왜냐면 그 이유가 부서진다면 결심도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어떤 마음은 구체적인 이유를 묻지 않았고, 같이 했던 고난과 수많은 시간 속에서 공동의식을 가졌다.

행크의 말이 끝나자, 세리스는 세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역사 속에서 이름을 남기지 못해도 괜찮아요. 어쩌면 수치스럽게 오명을 남길지도 모르죠. 그러나 저는 제 이름을 가진 인간으로서 판단하고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후회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그건 사람들에게 받을지 모를 손가락질보다 중요합니다. 왜냐면 그 손가락질의 근거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의 길은 결국, 저를 키워준 인간이란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 믿습니다.”

마지막 기사의 말까지 들은 세인은 굳은 얼굴로 끄덕였다.

“그래. 고맙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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