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 꼭 남길 바라는 사람
여기에서 잠시 세인의 속내를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그는 라이트닝 블러드였다.
신의 힘을 휘두르는 자.
하지만 신의 힘을 휘두른다고 해서, 그가 곧 신격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엘릭서가 폭주하는 것을 막고, 가능한 그 시대에 맞는 판단을 하기 위해서 지성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 지성체가 바로 세인인 것이다.
물론 보통 인간보다 나은 능력을 갖추긴 했지만, 초월자 자체인 것은 아니다.
천재도, 높은 지능을 가진 인간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보다, 자신의 책임감을 더 중시하게 되었다.
레인저 생활에서 머독의 훈련 덕분이기도 했다.
하루하루 책임감에 치어 살던 그는 한때 죽음을 각오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엄청난 힘이 그의 손에 쥐어졌다.
하지만 ‘그가 그 힘을 손에 쥐어서 행복해졌는가?’라고 묻는다면 물론 아니다.
그의 기준에서는 말이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악화한 상황에 대해 책임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어찌 되었건 대머리 괴물 말을 들어봐도 그렇고….
몬스터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은 그의 자극 때문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 때문에 앞으로 다가올 파멸의 날에 대해서, 대륙의 인간들을 향해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세인으로서는, 경고를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저런 고민을 해보았다.
그중에서는 자신은 몰라도 세리스를 보내서 설득하는 것도 들어 있었지만, 귀를 기울일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상대가 보기엔 몬스터들 쪽에 선 인간일 테니까 말이다.
그는 대륙의 중앙으로 나가 자리 잡을 생각을 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어떻게든 부딪히면서, 대륙의 인간들에게 미래에 대해 말할 기회가 오길 바랐다.
그게 지금의 그가 생각해낸 최선이었다.
하지만 비비안과 코다로의 말을 들어보니 그게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세인은 그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하려던 시도는 너무 무모한 것이고 주변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은 용기였다.
그리고 중앙으로 나간다면, 대륙의 인간들과 아주 심한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아니, 분명히 그럴 것이다.
그의 행동을 몬스터의 침략으로 규정해 버릴 테니까.
적어도 자신을 인간이라고 정의한다면, 굳이 침략적인 성질을 고집하면서 일을 추진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그런 경멸해 마지않는 행동을 감수하며 말이다.
‘무조건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다니, 이래서야 힘에 사로잡힌 꼴이군.’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무모함을 경계했다.
그리고 자신의 독주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다.
그러고 보니 새삼 몬스터들의 말도 떠올랐다.
저주에 가까운 말, ‘너야말로 악’이라고 말한 내용을 말이다.
“….”
한편, 비비안과 코다로는 세인만큼 대륙의 인간들을 생각하진 않았다.
그건 그들이 무정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당연한 부분이었다.
마검을 들고 그 힘만큼이나 책임감을 느끼는 세인과 다른 처지였다.
더군다나 방금 전까지 바이칼도 그렇고 연합군과 피를 흘리며 싸운 마당이다.
한때 조국 가이더를 위해 그리고 인류 전체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었었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무엇인가?
모두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이제 와 보니 몬스터 취급을 하며 대립하고자 하는 자들이었다
그 상황은 결국, 극단적인 전쟁을 초래할 것이다.
다만 세인이 중앙으로 떠난다면 그들도 같이 할 것이다.
세인이 마지막에 보여줬던 모습을 떠나, 그는 자신들의 곁에서 같이 목숨을 걸었던 동지였다.
그리고 그는 그들을 이미 한번 살려낸 마당이다.
이미 부정할 수 없는 운명 공동체였다.
그가 싸운다면 당연히 같이해야만 한다.
결국, 이런 점을 지적하며 그를 말린 것이다.
그건 세인에게 제대로 통했다.
세인은 힘에 휘둘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려 했다.
그리고 지적이 들어오면 거부하지 않고 일단 생각해 본다.
그것이야말로 지도자가 갖출 최소한의 덕목이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악인이냐 선인이냐의 구별보다, 냉철한 판단과 책임이었다.
“서두르지 말고 언젠가 우회해서라도 경고를 합시다. 하지만 혼자 짊어지려는 마음은 품지 말아 주십시오. 당신이 그렇게 하면, 당신 주위의 사람들도 그걸 감당해야 하니까요. 적어도 저와 비비안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렇게 할 겁니다.”
코다로가 그렇게 말하자 세인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코다로는 씨익 하고 웃었다.
“당신 주변에서 두 번이나 깨어난 사람의 말입니다. 더구나 이제 세상에서 우리를 괴물로 보지 않는 것은, 우리뿐이죠. 그걸 확실하게 깨달은 마당입니다.”
세인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뒤로 돌렸다.
부당한 침략자가 되지 않으려면 그가 가야 할 곳은 결국 한쪽밖에 없었다.
그곳은 바로 북쪽이다.
북쪽으로 돌아간다면 침략자나 이방인이 될 필요가 없었다.
모든 정비를 마친 번우드는 뒷정리를 끝내고 이동을 준비했다.
그동안 세인은 완벽히 마음의 정리를 끝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말하니, 코다로와 비비안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어쨌든 중앙으로 간다는 것보다는 나아 보였기 때문이다.
세인은 자신의 거취문제를 많은 사람에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누구보고 자신을 따라오라 말하지는 않았다.
그는 행크나 더이스, 맥이나 세리스 등등… 누구에게도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심지어 마플에게도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척박한 땅으로 가길 희망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딱 한 사람만은 동행을 요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누굴까?
전쟁 도중에는 몰라도 전쟁이 끝난 후 가장 바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전쟁터에 나왔던 신부였다.
졸지에 언데드가 되어 버렸다고 생각한 신부는 한동안 정말 방황했었다.
그가 얼마나 고뇌에 찬 나날들을 보냈냐면 한때 자살을 고려했을 정도다.
그를 수렁에서 건져낸 것은 되살아난 사람들의 태도였다.
겉모습이 언데드에 가까워지든 말든, 사람들은 되살아 난 것에 대한 결과를 만족해했다.
피부가 창백해지고, 힘이 세졌다고 해서 사악한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그리고 몬스터에 의해 비참하게 죽었던 사람들은 삶에 대한 소중함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참혹한 고난을 같이 했던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었다.
그들은 누가 그들을 위해 희생했는지, 서로 어떤 모습으로 죽어갔는지 똑똑히 기억했다.
그리고 좌절한 신부를 추스르게 도와준 것은, 바로 아스칼리온이었다.
“뭐가 그렇게 심각한가? 우리는 살아 있네.”
“신에게 죄책감이 듭니다.”
아스칼리온은 어느 날 신부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그의 표정은 ‘그래, 이제는 내가 자네를 위로할 차례군.’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자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될 줄 몰랐는데 말이야. 혹시 죄지은 게 있는가?”
신부는 아스칼리온의 물음에 난처한 얼굴을 했다.
원죄는 여기에서 나올 화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습은 누군가의 자애에 의해 이루어진 것일세, 그 밑바탕에 깔린 것은 선의이지. 그렇다고 우리가 몬스터처럼 돌변해서 행동하는가?”
그리고 아스칼리온은 그늘 속에 있던 신부를 끌어내었다.
볕이 있는 쪽으로 말이다.
“우리는 인간이야.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네. 다른 이도 아니고 자네가 그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말게. 신이 정말 자네를 보고 슬퍼하는지 아닌지는 우리가 알 수가 없어.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해.”
“….”
아스칼리온은 신부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자네가 그런 생각을 한다면 우린 매우 슬플 거라네.”
이런 말도 덧붙였다.
“양들이라면 몰라도 목동이 방황해서는 안 돼. 그렇지 않겠나?”
신부는 아스칼리온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전쟁터에 나와 시체들을 위로했다.
유품을 수거하는 것 외에도, 적?아를 가리지 않고 좋은 곳에 가길 빌어 주었다.
그런 그의 행동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있긴 했다.
최근에 검과 창을 맞댄 사이였고, 서로 죽일 듯이 달려든 사이다.
인간애가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많은 주민이 이번 일을 계기로 대륙의 인간들에게 적개심이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일부 불만을 가진 병사들도 그런 신부의 행동을 모른 체했다.
저런 점이 있어서 그가 신부인 거니까.
세인은 온몸에 오물과 피범벅이 되어 있는 신부를 찾아갔다.
계속 말하지만, 세인은 자신의 기사에게도 함께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속내가 어떤지를 떠나 강요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부 앞에서는 행동을 달리 할 수밖에 없었다.
세인을 발견하자, 피곤함도 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신부였다.
때늦은 저녁노을의 여광이 길게 늘어지며, 둘의 그림자를 땅 위에 그려놓았다.
그리고 두 줄기 그림자는 서로에게 가까워졌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세인은 거두절미하고 용건부터 이야기했다.
“내가 있을 곳을 만들 거야. 거기에 당신이 같이해주길 바란다.”
“….”
잠시 침묵을 지키던 신부가 ‘전 원래 영주님과 같이했었다’고 말하자, 세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세계수 지역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거기는 매우 풍족하지.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소속감을 떠나 거기로 몰려가길 바란다. 어차피 함께할 사람들은 앞으로 만들어 나가도 되니까. 가능한 많은 사람이 세계수 지역으로 가서 행복해지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세인은 그 행복을 위해 용광로도 염두에 두었다.
“기름진 땅, 고생했던 사람들을 반기는 따뜻한 곳. 그리고 손을 잡아줄 동맹이 그들을 기다린다. 지긋지긋하고 깊은 고생이었어. 이제 다들 행복해져도 괜찮아. 그 정도 대가는 바랄 수 있다. 하지만 너는 아니야. 너는 신의 종이니까.”
“제가… 영주님을 따라간다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신부는 세인의 눈을 보았다.
그리고 그가 전장에서 보여준 능력을 기억했다.
가공할 위력은 둘째치고, 그 사악한 모습에 치가 떨렸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신부는 왜 그가 그렇게 날뛰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변한 모습을 받아들인 신부는 과거에도 세인을 탓하지 않았다.
영주로서 세인은 대가를 치르고 영지민을 되살렸으며, 그것을 선명하게 공개했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받을지도 모를 지탄에 본인을 노출 시킨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그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원망을 해야 하나?
영지민 모두가 세인이 자신들을 위해서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최근에 벌어진 일도 그렇다.
그게 끔찍한 방법이었다 해도, 세인이 시체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번우드의 사람들이 모조리 죽었겠지.
“평소 하던 대로 하면 된다. 신의 뜻을 받들고, 네 아버지인 신과 그 자식들인 인간에게 봉사해라. 힘든 사람들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등불이 되어줘라.”
“제가 가기 싫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큰 등대가 있습니다.”
세인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나를 위해서 살뿐이다. 내 독단으로 많은 이들에게 희생을 요구할 뿐이다. 하지만 넌 달라. 수많은 사람에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줄 수가 있다. 그들의 친구가, 형제가 되어 주길 바란다. 그래서 난 유일하게, 네게 요구하는 거야. 나와 같이 가자고.”
신부는 기사도 아닌데 세인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세인은 그에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어려울 것도 없었다.
신부보고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라는 요구가 아니라, 신부보고 신부처럼 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건 최근에 그가 풀은 화두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겉모습이 어떻든, 상황이 어떻든 그는 그대로 살면 된다.
그는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했고, 인간들의 신부였다.
그가 신부가 되었을 때 자신의 이름을 버렸던 것처럼….
언제나 이득을 생각하지 않고, 빛에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영주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