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
& 죄악의 관을 뒤집어써라 (2)
참 우스운 일이다.
불타는 야망 때문에… 혹은 ‘최고의 자리니까, 운명이니까.’ 등등으로 왕관을 쓰는 자들이 있었다.
그런 반면, 그 자신은 등을 떠밀려 그 무게를 뒤집어쓰는 기분이 들었다.
빗발치는 화살 비 아래에서 세인은 손을 움직였다.
생각해보면 여기에서 지역을 박살 내는 오버 더 데스의 힘을 쓸 수 없었다.
같은 라이트닝 블러드인 세리스만 빼고 다 죽어 버릴 테니까.
더구나 그 여파가 뒤쪽의 가이더까지 미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고 대군 속에 뛰어들어 검을 휘두르는 것은, 번우드가 당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이었다.
어느새 그의 손아귀에는 과거 드래곤을 죽이고 얻은 것이 들려있었다.
당연히 처음에 이것을 보았을 때부터 무엇인지 알았다.
문제는 이 사악한 물건을 쓸 것이냐 말 것이냐의 선택이었다.
오버 더 데스는 갑옷으로 변했다.
그때 손에 들린 물건이 진동하며 부서지더니, 물질이 흘러내려 그의 팔을 물들였다.
검게, 칠흑처럼 번져나간 그 물질은 세인의 상반신을 완전히 뒤덮었다.
마검 오버 더 데스는 그런 세인을 말리지 않았다.
그저 갑옷 형태로 지켜만 볼뿐이다.
멀리에서 그를 발견하고 쏜 화살들이 부딪히며 세인의 몸을 쉴 새 없이 두들겼다.
그 속에서 세인은 다른 격통을 느끼는 듯 부들부들 떨었다.
검은 망토를 펄럭이며 땅에 착지한 세인은 번우드를 등진 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검게 물든 왼손을 뻗어 앞을 가리키며 명령했다.
원래 그의 권리였던 것처럼 태연하게.
“일어나라.”
세인의 이마에 달라붙은 물건은 그의 명령을 망자들에게 전해 주었다.
유고의 권위를 대리해서 말이다.
유고의 유물인 다크 스타의 명령으로, 미약한 지진이 일어나며 모두의 턱을 흔들리게 했다.
“저게 뭐냐?”
지휘관들이 경악하는 가운데 검은 연기가 솟구쳐 올랐다.
하나둘씩 폭발하는 연기가 바람 때문인지, 옆으로 몸을 눕히며 선을 긋는다.
그 선은 둥글게 드레퓨스의 군을 포위하더니 쓰러져 있는 시체들을 일으켰다.
몸을 부들부들하며 목을 뒤로 꺾고 비명을 지르는 그들의 외침에, 고막이 터져나갈 정도였다.
그 섬뜩하고 사이한 광경에 군대가 방패를 들어 올리고 떨 무렵.
하나둘씩 몸을 일으키는 망자의 군대는 어느새 수천을 넘어섰다.
그들의 몸에는 검은 가시 같은 것이 돋아났고, 누가 들려준 것인지 검은 창과 검 같은 것이 보였다.
그들이 일제히 자신을 일으켜 세운 자를 바라보았다.
주변에 있는 드레퓨스의 군대는 안중에도 없는 행동이었다.
몸을 일으킨 망자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지만, 유고의 유물을 쥐고 있던 세인이 해줄 수 있는 명령이란 뻔했다.
“내 앞의 적을 죽여라.”
그러자 망자들이 울부짖었다.
그리고 무기를 든 상태로 주위를 휩쓸었다.
피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세인은 붉은 눈을 빛내며 전방의 적들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비명과 함께 적들의 머리가 일제히 터져 나간다.
머리를 잃은 시체들이 쓰러질 때, 검을 빼앗아 손에 쥔 그는 무기를 힘차게 휘둘렀다.
그러자 달려오던 말의 머리가 솟구치며 피를 뿌렸다.
거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세인은 앞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검은 궤적이 그의 곁을 꼬리처럼 따라다니며 병사들을 조각조각 냈다.
핏물과 비명이 튀는 가운데 세인이 다시 명령했다.
“일어나라.”
그러자 방금 쓰러진 드레퓨스의 병사들이 몸을 벌벌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에서는 검은 피를 흘렸고, 입에서는 검은 가시 다발을 뱉어냈다.
그 가시덩굴은 그들의 목을 죄며 흉터를 만들었는데, 검게 물든 눈을 세인에게 돌리자.
달려나가던 그들에게 세인이 명령했다.
“나의 적을 쳐라.”
아우성.
죽었던 망자들의 아우성이 전장을 누볐다.
그들은 학질에 걸린 듯 몸을 벌벌 떨며 미친 듯이 무기를 휘둘렀다.
그것이야말로 공포스러운 광경이었다.
어느 담 큰 병사가 그 공포를 이기고자 무기를 휘둘러도, 목이 떨어져 나간 시체가 달려들었다.
그리고 기어이 무기를 휘둘러 병사를 요절내 놓았다.
번우드의 병사들을 뒤로 최대한 물러나며 눈앞에서 펼쳐지는 참극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도 공포에 차 있기는 매한가지였다.
죽은 자를 일으키는 힘.
망자를 사역하게 하며 자신의 군대로 이끌고 전장을 누비는 자.
그가 바로 마왕이다.
세인이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드레퓨스의 군대 속으로 사라졌다.
세리스가 그를 쫓으려 하는 그 순간, 행크가 어깨를 잡으며 저지했다.
그녀가 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돌아보았고, 행크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세리스는 입술을 깨문 채 다시 전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번우드 군 대부분은 방관자가 되었다.
검은 망자들은 땅에서 일어나 점점 군체를 늘려갔다.
그리고 당연히 죽음을 도외시하며 검은 왕을 따라 전진했다.
과연 그런 그들을 대체 누가 막아설 수 있을까?
공포를 이기고 막는다 해도 순식간에 도륙될 뿐이었다.
그리고 죽어 쓰러졌던 자들은 검은 왕의 명령에, 부들거리면서도 피를 게워내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좌우로 흔들흔들하는 그들의 초점 없는 머리를, 가시넝쿨이 둘러쌌다.
그리고 소스라치도록 조이며 명령을 전달했다.
‘검은 왕을 위해 싸워라.’
전장을 물드는 피의 비명을 검은 함성이 다시 뒤덮었다.
그 함성은 폭풍처럼 드레퓨스의 군대를 위협했다.
피와 살육, 그 속에서 부서진 방패와 팔들이 위로 솟아올랐다.
마치 분수처럼….
그리고 세인은 검은 갑주와 망토 그대로, 부서져 나가는 인간들을 통과했다.
그러면서 검을 휘두르니 그의 앞에 죽음의 길이 만들어졌다.
“막아라! 어떻게든 막아! 화살을 쏴라.”
공포에 찬 지휘관들은 해서는 안 될 명령까지 내렸다.
화살 비가 적군 아군을 가리지 않고,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세인을 도울 뿐이다.
검으로 적들을 가르며 피의 홍수를 만든 그가 손짓하자, 사방에서 그의 군대로 재탄생한 망자들이 일어났다.
그 수는 점점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부들부들하며 몸을 일으킨 망자 중 몇몇이 입에서 기둥 같은 것을 뽑아냈다.
그것을 두 손으로 열심히 뽑아낸 망자가, 자신의 가슴으로 그것을 안자.
검은 깃발이 펄럭였다.
이 깃발을 피로 적시리라고 외치는 듯, 수많은 망자가 그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돌진하며 달려드는 병사들을 박살 냈다.
방패로 무기를 막으면, 망자들은 그것을 놓고 달려들어 이로 상대의 목을 물어뜯었다.
아무리 몸에 칼이 박혀도 계속 물어뜯고 피를 보고야 만다.
몸에 달린 가시들을 세우며 끌어안는 놈도 있었다.
바닥을 기어 다니는 놈, 뛰어다니는 놈, 양손으로 도끼를 들고 풍차처럼 휘두르다가 병사를 끌어안으며 자폭하는 놈 등등으로, 여긴 이미 혼돈의 바다.
그중의 핵.
지옥 한가운데다.
그런 지옥의 돌풍이 쉴 새 없이 몰아쳤다.
철인이라도 견딜 수 없는 가공할 위력에, 결국 일반 병사들은 점점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망자들이 모여 군대를 만들고, 그 선두에 선 세인은 거침없이 마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목을 추수하며 전진하는데, 그 일직선상에는 당연히 바이칼이 있었다.
“막아라! 막아!”
“전하를 피신시켜, 어서!”
전차들이 달려들자, 세인은 귀찮은 듯이 검을 어깨 위에 올려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유고의 유산인 다크 스타를 쥔 왼손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자 망자들이 몰려들어 그 전차에 몸을 던졌다.
몇 마리의 망자들이 박살 나기를 수차례.
결국, 엄청나게 몰려든 망자들에 의해 그 전차는 뒤집어지고야 말았다.
바이칼은 멀리에서 한 병사가 장창으로 망자의 복부를 찌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위로 번쩍 올리는데, 꼭대기에서 대롱거리던 망자는 상체가 분리되어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장창을 든 병사의 얼굴을 물어뜯었다.
세인은 손에 든 검으로 도망가는 병사의 투구를 후려갈겼다.
그러자 연이은 충격에 이기지 못한 검이 부서져 산산히 흩어진다.
그는 결국 갑옷을 해제하고 손에 마검을 쥐었다.
그다음은 더 광폭한 행진이었다.
이제는 흡사 그의 손에서 검은 불길이 일어나는 듯했다.
그 불길을 쬐는 것은 오로지 망자들뿐이며, 그 불길에 목숨을 내놓고 얼어붙는 것은 바로 적들이었다.
아비규환.
거기에서 뿜어져 나온 비명이 바이칼의 얼굴을 세차게 때렸다.
대체 이게 생시인가 꿈인가?
믿을 수가 없었다.
전율과 공포가 융해되어 두개골 안의 뇌를 헤집어 놓았다.
그리고 이성의 끈을 끊어 버린다.
그때 누군가가 무엄하게도 그의 소맷자락을 잡고 흔들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옆을 보니 장군이었다.
“피하셔야 합니다! 어서! 점점 거리가 좁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등을 돌리는 수치 따위를 논할 때가 아니었다.
바이칼은 결국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철갑 마차에 타고 세차게 문을 닫았다.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들고, 전장을 빠져나가는 그 마차가 세인에게 포착되었다.
그는 그 마차를 응시하다가 시야를 가리는 기사들을 향해 일갈했다.
“죽어라!”
마검 오버 더 데스의 끝이 그들을 겨누자, 기사들은 풀썩풀썩 쓰러지며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그 광경은 주변 병사들의 최후 항전 의지마저도 꺾어 놓았다.
“미쳤어! 이건 미쳤다고!”
“도망가야 해! 도망가자!”
세인은 도망가는 병사들은 쫓지 않았다.
다만 달려드는 기사들을 향해 다시 마검을 가리켰다.
그들이 털썩털썩 쓰러지며 부들거리곤 죽어 나갔다.
그 모습을 보니 증오 속에 연민이 범벅되어 갔다. 그럼에도 증오는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그 증오는 적을 향한 것일까?
아니면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일까?
어쩌면 대머리 괴물의 말이 맞았는지도 모른다.
지금 여기에서 자신은 악마였다.
그걸 부정해줄 면죄부는 어디에도 없었다.
“너의 충신들이 죽는데 너는 고작 도망가는가!”
세인이 발을 들자 망자들이 몰려들어 등으로 그의 발을 받쳤다.
그 등을 밟고 힘을 주자, 세인의 몸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다시 떨어져 내릴 때 망자들이 모여들어 몸으로 그를 받쳤다.
그것이 계단이 되어 그를 높이 올려놓았다.
그 위에서 세인은 마검을 던졌다.
바람 소리를 내며 날아간 마검은 결국 마차의 옆면을 맞췄다.
그리고 연기를 미친 듯이 뿜어내는데, 사슬 모양이 되어 바퀴를 잡고 축을 비틀어 버렸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옆으로 넘어지는 마차를 향해 세인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그리고 앞을 막아서는 이가 있으면 주변의 망자를 끌어들여 물리치게 했다.
그럴 때마다 그의 손에 쥔 유고의 유산이 검은빛을 촉수처럼 뿜어냈다.
그 사악한 힘에, 사역하는 자가 어느새 주변을 검게 덮었다.
그들은 사냥하고 다시 사냥하며 동료를 늘려갔다.
마차 앞에 다가서자, 바이칼이 반대편을 부수며 빠져나오는 것이 보였다.
세인이 마검을 뽑아 들고 그를 겨눌 때였다.
어차피 왕이라서 권고가 통하지 않을 테지만, 그걸 모르는 한 기사가 세인의 앞을 필사적으로 막아섰다.
그 기사의 얼굴은 피범벅이었고 몸을 미친 듯이 떨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양팔을 벌리며 막아선다.
세인은 그 기사의 피범벅인 얼굴과, 도망가는 바이칼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 기사는 세인 앞에서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사력을 다해 중얼거리고 있었다.
“자비를…. 제발 자비를….”
목에서 피를 흘려대는 기사의 얼굴을 보니, 그의 생명은 경각에 달린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일어난 것만 해도 불굴의 의지였다.
결국, 세인은 그 기사의 간절함 앞에서 마검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기다려 주었다.
결국, 기사가 옆으로 쓰러지고 바이칼의 모습은 종적을 감춰버렸다.
“저런 왕이라도 없다면 나라가 위태로울까….”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그런 그의 주변으로 뒤늦게 망자와 병사들이 몰아쳤다.
무기들이 서로 다투고 헬버드 끝이 세인의 몸을 그어대자, 세인은 마검을 거꾸로 꽂았다.
그리고 다크 스타 쥔 손을 위쪽으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검은 연기가 불길처럼 일어나며 모두를 집어삼켰다.
점점 몸을 키우며 주변을 휩쓰는 검은 불길.
그리고 길게 이어지다가 그 연기에 먹혀 사라지는 비명.
악마의 종처럼 검은 연기가 몰려들어 바닥을 검게 태우고, 결국은 피와 달라붙었다.
그 결합체는 용암처럼 바닥을 기어 다녔다.
그렇게 고통과 살해의 결합이 점점 영역을 넓혀나갔다.
소용돌이가 일어나며 주위를 돌아다니는 가운데, 거기에 닿은 것들은 검게 불타며 재로 화했다.
잔인한 처형식 속에서… 세인은 검은 왕처럼 그 참혹한 현장 속에 서 있었다.
고고함과는 거리가 먼 모습.
악의 화신 같은 그 모습은, 죽음처럼 섬뜩한 전율을 가져다주었다.
검게 불타오르는 땅 위에서 그의 모습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렸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엄청난 사상자를 만든 이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그는 원래 형태로 돌아간 다크 스타에 시선을 주었다.
아주 작은 보석.
이 모든 재앙을 일으킨 힘을 간직한 물체였다.
세인은 그것을 품에 감추며, 땅에 꽂았던 마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손등으로 얼굴에 묻은 재를 닦았다.
그러자 그의 피부에 검은 선이 생겨났다.
문대면 문댈수록 깨끗해지는 게 아니라.
얼굴의 검은 얼룩이 커지는 것이, 마치 그의 운명을 상징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결국 얼굴 닦기를 포기했다.
그는 마검을 손에 쥔 채로, 하늘을 수놓는 연기 사이를 비틀거리며 걸었다.
재가 된 시체들이, 그의 발이 닿는 곳에서 부서져 나간다.
형체를 그나마 유지하던 인간의 모습들이 내려앉으며, 그 안에 숨어 있던 불씨들이 허공에 날렸다.
그 속에서 세인은 무너져 내리려는 정신을 다잡았다.
이 마당에 죄책감을 느끼며 무너져 내린다는 것도 참 무책임한 일이다.
수평으로 들려져 있던 검은, 이제 아래로 내려져 지팡이가 되었다.
검 끝은 땅을 찍다가 이제 질질 끌렸고, 검게 변한 바닥에 선을 긋는다.
그 선은 세인의 무거운 발걸음 옆에서, 유일한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결코 달갑지 않는 동반자임이 분명했다.
폐허 속 길게 이어지던 선은, 결국 번우드의 사람들이 머무는 곳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