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왕 마검의 주인-77화 (77/307)

# 77

& 다시 시작되는 눈의 계절 (6)

모두가 예상했던 습격이 일어난 것은, 여명이 오려면 한참이나 남은 새벽이었다.

습격자들은 역시나 복면을 썼으며, 보초들이 해이해지기 쉬운 시각을 선택했다.

화광이 충천하는 가운데, 여러 개의 마차중 하나만을 콕 집어 공격이 가해졌다.

그런데 상단주가 대체 어떤 마법을 쓰는지, 이번에도 마차 한 칸의 차이로 습격은 실패했다. 습격자들은 말 머리를 돌리고 멀어진다.

십 년 감수한 표정의 왕자는, 수도에 돌아가기만 하면 상을 주겠노라고 상단주를 칭찬했다.

그 후로도 습격은 이어졌고 왕자는 간발의 차로 공격을 벗어날 수 있었다.

긴장감에 헐떡이는 왕자가 고통을 호소할 때, 드디어 마지막 습격이 일어난다.

역시나 한밤중에 일어난 습격은 총공격이나 마찬가지였다.

블랙 라이어드 상단이 뒤집히고, 난리가 난 가운데 행인들이 뿔뿔이 흩어진다.

세리스는 장검을 쥔 손을 다시 폈다 쥐었다 하면서 불길을 얼굴에 담고 있었다.

붉은빛을 받아 상기된 그녀의 얼굴이 옆의 세인을 향한다.

“갑시다.”

그 말과 함께 그들의 말이 땅을 박찼다.

느린 속도였지만, 대신 힘이 있었다.

말들은 한 번의 거센 공격 후에 그 자리를 맴돌았다.

검으로 습격자들의 옆을 친 세리스는 그대로 말에서 내려 말의 엉덩이를 쳤다.

그러자 놀란 말이 멀어진다.

그녀는 하얀 검을 가슴 앞에 세웠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빛의 향연이 펼쳐졌다.

하얀 검광이 붉게 부서지는 어둠 속을 누빌 때 사람들이 털썩털썩 쓰러진다.

그런 그녀의 근처를 지나가며 세인이 말했다.

“손속에 사정을.”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팔과 다리가 베여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앞으로 달려가며 검을 휘둘렀다.

세인은 상단주의 마차를 향해 달렸다.

상단주에게 캐물으면 왕자의 행방을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왕자의 생김새도 생김새지만, 상단주가 순순히 말해줄 것인가다.

하지만 몸을 날리는 세인의 표정은 그런 것을 걱정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때 누군가가 말을 몰고 있는 세인의 옆에 다가섰다.

그의 말은 속도를 중시하는 말이었기 때문에 쉽게 세인에게 접근하였다.

그리고 창을 휘둘렀다.

그것에 맞은 세인은 낙마해 옆으로 굴렀다.

그 시각 상단주는 왕자와 같이 있었다.

왕자를 보호하겠다고 짐짝에 넣은 그는 조세핀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궤짝의 자물쇠를 잠근다.

아기를 안고 있는 조세핀은 잠시 상단주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상단주는 여유로운 얼굴로 입을 연다.

“왕자님.”

그러자 막상 들어가 보니 괴로운지, 안에서 탕탕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평온한 상단주를 보며 오히려 불안해진 조세핀은 상단주에게 물었다.

“지금… 뭘 하시려는 건가요?”

그러자 상단주가 조세핀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그건 바로 독약이다.

“왕자는 불에 타 죽을 것입니다. 그러니 선택하십시오. 같이 불로 죽을 것인지. 아니면 독약을 드실 것인지. 그래도 왕자비님은 그때 어쩔 수 없었다는 면을 고려해 이런 것을 준비한 겁니다.”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서는 조세핀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는 상단주다.

그는 블랙 라이어드 상단에 잠입한 남자였다.

습격은 당연히 그가 계획한 것이다.

연이은 실패는 한 번에 왕자를 곱게 죽이지 않으려는 생각이었다.

“제 뒤에 갇힌 자는 나라가 진창에 떨어졌을 때, 자기 한 몸을 보전하고자 고향을 등진 자입니다. 게다가 땅을 외국에 팔려고 했습니다. 이제 겨우 다시 싹이 틔워나려는 나라의 땅을 말이죠.”

조세핀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녀의 뒤와 옆에는 창문도 출입문도 없었다.

여긴 특수 제작된 마차 안이니까.

“후환이 두렵지 않으세요? 당신은 사악한 권력자들의 계획을 망가뜨린 거예요.”

“무슨 상관입니까? 어차피 블랙 라이어드가 다 뒤집어쓸 텐데?”

그러면서 손아귀를 벌리는 상단주를 향해 조세핀은 애원했다.

제발 아기만은 살려달라고 말이다.

*  *  *

한편 세인에게 회심의 일격을 날린 맥스는 말을 세우고 기가 질린 얼굴을 했다.

그는 그런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세우고 있는 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인은 후드를 뒤로 넘기며 중얼거렸다.

“마침 잘됐군. 그의 마차 위치가 헷갈렸는데.”

“뭐야? 너 인간 맞냐?”

사방을 태우는 불빛 속에서 이질감을 느꼈는지 맥스가 눈가를 좁혔다.

세인은 검은 장검을 들고 맥스에게 물었다.

“너흰 뭐냐?”

맥스가 대답 없이 달려들어 세인의 머리 위로 창을 내리쳤다.

그러나 그것은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간단히 몸을 옆으로 돌려 창대를 피한 세인이 장검을 휘둘러 창대를 잘라 버렸다.

그리고 육탄공격을 감행하는 맥스의 옷깃을 잡고 오히려 메어쳤다.

한 바퀴를 돌며 땅에 내리꽂히는 그의 목에 세인의 두 팔이 뱀처럼 감겼다.

그리고 서서히 조여들기 시작했다.

“네 주인의 위치는?”

하지만 맥스는 입을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의 눈이 뒤집히며 부르르 떨리더니 정신을 잃었다.

“독하구나.”

세인은 그렇게 말하며, 멀리 물러나 소리를 지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저들의 바람은 오로지 안전한 여행길일 뿐이었다.

왕자를 죽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  *

상단주는 조세핀에게 다가갔다.

상단주의 우악스러운 손은 그녀의 얼굴을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독약이 든 병을 억지로 쑤셔 넣으려고 했다.

조세핀은 아기를 품에 안은 상태로 눈물을 흘렸다.

지금 아기를 내팽개치고 몸부림친다면 어떻게든 될지 모르지만, 차마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 자식을 어떻게 물건처럼 내던질 수 있겠는가?

상단주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지며 병의 주둥이가 조세핀의 입술에 닿기 직전일 때였다.

갑자기 마차의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두건을 뒤로 넘긴 세인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는 태연스레,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상단주의 이름을 불렀다.

“한센.”

이 목소리는?

상단주, 한센의 몸이 굳어지자.

조세핀은 그의 품을 빠져나오며 옆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기를 다시 보듬어 안았다.

한센은 그런 조세핀을 다시 잡을 생각도 못 하고 천천히 뒤돌았다.

“죽은 것 아니셨습니까?”

세인은 마차 밖에서 멍한 표정의 한센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 대 맞은 얼굴로 세인의 얼굴을 바라보는 중이다.

“그런데 상태가….”

한센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세인은 흔들리는 궤짝과 조세핀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상황을 금세 파악했다.

그가 말을 건 것은 한센이 아니라 조세핀을 향해서였다.

“당신의 남편은 용서받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을 계획하고 준비한 자들입니다. 결코 살아서 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아기는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인이 그렇게 말하자 조세핀이 울부짖듯이 외쳤다.

아기만은 살려달라고 말이다.

자신은 죽어도 좋으니까 제발, 아기만은 살려달라고.

그런 외침을 들으며 세인은 한센에게 명령했다.

“왕자비를 내게 데려와라.”

“세인님… 대체 어떻게, 그리고 그 모습은.”

세인은 갑자기 짜증이 났다.

바깥에서 벌벌 떨고 있는 사람들도 마음에 안 드는데, 눈앞의 놈은 말을 더듬기까지 한다.

“왕자비를 이리 데려오라고!”

그가 호통을 치자 퍼뜩 정신을 차린 한센은 아주 잠깐 망설였다.

하지만 한숨을 쉬더니…. 결국, 왕자비에게 손을 뻗었다.

그녀가 소스라치자, 입을 몇 번 다신 한센은 그녀에게 말했다.

“저리로 가십시오. 당신의 죄가 경미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같이 고통받거나 입막음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녀는 기어가듯이 마차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세인의 뒤에 숨었다.

한센이 궤짝과 세인을 번갈아 보는데, 세인은 그대로 마차 문을 닫아 버렸다.

여기에서 왕자에게 충성 어쩌고 운운하며 한센을 말리기에는, 왕자가 한 짓을 전 백성이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정도까지 일을 꾸몄는데 말린다고 말려질 성질의 것도 아니다.

조세핀을 부축하며 걷는데 멀리에서 세리스가 말을 끌고 왔다.

“왕자님은요?”

세인은 엄지로 뒤에 남겨진 마차를 가리켰다.

“….”

세리스는 말없이 조세핀의 옆에 붙었다.

그녀를 호위하려는 것이다.

아기까지 포함하여 넷은 불길이 닿지 않는 먼 곳으로 피했다.

그리고 불길을 구경했다.

아주 희미한 먼 곳에서 왕자의 절규가 들려온 것만 같은 건, 그들의 착각일까?

조세핀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시간이 지나 모든 일을 마친 한센은 무장한 무리를 끌고 세인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천천히 무릎을 꿇는다.

“살아 계셔서 다행입니다, 영주님. 아레이즈가 함락당했다는 소식을 멀리에서 들었을 때,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과거에 당신을 존중하려 애썼고, 내 허물 대하듯이 당신의 허물도 이해하려 했었다.”

세인의 말에 한센은 옛날 생각이 나는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땅에 처박았다.

“물론입니다, 영주님! 제가 어찌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그 은혜를 잊겠습니까!”

이제 한센 뒤의 남자들은, 자신들도 무릎을 꿇어야 하나 어쩌나 심적 갈등에 시달리는 모습이었다.

그걸로 보아 한센이 이들의 수장인 것 같았다.

“어떻게 지냈느냐고는 묻지 않으마. 하나만 약속해다오. 한때 너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았던 인간으로서 부탁 하나를 할 테니, 꼭 들어준다고.”

“물론입니다.”

“이 여성을 부탁한다.”

한센은 이제 조세핀을 죽이려던 입장에서 역전되어 버렸지만, 승복한다는 듯이 고개를 더 숙여 보였다.

그런 그를 내려다보다가 몸을 돌린 세인은, 세리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제가 줬던 의뢰비는 나중에 다른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잠시 멍하니 있던 세리스는, 그 말뜻을 알아듣고 황급히 품속에서 에메랄드 반지를 꺼내 세인에게 줬다.

그것을 받아든 세인은 다시 조세핀에게 건네주었다.

그녀가 어찌할 줄 몰라 하며 망설이자, 이제는 억지로 손에 쥐여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건 빚도 아니고 동정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건 제 영지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를 당해, 이제 저는 자격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러니 원래 돌아가야 할 가문에게 돌려줍니다. 당신은 제가 짧게나마 겪어본바, 현명한 여인입니다. 부디 그 현명함으로 아기를 잘 키우십시오. 당신이라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세핀의 얼굴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오늘 밤은 너무 극적인 반전의 연속이었다.

그녀에게는 힘든 시간일 것이다.

“저는 생명의 은혜를 입었지만, 은인의 이름도 모릅니다.”

“저는 이제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망자에 불과합니다. 당신이 보통 어미라면 그걸 팔 겁니다. 그러면 앞으로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내가 봤던 대로 비범한 여인이라면…. 힘은 들겠지만, 북쪽 야만인들 나라로 갈 것입니다.”

눈을 크게 뜨는 여인 앞에서 세인은 말했다.

“거기에 내….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에게 그 반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아이는 왕가의 핏줄에 걸맞은 훈육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그렇게 말한 세인은 한센의 팔을 잡고 위로 끌어 올려주었다.

그리고 한결 풀어진 음성으로 말했다.

“이분의 뒤를 부탁한다.”

“예. 알겠습니다.”

한센은 연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는 약속을 꼭 지킬 것이다.

그렇게 용서받을 수 없었던 왕자의 죽음이 완결을 맞이했다.

그들의 주변에 흩날리는 불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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